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랑스/문화 (문단 편집) === [[개신교]] === 한때 [[위그노]]를 중심으로 [[개신교]] 신자도 상당수가 있었다. 가톨릭을 이념으로 신봉하던 프랑스 왕국에서는 전통적으로 개신교를 고깝게 보아 탄압했고, 이에 대해 개신교인들이 반발해 [[위그노 전쟁]]이라는 전쟁이 터진 적도 있다. 이에 [[앙리 4세]]가 [[낭트 칙령]]을 발표해 개신교인들의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지만, 왕권과 위그노의 갈등은 계속되어 [[루이 14세]]가 낭트 칙령을 폐지했고 다시 개신교인들은 탄압받았다. [[루이 16세]]가 [[1787년]]에 베르사유 칙령(The Edict of Versailles)을 발표해 비 가톨릭 교도에게 가톨릭 교도와 동등한 시민권과 신앙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 도중에 제정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Dé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으로 개신교인들의 권리는 확실하게 보장받게 되었다. 그렇지만 현재에도 [[프랑스]]의 [[개신교]]는 소수 종교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Religion_in_France#cite_note-EUROBAROMETER-4|2010년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중 2%만이 개신교도이다.]] 위그노 전쟁 시기에도 위그노 숫자는 10%미만 이었고 루이 14세때 탄압으로 공식적으론 0%였고 18세기 [[루이 16세]] 시기엔 2%로 측정했다. 탄압을 거치면서도 버티다가 박해가 해제되어 프랑스로 다소 복귀하거나 숨긴 신앙을 선언하는 등 시기를 거쳐 지금도 비슷한 비율이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또한 20세기 초중반의 세속화를 거쳐 2010년대 기준으로 프랑스 개신교도들은 대부분 박해를 피해 온 흑인들이거나 이슬람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개종한 아랍계 이민자들이며, 백인 위그노의 후예들은 얼마 없다. [[파일:external/www.museeprotestant.org/0000000961L.jpg|width=400]]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차대전]] 당시에는 레지스탕스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기도 했었다. [[프랑스 개혁교회]]와 프랑스 복음주의 루터교회가 병합하여 프랑스 최대 개신교 교단, 프랑스 연합 개신교회를 설립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