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미일관계 (문단 편집) === 중국, 북한, 러시아에 대한 한국뿐 아니라 일본의 애매한 태도 === 바이든의 해빙 발언[[https://n.news.naver.com/article/421/0006820293?sid=104|#]] *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0111420413430979|(머니투데이)미국·중국 사이 '줄타기 외교'…韓 말고 불편한 나라 또 있다]] *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0/10/07/2020100701045.html|(조선비즈)쿼드 4개국, 공동성명 못냈다…일본·인도 "중국 자극 곤란" 난색]] * [[https://www.news1.kr/articles/?4533736|(뉴스1)日 "中에 정부대표단 안보낸다"면서 '외교적 보이콧' 용어는 거부(종합)]]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896335#home|(중앙)日도 중국 눈치... 美주도 '反화웨이' 네크워크에 불참 통보]] * [[https://www.yna.co.kr/view/AKR20211227154251073|중국·일본 국방장관, 내년 중 핫라인 운용 개시 의견일치(종합)]]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3646815?rc=N&ntype=RANKING|日, 안보문서에 '반격 능력' 명기…안보정책 대전환]] 한미일관계의 개선의 핵심 이유는 [[중국]]인데[* 러시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에서 볼 수 있듯 중앙아시아, 동유럽에 관심이 쏠려 있다.] [[신냉전]]이 본격화한 2022년 이전 이후에도 일본이 중국에 대해서 심지어 북한에 대해서도 애매모호한 태도를 고수한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자 일본총리 무라야마는 일본 사회당 명의로 김일성의 사망을 애도하는 조전을 보냈다.[* [[https://imnews.imbc.com/replay/1994/nwdesk/article/1933443_30690.html| 무라야마 일본 총리, 사회당 위원장 자격 북측에 조전 보내 mbc]]]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일본 사회당]]은 [[북한 노동당]]과의 오랜 우호관계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은 일본 특유의 국익을 위한 남과 북에 대한 줄다리기식 외교라고 분석했다. 당시 조전에서 무라야마총리는 "'위대한 지도자 김 주석의 갑작스런 사망에 가슴깊이 우러나오는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라고 밝혔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4071300209102007&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4-07-13&officeId=00020&pageNo=2&printNo=22568&publishType=00010 | 일 총리 북측에 애도 전문 동아일보]]][*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4071300289101011&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4-07-13&officeId=00028&pageNo=1&printNo=1952&publishType=00010|무라야마 북한에 조전 한겨레]]][*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4071300329107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4-07-13&officeId=00032&pageNo=7&printNo=15140&publishType=00010|알 총리 사회당 명의로 북한 조전 경향신문]]]] [[미일관계]] 공조 등으로 일본이 아시아에서 [[중국]]과 크게 대립할 거라는 인식과 달리 [[일본]]은 [[중국]]과의 적대적 관계로 돌아서는 것을 상당히 회피한다. 이 점은 과거에는 명백하게 드러난 점이다. 때문에 일각의 주장과 달리 [[중국]]에 대해 한미일관계의 적극적인 공조를 주장하는 측의 의견과 달리 생각외로 [[일본]]은 신뢰하기 어려운 존재이다. 한국은 차라리 북한 문제에 대해 중국과 무조건 척을 지기 어렵다는 명분과 근거라도 있다지만 일본은 그런 게 전혀 없다. 한마디로 일본은 그냥 중국과 본격적으로 대립해서 자신들이 손해(특히 경제적 손실)을 보기는 싫다는 것이다. 일본은 [[Quad]]에서조차도 중국을 자극하기 곤란하다고 난색을 표한 전과가 있으며, 미국이 전 세계 통신장비·서비스 시장에서 중국 기업을 퇴출하기 위해 추진 중인 이른바 '클린 네트워크'(Clean Network) 구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출하기까지 했다. 