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폴란드 (문단 편집) ==== 가톨릭 ==== [[폴란드인]]들은 [[유럽]]에서 알아주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이다. 폴란드는 [[국교#s-2]]가 없는 [[세속 국가]]이지만, 2014년 기준 총 인구의 85.8%가 가톨릭을 믿어서[* [[http://stat.gov.pl/files/gfx/portalinformacyjny/pl/defaultaktualnosci/5515/2/9/1/rocznik_statystyczny_rp_2014.pdf]]] [[바티칸]](100%), [[이탈리아]](83%)[* 2011 기준, [[http://www.pewforum.org/2011/12/19/table-christian-population-as-percentages-of-total-population-by-country/]]], [[리투아니아]](77.2%), [[크로아티아]](86.3%)[* 2011 기준, [[https://www.dzs.hr/Eng/censuses/census2011/results/htm/E01_01_10/e01_01_10_RH.html]]], [[포르투갈]](81~88%), [[아일랜드]](78.3%) 등과 함께 [[가톨릭]]이 주류인 곳이다. 서기 966년에 가톨릭을 받아들였고, 지금까지 가톨릭 신앙은 폴란드의 문화 정체성 자체라고 해도 될 정도이다. 그리고 [[역대 교황]] 중에서도 잘 알려져 있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폴란드 마워폴스카 주 바도비체(Wadowice) 출신이다. 폴란드는 단순히 가톨릭의 교세가 큰 나라인게 아니라, 국민들의 종교성과 신앙심도 매우 깊은 국가이다. 일반적인 [[서유럽]] 국가들의 정기적 성당 출석율이 고작 10~20%인데, 폴란드는 1달에 1번 이상 정기적으로 성당에 출석하고 [[고해성사]]까지 정기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인구의 70~80%에 달하고 계속 유지된다. [[영성체]]하는 사람들의 수와 [[사제]] 수도 는다고 한다. 또 '하느님을 믿거나 매우 독실하게 믿는다'고 답한 사람도 인구의 94%나 된다. 2010년대 들어서 성당 출석율이 줄어드는 듯 보이지만, 이는 국민들의 신앙심이 약해져서가 아니고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교적]]을 폴란드에 남겨둔 채 외국인 노동자가 되어 서유럽으로 노동 이민을 갔기 때문이다. 세속화 경향이 더 강한 [[영국]]은 계속해서 줄어드는 [[영국인]] 신자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영국으로 오는 폴란드 출신 외국인들과 이민자들 덕택에 가톨릭 교세는 유지한다. 이 정도면 비서구 개발도상국 지역에서 한창 성장 중인 그리스도교 신자의 열렬한 종교성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수준이다. 이런 강한 믿음을 갖고 있는 폴란드 가톨릭 교회는 현재 유럽 교회 가운데서 가장 '비유럽적'이다. 유럽 전역을 휩쓰는 성소자(聖召者)[* [[사제]]나 [[수도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 부족 사태가 폴란드에는 없다. 사제와 수도자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은 다른 유럽 지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다. 크라쿠프 교구에서는 신학교가 꽉 찼으니 성소자들은 다른 [[교구]]나 [[수도회]]를 알아보거나 1-2년 뒤에 입학할 것을 권고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폴란드의 성소자 부족 사태는 가톨릭보다는 오히려 폴란드 [[정교회]]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으며, 가톨릭 교회 중에서도 [[동방 가톨릭 교회]]만큼은 성소자 부족 사태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란드에서는 소련 붕괴 전까지 정교회에 대한 경원시 풍조가 현재 많이 사라졌다. 폴란드 정부와 가톨릭 교회가 동반 우경화하면서 정교회[* 폴란드 정교회는 [[정교회 분열]] 사태 당시에도 러시아 정교회 측 입장을 지지했고, 전부터 [[페미니즘]]·[[LGBTQ]] 관련 이론·운동에 시종일관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등 폴란드 가톨릭 교회와 마찬가지로 '비유럽적' 성향이 강하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기점으로 러시아 정교회와의 교류가 끊어졌지만 말이다.]의 사회보수주의에 주목하고 이를 긍정 평가하는 시각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폴란드에서 가톨릭이 강세인 이유는 [[아일랜드]]와 비슷한데, 오랜 외세 침략과 시련의 역사 속에서 [[가톨릭]]이 국민적인 단합의 상징과 폴란드인들의 정체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외세의 침략때문에 무신론이 강세가 된 국가가 있는데, 바로 [[에스토니아]]이다. 한때는 역시 그리스도교가 강세인 국가였으나, 현대에 들어선 무종교인이 전 국민의 2/3를 차지하는 가장 무종교적인 국가중 하나가되었다.] 