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천공(역술인) (문단 편집) == 생애 == 그의 이력 상당수는 천공 개인의 주장에서 나온 것이며 교차검증은 되지 않는 내용이다. 천공은 학교나 직장 등 단체에 소속된 적이 없어 문서화된 [[경력]]이 없고, 본인의 인생을 현대인이 믿기 어려운 [[설화]] 수준으로 표현하여 정체가 불분명하다. [[1952년]], [[경상북도]] [[대구시]] 남부출장소 [[대명동(대구)|대명동]](現 [[대구광역시]] [[남구(대구광역시)|남구]] [[대명동(대구)|대명동]])에서 태어났다. 4세에 [[부산광역시|부산]] [[감천문화마을]]의 [[고아원]]에 부모로부터 버려졌다. 6세부터 신문팔이, 구두닦이, 껌팔이 등 유년 시절부터 혹독한 사회생활을 배워 나갔으며, 7세에 초등학교 2학년에 중퇴하였다. 그는 "소년기에 밴텀급 아마추어 복싱 챔피언, 태권도 2단, 당수 3단짜리 형들 4명과 싸움에서 얻어터져 대학병원에서 21일간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났다"고 밝힌 바 있으며, 그러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 부산 [[영도구]] 일대에서 찹쌀떡을 팔았는데 봉래동과 청학동 사이 [[봉래산(부산)|봉래산]] 중산간 지대의 공동묘지 근처에서 어떤 여자 귀신에게도 찹쌀떡을 팔았고 떡값으로 망개(청미래덩굴)잎 한 장을 받았다"고 한다.[* 천공의 주장에 의하면 영도 청학동 공동묘지 근처에서 한 여성에게 찹쌀떡 11개를 팔았는데 그 여성이 떡 하나 먹으라며 1개를 천공에게 주었고 천공을 그 떡을 먹지 않고 떡 상자에 도로 집어 넣었다. 천공이 집에서 상자를 확인해보니 상자에 떡과 돈이 다 사라져 있고 망개잎(경상도에서는 청미래덩굴을 [[망개나무]]라고 부른다.) 한 장만 남아있었다고 한다.] 이어서 그가 밝힌 사연은 다음과 같다. 그 무렵 천공의 선배가 부산에서 택시기사를 하고 있었는데, 한밤중에 영도 [[동삼동]]에서 같은 여인으로 추정되는 손님을 태워 [[문현동]]에 도착했다. 그 여자는 "택시비가 없다"며 "파란 대문 집에 들어가 돈을 가져오겠다"고 했고 기다려도 나오지 않자 천공의 선배가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여자의 제사가 치러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 여성의 어머니가 딸의 영혼을 집까지 잘 데려다줘서 고맙다며 택시비 만원을 주고 제사지낸 밥으로 저녁상을 대접했는데 이틀 후에 건강했던 그 선배가 자다가 갑자기 이유없이 사망했다고 한다.[* [[귀신]]을 태워다주고 결국 죽었다는 [[괴담]]스러운 진술. 천공은 아마 그 여자에게 받은 떡을 먹었으면 자기도 죽었을 것이라고 한다. 물론 천공이 귀신에게 찹쌀떡을 판 이야기는 당시 유행하던 [[괴담]] 여러 개를 짜맞춘 느낌도 나고 검증할 방법도 없으므로 믿거나 말거나 한 수준의 이야기다.] 청년기에는 "본인이 세상에서 제일로 똑똑하다고 여기고 잘난 척을 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도모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게 되면서 뜻을 맞추어 일할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고, 현생에서 할 일이 없다는 생각에 다음 생을 기약하려고 하였다"며 "배신과 거짓이 난무하는 사회에 대한 회의를 느껴 세상을 등지고 죽으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 나라의 산들을 둘려보다가 [[1988 서울 올림픽]]이 끝날 즈음(36세 즈음)엔 죽으려고 하였다. 그러다 1985년 즈음(만 33세)[* 후술하지만 17년 수행하고 50세에 사회로 다시 나왔다고 하므로, 신불산에 간 시점은 만 33세인 1985년이 된다.] [[울산광역시|울산]]의 [[신불산]]에서 [[무녀]] 활동을 하는 어떤 보살[* 여성 무당을 가리키는 표현.]과 인연이 생겼다. 생판 모르던 이 보살이 그가 태어난 곳부터 고아가 된 과정까지 그리고 죽으러 온 것까지 모두 아기동자의 말로 한 것을 듣고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분이 말하기를 "왜 죽으려고 하십니까, 죽으면 안 됩니다."고 만류하면서 100일간만 기도를 한 후에 죽으라는 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신불산 홍유폭포 근처에 머물게 되었다. 스스로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로 똑똑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면 그 세계를 알고 죽겠다는 생각에 죽음을 100일간 미루고 그 세계를 알기 위해서 시작한 그 때부터 신불산에서 수행이 시작되었다. 신불산에서 수행이 시작되면서 산에 죽으러 들어오기 전까지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알았고, 제일로 똑똑하다는 생각으로 살았던 삶들이 얼마나 오만하고 건방지게 살았는지를 알게 되면서 그 때 자신을 알게 되었다. 천지 대자연 앞에 무릎을 꿇고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하고 '''17년간'''을 머리를 들지 않고 땅만 쳐다보면서 허리를 굽혀 산에 버려진 쓰레기를 치우면서 아무 말 없이 생활하였고, 산신에게 올린 좋은 음식들은 먹지 않고 귀신들을 주기 위해 버려진 명태 대가리 등 버려진 음식들을 주워 먹으면서 세상의 모순과 의문을 풀어내기까지 입을 다물고 생활하였던 생활이 10년 지나서야 그것이 바로 수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수행이 3년 7개월째가 되면서 밤에는 [[빵상|차원계를 왕래]]하며 신들과 대화하고 천지 대자연의 공부를 하게 되었다. 수행이 시작된 지 12년째가 되었을 때 봄에 싹이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13년 차가 되면서 쓰레기만 보이는 것이 아니고, 그때부터 비로소 세상이 보이기 시작을 하였고, 낮에는 쓰레기를 줍고 밤에는 약 15분 정도 잠을 자고 차원계를 왕래하면서 공부를 하였다.---아이고 선협물이 따로 없네--- 17년간의 수행에서 의문이 풀리지 않을 때는 [[단식|곡기 끊기]]를 수십 회 거듭하면서 70번을 [[부활|죽었다 살아나기]]를 되풀이하였고, 죽었다가 살아날 때 가장 먼저 찾은 곳이 물가이며, 물가로 가서 두 손으로 물을 떠올리는 순간에 깨우침을 얻었던 것은 바로 목숨을 걸고 각오한 깨우침이였다고 한다. 이후 마침내 인간이 바르게 살아가는 정법을 깨닫고 나서 50세에[* 즉 [[2002년]] 무렵 산에서 사회로 다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천지 아래 무엇이든 물어라'고 일성을 던지며 세상에 나와서 힘들고 어려운 시대의 스승(?)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천공 본인의 주장이며, 당연하지만 천공의 기괴한 행적을 입증할 증거는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