놀라운 것은 북한 [[평양]]과 일본 [[나고야]]사이에 [[고려항공]] 직항노선이 존재하기도 했다. [[평양]]과 [[일본]] [[나고야]]를 잇는 직항노선은 [[1991년]]에 개통되었는데 아직 국교가 없는 두 나라 사이에서 관광용 민간항공의 직항편이 운항되는 것은 처음 있는 일로 당시 총리 가네마루의 중간외교가 큰 몫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운수성이 오늘 정식으로 허가한 북한 민간항공의 이름은 에어코리아로 북한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금강산 국제공항이 운영하는 이 비행기는 5월 17일부터 평양과 나고야를 오가며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하게 되었다.[* [[http://mn.kbs.co.kr/mobile/news/view.do?ncd=3704425|일본나고야-평양 직항로 개설 1991.5.13 kbs뉴스]]] 이 당시 처음으로 [[일본]]과 [[북한]]을 직결시킨 최고의 상업용 전세편이 된 북한항공기는 138인승인 [[소련]]제 스보레트 1호사다. 이 항공기는 오늘 낮 1시반 95명의 초대객을 싣고 나고야공항을 떠나 3시간 만에 평양공항에 도착했다. 첫 비행편에 초대된 승객은 대부분이 일본여행사의 관계자와 재일 조총련계 인사들이었다.[* [[http://mn.kbs.co.kr/mobile/news/view.do?ncd=3704514|북한 전세기 첫 취항 1991.5.17 kbs뉴스]]] [[1996년]] 북한은 일본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북한 국적기인 고려항공전세기 편수를 대폭 늘려 나고야(名古屋)~평양을 직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관광 업무를 취급하고 있는 일본 중외여행사는 조총련계 [[조선신보]]에 게재한 북한 관광단 모집광고에서 96년 4월부터 11월까지 나고야~평양간을 직항하는 고려항공 전세기편이 모두 14편 있다면서 관광코스별로 전세기 출발일자 및 요금을 게시했다. 중외여행사는 나고야~평양 직항에 3시간 가량 소요되며 4~6일이 걸리는 6개 코스별로 요금이 16만9천엔~29만9천엔이라고 관광상품을 소개했다.여행사측은 또 중국을 경유하는 북한관광의 경우 2개 코스에 9개 운항편 이 있다고 게시했다.북한과일본은 지난 92년 1월 나고야~평양간에 전세기를 연간 80회가량 운항한다는 데 합의했으나 북한 핵문제 돌출등으로 실제로 운항된 횟수는 수차례에 불과했다.[* [[https://www.google.co.kr/amp/s/mnews.joins.com/amparticle/3288176|평양 나고야 운항노선 현황 1996.6.23 중앙일보]]] [[1998년]]~[[2000년]] 사이엔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등으로 운항이 중단되었다가 [[2000년]] 4월에 다시 운항이 재개되기도 했다.[* [[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000426/7529130/9|日, 평양∼나고야 北전세기 29일부터 운항 허용]]] 이렇게 명맥을 유지한 북일간 직항노선은 결국엔 [[2002년]] 4월부로 고려항공 여객기의 노후화 및 [[북일관계]] 악화로 평양-나고야간 직항노선은 운행이 중단되어 현재까지도 북한-일본간의 직항노선은 운행하지 않고있다. [* [[http://m.nk.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7431|日, 평양-나고야 전세기 운항중단]]][* [[https://www.google.co.kr/amp/s/www.hankyung.com/politics/amp/2002041714778|日,북한-일본 직항로 운행중단]]] 러시아에 대해서도 일본은 미소냉전이 한창이던 1956년 일소공동선언을 맺으며 소련과의 외교관계를 재개하였다. 이로 인해 [[소련]]과 대치중인 미국과 서방국가들을 곤란하게 만든 경험이 있다.[* [[https://ko.m.wikipedia.org/wiki/%EC%9D%BC%EC%86%8C%EA%B3%B5%EB%8F%99%EC%84%A0%EC%96%B8|위키백과 일소공동선언]]] 당시 소일공동선언의 내용을 보자면 * 일소 양국은 전쟁 상태를 종결하고 외교 관계를 회복한다. * 일소 양국은 각각의 자위권을 존중하고 상호 불간섭을 확인한다. * 소련은 일본의 유엔 가맹을 지지한다. * 소련은 전쟁 범죄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일본인을 석방하고 일본에 송환한다. * 소련은 일본에 대한 일체의 배상 청구권을 포기한다. * 일소 양국은 1945년 8월 9일 이후의 전쟁 결과로서 생긴 각각의 국가·단체·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을 상호 포기한다. * 일소 양국은 통상에 관한 교섭을 시작한다. * 일소 양국은 어업 분야에서의 협력을 이행한다. * 일소 양국은 계속해서 평화 조약의 체결 교섭을 진행하여 조약 체결 후 소련은 일본에 하보마이 군도와 시코탄섬을 양도한다. 