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창조설 (문단 편집) == 종교적 가치관과 과학적 방법론의 충돌 == '''1. 종교적인 문제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과학적,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나? 종교는 믿음의 영역인데, 그것을 과학적, 논리적으로 증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물론 과거 인간이 자연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을 때엔 우리가 과학으로 알고 있는 자연의 작동방식도 철학의 [[형이상학]]의 범주에 머물러 있었다. 일례로 우리가 아는 과학을 예전에는 [[자연철학]]이라고 불러 서술한 서적이 많았다. 하지만 [[르네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계몽시대 이후 [[과학적 방법론]]이 발달하면서 자연이 그리 이해할 수 없거나 알 수 없는 신이 마음내키는대로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닌 변하지 않는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고, 비로소 자연이 형이하학의 범주로 내려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신과 신의 창조라는 것은 그 신이란 존재가 직접 모두 앞에 관측가능한 방법으로 나타나 소통하고 입증하지 않는 이상 입증도 반증도 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다.] 개인의 종교적 믿음을 과학적 방법을 통해서 입증하려는 시도는 가능하지만, 그 결말은 미리 결론을 정해놓고 자신의 믿음을 지지하는 것만 취사선택하는 체리피킹이 되기 쉽다.[* 사실 현대 과학의 시초가 중세의 기독교 사회 속에 태어나 너무 당연하게 모태부터 기독교인일 수 밖에 없었던 많은 자연철학 및 과학자들을 통해 발달이 시작된 공로를 생각해보면 아예 불가능하다고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자연철학, 과학계의 많은 사고방식과 관심영역은 애초에 교회가 아직 생각을 해보지 않았거나, 기독교인으로서 이단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연구가 용납되는 회색지대인 경우가 많았다. 이를테면,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적 사고는 전통 및 정통적인 교회의 사고라 보기 힘들며, 엄밀히 말해서 이단적 사고라는 교리적 분석이 많다. [[https://www.newadvent.org/cathen/05169a.htm|#]] [[https://randalrauser.com/2013/04/substance-dualism-as-atheistic-heresy/|#]] 이들이 애초에 공로를 세울 수 있었던 이유가 진실을 추구하는 태도(데카르트의 [[https://ko.wikipedia.org/wiki/제1철학에 관한 성찰|<<제 1철학에 관한 성찰>>]]과 [[데카르트의 악마]]에서 보이는 인식론적 확실성에 대한 고민과 의심)를 가지고 그런 영역(소위 [[박사|박사학위]] 레벨의 영역)으로 도전했기 때문이라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굳이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현대의 근본주의 개신교의 반지성주의적 태도와 비교하는 것은 이들이 추구한 학문과 진리 그 자체에 대한 열정에 대한 모욕이다. 이들의 진리에 대한 접근 방식이나 태도는 기독교 사회에서 성장한 기독교인이 "진리가 정말 자신이 주장하고 있는 진리라면 제 아무리 '금기'에 대한 의심을 하더라도 여전히 진리로 남을 것"이라는 진리 그 자체의 성질에 대한 믿음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이런 연구자가 [[연구 부정 행위|연구자의 윤리]]를 준수한 실험과 결과 분석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지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결과들을 얻어내도 쿨하게 믿음을 버릴 가능성이 적다. 불리한 조사 결과가 나와도 신의 신앙심 테스트, 해석 실수, 악마의 속임수 같은 [[Ad Hoc]]으로 땜질하면 그만이다. 종교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질책당할 행위가 아니다. 