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시즘 (문단 편집) == 파시즘이란 무엇인가? == >파시즘은 수수께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절묘한 힘의 균형을 본다. 파시즘은 권위주의를 주장하는 한편 반역을 조직한다. 오늘날의 민주주의에 맞서 싸우면서도, 과거 지배 체계의 복권을 옹호하지 않는다. 강국의 주조자(鑄造者)를 자처하는 듯하나, 그 수단이 도리어 국가 와해를 촉진하므로, 파괴적 당파나 비밀 결사에 견줄 만하다.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건, 파시즘은 어떤 것이면서 동시에 그와 반대되는 것이며, A이면서 동시에 A가 아니다…. >---- >—호세 에르테가 이 가제트(José Ortega y Gasset)[* 스페인 태생의 철학자. [[https://plato.stanford.edu/entries/gasset/]]], 「파시즘에 관하여 Sobre el Fascismo」(1927) 파시즘의 광풍이 세계를 휩쓴지 7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고 파시즘에 관한 연구는 스페인 내전 이전부터 거슬러 올라가지만 아직까지도 학계에서는 파시즘의 정체에 대해서 완전히 합의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나치즘조차 파시즘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는데, 파시즘은 오로지 [[이탈리아 파시즘]]과 이를 이념으로한 무솔리니의 국가 파시스트당을 말할 뿐이며 파시즘을 세계적인 정치현상으로 보는 것은 오류라는 주장이다. 최근에는 파시즘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로, 합의파 학자들의 이론이 기준점으로 사용되고 있다. >파시즘적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개인에 대한 전체의 우위를 주장하고, 유기체인 전체에 대한 개인의 종속을 당연시한다는 점이 가장 기본적인 속성이다. 그런데 이는 전체주의 일반의 특징이기도 하다. 파시즘은 대중의 지지 기반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전근대적 전제주의와 구분되고, 자유주의, 자본주의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적 전체주의와도 구분된다. 독재자의 신성한 권력이나 계급적 우위를 부정한 상태에서 전체를 절대시하기 위해 필요한 존재가 ‘민족’이다. 또한 민족의 절대성은 유구한 역사로부터 나오기 마련이다. 흠없고 순결하며 영원한 민족사는 ‘이기적인’ 개인들의 죄를 씻어주는 숭배의 대상이 된다. 개인들로 하여금 현실 권력에 순응케 하기 위하여 민족의 전통과 역사가 소환되는 것이다. >... >파시즘이 무엇인지 정의내리기는 쉽지 않다. 파시즘 자체가 일관된 이론 체계라기보다는 무엇무엇에 대한 [[안티테제]]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 1945년 이후 부정적 인식이 워낙 강해서 ‘진지한’ 연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는 점 등이 주된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로저 그리핀 등의 학자는 파시즘을 진지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이들은 파시즘들 사이에 공통된 특징들 속에서 ‘일반적 파시즘’을 구성할 수 있다며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리핀은 파시즘을 ‘민족 부활이라는 형태를 띤 일종의 포퓰리즘적 극민족주의 정치 이데올로기’라고 정의한다. 즉, ‘[[포퓰리즘]]적 [[민족주의]]’가 핵심이다. 사실 포퓰리즘의 주장은 [[민주주의]] 이념과 중복되는 면이 많다. 차이는 대표제 민주주의(간접 민주주의)를 부정적으로 본다는 점에서 생긴다. ‘당파적인 대립이나 부분 이익을 초월한 하나의 국민’을 가정한 후, 스스로 기성정치가와는 달리 국민의 전체 이익을 대표하는 존재로 자처하며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처럼 파시즘은 [[근대]]적 대중 정치의 한 형태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혁명]]적’ 성격을 지녔다. > >대중으로부터 권력의 원천을 뽑아내는 파시즘의 정치공학이 두려움을 갖게 한다는 사실은 자유주의자의 입장에서 보아야 이해된다. 자유주의는 ‘욕망이 인간 행동의 동기라는 인간관’으로부터 자연과 인간을 분리시키는 근대과학과 개인주의 철학의 영향 속에서 성립했다. 19세기 중반에 이미 토크빌은 ‘다수는 법률을 만드는 권리뿐 아니라 자신들이 만든 법률을 깨뜨릴 권리까지 갖는다’는 사실을 통찰했다. 토크빌이 보기에 민주주의는 새로운 독재 정치의 씨앗을 가지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대중의 애국심은 보편 종교로서 신성시되고 있었다. 자유주의자에게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폭민’(the mob)의 지배를 의미하였다. 1952년 열린 학술대회에서 파시즘, 나치즘, 공산주의를 아울러 ‘전체주의’로 규정하였을 때, 이 이념들의 공통점으로 ‘대중적 열광’이 지적되었다. 전체주의 이론은 민주주의를 ‘선의 대명사’로 만들었으나, 자유주의적 우려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의 반대는 전체주의이고 민주주의의 반대는 권위주의이므로 원칙적으로 민주주의 정부도 전체주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군중이 그저 수동적으로 기만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억압을 욕망한다’는 진단으로부터 ‘미시파시즘론’이 정립되었다. > >파시즘이 내세운 ‘민족’의 의미와 관련하여 또다른 파시즘 전문가 로버트 팩스턴의 견해를 보자. 