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시즘 (문단 편집) === [[인민주권]]론(대중의 국민화) === '대중의 국민화'는 조지 L. 모스 (George L. Mosse)의 파시즘에 관한 이론이며, 동시에 책 이름이다. 파시즘은 단순히 독재자가 민중을 압제하고 세뇌한게 아니라, 18세기에 부상한 인민주권 사상에 기반을 둔 ‘새로운 정치’의 절정이었으며, [[장 자크 루소]]의 ‘일반 의지’와 [[인민주권]] 사상이 파시즘을 낳는 세속적 정치 종교 형태로 진화하였다고 설명하며, 파시즘은 '대중의 자기 숭배' 라는 정치 종교로 보았다. >집권 8년째 베니토 무솔리니는 로마의 베네치아 광장에 위치한 자신의 위압적인 집무실에 앉아 자신이 이룬 혁명의 본질을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혁명이란 새로운 형태의 정치, 신화와 제의를 창조하는 일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존의 전통을 새로운 목적에 맞게 변형시켜 이용하는 것이다. 축제와 몸짓과 형식을 새롭게 창조해야 하며 머지않아 이 자체가 전통이 될 것이다.' 칼하인츠 슈메어는 최근에야 새로운 정치 양식을 발명한 것이 나치즘의 가장 중요한 혁신이었으며, 정치 행위는 새로운 신화와 제의를 극화하는 일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유럽 파시즘 특유의 대규모 대중 집회, 빼곡히 이어지는 행렬, 다채로운 깃발은 우리에게도 여전히 친숙한 것들이다. 대중 집회가 열렸던 많은 도시들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되었지만, 파시즘이 건설한 건축물의 상당수는 손상되지 않고 남아 그것들이 표상했던 정치 양식을 느끼게 한다. >이런 정치 양식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이전의 전통을 새로운 목적에 맞게 변형시켜야 한다는 무솔리니의 말은 어느 정도 옳은 것이었다. 우리가 파시즘 양식이라 부르는 것은 사실 18세기에 부상한 인민주권 사상에 기반을 둔 "새로운 정치"의 절정을 의미한다.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시민권이라는 보편적 실체가 존재한다는 믿음 말이다. 더 이상 왕정이나 군주정이 민중의 자기 표상을 대신할 수 없었다. 이런 인민 주권 개념이 엄밀한 개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루소가 말한 "일반의지" 때문이었다. 즉 '''모두가 하나의 인민으로 뭉쳐 함께 행동할 때 비로소 시민이라는 인간 본질이 실현된다는 믿음''' 덕분이었다. 일반의지는 민중이 스스로를 숭배하는 하나의 세속 종교가 되었으며 새로운 정치는 이런 숭배를 유도하고 공식화하려 했다. 민중의 결속을 굳건히 하는 데에는 보편적 시민권이라는 개념뿐 아니라 새롭게 자각된 민족의식도 일조했다. 이런 민족의식은 유럽의 여러 민족 사이에서 인민 주권의 이상과 함께 성장했다. 18세기에 들어서면서 민족은 민중 자체에, 그리고 민중의 일반 의지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이야기되었다. 기존 왕조에 대한 충성은 더 이상 민족의 상징이 될 수 없었다. 따라서 민중 숭배는 곧 국가 숭배로 바뀌었다. 새로운 정치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정치 양식을 통해 민중과 민족의 일치를 표현하려 했고, 현실에서 그것은 세속 종교가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19세기 초부터 줄곧 민족이라는 신화와 상징을 활용하고 민중 스스로 민족 숭배에 참여하게 만드는 의례를 개발함으로써 가능했던 일이다. 신화와 상징의 창조에 일반 의지의 개념이 활용되었다. 새로운 정치는 일반 의지의 구체적 표현인 의례와 축제, 신화와 상징을 통해 민중을 민족이라는 신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들었다. "민중"이라는 무질서한 군중은 민족적 신화를 통해 민중의 단합이라는 믿음을 공유하는 대중운동이 되었다. >---- >조지 L. 모스 (George L. Mosse), 대중의 국민화, 26~28p >파시즘과 나치즘이라는 정치사상은 전통 정치 이론의 차원에서 판단될 수는 없다. 그것은 헤겔이나 마르크스 사상 같이 이성적이면서 논리적으로 구축된 체계와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이 사실이 파시즘의 정치사상을 살펴보고 그 공허함이나 모호함을 비난한 많은 비판자들을 괴롭혔다. 그러나 파시즘의 지지자들은 그들의 정치사상을 하나의 체계라기보다는 "태도"라고 묘사했다. 그것은 사실 민족 제의에 틀을 제공한 일종의 신학이었다. 그래서 의례와 전례가 그 중심이 되었고 글에 호소할 필요 없는 정치론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다. >---- >조지 L. 