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초(춘추전국시대) (문단 편집) == 언어 == [[춘추전국시대]]의 나라들 중에서는 [[언어학|언어학자]]들에게 초미의 관심을 받는 곳이 바로 이 초나라다. 초나라에서 쓰인 [[초어]]가 원시 몽몐어[* [[몽몐어족]]의 [[조어#s-2]]다.]라는 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https://en.wikipedia.org/wiki/Chu_(state)#Linguistic_influences|이런 설도 있고]], [[몽몐어족]]이 아니라 [[타이카다이어족]], [[오스트로아시아어족]]이라는 설도 있다. 또한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이라는 설도 있고, 중국티베트어족에 속하는 어떤 언어를 기반으로 한 [[크리올어]]라는 설도 있다. 그 밖에 소멸한 [[상고한어|상고 중국어]]의 방언이라는 설과 [[중국티베트어족]]에 속하는 비(非)[[중국어]] 계열 언어라는 설도 상당히 유력한 설이다. 실제로 초나라 시대에 쓰여진 [[한시]]의 종류인 [[초사]]는 [[상고한어]]로 된 것들만 현존하고 있다. 이게 초나라가 세월이 지나면서 [[중국]] 왕조들에게 동화된 탓인지, 단순히 [[중국어]]가 [[중화권]]의 [[링구아 프랑카]]라서 중국어로 작문을 한 것인지[* 이런 사례는 다른 문화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게 [[서유럽]] 국가들은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에도 [[스트라스부르 서약]][* [[루트비히 2세|군]][[샤를 2세|주]]의 말을 [[받아쓰기|그대로 받아적은 문서]]라서 [[라틴어]]로 기록할 수 없었다. 허나, 이쪽은 조약의 각 조항은 라틴어로 표기하고, 군주들 각자의 서약서만 현지어로 했다.] 같은 특수한 문서들 외에는 공문서나 학술 논문을 자국어 대신 [[라틴어]]로 작성하는 관습을 수백년 동안 유지했고, [[오스만 제국]]의 [[시인]]들은 근대에 [[내셔널리즘]]이 확산되기 이전까지 [[오스만어|자국어]] 대신 [[페르시아어]]로만 시를 짓는 관습이 있었다.], 원래 초어가 중국어의 방언이라서였는지는 알려져있지않은 상황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