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미카제 (문단 편집) === 자살적 공격과의 비교 === 병사 개인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물귀신|기왕 이렇게 된 거 너 죽고 나 죽자]]식의 공격 사례는 여러 곳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동귀어진]], [[공멸]]이란 말이 바로 이럴 때 쓰는 용어이다.[* 은어로는 [[물귀신]]도 여기 속한다.] 이렇게 서로서로 치열하게 싸우다 결국 한쪽이 일방적인 수세에 몰려 자폭까지 감행하면 아군은 물론 적군도 그 긍지를 높게 평가한다. [[태평양 전쟁]]을 예로 들면, [[진주만 공습]] 당시 일본 해군 조종사 이이다 후사타 대위가 탄 탑승기가 피탄당해 조종 불가에 빠지자 미 해군 항공대 기지 격납고를 향해 돌진한 사례가 있다. 결국 실패하고 땅에 처박혀 버렸지만, 이이다 대위의 마지막 용기와 그의 기체 추락을 목격한 미군들이 용맹한 적으로 인정하고 비교적 정중히 장례를 치뤘고 추모비를 세웠으며, 현재까지 남아 있다. [[https://worldwarwings.com/the-first-kamikaze-strike-originated-in-pearl-harbor/|#]],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US_Navy_061203-N-4774B-010_A_monument_marks_the_impact_site_of_Japanese_pilot_Lt._Iida,_who_crashed_during_the_1941_attack_on_Pearl_Harbor.jpg|#]] 애초부터 죽으려는 미친 놈이 아니라, 어차피 기체 피탄으로 살 가능성이 없던 와중에 최후의 수단으로 한 행동이었기에 적군인 미군들도 인정한 것이다. 이러한 최후의 공격은 어느 문화권에서도 용맹한 죽음으로 평가된다. 이렇게 개개인이 자살적 공격을 가하는 사례는 카미카제 공격이 시행되기 이전에도 종종 있었다. [[산타크루즈 해전]]에서는 대공포화 때문에 기체가 심하게 손상된 일본군 [[D3A]] 급강하폭격기 2대가 [[요크타운급 항공모함]] USS 호넷(CV-8)에 충돌하여 그 중 1대가 함교에 큰 손상을 입혔다. [[진주만 공습]]에서는 대공포에 손상되어 비행 불능 상태가 된 [[D3A]] 한 대가 해상기 지원함 USS 커티스(AV-4)에 충돌하여 큰 화재를 일으키기도 했다. [[미드웨이 해전]]에서는 대공포에 손상된 [[D3A]] 급강하폭격기가 [[요크타운급 항공모함]] USS 요크타운(CV-5)에 충돌했는데, 일본군 기록은 이를 의도적인 충돌로 보고했지만 미군 기록은 대공포 격추 후 통제를 잃고 빙글빙글 돌면서 추락하다가 충돌했다고 하여 사실 여부가 불분명하다. 전쟁 초기 일본 측에서는 이런 충돌을 [[몸통박치기|타이아타리]]라고 불렀다. 아무래도 카미카제의 심리적 임팩트가 강렬하다 보니 일본군이 개전 초부터 카미카제 전술을 공식적인 전술로 채택하고, [[진주만 공습]]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고 인식되는 경우도 상당히 있다. 그러나 일본군 파일럿들의 숙련도는 중일전쟁 등지에 투입되어 지상 공격을 통해 숙련되어 개전 초까지만 해도 미군에 비해 월등하였다. 진주만 공습 및 [[미드웨이 해전]], [[과달카날 전투]] 등 [[필리핀 해 해전]]까지의 일본군 함재기들의 제식 공격 전술은 통상적인 뇌격 또는 급강하 폭격이었다. 필리핀 해 해전 이후 1944년 말에 일본군이 통상적인 공격으로는 사실상 전쟁 지속 능력을 상실하자 발악하듯 시행했다. 함선과 충돌한 경우 외에도 [[필리핀 해 해전]] 당시 고마츠 상등비행병조의 사례가 있다. 막 [[다이호(항공모함)|다이호]]에서 이함하던 고마츠는 모함으로 향하는 어뢰를 보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해수면으로 돌격, 자신의 기체로 어뢰를 막아내어 모함을 어뢰로부터 지키고 산화한다.[* 다만 다이호는 저러고도 당시에 잠수함 USS 알바코어에서 다이호를 목표로 쏜 어뢰가 한 발이 아니었던지라, 한 발 더 오는 걸 맞고 데미지 컨트롤에서 실패하여 결국 폭침하였다.] 다만 고마츠의 사례는 적군에 대한 공격 목적에서 자폭한 것이 아니라 위험에 처한 아군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고 장렬히 산화한 경우로 공격과 달리 방어적 측면이 강하며, 전쟁영화의 클리셰인 동료를 지키기 위해 수류탄 위로 뛰어드는 사례와 유사하다. 미군도 마찬가지였는데, [[미드웨이 해전]]만 해도 먼저 공격한 미군 뇌격기 부대들은 호위기도 없기 때문에 자신들이 죽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돌입했다.