종교와 민족 정체성이 섞이는 현상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예를 들어 아일랜드는 영국과의 투쟁 속에서 '[[성공회]]=침략자 [[영국인]]의 종교, [[가톨릭]]=[[아일랜드인]]이 믿어야 할 종교'로 인식하고 가톨릭을 국가 정체성으로 삼았다.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는 '가톨릭=서유럽인들의 종교, [[정교회]]=[[러시아인]]이 믿어야 할 종교'로 생각했다. 이러다 보니 [[폴란드]] 문학이나 [[폴란드 영화]]에서 가톨릭은 꽤 중요한 키워드다. 별로 상관없는 상황에서도 가톨릭 관련 내용이나 인물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폴란드에는 [[지상파]] [[방송]]이 5개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것이고, 각 [[교구]]마다 라디오 방송국이 있다고 한다. 이런 교회와 일반 매체들에서 [[교황]]의 동정을 날마다 보도한다. [[교황청]]에서 조그만 메시지나 성명서를 발표하더라도, 폴란드 매체는 반드시 보도한다. 그리고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가톨릭 교회를 변호하려고 한다. [[구약성경]]의 예언서를 읽을 때, 고난받는 [[예언자]]의 모습을 보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떠올리곤 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현 교황인 [[프란치스코(교황)|프란치스코]]에 대한 관심도 지대한데, 참고로 교황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폴란드어판 위키백과에서는 [[한국어 위키백과]], 심지어 [[영어 위키백과]]에도 없는 [[프란치스코(교황)/한국 방문]]이 따로 독립된 위키 문서로 만들어질 정도다.[[https://pl.wikipedia.org/wiki/Podr%C3%B3%C5%BC_apostolska_Franciszka_do_Korei_Po%C5%82udniowej|#]] 이게 문서로 만들어진 위키백과는 [[이탈리아어]] 위키백과와 함께 폴란드어 위키백과뿐이다. 폴란드에서는 이것을 생방송으로 중계했다. [[한국]]이 [[동북아시아]]에서 가톨릭 신자가 많은 걸 보고 좋아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현 교황이 사회 및 교회 내 문제에 상대적으로 유연하고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반면에 교회와 일반 매체는 교황의 이런 자세에 이견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프란치스코 교황]] 재임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오히려 가톨릭 교회와 [[교황]]을 분리해서 보고자 하는 시각이 상대적으로 강해졌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의 난민과 타 종교 등 여러 문제에 대한 입장이 폴란드 가톨릭 교회 및 그와 유착하고 있는 여당 [[법과 정의당]]의 입장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난민]]에 대한 포용적 입장을 거듭 호소해온 현 교황과 달리 폴란드 가톨릭 교회의 상당수 [[주교]]와 [[사제]]들은 난민 수용에 부정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또한 여성의 교회 운영 참여 확대 등 교회 내 성별 문제에도 상대적으로 논의 자세가 유연한 프란치스코 교황과 달리 훨씬 강경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현 가톨릭 교회 지도자들의 실정이다. 게다가 폴란드에서는 이미 90년부터 [[전통 가톨릭]] 단체들이 진출한 상황이었는데, 교회법상 합법적인 단체들부터 [[성 비오 10세회]][* [[전통 가톨릭]] 단체 중 가장 큰 규모와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물론이고 교황공석주의자 단체까지 여러 전통 가톨릭 단체가 활발하게 활동 중이고, 근래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에 반감을 품은 천주교 신자를 중심으로 더욱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런 전통 가톨릭 단체들의 존재는 제도권 폴란드 가톨릭 교회에 오른쪽으로 작용하는 압력 구실을 하여 가뜩이나 보수적인 폴란드 가톨릭 교회의 우경화를 촉진하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다. 폴란드 전통 가톨릭 운동은 [[성 비오 10세회]]만 해도 60여 [[성당]]과 [[공소(가톨릭)|공소]]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활발하다. 성 비오 10세회는 폴란드인 사제를 80년대부터 서품하기 시작했으며, 동유럽관구 사무소도 바르샤바에 있다. 폴란드 성 비오 10세회 지부는 2000년 독자적으로 [[성모 기사회(SSPX)|성모 기사회]] 운동을 시작하기도 했다. [[파일:폴란드1.png|width=60%]] 폴란드에는 크고 작은 성당들이 최소 1100곳 이상 분포해있다. 이는 유럽 내에 있는 성당들 중 국가 단위로 가장 많은 것으로 한국의 교회보다는 많지 않아도 그만큼 많다. 특히 서쪽과 북쪽보다 [[슬로바키아]]에 인접한 남쪽에 많다는 것을 알수 있다. 한편 폴란드 내에서 가장 신성한 곳으로 인식되는 곳은 실롱스크주[* 행정구역만 실롱스크주이지, 역사적으로는 마워폴스카(Małopolska) 지방의 일부였다.] 