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시즘 (문단 편집) === [[낭만주의]] 신화, [[독일 관념론|관념론]], [[비합리주의|생기론]], 행동주의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독일 관념론)] 파시즘을 일종의 '''이성에 대항한 반란'''으로 보는 관점이다. >파시즘은 고전적 자유주의의 정치, 사회, 문화, 정신적 측면을 거부하고 그 철학적 기반을 공격했으며 자유주의를 대신할 새로운 세계관과 문명의 수립을 목표로 삼았다. 따라서 파시즘은 자유주의의 여러 측면, 그리고 그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개인주의, 의회민주주의, 합리주의, 물질주의 모두를 타락과 분열, 대립과 쇠퇴의 원천으로 파악했다. >파시즘은 일차적으로 근대성의 산물이다. 파시즘은 근대성의 산물인 대중사회에서 원자화되고 파편화된 개인에게 강력한 소속감을 부여하려는 시도다. 이런 의미에서 파시즘은 자연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인간 집단을 파괴하려는 모든 경향에 반대한다. 파시스트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특정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공동체나 조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항상 이 공동체와의 연관 속에서 존재 근거를 갖는다. 생래적으로 자유로운 개인은 개인주의 이론가들이 만들어낸 추상적 개념에 불과하다. 인간은 오로지 가족, 인종, 민족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우선적인 존재 가치를 지니며 개인의 자유 역시 이러한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진정한 의미를 지닐 뿐이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관념론 철학자이자 파시스트였던 젠틸레Giovanni Gentile의 표현을 빌리면 " '나'의 근저에서 항상 '우리'가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간주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역사적이고 전통적으로 이어져 내려온 다양한 조직과 공동체를 파괴할 뿐 아니라 새롭게 창조될 모든 유형의 인간 공동체에도 적대적이다. 파시스트에게 자유주의는 곧 일종의 아나키즘이자 무질서였다. > >파시즘은 합리주의 역시 인간 존재의 필수적 전제인 공동체와 조직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비난했다. 합리주의는 19세기를 경과하면서 개인주의와 결합하여 모든 진리의 판단 기준이 개인의 이성이라고 치켜세웠고, 개인의 이성으로 이해 불가능한 것은 개인의 자유를 가로막는 적으로 간주하고 이를 공격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개인주의적 합리주의는 가족을 파괴하고 조국의 가치를 폄하했으며 인종과 민족 공동체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파시스트의 관점에서 볼 때, 그와 같은 인간 공동체는 자연적이며 전통적일 뿐만 아니라 초개인적이며 초이성적인 실체다. 그것은 이성의 영역을 벗어나 존재하는 일종의 신비적 실체이며, 본능적이고, 감정적인 끈으로 연결된 그 무엇이다. 이처럼 본능적이고 감정적인 측면을 이해할 수 없는 합리주의는 파시스트에게는 분열적이며 파괴적인 힘으로 비쳤던 것이다. > >파시스트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이성적이지 않다. 인간을 움직이는 힘은 본능이며 감정이다. 합리적 태도와 이성적 분석으로는 인간 심성의 근저에 자리 잡고 있는 무의식적·본능적 욕구를 충분히 표현할 수 없으며 따라서 합리주의적 인간관은, 파시즘에 의하면, 부분적이며 왜곡된 것이다. 인종이나 민족은 본능으로 연결된 자연적 집단이며, 합리주의는 과학적 분석을 통해 이러한 자연적 집단을 파괴하고 약화시킨다. 인간은 감정적이고 본능적인 관계 속에서 원천적인 귀속감을 발견하고, 또 산업화와 도시화는 소외된 개인들로 하여금 소속감을 갖게 만든다. 파시즘의 이러한 반(反)합리주의적 경향은 대중을 동원하는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과학적 사고는 어떤 의미에서는 소수의 전유물이며, 부단한 토론과 논증을 유발하기 때문에 단합보다는 분열을 낳는다. 대중은 지도자의 신화, 민족의 신화, 폭력의 신화, 혁명의 신화 속에서 단결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의회민주주의로는 불가능한 직접적인 정치 참여의 감각을 얻을 수 있다. 