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킬링필드 (문단 편집) === 잊힌 학살 === 사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까지는 킬링필드의 참혹한 실상이 외부에 잘 알려지지 못했다. 크메르 루주는 외국인 기자들을 다 쫓아내고 학살을 은폐하는 정책을 폈으며 미국은 크메르 루주 정권 수립 직후에 크메르 루주 정권의 대규모 학살을 주장했지만 베트남 전쟁 직후 미국의 신뢰성이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라 친미 국가의 정부조차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당시 대규모의 캄보디아 난민 문제로 골머리를 썩던 태국이 그나마 주장하긴 했지만 그 영향은 미미했다. 거기에 80년대 초에는 미국 정부가 베트남에게 엿먹이기 위해 크메르 루주를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크메르 루주의 학살 주장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본격적으로 킬링필드가 알려진 것은 1979년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점령하고 [[크메르 루주]]를 몰아내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물론 베트남이 순수한 의도로 이런 악행을 알린 건 아니었고, 우연히 베트남군이 땅을 파다가 사람 유골이 발견되고 국제사회에서 주권국가를 침공했다는 반대 여론이 전세계적으로 퍼지게 되자 국제 여론을 달래기 위해 [[크메르 루주]]가 저지른 대학살을 외부에 공개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이유야 어찌됐든 베트남은 S-21수용소 뚜올 슬랭에 박물관을 만들고, 이것을 소련과 동유럽은 물론 서방에도 공개했으며 프놈펜 외곽의 다른 킬링필드도 찾아내서 공개했다. 서방 기자들은 원하면 캄보디아 전역의 킬링필드를 돌아보고 취재할 수 있었고, 이 취재를 바탕으로 크메르 루주들의 천인공노할 만행들이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40px-S-21_Skull_Map.jpg]] 2005년까지 뚜올 슬랭 박물관(S-21)에 전시되어 있었던 '''[[해골]] 지도'''다. 형무소에서 발굴된 유골로 캄보디아 지도를 만들어 놓았으나 반인륜적이라는 인권 단체 등의 거센 비난으로 인해 철거되었고 현재는 안치되어 현지에서는 더 이상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안치된 장소는 바로 옆에 있는 선반이다. 대학살이 관광상품이나 다름없이 전락해 버린 이러한 맥락 속에서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할 때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제사회에 킬링필드를 과장했다고 주장하는 서적도 있다. '[[http://www.yes24.com/24/goods/2655825?scode=029&srank=1|아시아의 기억을 걷다]]' 이후 캄보디아 언론인 딧 쁘런(ឌិត ប្រន)의 탈출 기행을 다룬 뉴욕 타임즈 기사를 토대로 84년에 동명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이를 쓴 시드니 섄버그(Sydney Schanberg)는 이 기사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를 통해 서방에 크메르 루주의 학살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일부에선 당시 공산권과 유럽, 일본 등의 좌파 정당이나 언론이 '''우파에 의한 철저한 기만 선전'''이라고 주장했다고 알고 있으나 '''당연히 당시 상황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마오이즘]]을 지지하던 좌파들도 있었으나 자신들의 침략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킬링필드를 가장 필사적으로 홍보하던 [[베트남]]은 바로 그 [[호치민]]의 후예이면서 '''미국과 [[베트남 전쟁]]에서 싸우고 미국을 사상 최초로 패배하게 만든 나라였다.''' 그리고 [[소련]]은 베트남을 지지했다. 그리고 중국과 미국이 크메르 루주를 지원하던 개판인 상황이었다.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해서 도와줬을 뿐 미국은 [[친미]] 정권인 론 놀 정권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반미 좌파정권인 크메르 루주와는 당연히 사이가 나빴다. 미국은 킬링필드가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진 후에는 크메르 루주에 대한 지원을 전격 중단하고 주로 반공자유민주노선의 크메르 민족 해방 전선(KPNLF)을 더 지원했다. 중국도 역시 알려지지 않은 킬링필드에 경악하고 크메르 루주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북한도 따라서 크메르 루주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였다. 이 말은 즉슨 크메르 루주는 '''[[레오폴드 2세|공산권 국가들조차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극악무도한 조직이었음을 증명한 셈이다.]]'''[* 레오폴드 2세는 '''사유지'''였던 [[콩고 자유국]]에서 '''오직 자신의 재산을 축적하려는 목적만으로''' 유색인종에 대한 식민지배와 탄압, 인종차별이 일상화되었던 [[제국주의]] 시절 제국주의 국가들도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의 학정을 저질렀다. 다만 천만 이상이 죽었다는 것은 당시 콩고의 자연환경을 보면 뻥튀기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긴 하나 적어도 수천~수만 명의 원주민들이 학살당했을 것만큼은 확실하며 학살의 동기 자체만 따져도 레오폴드 2세는 사상 최악의 학살자 중 하나로 꼽히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마치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가 죽인 사람 수는 동렬에 놓이는 독재자들과 비교하면 적긴 하나 그 비율과 악행의 질까지 따지면 폴 포트도 능가하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로 평가받는 것과 비슷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