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영의 (문단 편집) == 국적 관련 == 후술되어있듯 최영의 아들들이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등의 이유로 최영의가 1968년 일본에 귀화했지만 한국 국적도 포기하지 않았던 [[복수국적|이중국적]]자라고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애당초 한국의 경우 2010년 5월 3일까지는 자동으로 [[바티칸]] 국적이 부여되는 [[추기경]]을 제외하면 어떠한 경우에도 복수국적을 허용하지 않았던 나라였으며 이는 당시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최영의는 귀화 후 한국 대사관에 국적 상실 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국적 말소 처리가 되지 않았다.[*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2326130|국적 이탈·상실 반드시 신고 제때 안하면 불이익 당해요.]]] 사실 최영의뿐 아니라 외국에 귀화한 한국인들 중에도 잘 몰라서 혹은 귀찮아서 국적상실 신고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국적상실 신고는 당사자가 직접 해야 하기 때문에 안 할 경우 한국 정부에서도 파악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참고로 최영의의 한국 태생 아들들은 전부 한국 국적이다. 물론 실제로는 최영의가 일본에 귀화한 순간 한국의 [[국적법]]상 한국 국적은 자동상실되었다고 봐야 한다.[* [[http://www.law.go.kr/lsInfoP.do?lsiSeq=151992&efYd=20140619#0000|국가법령정보센터 국적법 제 15조 1~2항]].] 단지 과거 '''행정체계가 미비해 생긴 일종의 오류'''로 인해 의도치 않게 이중국적자처럼 되었다고 보면 된다. 본인은 상기된 1985년 KBS 인터뷰에서 일본 국적을 취득한 이유에 대해, "당시 한국 국적으로는 공산 국가에 들어갈 수 없었을 뿐더러 일본과 다른 나라를 자주 왕래해야 했습니다. 일본에서 외국인의 출입국 단계는 굉장히 복잡했습니다. 그 모든 단계를 간소화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생각해 일본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라고 밝혔다. 실제 저 당시는 한국이 해외여행자유화가 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한국국적자로 해외를 나가는게 매우 힘들었다. 설령 어찌 허가를 받아 해외를 나간다치더라도 일본에 비해 비자받기도 어려웠다. 물론 국적 여부를 떠나 최영의 본인도 상기했듯 일본인들에겐 생소한 마스타츠(倍達)라는 특이한 이름을 고집한 것이나 후계자로 재일 한국인 문장규[* 일본에서는 마쓰이 쇼케이(松井章奎)라는 [[통명]]을 썼고, 문장규(文章圭)는 [[본명]]이다. 재일 한국인 2세이며, [[남평 문씨]] 34세손이다.]를 선택한 점, 본인 스스로 한국계에 대한 자부심이 남아있다는 인터뷰 내용 등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정체성은 상당히 뚜렷한 인물이긴 했다. 한국어야 죽을 때까지 잘했다.[[https://youtu.be/wRjtiPO_SOw|#]]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