파시즘이 다양한 의식, 상징, 속죄양에 대한 폭력, 슬로건 등을 이용하여 대중을 동원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반합리주의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 점에서 파시즘은 대중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대표적인 대중주의populism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다. > >파시즘에 나타나는 행동주의와 반(反)물질주의 역시 반합리주의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파시스트 이데올로기에 의하면 합리주의는 부르주아의 가치관이며 상인의 가치관이다. 모든 것을 물질적 이익과 관련지어 생각하는 이러한 합리주의는 인간을 평범하고 안이한 삶 속에 가두어두며 도덕적·정신적 타락을 초래한다. 이에 비해 파시즘은 활력과 행동을 찬미하며 전투와 투쟁을 중시한다. 이러한 것들은 자신의 물질적 이해에 몰두하는 부르주아적 가치관 대신 의무감과 희생 정신, 규율과 용감성, 그리고 집단 의식으로 무장한 영웅적 도덕관을 가져올 것이다. 파시즘의 행동주의는 인간관 및 진보관과 연결되어 있다. 파시스트들은 인간 본성이 선하다거나 인간 사회의 필연적 진보를 믿는 18세기적 진보관에 회의적이었다. 따라서 무솔리니의 표현대로 파시즘은 "안이한 삶에 반대하며", 또한 "물질주의적 행복관"을 거부한다. 파시스트가 볼 때 인간의 참된 행복은 '복지'와 동의어가 아니며, 물질적 풍요에서 행복을 찾는 태도는 "인간을 먹고 살찌는 데 만족하는 동물로" 격하시키고 "단순히 식물적인 존재로" 만드는 데 불과하다. > >파시즘의 행동주의는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점에서 파시즘의 행동주의는 행동을 위한 행동, 투쟁을 위한 투쟁의 성격을 띤다. 파시스트들은 "삶 그 자체를 하나의 투쟁"으로 파악한다. 또한 파시즘은 이론적 추론에 근거한 닫힌 세계관에 저항하며 교조주의에 반대한다. 이론은 행동에 뒤따르는 것이지 이론이 행동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파시스트에게 삶은 "지속적인 과정이며 끊임없는 생성 그 자체다." 무솔리니가 "파시즘은 역동성dynamo"이라는 구호를 외친 것도, 대부분의 파시스트들이 스스로를 정당의 구성원이라기보다는 '운동'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러한 행동주의와 연결된다. >이런 의미에서 현실은 예측 불가능한 끊임없는 창조의 과정이며 이러한 현실은 오로지 본능적인 방식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마리네티Filippo Marinetti의 미래파 운동은 쉽사리 파시즘과 연결될 수 있었다. 동시에 파시즘의 이러한 행동주의는 대중사회에 매몰된 개인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수단으로 파악되었고, 이러한 점에서 파시즘은 표현주의와 일맥상통한다. 아울러 파시즘이 기본적으로 젊은이의 운동이라는 점 역시 행동주의와 밀접히 관련된다. 파시즘은 낡은 19세기의 부르주아적 세계관에 저항하는 20세기의 운동이라는 점에서 새롭고 젊은 운동일 뿐만 아니라 젊음은 무엇보다도 열정과 행동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파시스트에게 의회민주주의 체제는 자유주의의 여러 양상, 즉 물질주의, 합리주의, 개인주의가, 정치적으로 구현된 것이다. 따라서 파시즘은 의회민주주의를 전면적으로 거부한다. 파시스트에게 의회민주주의는 부르주아의 금권 지배 체제이며 인간 사회를 파편화된 개인의 총합으로 여기는 아나키즘이다. 의회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 정권 쟁탈을 위해 경쟁하는 여러 정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금권과 결탁하며 대중의 의사를 적절히 대변하지 못한다. 파시스트가 볼 때 의회민주주의는 분열의 원동력이며 대중의 욕구를 대변하지 못하는 피상적인 정치 체제이자 물질주의가 빚어낸 타락과 부패를 의미했다. 또한 의회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무엇보다 중시함으로써 외국인의 침투를 초래했으며 이들은 이러한 체제의 보호 아래 민족 속의 민족을 구성하고 정치가를 매수하여 민족의 힘을 약화시키고 파괴한다. >이처럼 파시즘이 계몽주의의 주요 전통을 거부하며,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려 했다는 점에서 파시즘을 '포스트모더니즘의 최초의 주요한 표현 가운데 하나'로 파악한 이스라엘의 역사가 스테른헬의 견해는 타당성을 지닌다. >---- >김용우, 호모 파시스투스, 28~32p 독일 관념론과 관련있는 [[낭만주의]]는 자연을 숭배하고 이성을 배척하면서 직관과 감성을 중시했으며, 민족문화에 관심을 가지거나 영웅주의적 성향을 나타내기도 하였으며, 예술가의 천재성으로 대중의 평범함을 상쇄하고자 했다. >계몽주의가 이성과 철학의 시대라고 한다면 낭만주의는 감성과 신화의 시대이 다. 낭만주의 사상가들이 추구한 신화는 고대 그리스 문화와 중세 유럽의 기독교 국가였다. 