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미카제 (문단 편집) === 미국의 경우 === 카미카제는 전략적 의미에서 중대한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미군은 1945년 7월 30일에 작성한 '일본의 비밀무기:자살'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일본군이 '죽으면 야스쿠니 신사에 간다'며 자살 공격을 적극적으로 조장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덕분에 [[http://www.huffingtonpost.kr/2014/04/25/story_n_5208626.html|'''일본인의 완전 소멸 또는 국가 존속이 위협받아야 일본이 항복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미국의 [[높으신 분들]]은 '''[[원자폭탄]]을 일본에 투하하기로 결정했다.''' 원자폭탄 투하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를 참조할 것.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무차별 공습을 막아낼 일본군 항공기 에이스와 신병기들은 일본 군부가 자기 손으로 바다에 묻어버렸다. '''결국 카미카제는 일본 군부가 일본 국민들과 군인들을 인간방패로 내세워 항복을 거부하는 일종의 인질극 내지는 제 살 깎아먹기에 불과했고''' 당시 이러한 비인도적인 카미카제 전략에 미국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는 연합국과 미국 측에서 [[도쿄 대공습]]과 원폭 투하에 대한 반감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원폭 투하로 일본이 항복했을 때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원폭 투하로 전쟁 종결이 빨리 된 점을 매우 기뻐했다. 그 직전엔 전쟁 기간 내내 보여진 일본군의 야만성 및 전쟁범죄 행위들과 광신적 저항이 널리 알려진 태평양 전쟁 말기엔 미국 국민들이 앞장서서 일본인들에 대한 절멸(!)을 요구하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사실 당시는 원자폭탄을 그냥 '좀 쎈 신형폭탄' 정도로 인식했으니[* 몰락 작전의 여러 계획 보고서들 중에는 핵을 상륙 예정지인 규슈와 혼슈 해안에 방어군 제거용으로 투하한다는 계획안도 있었으며 50년대 초까지의 원폭 실험 영상을 보면, 지금 의준으로는 없는 것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방호장비를 갖춘 군인들이 지상 핵실험 뒤에 정리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조금 지난 뒤에는 경각심을 가졌지만 그래도 라스베가스 시내에서 보는 버섯구름 사진 같은 것은 유명한데, 당시 라스베이거스에 개인 호텔을 둔 하워드 휴즈가 질색했다고 한다.] 굳이 카미카제에 대해 몰랐더라도 별로 거리낄 것이 없었다. 반면 군부에서는 이때 당한 충격과 이 전쟁이 끝난 후에도 있을 "일본보다 더 강력한 가상적국과의 전쟁때 어떻게 해야하지?"라는 문제를 직면했고, 항모전의 교리를 수정하여 미군도 개방형 항모에서 장갑항모 형태로 전환한 [[미드웨이급 항공모함]]을 차세대로 선택하고, [[MXY-7 오카]]의 교훈을 살린 [[대함 미사일]]의 개발을 시작한다. 이는 20여년 뒤 [[제3차 중동전쟁]]의 [[P-15 테르밋#s-3.1|에일라트 쇼크]]로 실현되고, 20세기 후반의 해전 양상이 대함 미사일 중심의 화력전으로 바뀌게 되는 시초를 제공한 셈. 또한 이때부터 카미카제를 사전 차단하기 위해 시도한 수많은 전술이 [[공중조기경보기]]나 [[이지스 시스템]]같은 조기경보 체계의 확립 기준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