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참파 (문단 편집) ==== 몰락 ==== 1441년 자야 인드라바르만 6세가 사망하자, 참파에서는 후계자와 관련해 내전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참파의 힘이 약화되었으며, 베트남은 이를 기회로 보아 1446년 참파의 중심지인 비자야를 급습하였다. 결정적으로 참파는 1471년 [[마하 사잔]] 왕이 당시 베트남 남부 국경을 기습적으로 공격했으나 그 역풍은 대단했다. 화가 난 베트남 [[후 레 왕조]]의 [[성종(레)|성종]](聖宗)이 친히 군사 25만을 이끌고 수도 비자야 성으로 쳐들어가 당시 참파의 왕이었던 마하사잔(베트남어로는 '반 라쩨트안(반라차전)')을 생포하면서 영토를 대부분 빼앗겨 베트남의 속국이 되었고, 다시는 옛 영광을 되찾을 수 없었다. 이후 참파의 영토는 베트남에 의해 갈가리 찢겨져 분열된다. 이때 참파는 판두랑가[* 지금의 냐짱.] 지역으로 완전히 밀려 버리면서, 그 이후로는 베트남 치하의 종속국으로 형식상으로만 유지되었다. 베트남은 [[외왕내제]] 체제였는데, 내부적으로 [[황제]]를 자칭하려면 지배하는 [[번국]](藩國)이 필요했기 때문. 베트남의 황제들은 역사적으로 주변 [[라오스]]나 [[캄보디아]], 참파를 정벌하고 그 지역에 친베트남계 왕을 옹립시켜 형식상 나라(번국藩國)로 인정하고 베트남 국왕 자신은 황제 노릇을 했다. 겨우 명맥만 유지하던 판두랑가 지역의 참파는 마침내 1832년 [[응우옌 왕조]]가 합병을 선언하면서 완전히 소멸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