계몽주의는 보편적인 반유대주의에 일상화되어 있었던 근대 유럽인들에게 변화를 촉구하였으나, 칸트와 같은 계몽주의의 대변자조차도 반유대주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낭만주의는 로마-가톨릭 교회와 중세문학의 부활을 도모하면서 독일 민족주의의 출현을 자극하였다.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모두 당시 독일의 유대인들에게는 아무런 차이도 없었다. 독일이 나폴레옹의 침공을 받았을 때, 독일의 낭만주의는 민족주의에 기초한 정치적 낭만주의라는 새로운 신화를 창조해나가고 있었다. 피히테와 슐레겔과 노발리스가 독일정신의 기원을 고대 그리스의 신화정신이나 중세 기독교의 국가에서 발굴하려고 시도하면서, 낭만주의자들의 신화적 지향성이 선명하게 부각되었다. 칸트가 제기한 정치적 최고선의 이상 요청은 낭만주의자들에 의한 문화적 세계정부의 현실 요청으로 변형되었다. 그러나 계몽주의의 이성보편주의에도 불구하고 반유대주의가 일상화된 것처럼, 보편의지의 국가 실현이라는 낭만주의적 기획에서도 전체주의와 반유대주의의 기운은 여전히 생동적이다. 피히테의 보호무역국가, 노발리스의 중세유럽국가, 슐레겔의 세계단일국가 개념은 정치적 삶에 대한 유기체 이론을 전제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낭만주의자들에게 국가는 “거룩한 신비”로 인식되었다. 낭만주의적 힘은 바로 공통의 언어, 의사소통, 가치를 기반으로 한 이 거룩한 신비의 파괴력에 있으며, 이로써 '''파시즘은 ‘낭만주의의 후예’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 >낭만주의는 서구 세계의 삶과 사고를 근본적으로 바꾼 가장 광범위한 근대의 운동이다. 유럽에서 가장 뒤쳐졌던 독일인들의 굴욕감과 자존심은 프랑스의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로부터 낭만주의 운동을 일으켰다. 사물의 불변적 구조나 본성 대신에 세계를 창조하고 변화시키는 인간의 의지가 최우선적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은 신화의 가치를 존중하여 최고의 지적 관심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와 같은 강력한 의지적 주체는 개인을 넘어서서 민족, 국가 등 공동체 영역으로까지 확대되었다.''' >낭만주의는 20세기 신화이론의 가장 풍부한 원천이 되면서, ‘전체주의 국가’ 개념과 ‘제국주의’의 이론적 근거로 활용되었다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카시러는 낭만주의자들의 전체주의적 견해는 정치적인 것이 아니고 순수 문화적인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그는 낭만주의자들이 열렬한 국가주의자로서 비타협적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결코 제국주의자는 아니었다고 평가한다. 낭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국가주의가 세계주의와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독일의 고유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다른 민족들에게 강요하거나 시, 예술, 종교, 역사 등의 문화형식들을 ‘전체주의’ 국가에 희생시켜도 좋다고 여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피히테는 프랑스혁명에 감화를 받았지만 1806년의 나폴레옹 침공 이후 프랑스의 국가철학에 반대하였다. 그는 한 민족국가의 진정한 가치는 군사력보다는 도덕과 문화의 저력에 있으며, 미래의 독일 국가는 권력국가(Machtstaat)보다는 자유의 나라(Reich der Freiheit)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점에서 문화적 민족주의자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독일 민족국가를 폐쇄적인 보호무역국가로 기획함으로써 칸트의 세계보편주의와 루소의 일반의지를 적용할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피히테의 민족주의는 결과적으로 파시즘과 같이 왜곡된 형태로 전개되었다는 지적들이 나오게 되었다. >... >낭만주의가 추구했던 고대 그리스 문명과 중세 유럽국가의 신화는 개인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세계정부를 이상으로 열망하였다. 그것은 동시에 국민의 신성성 또는 보편의지가 완전하게 실현될 수 있는 국가 모델을 제시하기 위하여 고심한 결과 새로운 유럽의 부활을 견인할 수 있는 이성국가로서 독일의 민족국가 내지는 독일정신을 강조했을 것이다. 