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화양국지 (문단 편집) == 판본 == 현존하는 판본은 30종으로 기록된 것 중에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것은 1080년에 북송 시기의 여대방이 간행한 판본이지만, 현재는 남아있지 않고 1204년에 이기가 여대방본을 교정하면서 새로 간행해 가태본(嘉泰本)이라 했다, 명나라 이후에는 가태본을 저본으로 삼아 간행했지만 널리 유통되지는 않았는데, 명나라 때 전숙보, 청나라 때 풍서가 가태본을 편집했다. 현존하는 판본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명나라 때 장가윤이 1564년에 판각한 각본이었지만, 원본을 자기 마음대로 고쳐서 많이 손상시켰으며, 같은 해에 유대창의 각본이 나왔다. 청의 만력 연간에는 하우도가 각본을 내놓았고, 1626년에는 이일공의 각본이 나왔다. 명나라 때 초본이 많아 전곡이 가태본을 초록한 것을 사부총간에서 복사했고, 1567년에 간행된 오수의 초본, 우충당의 초본, 산수원두의 초본이 있으며, 사고전서에 수록된 화양국지는 오수본이다. 청나라에 들어와서는 건륭 연간에 정걸이 전곡이 소장한 다른 초본을 교감했고, 후에 이조원에게 주자 이조원이 1782년에 판각해 자신이 편집한 총서인 함해에 포함시켰다. 1814년에 간행된 제금관본은 고광기가 교감하고, 요인이 간행한 것이며, 사부비요에서 이 판본을 실었고 20세기 초에 성도 지도당에 이 내용을 새겼다. 그 밖에도 하작, 혜동, 노문초 등 여러 학자들이 화양국지를 교감했는데, 이들의 교감본은 대부분 여러 판본을 대조하는 것에 그쳤지만, 고광기의 판본은 수많은 역사서와 대조해 기존의 판본들에서 나타난 오류를 잡은 수작이라는 평을 듣는다. 그렇지만 고광기본은 전곡본, 장가윤본, 유대창본, 이일공본, 이조원본을 살펴보지 않았고, 그가 참고한 상숙 풍씨 공거각본, 오수본, 하우도본 같은 판본들은 구하기 어려운 판본들이 아니며, 그가 한 교정 또한 간혹 꼼꼼하게 살피지 않아 이로 인해 오류가 많이 발생했다. 현대에는 임내강이 수십 년에 걸쳐 교정한 화양국지교보도주가 상해고적출판사에서 1987년에 출판되었고, 유림이 교주한 화양국지교주가 1984년에 파촉서사에서 출간되었다. 한국에서 최초로 번역해서 출간한 것은 2010년에 제노서사에서 발간한 것을 참고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