또한, 굳이 종교를 통하지 않아도 인간은 자연스럽게 삶의 의미를 갈구한다. 삶의 의미가 꼭 객관적인 진리일 필요는 없다. 과학자도 과학이 자신에게 어떠한 의미를 주기 때문에 연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관이 객관의 영역과 연구윤리를 침범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2. 창조설을 도입할 타당성과 개연성에 공감하는 사람이 드물다. ''' 무종교인의 입장에서 많은 자연현상이 종교를 통하지 않아도 충분히 설명되고 있는데다, [[재현성]]의 신뢰도까지도 충분히 검증이 되어 다양한 응용과학들의 꽃으로까지 피워낸 자연의 작동원리에 대한 인류의 이해를 이제와서 굳이 종교의 시각을 통해서 보아야 하는 것 자체가 심각하게 개연성과 타당성이 떨어지는 일이다. 이는 [[피에르시몽 라플라스|라플라스]]가 굳이 신을 가정하지 않아도 자신에겐 과학적 저술이 가능하다고 나폴레옹에게 했던 발언의 태도와 같다. 이런 개연성과 타당성의 부재는 3번항목의 문제로 이어진다. 게다가 이 세상에 종교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세계 4대 종교 뿐만 아니라 [[천도교]], 전통 신앙, [[북유럽 신화]] 등도 각각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그 많은 신화 중 기독교의 세계관을 받아들일 당위성은 없다. '''3. 창조설이 진화론 및 "반창조"적 자연과학에 기반을 둔 기존의 응용과학에 어떤 대체 학술 기반을 제공할 수 있는가?''' 순수/기초/자연과학이 충분히 발달해 검증된 재현성 신뢰도를 쌓고 나면 종종 응용과학의 기반이 될 수 있다. 고전물리학의 역학이 여러 공학들이 성립될 수 있게 학문적 기반을 제공했다면, 진화론은 생물학의 응용과학인 의학, 수의학, 농경학, 생태/환경공학/보호학 등에 제공할 수 있는 학문적 기반들이 된다. 예로 집단내의 유전병이나 사랑니 같은 퇴화기관, 가축이나 반려동물들의 종 개량 및 유지 보수, 멸종위기종의 유전적 다양성 같은 주제도 있으며, 더 나아가 인공지능 분야에서 진화 및 유전적 알고리즘을 통해 문제의 해법을 찾아내는 발상에도 기여하고 있다. 창조과학이 기존의 과학보다 신뢰도 높고 재현성 좋은 예측력[* '''(1)''' 기상청의 기상예보도 최선을 다해 계산은 하지만 항상 맞지는 않는다. [[라플라스의 악마]] 같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비가 올 확률이 [[엔트로피#s-2|50% 50%이라는 무의미한 확률]]을 제공하는 것은 최대한 피하며, 항상 조금이라도 더 가능성이 있는 기상 이벤트에 60%, 40%같은 최소한의 의미와 책임감이 담긴 "편향된" 확률을 붙여서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2)''' 많은 산업이나 공장에서 생산하는 부품, 상품들은 모두 원자단위까지 정확히 같은 규격을 맞출 수 없지만 적어도 ±오차 같이 개런티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생산하기 때문에 우리도 그 오차범위만큼 품질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대게 더 작은 오차를 보장하는데에는 들어가는 돈이나 기술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을 제공할 수 있다면 기존의 과학은 더 이상 없어도 된다. 단지 창조설의 예측이 "신 마음대로"가 될 것이 뻔하다. '''4. 전문성이 전혀 없다.''' 학술적 엄밀함이란 쉽게 말해 이때까지 이 학문의 학자가 무엇을 해왔고, 지금 학회의 흐름은 이것인데, 그에 대한 대답을 지금까지 학자들이 쌓아왔던 학술적 전개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해서 학술적 책임을 질 수 있는 대답이나 반박을 내놓을 수 있느냐는 것을 말한다. 다른 분야의 연구자나 비전공자가 어떤 학술지에 논문을 내지 못한다는 법은 없다. 단지 검증된 학교에서 그 학문을 정식으로 공부 및 연구를 했던 적이 있는 사람이 그런 엄밀한 논의를 전개 할 수 있는 역량을 뒷받침하는 성적이나 검증된 연구경험 및 실적들이 압도적으로 더 많을 뿐이고, 학술적으로 까고 까이는 교차검증과 [[피어 리뷰#s-2]]에서 논문이 채택될 확률이 상대적으로 더 높을 뿐이다. 요구되는 엄밀함을 보여줄 능력이 있으니깐. 하지만 창조설이나 창조과학을 한다는 사람들치고 자신들의 논문을 통해 이런 학술적 엄밀함을 보여주는 사람들은 안보이며, 그 대신 5번 항목에서 이야기 할 신자와 대중을 위한 쇼맨쉽에 더 많은 투자를 하며 기존 과학이론을 단순화하거나 창조설의 이야기가 맞아 보이게끔 취사선택하거나 왜곡해 사용하는 일도 밥먹듯이 한다. 