물론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나 초기 낭만주의자들이 전체주의 국가의 건설을 의도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계몽주의]]에서 [[낭만주의]]를 거쳐서 [[리하르트 바그너]], [[프리드리히 니체]], [[카를 슈미트]]에 이르는 독일 근대사상의 뒤안길에 전체주의에 대한 세찬 요구가 잇달았으며, 그 반작용으로 반유대주의의 정서가 한층 더 강화되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칸트의 이성주의에서조차도 유대적인 것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피히테의 도덕적 세계질서와 보호무역국가 조차도 유대인의 자유를 배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노발리스의 마술적 관념론과 시적 국가론, 슐레겔의 세계단일정부론 역시 유럽의 로마 가톨릭 신앙을 전제하고 있으며, 그와 같은 비중으로 유대인들의 자유가 보장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386223|낭만주의의 신화 해석: 문화적 정치신학의 기원]] 또한 [[미래주의]]의 본능과 폭력에 대한 미학적 태도는 파시즘에도 영향을 미쳤다. 파시즘은 논리에 기반하여 이론을 전개한 사상이기 보다는, 장황하고 현학적이지만 살펴보면 무의미한 문구들과 슬로건들을 남발하는 연설로 청중들을 열광시켰다.[* 이는 당시 [[마리네티]]를 위시로 하는 [[미래주의]]가 그 당시 쓰이던 언어마저 반동적으로 규정하며 그당시 쓰이던 [[비유법]]등을 해체하자고 선언했던 사조였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게 현 언어체계조차도 반동적이라 비판했지만, 미래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시나 선언문에서도 종교, 신적인 존재를 과거에도 유구하게 쓰이던 '별'이라는 말을 주구창장 썼었다.] 파시스트들은 이론적 사상가라기보다는 [[중2병|감성충만한 시인]]에 가까웠다. 단눈치오와 마리네티는 진짜로 예술가 시인이었으며, 단눈치오는 피우메시를 점령하여 '음악 공화국'을 다스렸었다. 독일 관념론에서는 [[임마누엘 칸트]]의 이성비판과 반유대주의등이 파시즘과 연관성이 지적되며,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피히테]]가 나폴레옹의 침공에 맞서 [[독일 국민에게 고함|독일 민족에게 고함]]을 통하여 민족주의적 주장을 하였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헤겔]]은 국가를 인륜적 실체로 보았으며, 헤겔의 국가관에 의하면, 개인과 시민들이 모여 만든 개별국가들의 민족정신은 세계정신에게 심판을 받으며, 시대정신에 미치지 못하는 국가는 절대정신의 자기 실현과정에서 세계사에 의하여 일종의 세계법정처럼 심판받는다. 이러한 헤겔의 세계관은 특정한 나라의 민족정신이 다른 나라의 민족정신에 비하여 우월하다고 볼 수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609109|#]]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의지는 인간 행동의 실질적인 추진력이며, 모든 현상은 목적이나 목표가 없이 단지 살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세계와 그 모든 현상은 사실상 의지가 외적으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리하르트 바그너]]도 낭만주의 음악가이다. 독일 민족주의 신화와 관련된 음악들을 만들었으며, 반유대주의적 성향을 가졌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에서 반유대적 성격과 민주주의 비판, 초인사상, '위대한 정치' 이론에서 위계적 질서와 지배하기에 적합한 자에 대한 언급, 하나의 유럽 등이 거론된다.[[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855750|#1]]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770360|#2]] 니체 본인은 인종주의적인 주장을 하지 않았지만, 나치가 유대인들의 철학을 배격하고 독일의 영웅정신을 내세우면서 니체철학을 많이 차용하였다. 니체의 철학은 논리에 기반하기보다 시적 예술에 가깝다고 비판받는다. >니체는 철학사에서 대표적인 반 민주주의자로 소개된다. 