애국적 국민, 민족적 기원과 계보, 강한 국가를 중시한 것은 근대 이후 거의 모든 우파 정치 이념에 공통적이다. 파시즘의 차별성은, 시민들 간의 계약이 아니라 민족의 운명을 구현하는 존재로서 국가를 자리매김하여 사적 영역을 모조리 공적 영역으로 끌어들이며 개인을 공동체에 종속시켰다는 데에 있다. 이 때 파시즘의 지도자들이 대중의 민족적 열정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이용하는 것이 부르주아 정치에 대한 경멸과 좌파에 대한 반감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팩스턴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적 위기가 존재하지 않았던 곳에서는 파시즘도 성립할 수 없다고 본다. 1945년 이전의 일본 제국은 ‘국가가 지원하는 상당 수준의 대중 동원이 가미된 군부 독재’이고, 대중 동원이 가능한 민주주의가 성립되지 못했던 제3세계의 권위주의 통치 체제도 ‘개발 독재’에 불과하다고 결론짓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일본 제국이나 제3세계 개발 독재의 대중 동원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팩스턴이 잘 몰라서 오해한 것일 수 있다. 제3세계에서도 ‘의회에서의 영향력과 거리에서의 투쟁을 잘 결합하여 성공적인’ 파시즘이 존재했을 수 있다. > >그리핀과 팩스턴의 견해에서 고려해볼 문제는 파시즘의 근대적 성격이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야만적 행위나 근대로부터의 일탈로만 보는 것은 파시즘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근대가 무엇인지, 진보란 무엇인지에 대한 견해를 기준으로 파시즘의 근대성에 대한 판단은 달라질 것이다. 이 글에서 주목하는 ‘역사인식’과 관련해 보면 파시즘이 민족적 동질성 추구를 위해 전통적 요소를 강조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특히 독일의 나치즘이 그러했다. 이탈리아의 파시즘은 속도와 힘과 기계를 강조하는 근대화에 대한 물신숭배의 형태로 나타난 반면에 독일의 나치즘은 흙과 피를 강조하는 담론이나 중세적인 반유대주의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것을 강조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사는 사회가 전통적이지 않음을 증명한다는 점에서 근대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 >파시즘의 민족 담론은 [[사회주의]]의 계급투쟁론도 전유한다. 무솔리니는 프롤레타리아를 피억압집단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부르주아 지배에서 벗어나는 해방을 목표로 삼는 대신 이탈리아 프롤레타리아 민족이 부르주아 민족에서 벗어나는 해방을 목표로 삼았다. 계급이 민족 속에 용해되면서 [[혁명]]의 주체가 [[프롤레타리아]]에서 [[민족]]으로 바뀐 것이다. 독일 나치즘은 생물학적 인종주의를 주창했다는 점에서 이탈리아 파시즘과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양자 모두 민족주의가 지닌 이방인 혐오증을 이용한 점은 공통적이다. 즉, 파시즘은 근대화 과정에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가 담당했던 역할을 모두 초월한 존재로 민족을 상정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당대인들 역시 파시즘이 전체민족의 이름을 내세운 대표적인 정치세력으로서, 사회민주당 정부, 공산주의자, 자유주의자들보다 더 효과적으로 그리고 강력하게 국가를 강조해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보았다. 이처럼 파시즘과 민족주의는 잘 구분되지 않는다. 19세기 유럽의 민족주의 자체가 배타적·침략적 성질을 내재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역사상의 인물을 민족주의자로 규정할 때는 막연하게 ‘국가주의와 다른 민족주의’, ‘좋은 민족주의’, ‘열린 민족주의’ 등으로 정당화할 것이 아니라 그가 파시스트가 아님을 구체적으로 증명해야 할 것이다. > >그러면 일제 시기 조선 지식인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일본 군국주의의 파시즘적 성격은 어떠하였을까? 일본적 파시즘을 논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마루야마 마사오의 입론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마루야마도 일본의 내셔널리즘과 군국주의가 대중의 격정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인정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모두 비판하는 무산정당 운동도 존재했다. 그러나 대중 조직이 약한 상태에서 ‘위로부터의 파시즘’이었고 유사(疑似) 민주적 형태였다는 입장을 보인다. 서양의 파시즘과 비교하여 가족주의적, 농본주의적 성향을 띠었다는 점도 다르고, 우익 지도자인 도야마 미쓰루(頭山満)나 지방 인텔리 계층의 수준이 저열하여 근대적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고 광신적이었다고 평가한다. 나치스와 달리 민주주의가 정면으로 부정되었다는 점도 지적하였다. 마루야마는 기본적으로 개인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자이기 때문에 급격한 포퓰리즘이 ‘개인’의 존재 자체를 위험하게 만들었다고 본 것이다. > >반면 근래 일본 내에서는 이 시기 일본을 총력전체제로 재평가하는 인식들이 등장하였다. 