설사 앞서 언급한 학술적 엄밀함의 측면을 떠나 소위 전공/학부 같은 정통성이나 자격의 측면에서 따져보더라도, 창조설자 대부분은 관련 과학분야를 전공하거나 관련 과학분야에서 일하지 않는다. 굳이 창조설을 입증하겠다면 성경에 있는 내용부터 과학적으로 증명해야하므로 [[지질학]], [[고생물학]], [[천문학]], [[천체물리학]] 분야의 전문가가 있어야 그나마 신자들과 대중에게 신빙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내부엔 저 4개의 전공을 가진 과학자들은 전혀 없으며, 설령 비슷한 전공이라고 하더라도 세부 전공이 다른 케이스를 볼 수 있다. 그나마 이런 경우라면 다른 전공 지식을 대학에서 배웠기 때문에 자신의 논리 전개를 시도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이런 케이스도 앞의 것보다 비율이 다소 높을 뿐, 비율상으로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들 중에서 전자공학, 기계공학, 의학 등 여기에 상관이 거의 없거나 직접 언급하지 않아도 자기 전공 분야의 지식은 전개가 가능한 학문[* 예를 들어 의사라 유전학은 부정할 수 없는 입장에서 "소진화만 인정하고 대진화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경우]을 전공한 과학자도 많고, 심지어 변호사 같은 인문학 계열도 있다. 이 현상이 반복되다보니 해외에선 심지어 기계, 전자공학자들과 창조설의 상관관계에 대해 비꼬는 [[https://rationalwiki.org/wiki/Salem_Hypothesis|Salem Hypothesis]] 라는 가설도 있다. '''5. 창조설을 연구한다는 과학자들이 학술적 연구성과는 보여주지 않고, 신자와 대중을 위한 쇼맨쉽으로 점철되어있다.''' 과학자는 [[과학적 방법론]]으로 그가 제안한 가설을 재현가능한 실험들을 통해 신뢰도를 강화시켜 더 예측력과 재현성의 신뢰도가 높은 이론으로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즉 그가 제시하는 가설은 그 가설을 테스트 해볼 수 있는 실험방법을 통해서 그 가설의 입증을 지지하거나 지지하지 않거나라는 1차원 축 위에서 수치화 할 수 있을수록 모범적 과학적 방법론의 사례로 여겨진다. 물론 과학자는 자신의 가설이 맞길 바라기는 하겠지만, 틀린다 한들 거기에서도 새로운 학문적 발견이나 배울 수 있는 것이 많다. 아무리 유명한 스타 과학자라 한들 가장 기본은 이 과정과 결과물을 자신의 논문을 통해 엄밀하게 말하는 것이다. 반면 창조설은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입증한 것이 부족하다. 창조설이 과학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창조설을 과학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논변이 어느 순간까지 가면 결국 신을 불러들여야 하는 상황이 반드시 온다. 자신이 모르는 미지의 영역에 신에 대한 서사를 가져다 붙이는 것은 고대부터 인간이 늘 해오던 일이다.] 창조설에서 엄밀한 전문성이 담긴 논문을 찾기 어렵다. 이에 대한 반론은 [[https://www.chpress.net/column-detail.html?cate=column&c_id=84&id=7150|미주크리스천신문 - 왜 창조과학자의 주장은 학술지에 없을까?]]처럼 "진화론이 세속 학회를 장악해서 창조과학 논문이 출판되지 못하게 검열한다"는 식이다. 이처럼 연구와 논문을 통해 입지를 강화해 나가기는커녕, 적을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강화시키는 패턴이 대부분이다. 한국창조과학회의 홈페이지에도 논문은 안 보이고 게시판을 통해 "기존 과학의 이러이러한 부분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라는 비판이 태반이다. 설파자 자기 자신이 그 용어를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제대로 이해하고 비판]]하는 건지조차 의문이다. 이런 비판들에 자신이 비판하고 있는 과학적 용어/개념, 예제들에 대한 학술 논문은 커녕 대중과학매체에 대한 레퍼런스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반지성주의]]적인 신자와 대중을 설득시키는 게 목표이기 때문인지 과학 용어/정의를 심각하게 단순화하거나 왜곡해 설명하는 것이 태반이다. 비판하는 내용의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비판을 하는 시늉만 조금 해줘도 마치 다윗과 골리앗 사이의 [[영적전쟁|의로운 진리의 싸움]]이라도 목격했다는 듯 신앙심이 고조되는 신자가 많은 것이 근본주의에 경도된 개신교 교회들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6. 