니체가 민주주의 체제하의 시민을 ‘천민’, ‘떼거리’로 칭하며, ‘민주주의적’이라는 말을 ‘천민적’, ‘획일화’, ‘균등화’와 동의어로 본다는 사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위계질서의 해체와 ‘위대한 개인’의 몰락을 초래시킨 주범임을 폭로한다는 점, 그리고 민주주의란 병적 징후인 데카당스의 산물임을 거듭 강조한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우리는 그를 ‘반 민주주의자’로 규정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니체의 ‘주인 종’(Herrenrasse), ‘금발의 야수’(Blonde Bestie), ‘사육’ (Züchtung) 그리고 ‘위대한 정치’(Große Politik) 등의 개념을 차용한 ‘국가사회주의’의 ‘인종주의’와 ‘민족주의’의 폐해를 생각하면 니체는 인권을 핵심 이념으로 삼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보인다. >... >둘째, 니체는 귀족제가 가진 기본적 특징을 ‘위계’와 ‘거리의 파토스’로 설명하고, 귀족제적 가치관의 부활이 과다한 평등주의가 초래한 민주주의의 병폐를 치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니체는 귀족주의의 긍정적 면만을 보고 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역사 속에서 전개된 귀족주의는 니체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상적인 정치형태와는 거리가 멀다. 귀족주의가 타락하여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그것을 교정할 어떤 장치도 없게 되어 부패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들의 권력을 박탈하기 위해 수많은 유혈 혁명이 일어난 것도 사실이다. 또한 귀족주의는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데도 매우 취약했다. 니체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귀족제의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인류의 지혜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셋째, 민주주의의 과도한 평등주의가 초래한 문제들을 치유할 대안으로 니체가 제시한 ‘위대한 정치’는 정치 이론으로서 너무 추상적이고, 애매하며, 소박하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물론 니체는 ‘위대한 정치’가 현실 정치라기보다는 보다 근본적 의미에서 정치, 즉 가치관들 사이의 전쟁으로 규정했지만, 그가 말하는 ‘거리의 파토스’를 체현하고 ‘위계’를 확립하는 정신적 귀족이 과연 현실에서 가능한 것인가? 비록 니체가 위대한 정치와 위대한 예술의 공속성을 언급함으로써 그것의 실현 가능성을 말하지만 위대한 가치를 실현할 정신적 귀족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만 아니라, 비록 가능하더라도 그들이 미치는 사회적 파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니체는 정치를 미학화했다는 비판을 벗어날 수 없다.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056317|니체의 민주주의 비판]] 특히 [[20세기]]는 노동자의 전문성과 지방자치성(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이 맞물린 시기로, 파시즘의 지적 시조중의 하나인 [[조르주 소렐]]과 같은 [[생디칼리슴|혁명적 조합주의자]]들은 노동조합의 정치적 중립성(노동조합은 어느 정치적 성향을 강제해서는 안된다.)과 '''총파업이라는 이름의 신화'''[* 말 그대로 신화이다. 노동자들이 총파업이라는 이름으로 묶인다면 그것을 통해 총파업 사회혁명을 이루어 지방자치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소렐은 자신의 저서에서 신화라는 것을 어떻게 부르든 상관없다고 말한 바 있다, 즉 총파업이든 폭력이든 오직 대중의 자발적인 추동을 이끌 수만 있으면 된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의 이론은 매우 [[나로드니키]]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을 통해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대중혁명만을 통한' 사회변혁이 가능하다고 믿었으며, 이들은 정치에서의 비합리성(의지, 직감력, 감정, 폭력, 신화)을 내세웠으며 이성에 의한 [[합리주의]]를 비판했다. >혁명주의자들은 협력주의에 반발하면서 정치에서의 비합리성(의지 직감력, 폭력, 신화)을 중요시하는 최신의 사상적 경향들의 영향을 받았다. 혁명주의자들 중에서도 조합주의자들의 목소리가 가장 높았는데, 이들은 총파업을 감행해 권력을 장악하고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을 소유한 노동자들의 기업조합 또는 노동조합을 건설하기를 원했다. >---- >크리스토퍼 듀건, 미완의 통일 이탈리아사 261p >노동계급의 독자성을 확립하려는 이러한 소렐의 노력은 그의 사상에 보기 드문 독창성을 부여했다. 