쳉스토호바(Częstochowa)의 야스나 구라(Jasna Góra) 성당이다. 이곳에는 폴란드 최고의 성물인 '쳉스토호바의 검은 성모(Obraz Matki Boskiej Częstochowskiej)'라는 [[이콘|성화]]가 모셔져 있는데, 이 성화를 직접 보러 전 세계에서 매년 수백만 명이 야스나 구라 성당을 찾아 온다. 2011년 한 해 80개국에서 320만 명이 이곳을 찾았고, 그 중 14만 3983명은 폴란드에서 직접 발로 이곳까지 찾아온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이 성화의 제작 연도는 추정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1430년에 후스파에 의해 파손된 후 그 위에 손상된 부분을 다시 그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녀 헬레나가 326년에 예루살렘에서 발견했다고 전해지며, 이후 콘스탄티노플과 베우스(Bełz)를 거쳐 14세기 경에 오폴레 공작이 쳉스토호바로 모셔왔다고 한다. 이 성화는 여러차례 기적을 일으켜 야스나 구라 성당과 폴란드를 지켜주었다고 믿어진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대홍수'로 신음할 때, 연방을 침공한 스웨덴군이 쳉스토호바까지 내려와 1655년 야스나 구라 성당을 포위하자 [[수도자]]들과 지원자들 250명이 스웨덴군 4천을 막아내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것이 검은 성모상이 일으킨 기적이라고 믿었으며 더 나아가 대홍수 시기 전쟁의 양상까지도 바꿔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국왕 얀 카지미에슈 2세는 이듬해 1656년 4월 1일에 르부프(리비우)의 성당에서 검은 [[성모 마리아]]를 폴란드의 여왕이자 [[수호성인]]으로 "대관"했다. 현재 성화의 얼굴에는 흉터 2개가 있는데, 이 흉터에는 전설이 전해진다. 1430년 후스파가 야스나 구라를 약탈할 때 이 성화도 가지고 가려 했다. 하지만 마차를 끄는 말들이 도통 움직이질 않자 열받은 일당 중 하나가 이 성화를 땅에 메다 꽂고는 칼질을 두어 번 했는데, 3번째 칼질을 하려던 순간 땅바닥에 쓰러져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었다고 한다. 이후 수많은 화가들이 이 흉터를 없애보려 했지만, 그때마다 이 칼자국이 다시 드러나 지금에 이른다고 한다. [[폴란드 인민 공화국|공산국가]] 시절에도 [[가톨릭]]의 힘은 막지 못했다고 한다. 오히려 [[불교]]를 장려한 [[라오스]]와 함께 공산권에서 몇 안 되는 [[종교]] 장려 국가로 분류되었을 정도.[* 사실 다른 공산국가들도 종교의 힘을 완전히 막는 데는 실패했다. 그나마 있었던 성과는 공산화 이전보다 세속주의자나 무신론자가 늘어난 것 정도. 유럽의 구 공산권 국가들 중에서도 세속주의의 영향력이 특히 강하기로 유명한 [[체코]]와 [[에스토니아]]조차도 종교를 믿는 국민들이 0%가 되는 일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이 되었을 당시에도 폴란드는 엄연히 공산주의 국가였다. 폴란드 공산정부는 [[국가 무신론]]을 제창했지만, 교황이 폴란드에 오면 귀빈으로 모시는 등 가톨릭을 통해 민중들을 달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또한 폴란드의 가톨릭은 공산국가 시절에 민주세력의 주요 일원으로서 탈공산화 및 민주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폴란드에 사는 [[튀르크]] 혈통의 [[타타르인]]들 중에서는 혼혈이 이뤄지면서 [[가톨릭]]을 믿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립카 타타르]]'라고 불리며 [[킵차크 칸국]]의 [[토크타미시]]가 망명할 때 따라 들어온 사람들인데 18세기까지도 [[수니파]] [[이슬람]] 문화를 유지하며 살았다. 2차대전 이후로는 이들의 거주지였던 동부 폴란드가 대부분 러시아로 귀속되면서 폴란드 내 타타르인들은 수가 매우 줄어서 현재는 공식적으로 3천 명 정도로 파악된다. 현재도 립카 타타르인 대다수는 이슬람교 신앙과 자신들의 문화를 보존하지만, 무슬림이란 정체성이 희박한 경우에는 폴란드에 동화되어 [[가톨릭]]을 믿고 폴란드식 이름을 쓴다. 이들은 [[그리스]] [[로도스 섬]]의 터키계 그리스인, [[몰도바]]의 자치공화국인 [[가가우지아]]의 [[가가우즈인]], [[러시아]] 영내의 튀르크계 소수민족들([[추바시인]], [[야쿠트인]], [[하카스인]], [[타타르#s-3.1.3|크랴셴인]] 등)과 같이 그리스도교를 믿는 튀르크계 민족이라 할 수 있다. 물론 2010년대 들어서 세계적인 탈종교화 경향에 이끌려 폴란드의 가톨릭 교세 또한 점진적으로 약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정치·사회 전반에 가톨릭 신앙의 영향력은 강하고, 법과정의당 집권 이후 더욱 영향력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낙태]]를 금지하는 폴란드 헌법재판소 결정을 계기로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성당을 습격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1970309?sid=104|#]]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