그릇된 탐구 과정을 따르기 때문에 과학 이론이라 부를 수 없다.''' 그릇된 탐구 과정이라는 것은 [[과학적 방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학적 방법이란, 과학자라면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하는 교리나 신앙고백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학적 방법이란 대게 데카르트와 뉴턴 시절 쯤의 계몽시대부터 축적돼온 자연을 법칙을 알아내는 연구방법론에 대해 쌓여오던 성공과 실패사례, 노하우와 성찰, 논리와 메타논의들의 정수를 추려내 체계적인 철학으로 정리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일례로 과학(Science)라는 단어의 라틴어 어원[[https://en.wiktionary.org/wiki/scientia|#]]부터가 "way of knowing" [[https://slcc.pressbooks.pub/physicalgeography/chapter/1-1/|#]], 즉 "[[인식론|알 수 있]]는 방법"을 가리키고 있다.] 이러한 과학의 연구방법론을 사용해서 지금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과학의 산물 – 응용과학 – 즉, 스마트폰, 컴퓨터, 인터넷 통신, 의학 등 과거 초강대국의 황제들조차 누리지 못했던 수많은 현대문명의 혜택을 만들어내는 법을 알아내고 이룩해내게 도와준 어마어마한 실적을 생각해보면, 과학적 방법을 맹목적인 교리나 신앙고백으로 여기는 것이 오히려 부당하다.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과학적 방법론이 [[과학철학]]적 성찰을 통해 개선되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사용한 과학적 방법론의 기여도가 무가치하다는 말이 되지 않는다. 이런 과학적 방법의 특징 중 하나는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그를 지지하는 증거들만 골라 취사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연구자가 자신의 가설이 맞길 바라는 것은 인간적으로 당연한 바람이나, 그 가설을 참으로 만들기 위해 물증을 취사선택하는 등의 연구 부정행위를 하지 않는다. 가설이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어내는 단계까지는 귀납적인 추측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사실이나, 그 추측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떨어지는지, 통계적으로 신뢰도가 얼마나 되는지 등의 가설에 대한 입증/반증여부는 자연에 대한 실험을 통해 얻은 데이터들을 분석해서 결정하며, 연구자 자신조차도 결과를 부정해서는 안된다. 그런 면에서 이 과정은 자연으로부터 자신의 귀납적인 가설에 대해 일종의 연역적인 피드백을 얻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연으로부터 가설을 지지하는 결과를 얻었다면, 성공적으로 이행한 실험 내용과 가설은 학회에 발표된다. 그리고 그 연구 과정을 재현하려는 시도가 다른 학자로부터 나올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재현성이 떨어진다면 그 가설은 이론으로 격상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재현성이 좋다면 이론이 되는데에 좋은 첫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이후 이 실험방법 외에도 다른 방법으로 가설을 실험해보는 시도들이 나올 것이고, 그 과정에서 가설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도, 더 높아질 수도, 추후에는 이론으로 격상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격상된 이론이 틀렸다는 결정적인 과학적 증거가 있거나 지지하는 근거가 쌓이면 그 이론은 버려지고 그 반례들까지 실험으로 포괄 가능한 이론으로 보강된다.[* 오히려 이론이 폐기되지 않고 고전으로 남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는 고전역학이 상대성이론이 나온 뒤에는 엄밀히 말해서는 비상대론의 아주 특수한 상황에서만 맞는 반쪽짜리 이론이 되었지만 일상의 비상대론적인 상황의 공학에서는 여전히 쓸 수 있을만큼 충분히 신뢰도를 유지하는 경우가 있겠다.] 