그가 혁명적 생디칼리슴의 열렬한 옹호자이자 이론가로 부상하게 된 것은 거기서 노동계급의 도덕적, 제도적 독자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사회주의의 전체 미래는 노동자 생디카의 독자적 발전에 달려 있다” '''아울러 그의 사상에서 보이는 반합리주의적 경향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가 정통마르크스주의의 유토피아적 요소를 비판하고 '''데카르트의 합리주의와 헤겔의 변증법을 거부한 것'''은 미래에 대한 합리적인 예상과 전망이 결과적으로는 노동계급의 혁명성을 퇴화시키고 부르주아지의 지적, 제도적 망 속으로 포섭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소렐이 드레퓌스 사건 이후 제3공화정의 의회민주주의와 장 조레스(Jean Jaurès)식의 의회사회주의, 혹은 그의 표현처럼 “정치적 사회주의”를 비난한 것 또한 노동계급의 부르주아화에 대한 우려의 산물이었다. 아울러 '''소렐이 데카르트적 합리주의에 기반한 낙관주의적 진보관을 “진보의 환상”으로 공격'''하고 영웅주의적 페시미즘의 복구를 역설한 근본적인 이유는 '''합리주의적 진보관이 부르주아지의 지배 논리이며 동시에 민주주의 체제를 사상적으로 미화한 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소렐의 수정주의에서 나타나는 반합리주의, 반민주주의, 행동주의, 페시미즘, 노동자의 도덕성에 대한 강조, 그리고 혁명적 생디칼리슴''' 등은 그가 계급투쟁을 마르크스주의의 근본정신으로 확립하는 한편 그러한 계급투쟁의 전제로서 노동 계급의 독자성을 확보하려는 시도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 > 노동계급의 독자성과 이에 근거한 계급투쟁에 대한 강조는 소렐의 마르크스주의에서 하부구조보다는 상부구조를 중요시하는 경향을 낳았다. '''그에게 있어 노동계급의 통일성은 의식적, 심리적 측면에서 확보되어야 할 성격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의식적 통일성은 무엇보다도 생산자, 창조자로서의 노동계급이 갖는 독자적 도덕성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또한 계급투쟁 역시 하부구조의 모순에서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었다. '''계급투쟁은 의식적, 심리적 영역에서 촉발되어야 하고 도출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소렐이 볼 때 정통마르크스주의의 경제결정론은 이러한 요소들을 무시하거나 이차적이며 부수적인 것으로 간주한다는 데 그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이러한 심리적 측면은 전반적으로 당대의 철학 운동에 초연해 있던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무시되어왔다. 마르크스의 시대의 독일인들은 심리학을 거의 연구하지 않았다.” > > 소렐의 유명한 신화이론은 이러한 그의 마르크스주의 수정이 도달한 논리적 귀결이었다. 소렐이 혁명적 생디칼리슴의 이론가로서 그리고 『폭력에 대한 성찰』의 저자로서 명성을 얻은 것은 총파업의 신화이론이며 그의 수정주의적 마르크스주의가 함축하고 있는 다양한 사상적 측면들은 이 신화이론에 집약되어있다. 뿐만 아니라 '''신화이론을 통하여 소렐은 정통마르크스주의에서 나타나는 경제결정론, 과학적 합리성 및 목적론적 경향을 철저하게 배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 소렐에게 있어서 신화는 노동자를 곧바로 투쟁에 가담할 수 있게 만들고 '''‘직접적인 행동(action directe)’'''을 유발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 '''신화는 합리적 사고와 이성적 추론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심리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 신화는 “이미지의 체계(systèmes d'images)”로서 그 구성요소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총체, 또는 “블록(bloc)”으로 파악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신화는 “자신의 대의명분이 승리하리라는 확신으로 자신의 행동을 전투의 이미지로 상상하면서 거대한 사회 운동에 참여하게 만드는” 것이다. > > 소렐은 자신의 신화 개념을 명백히 하기 위해 신화와 유토피아를 날카롭게 대비시키고 있다. 그에 의하면 첫째, '''신화가 의지의 표현이라면 유토피아는 추상적인 지적 산물이다.''' 즉 신화가 “결정적인 전투에 가담하도록 하는 인민 대중의 행동과 감정, 그리고 생각을 이해하도록 해주는” 것으로서 “사물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의지의 표현”이라면 유토피아는 “이론가들이 사실을 관찰하고 검토한 다음 하나의 모델을 구성하고 이를 현 사회와 비교하려는 시도의 산물이며” 따라서 그것은 “상상적인 제도를 조직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둘째, 신화가 기존의 사회를 파괴하려는 전투에 직접 가담하도록 만드는 반면 유토피아는 현 사회 제도를 고치는 개량주의를 낳는다. 