이 일소 국교 정상화로 인해 더 이상 소련은 일본의 유엔 가입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게 되었다. 이에 1956년 12월 18일 [[유엔 총회]]에서 소련은 다른 동유럽 국가들과 함께 일본의 유엔 가입을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한편 유엔 가입 이후 하토야마가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이시바시 단잔]]이 신임 총리로 취임한다. 북방 영토 문제와 관련해서 소련은 2개 섬의 반환으로 분쟁을 마무리짓길 원했지만 일본은 남은 2개 섬의 반환까지 요구하면서 타협점을 찾지 못해 결국 약속된 2개 섬의 양도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1960년 1월 일본 총리 [[기시 노부스케]]가 [[미일안전보장조약]]의 개정을 추진했다. 그런데 개정안에 [[주일미군]]이 극동의 방위도 담당한다고 규정하여 그 범위가 모호한 것을 계기로 일본 내에서 조약 개정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안보투쟁]]). 한편 극동의 범위에 자국의 영토가 포함된다고 의심한 소련도 조약 개정에 반발하면서 하보마이 군도와 시코탄섬의 양도를 철회해버렸다. 이 여파로 1973년 [[다나카 가쿠에이]]가 모스크바를 방문할 때까지 17년 간 양국 간의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았다.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 정부가 들어선 뒤인 1993년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방일하여 일소공동선언은 러일 관계에도 적용된다는 도쿄 선언이 이루어지고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일소공동선언은 유효하다고 발언했다. 2001년 양국이 발표한 이르쿠츠크 성명에서는 일소공동선언의 법적 유효성이 문서로도 확인되었다. 소련 입장에서는 [[서독]]과 수교한 것에 이어 일본과도 외교 관계를 회복하여 전후 처리가 완결되었다. 이는 [[니키타 흐루쇼프|흐루쇼프]]가 추진한 [[평화공존론]]의 성과이기도 하다. 이런 일본의 역대 전적으로 볼 때 미국과 한국이 일본을 믿을 수 없는 우방으로 보는 원인이 되고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전쟁 극초기에는 일본이 훨씬 적극적으로 대러제재에 나서기도 했으나[* [[대러제재]]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도 있으나, 이는 대한민국도 별반 다르지 않고 [[기시다 후미오]]가 젤렌스키와 키이우에서 회담하며 '[[필승]]'이 새겨진 주걱을 선물하는 등 대놓고 일본은 우크라이나 승리를 원하고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무기 지원도 방탄복, 차량 등 비살상장비를 시작으로 공격무기 공여를 고려 중이었다. 전후 배상으로 [[쿠릴 열도]] 함양을 염두에 둔 거라는 해석도 있었으나 직접 러시아에 선전포고해서 러일전쟁 시즌2를 찍지 않는 이상 가능성이 전혀 없다.] 그러다가 2022년 7월 방위백서와 12월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통해 '''반격 능력 확보'''를 천명하고 나서며 입장을 바꾸었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7009532&plink=ORI&cooper=NAVER|#]] [[https://www.yna.co.kr/view/AKR20221216063700073?input=1195m|#]] 중국을 북한, 러시아보다 먼저 다루면서 기존에 중국을 '국제사회의 우려'라고 표현한 것을 개정판에서는 '''"지금까지 없었던 최대의 전략적 도전"'''으로 바꾸었다. 오히려 이렇게 되면서 북한이 일본을 타격할 경우, 일본이 대한민국 헌법상 대한민국의 영토, 영공에 속하는 북한의 영토를 공격할 수 있게 되면서 [[한일관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2023년 봄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일본이 러시아산 원유를 배럴당 60달러[* 미국과 동맹을 맺은 국가들이 경제 제재중인 러시아의 원유를 부득이하게 살 수밖에 없을 경우 허용해주는 한도액이 배럴당 60달러이다.]가 넘는 70달러에 사들였다는 것이 보도되면서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2중 플레이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었다.[[https://youtu.be/8DJ3Qq3MQLU|#]]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