[* 이 당시 미군의 상황도 영 좋지 않아서 1대의 호위 전투기도 없이 뇌격기 편대들이 축차투입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뇌격기 편대의 전멸을 각오한 돌입에 일본군 전투기들은 고공을 비워둔 채 저공에 몰려 있었고, 따라서 그러한 전력의 공백을 이용하여 미군의 급강하 폭격기들은 아무런 방해 없이 일본 항모를 잡아낼 수 있었다.[* 이때 일본의 [[카게로급 구축함]] 아라시와 미국의 [[나왈급 잠수함]] 노틸러스의 행동이 중요하다.] 후에 뇌격기, 급폭기 편대의 시간차 공격이 의도된 바냐고 언론이 질문하자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답하기를 "죽을 것을 알면서 공격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은 없다. 자발적으로 돌입한 그들에게 우린 큰 빚을 졌다."라고 술회했다.[* 물론 불특정 다수가 죽는 것을 염두에 둔다는 뜻이 아니라 작전에서 특정 인원이 확실히 죽는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것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시도한 '자살적 공격'과는 의미와 경우가 다르며, 살아 돌아올 가능성이 낮은데도 용감하게 공격한 경우다. 그렇다고 미군이 자살적 공격을 아예 안 한 건 아니다. 리처드 E. 플레밍(Richard Eugene Fleming) 대위는 [[미드웨이 해전]] 당시 [[모가미급 중순양함]] 미쿠마를 공격하다가 본인의 비행기가 피탄되자 미쿠마를 들이받고 전사했다. 그가 정말로 자살적 공격을 감행했는지는 논쟁 대상이지만, 플레밍은 사후 [[명예 훈장]]을 받았다. 미 해군 역사상 최악의 참패라는 [[사보섬 해전]]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다. 미군 중순양함 퀸시가 일본군 제 8함대를 상대로 혼자 저항하다가 집중공격으로 대파되자, 8함대 기함 초카이를 향해 모든 화력을 퍼부으며 충각 돌격을 감행한 것. 비록 돌격 자체는 실패했지만, 사보섬 해전에서 유일하게 용전분투를 벌였기에 [[볼티모어급 중순양함]]에 퀸시의 이름이 계승되었고, 전사한 퀸시 함장 사무엘 N. 무어의 이름은 [[알렌 M. 섬너급 구축함]] DD-747에 붙여졌다. 소련군의 에이스 [[이반 코제두프]]도 대공포에 피탄당해 기체의 기능이 정지했을 때 더는 가망이 없다 판단해 적 대공포에 기체를 때려박으려 했는데, 돌입 중간에 기적적으로 엔진이 다시 돌아와 이탈했던 적이 있다. 영국 해군에도 이런 사례가 있다. 영국군의 [[G, H급 구축함]] 글로우윔이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 1번함 아트미랄 히퍼의 공격을 받고 대파된 후 자살적 공격을 감행한 게 바로 그것이다. 아트미랄 히퍼는 글로우윔의 충각 돌격으로 큰 피해를 입고 도망쳤고, 분노한 영국 해군이 총공격을 감행하자 독일 해군의 주력함들은 모조리 노르웨이 주변 해역에서 도망갔으며, 남겨진 독일군 구축함들은 영국군에 의해 박살났다. 글로우윔의 함장인 제라드 루프에게는 영국 최고의 무공훈장인 [[빅토리아 십자무공훈장]]이 추서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사국은 아니지만 [[에콰도르-페루 전쟁]]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었는데, 페루 공군 중위 호세 아벨라르도 키뇨네스 곤살레스(José Abelardo Quiñonez Gonzalez)가 [[P-64]]기를 타고 에콰도르군 저공 폭격 임무를 수행하던 중 지상 대공포에 직격당해 치명타를 입자 그대로 에콰도르군 진지에 기체를 들이박아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27세의 젊은 나이로 전사했다. 이 공적을 인정받아 [[페루 솔]] 지폐 중 구 500솔(1979~1985) 및 신 10솔(1991~2018) 지폐에 얼굴이 새겨졌으며, 그의 고향인 치클라요의 공항과 페루 영공에 그의 이름이 붙었다. 이처럼 [[군인]]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죽음이 예상되더라도 공격을 하는 것은 용기의 상징으로서 전해지거나 기려진다. 이러한 점에서 국가가 병사에게 죽음을 강요하며 작전에 투입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할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