소렐의 주장에 의하면 신화의 대표적인 예들은 “원시 그리스도교, 종교개혁, 프랑스 혁명, 마찌니의 운동에 의해 구성된” 신화들이며 무엇보다도 “생디칼리스트의 총파업, 마르크스의 파국적 혁명론”이다. > > 소렐이 볼 때 마르크스주의는 오랜 동안 하나의 유토피아에 불과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따라서 소렐이 목표한 바는 신화이론을 통해 이러한 유토피아적 요소를 마르크스주의에서 제거하는 일이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마르크스주의의 합리적 측면을 부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에게 있어서 엥겔스가 말하는 과학적 사회주의로서의 마르크스주의는 실증주의 또는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하찮은 과학(petit science)”에 의존해 마르크스의 사상을 도식화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며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초래한 주요 요인이었다. 그러므로 소렐이 볼 때 핵심 문제는 그러한 추상적 이성에 의해 분석되지 않는 직관적이고 심리적인 현상으로서의 신화이론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자본가에 맞서 노동자를 즉각적으로 투쟁에 이끄는 일이었다. > > 이처럼 소렐의 신화이론은 마르크스주의를 오로지 현재의 투쟁 수단으로 만듦으로써 어떠한 목적론적인 경향도 배제한다. 미래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체계적 전망이라는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논리는 소렐에 의해 결정적으로 거부되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소렐의 손에 의해 계급투쟁을 유발하는 상징으로서, 달리 말하면 마르크스주의 자체가 하나의 신화가 된 것이다. '''현실에 대한 합리적 분석을 토대로 하여 사회주의 사회 도래의 필연성을 입증하려 한 과학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는 소렐에 의해 오로지 현재 이 시점에서 노동자들을 혁명적 행동으로 이끄는 심리적이고 본능적인 힘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자들의 혁명적 투쟁이 가져올 미래 사회는 현재의 시점에서 전망하는 것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불가능하게 되었다. 미래 사회는 오로지 노동자들의 혁명적 행동으로 개척되어야 할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이며 끊임없이 열린 공간으로 남아 있다. 소렐은 비코의 인식론에 근거하여 인간은 인간이 창조한 것만을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장차 도래할 사회는 인간의 인식을 넘어서 존재하는 영역으로 받아들였다. > > 실제로 소렐의 고민은 노동자의 총파업을 어떻게 조직하고 또 그것을 통해 건설할 미래 사회의 구체적인 측면을 예측하는 데 있지 않았다. 그것은 유토피아주의의 오류를 저지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소렐이 볼 때 혁명운동은 미리 결정된 방향으로 진행될 수 없으며 더욱이 과학적 방식으로 연구될 수 없는 것이다.''' 즉 “혁명운동에 관한 모든 것은 예측불가능하다” 또한 “역사가 제시하는 모델에 기반하여···투쟁의 성격과 자본주의를 억압하는 방법에 대한 가설을 구성하려는 노력은 유토피아주의자들의 낡은 수법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소렐에게 있어 총파업의 신화는 현재의 행동을 유발하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소렐은 아래에서 자신의 총파업 신화 이론을 요약하고 있다. > >>신화는 사회주의의 모든 것을 포괄한다. 즉 '''신화는 현대 세계에 맞서 사회주의가 전개한 다양한 전쟁들에서 표출된 모든 감정들을 본능적으로 촉발할 수 있는 이미지의 결합체이다. 총파업은 프롤레타리아가 보유하고 있는 가장 고귀하고 심오하며 또 강력한 감정을 유발시킨다. 총파업은 파업 집단에 통일된 이미지를 부여하며 이들을 통합시킴으로써 그와 같은 감정들을 가장 강렬한 형태로 격상시킨다.''' 특정 투쟁에 대한 매우 생생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이러한 총파업의 신화는 프롤레타리아의 마음속에 그려진 그림의 세부 전체에 강력한 색채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언어로는 도저히 명료하게 묘사할 수 없는 사회주의의 본능을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 >김용우,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048124|민족주의, 파시즘과 조르쥬 소렐]] >프루동 서클이 소렐을 극찬하면서 수용하고자 하는 부분은 소렐 사상의 어떠한 측면이었던가? 