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채명신 (문단 편집) ==== 교민 보호 ==== 대민지원과 같이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과 교민들의 보호에 상당히 신경을 많이 썼다. 한국 기업에 경비 인원을 배치해 주는가 하면 현지에서 전역을 하게되는 장병의 해외 기업[* 주로 미국 기업.] 취업을 알선했다.[* 당연히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와 [[대한민국 육군본부]]의 허가를 받은 일이었으며 당시 대통령인 박정희도 그의 구상을 적극 지지한다고 친서까지 보냈다.] 한국군의 활약이 계속되며 이름값이 올라가 한국 내에서 취업하는 것의 최소 3배의 수당을 받았다고 한다. 그 외에도 해외 기업의 러브콜[* 자국(미국)민들에 (어디까지나 비교적) 적은 월급을 받고도 좋아하고 투정없이 묵묵히 일하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인식했다고 한다.그럴 만도 한 것이 한국에서 일한다면 받을 수 있는 월급의 3배를 받았으니...]이 계속되자 원래는 당장 내일 모레 전역하는 장병들만 취업이 되었는데 인원이 모자라 전역이 3개월까지 남은 장병들도 바로 취업을 시켰다고. 2개 사단 규모인 한국군을 쪼개 중대 규모로 화력기지인 [[중대전술기지]]를 여러개 건설하여 베트남 마을들을 보호하는 형태로 배치하였는데, 미군은 이를 두고 각개격파당할 수 있다고 걱정했으며 한국군 장교들도 미군이 대대급 작전을 주로 펼치고 있으니 자신들도 그럴 줄 알았는데 이렇게 중대급으로 쪼개놓으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장 채명신도 첫 작전회의 때 이를 이해한 지휘관은 한 명도 없었다고 회고했을 정도. 그러나 사실 이 배치는 채명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것으로, 각 기지는 어느 방향에서도 중기관총과 무반동총의 자체 중화기 사격을 집중시켜 방어에 임할 수 있고, 각각의 기지는 [[105mm 견인곡사포]]대의 사거리 안에 지어져 있어 더 큰 규모의 적이 공격해오면 [[포병]] 사격으로 지원이 가능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이 포병화력 지원으로 채명신 자신은 포병화력이 닿지 못한다면 애초에 중대전술기지를 지어선 안된다고까지 단언할 정도였다.] 중대전술기지의 방어력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전투가 [[짜빈동 전투]]로, [[해병대]] 1개 중대 병력으로 북베트남 '''정규군'''[* 한국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던 곳은 미 해병대와 같이 월맹과 월남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던 곳이었다. 이래서 북베트남 정규군의 공격을 받을 수 있었던 것.] 2개 연대를 상대로 백병전에 진내사격까지 강행하는 혈투 끝에 단 1개 중대가 진지 방어에 성공했다.이 진영은 매우 적절했다고 판단되어 한국군의 'Tactical Base(전술기지)'를 미국에서도 'Fire Base(화력기지)'라는 명칭으로 많이 참고[* 흔히 영화나 게임 같은 데에서 '중포기지'라고 불리우는 물건이다.]했고 미군은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도 이 전술을 사용하고 있다.[[http://en.wikipedia.org/wiki/Fire_support_base|Wikipedia]]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