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튀니스 (문단 편집) ===== [[마린 왕조]]의 침공 ===== [[파일:튀니스 밥 사분.jpg|width=900]] 1350년경 지어진 밥 사두운. 1881년 원활한 교통을 위해 홍예가 2개 추가되어 현재의 형태가 되었다. 1322년까지 각지의 반란을 진압한 알 무타와킬은 아들들을 각지의 총독들로 봉하며 중앙집권화에 나섰고, 모로코의 마린 왕조와 혼인 동맹을 맺어 틀렘센의 자이얀 왕조에 맞섰다. --원교근공-- 또한 그는 [[레콘키스타]]를 피해 망명해온 안달루스인들을 주축으로 사략선을 조직해 기독교 해안을 약탈함으로써 부를 축적하였고, 1335년에는 시칠리아로부터 제르바 섬을 탈환한다. 한편 1337년 틀렘센을 병합하여 하프스 왕조와 접경하게 된 마린 술탄이자 사위 아불 하산 알리에 대해 알 무타와킬은 후계자로 정한 아들 아불 압바스 아흐마드의 후견을 맡겼다. 그러던 1346년 10월 아부 바크르가 사망하자 당시 투니스에 있던 다른 아들 우마르가 무와히드 셰이크 출신의 재상 이븐 타프라긴의 지지 하에 칼리파 앗 나스르 리딘 알라를 칭하였다. 이에 북상한 아흐마드는 투니스를 자악했지만 곧 앗 나스르에게 살해되었고, 후자는 잠재적 경쟁자인 다른 형제들을 역시 주살하였다. 사태를 관망하던 술탄 알리는 1347년 봄, 찬탈자를 몰아낸다는 명분 하에 진격하였다. 앗 나스르는 투니스에서 도주하였으나 그해 8월 붙잡혀 처형되었다. 이듬달 술탄은 투니스에 개선하였다. 도시에 머물던 알리는 현지 베두인들을 제압하려다가 되려 1348년 그들의 반란을 맞아 패배하였다. 그 무렵 핫즈에서 돌아오던 여행가 무함마드([[이븐 바투타]])는 투니스에서 이드 알 피트르를 지낸 후 마그레브로 돌아갔다. 1349년 흑사병의 창궐과 함께 수세에 몰린 알리는 그해 12월 선박에 올라 투니스를 떠났고, 이듬해 초엽 베자이아 총독인 왕자 알 파들이 칼리파 알 무타와킬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1350년 7월 투니스로 돌아온 전 재상 이븐 타프라긴은 그를 살해하고 13세의 동생 이브라힘 2세를 옹립하였다. 그후 14년간 이어진 이븐 타프라긴의 섭정기에 역사가 압둘 라흐만([[이븐 칼둔]])이 대제학(사히브 알 알라마)로 임명되었다. 한편 하프스 왕조는 베자이아와 가베스의 반란에 시달렸고, 1352년 전자를 점령한 마린 술탄 파리스는 1357년 부왕의 전례대로 투니스를 점령하였다. 다만 마찬가지로 베두인들의 반란과 재상의 농간 탓에 술탄은 같은해 회군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