《회보》의 기고자들은 소렐의 총파업의 신화 이론, 노동자의 폭력과 영웅주의, 생산자의 도덕, 유토피아에 대한 거부와 반합리주의, 반민주주의와 반자유주의에 관심을 표명했다. 그러나 모라스의 사상과 소렐 사상을 결합하고자 했던 프루동 서클에게는 소렐 사상이 대단히 개방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과 그의 생디칼리슴이 자본가의 즉각적인 폐지보다는 자본가의 활력을 부활시킬 것을 주장한 점이 가장 큰 호소력을 지녔다. >소렐의 혁명적 생디칼리슴은 제2인터내셔널 마르크스주의의 운명론적·경제결정론적 입장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탄생했으며, 이 과정에서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적·합리적 측면이 제거되는 결과를 낳았다. 소렐은 사회주의 사회의 필연적 도래를 예측하는, 이른바 18세기 이래의 '진보에 대한 환상'이 노동 운동의 침체를 초래하고 궁극적으로는 노동자들이 부르주아 계급의 이데올로기와 제도에 흡수되는 부르주아화의 주 원인임을 강조했다. 그리하여 소렐은 미래 사회에 대한 합리적 예언을 유토피아적 환상으로 보고 이를 거부하는 한편 마르크스주의를 오로지 계급 투쟁의 철학으로 해석했다. 소렐에게 마르크스주의는 합리적 방법으로 예견할 수 없는 미래를 향해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가 정신적·이념적으로 철저한 분리를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전개하는 투쟁의 철학이었다. 따라서 소렐의 혁명적 생디칼리슴은 자본가의 타도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갱생을 필요로 한다. >>프롤레타리아의 폭력은 미래의 혁명을 확고하게 할 뿐 아니라 인도주의에 의해 쇠약해진 유럽의 여러 민족들에게 이전에 지녔던 활력을 되찾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이 될 것이다. 이러한 폭력은 자본주의를 오로지 자신의 물질적 역할에만 전념하게 만들며 이전의 전투적 성격을 회복하게 한다. 성장하고 있으며 굳건히 조직된 노동 계급은 자본가 계급으로 하여금 열성적으로 산업 전쟁에 참여하도록 만든다. 만약 혁명적이고 단합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부유하고 정복에 굶주린 부르주아 계급에 맞서 투쟁한다면 자본주의 사회는 역사적 완성에 도달할 것이다. >>---- >>조르주 소렐, Réflexions sur la violence(Paris: Marcel Rivière, 1946), 10th ed, 120쪽 >요컨대 마르크스주의를 "머리의 철학이 아니라 손의 철학"으로 수정함으로써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소렐의 시도는, 한편으로는 강건한 부르주아지를 필요로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가올 미래사회를 어떠한 합리적 전망도 무의미한, 열린 가능성으로 남겨놓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 >김용우, 호모 파시스투스, 135~136p 이러한 관점은 아주 재미난 함의를 가지는데, 통속적으로는 파시즘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이라 인식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초가 바로 파시즘이란 것이다. 파시스트들의 주장을 보면, 이들은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르게도, 민족주의에 기반한 상대주의를 주장한다. 민족마다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이, "[[비트겐슈타인|언어]] [[리오타르|게임]]"들이 있고, 그것을 침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파시스트들이 자기네들과 다른 민족보다 민족끼리 섞이는 것을 더욱 싫어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각기 다른 민족들의 고유성을 주장하며 그것들을 침범하지 말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이 보편주의를 전체주의적이라면서 비판하는 것과 상당한 유사점을 나타낸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포스트모더니스트들과 반목하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에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