반면 창조설을 주장하는 연구자들은 "성경에 나온 이야기는 전부 다 실제 일어난 일이다"라는 결론을 정해 놓는다. 그리고 이 결론이 부정되면 자신의 신앙이 무너지기에 이 결론은 어떻게든 참이어야 하는 것이다.[* 좋은 예시로, 미국의 창조설 단체 Answers in Genesis의 회장 켄 햄과 과학교육 프로그램 "빌 나이 아저씨의 과학이야기" 진행자로 유명한 [[빌 나이|빌 나이]]의 창조설 vs 진화론 토론 영상 중 시청자와의 Q&A 코너가 있었다. 질문으로 [[https://www.youtube.com/watch?v=z6kgvhG3AkI&t=7440s|"만약 당신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게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에 대한 각 토론자의 답변을 한마디로 간추리면: 빌 나이는 "증거입니다"라고 답변했는데 켄 햄은 "없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이걸 두고 해외에서는 아예 [[https://me.me/i/what-would-make-you-change-your-mind-bill-nye-ken-bbc36da5468f4d68af97f103f3c642bb|밈화]]가 되어있는 상태이다.] 그렇기에 이 연구자는 자신의 신앙을 위해 자신의 결론에 기존 과학개념이 맞도록 짜집기할 수밖에 없다. 반증 불가능, 반증되면 안 되는 결론을 정해놓고서 가설/이론인 것처럼 부르는 것이기에 과학적 방법론이라고 볼 수 없다. 이는 [[https://www.ekjm.org/upload/42842900.pdf|연구자의 이해상충 혹은 이해충돌]]이라고 해석할 여지까지도 있으며, 꼭 과학적 방법론이나 연구 윤리에 대한 이해가 없더라도 상식적인 선에서 왜 치팅인지 납득할 수 있다. 창조설자들은 자신이 학술적으로 기여하는 것은 없으면서 적을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넓힌다. 창조설에 모순이 있더라도 무시해버리고, 진화론을 지지하는 "위험한 이론들"의 "허점"만을 집요하게 찾아낸다. 근거 A를 다른 근거들과 같이 보거나 전체적으로 볼 때는 특정 이론에 적합하지 않더라도, 근거 A만 따로 보면 특정 이론에 적합해 보이는 경우가 가끔 있다.[* 예를 들어 [[조건부확률#s-3|조건부확률의 함정]] 같은 경우.] 창조설자들은 수많은 과학 개념과 연구 결과 중 조금이라도 허점을 발견하면 그 개념을 창조설의 근거로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창조설은 이론에 모순이 있어도 그 [[간극의 신|간극에 신으로 떼워 넣으면 그만]]이고, 자신이 무너뜨린 "위험한 이론"들의 부재로 공백이 생기든 말든 또 다시 기독교의 신으로 떼워넣으면 그만이다. 이처럼 간편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 보통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문학에서의 이야기의 전개 형식을 말하는 단어지만, 그것을 형식논리의 언어로 분석해보면 [[이론 컴퓨터 과학|컴퓨터 과학]]이나 [[형식논리#s-2.2|형식논리]] 혹 [[수학]]에서 말하는 [[https://ko.wikipedia.org/wiki/자유_변수와_종속_변수|자유변수]]의 성질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식의 지역 문맥의 계산 과정 영향 바깥에서 그 값을 변경 해버리는게 가능한 변수이기 때문에 여러 수식의 지역 문맥의 의미를 전혀 생각도 예상치도 못한 방식으로 뒤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실용적 혹 공학적 관점에서는 수식이나 함수의 계산 따위의 입-출력 재현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결과를 낳게된다. 더 구체적인 실생활의 예제로, 만약 당신이 프로그래밍을 조금 해본 사람이라면 왜 전역변수를 남발하는게 좋지 않은지에 대한 격언은 아마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고; 더 경험이 있는 프로그래머라면 이 부분이 왜 명령형 언어나 [[프로그래밍 언어#s-4.5.1|절차적 언어]]적 사고에 비교해 [[프로그래밍 언어#s-4.5.3.1|함수형 언어]]적 사고의 장점이 부각되는 부분인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가 따로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