제1차대전 이후 독일, 일본 뿐만 아니라 영국, 미국도 국가주의를 지향했고, 1930년대 황도파의 정신주의와 통제파의 계획주의가 나름대로 총력전·총동원체제를 추구했다면서 굳이 따지자면 당시 일본은 파시즘화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파시즘 체제의 전체주의와 미국 뉴딜정책의 민주주의 이데올로기 간의 질적 차이를 무시한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다. ‘파시즘화에 실패했다’는 것도 어떠한 의미에서 나온 말인지 불분명하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파시즘체제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었던 요소들을 추출해 내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파시즘이 지닌 특성에 대하여 당대 한국 지식인들이 어떠한 입장을 보였는지 재배열하는 것은 유의미한 작업이 될 것이다. 파시즘이 특정 시기, 특정 체제에 한정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근대의 양대 산물인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모두와 경합·대립하였고, 민족주의의 형태로 한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끼쳐 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 >해방 이후 파시즘적 역사인식의 정립 과정[[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820890|#]] >사실 파시즘이 다른 정치 운동들에 비해 유달리 더 복잡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파시즘은 유달리 더 정의 문제에 얽매여 있다. ‘사회주의’나 ‘자유주의’의 경우, 우리는 이것들이 다양한 정황 속에서 다양한 의미를 가지며, 다른 이데올로기와 겹치는 부분들도 있고, 그리고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이데올로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견해차가 존재함을 쉽게 받아들인다. 우리는 또한, 누가 ‘진정한 사회주의자’ 혹은 ‘진정한 자유주의자’인지에 대한 논쟁이 정치적 동기와 연결되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누가 당의 ‘진정한 가치’를 대변하고 누가 그 가치를 ‘배신’했는가를 두고 당이 분열되는 모습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목격했던가? 결국, 요점은 이렇다. 어떤 정치적 명칭의 궁극적인 의미를 파악하기란 불가능하지만, 그 명칭이 특정한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사용되고 활동가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무솔리니가 파시즘을 이야기할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했고, 그의 견해가 어떻게, 왜 바뀌었으며, 다른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의 견해와는 어떻게 달랐는지를 따져볼 수 있다. >파시즘을 다른 개념과 구분 짓는 유일한 점은, 엄청나게 부정적인 도덕적 함의다. 물론 다른 정치적 명칭도 모욕적으로 쓰이는 일이 있다. 미국에서는 ‘자유주의자(liberal)’가 [진보주의자에 가까운 의미를 가지며, 보수파에 의해] 경멸조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명칭이든, 그것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파시즘의 경우는 다르다. '''그 심각한 부정적 함의로 인해, 파시스트로 불리기를 원하는 이는 거의 없는 반면, 적에게 파시스트라는 효과적인 낙인을 찍고 싶은 유혹은 강하다. 정치인과 언론인은 정의를 무기처럼 사용하며, 파시즘은 아주 훌륭한 무기다.''' 어떤 정의가 ‘객관적’이거나 ‘과학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욱 효과적인 비방의 수단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종종 학자들의 개입을 요청한다. >---- >-Kevin Passmore. 「파시즘」(이지원 역) 오늘 날에서의 '파시즘'은 사실상의 욕설로 쓰이며[* [[조지 오웰]]이 이런 말하길. 지금 사회에서의 파시즘은 '''[[개새끼]]'''와 동의어다."라고 했었다.] 진짜 파시스트라서 쓰이는 말은 대부분은 아니다. 따라서 파시즘이 무엇이냐고 단정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극단적인 민족주의 포퓰리즘 운동이라는 최소한의 공통점 이외에, 워낙 다양한 정의가 존재하고 용어가 가지는 윤리적 거부감으로 인해 정치적인 이유에서 특정한 정치적 대적자를 파시즘으로 매도하는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파시즘이라는 말의 오남용 때문에 '파시스트가 아니다'라는 말이 마치 '옹호'처럼 오해되는 부작용까지 일어나고 있다. 가령 로버트 팩스턴 등이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파시스트로 분류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프랑코에 대한 옹호인 건 결코 아니다. 프랑코의 폭력성은 정통 파시스트인 무솔리니를 가볍게 뛰어넘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로, 일제를 파시즘 국가로 분류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일제에 대한 옹호는 결코 아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