모스 (George L. Mosse), 대중의 국민화, 36p 루소는 자신의 저서 [[사회계약론]]에서 개인적인 이기심인 '개별 의지'를 버리고 사회 계약의 당사자로서 공동선을 추구하려는 '일반 의지'에 의하여 사회와 국가가 형성된다고 주장하였다. 루소는 사회적 계약인 국가의 법이라는 '일반 의지에' 복종하여 개인의 자유가 보장받는다고 주장하였으며, 일반 의지에 복종하지 않으면, 사회적인 합의가 깨지고, 국가가 존속 불가능하게 되므로, 일반 의지에 대하여 강제로라도 복종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루소는 저서 사회계약론에서 이것을 '자유를 위한 강제' (forcing to be free) 라는 역설적인 표현으로 말하였다. 그런데 루소의 이러한 일반의지라는게 악용될 여지가 매우 다분한 면이 있고, 실제로 프랑스 대혁명 당시 [[자코뱅]]의 [[로베스피에르]]에 의한 [[공포정치]]도 일반의지라는 명목으로 단두대 처형과 집단학살을 정당화하였다. 이로 인하여 [[버트런드 러셀]]은 '서양철학사'에서 루소를 전체주의 사상의 시조로 간주한다.[[https://shindonga.donga.com/Library/3/05/13/102610/1|루소, 민주주의 스승인가 전체주의 창시자인가]] >국가는 왜 난폭해졌는가? 혁명은 왜 전제주의로 회귀하였는가? 자코뱅의 공포정치에 대한 경험은 프랑스인들로 하여금 왜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에 근거를 둔 공화국이 그러한 주체들의 억압체로 드러나는가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켰다. 이에 대해 19세기 사상가 이폴리트 텐(Hyppolyte Taine)은 1789년 프랑스 민중들의 열망을 공포정치로 치닫게 만든 루소이론의 문제점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검토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루소의 사상이 공화국 내부의 제 사회조직들 – 사적 관계 - 에 대한 해체를 정당화함으로 인해 국가가 난폭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고 진단한다. 다시 말해 루소는 국가에게 ‘일반의지’의 구현체라는 절대적인 위상을 부여함으로써 혁명의 전제주의로의 회귀를 예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709780|루소(J.-J. Rousseau)의 공화국, 혹은 가족과 사회의 부재: 이폴리트 텐(Hyppolyte Taine)의 루소 비판]] >아렌트는 근대 혁명이 ‘하나의 여론’이나 ‘만장일치’에 기초한 보편성을 추구하면서 정치적 자유를 상실한다고 비판한다. 그녀는 프랑스 혁명과 미국 혁명의 목표와 세계사적 의미를 기존과 달리 ‘다원성과 다양성 존중’에 맞추고, 프랑스 혁명이 공포정치로 전락하면서 본래 목표인 ‘정치적 자유’를 포기하는 이유는 루소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루소에게서 인민의 보편적 기반인 일반의지와, 인민을 빈곤과 억압에서 해방시키는 동정심이 혁명 과정에서 오히려 ‘자유’를 포기하게 하는 요인이며 로베스피에르의 자유의 전제정과 공포정치를 야기한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일반의지의 만장일치와 국가이성이 인민의 공적 영역에 대한 진입도 막는다고 한다.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986903|아렌트의 루소 이해를 통한 양심과 여론의 관계]] >루소의 정치철학적 위상은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다. 프랑스 혁명 이후 루소는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따라 자유주의, 사회주의, 전체주의, 민족주의, 공동체주의, 공화주의 등등 서로 양립되기 어려운 다양하고도 이질적인 정치이념을 옹호하는 이론가로 해석되어 왔다. 1990년대 촉발된 자유주의-공화주의 논쟁은 루소의 정치사상이 지닌 공화주의적 측면을 부각시키는데 기여했다. 루소는 공화국을 법이 지배하는 국가로 정의한다. 일반의지는 법을 제정하는 원천이며, 법은 시민 행복의 대상인 자유와 평등을 추구한다. 본 논문은 법치, 자유, 정치참여의 세 가지 핵심적인 공화주의 개념에 천착하여 루소의 정치사상이 지닌 공화주의적 특성을 밝혀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고대에서부터 포스트모던까지 포괄하는 루소의 사상은 최근의 자유주의-공동체주의-공화주의 논쟁이 잘 보여주듯이, 앞으로도 시대의 요구에 따라 새롭게 해석될 여지를 갖고 있음이 결론으로 제시된다.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088869|루소와 공화주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