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함석헌 (문단 편집) === [[일본]] [[유학]]기 === [[오산고등학교(서울)|오산학교]]를 졸업한 이후 1924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고등사범학교]][* 현재의 국립 [[쓰쿠바대학]]. 여학교로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가 따로 있었는데, 오늘날 국립 [[오차노미즈여자대학]]이다.]에 입학하였고 1928년 졸업하였다. 생전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원래 [[도쿄제국대학]]에 진학하고 싶어 [[구제고등학교]]였던 제1고등학교를 지망했으나, 이 당시 조선인이 구제고등학교에 지원하려면 본인이 원래 다녔던 평양고보같은 관립고등보통학교 졸업증이 있어야해서 무산되고 결국 고보 졸업증이 필요없던 도쿄고등사범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당시 [[일본]]의 고등사범학교들은 교칙이 매우 엄격하고 똥군기도 장난아니었기때문에 고사[* 고등사범학교의 줄임말]시절을 썩 좋지 않았던 시절로 기억하면서 그냥 고사에 가지말고 정식 대학에 진학했어야했단 식으로 후회하는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마침 설상가상으로 [[관동대지진]]까지 터져버렸으니~~ 일본 유학생활에서 함석헌은 두 가지 큰 변화를 맞게 되는데, [[관동대지진]]의 경험과 [[우치무라 간조]]와의 만남이었다. 관동대지진은 진도 6의 대지진으로 사망자만 최소 10만여 명이 발생한 대재앙이었다. 일본인들은 조선인을 희생양으로 삼고 사회주의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때 6천여 명의 조선인과 일본 사회주의자들이 무차별적으로 피해를 입는 [[관동대학살]]이 자행됐다. 함석헌은 친구의 집에 가 있어 지진이 일어난 반대편에 있다가 참변을 면하였지만, 친구의 집에서 나오자마자 집이 무너져내렸다. 그는 이때의 경험을 "나를 그 곳에 있게 하여 그 끔찍한 경험을 하고서도 안 죽고 살아남아 오늘까지 있게 한 것은, 그 광경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로 전하라는 뜻일 것이다. 그 곳은 아비규환의 지옥이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며칠 뒤 일본도와 죽창을 든 [[일본인]] 자경단들에게 쫓기게 되었으나 경찰에 의해 수감되어 무사했으며, 이후 인생에서 수시로 드나들게 될 유치장 경험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웅진출판사의 만화 위인전 "20세기의 큰 인물"에서는 이때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일반인과 경찰 가리지 않고 일본인들에게 눈총을 받은 경험 때문에 교사가 되기로 결심한 걸로 나온다. 비슷한 시기에 [[루쉰]] 역시 '중국인은 미개하니까 동족이 참수당해도 구경을 하거나 낙제하는 것도 당연하다'며 조롱받은 경험을 두고 의사가 아닌 문학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점에서 유사한 면이 있다.] [[동경고등사범학교]]에 재학하면서 그는 [[우치무라 간조]]와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여기서 우치무라의 문하생이 되어 [[성경]] 연구회에 들어가게 된다. 우치무라의 무교회주의는 우치무라가 교회의 형식과 위선을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와 독립 전도를 시작하면서 형식이나 의식 없이 모여서 성경을 읽고 기도했기 때문에, 무교회주의라는 이름이 붙었다. 여기서 함석헌은 평생의 지우이자 [[손기정]]과 [[남승룡]]의 마라톤 스승인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8744|김교신]]과 만나고, 자신과 신앙 동지들을 모아 1927년 무교회주의적 기독교 동인지 《성서조선(聖書朝鮮)》의 창간에 참여했고 직접 글도 게재한다. 그의 첫 글은 〈[[http://ssialsori.net/bbs/board.php?bo_table=0202&wr_id=1|먼저 그 의를 구하라]]〉였는데 여기서 함석헌은 [[마태오의 복음서]] 6장을 인용하며 의식주를 걱정하기보다는 먼저 의(義)를 구하려는 의지를 표현했다. 《성서조선》은 그의 지우들이 귀국하면서 서울에서 계속 발간되었고, 잡지의 책임자는 김교신이 되었다. 함석헌은 여기서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연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