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화족 (문단 편집) == 패전 이후 ==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한 이후 [[미군정]] 지도 아래 [[1947년]]에 [[평화헌법|새 헌법]]이 제정되며 화족 제도는 사라졌다. 원래 [[천황]]의 방계 중에 전통적으로 [[왕]](王) 작위를 칭하던 가문들이 있었는데 이때 모두 취소당했다. 이런 가문을 [[미야케]](宮家)라고 한다. 본래 [[친왕]](親王) 작위를 칭하던 4개의 [[가문]], 즉 [[세습친왕가]](世襲親王家)[* [[후시미노미야]], [[가쓰라노미야]], [[아리스가와노미야]], [[간인노미야]]]가 있어서, 천황 직계가 끊어지면 이 가문 출신들이 대를 이었다. 그러던 것이 [[메이지 유신]] 이후 새로운 미야케가 대거 생겨났다가 [[1947년]]에 11개 미야케에 소속된 51명이 [[평민]]으로 강등되었다. 이게 바로 [[신적강하]]라 불리는 사건이다. 참고로 이 해에 화족제 폐지로 인해 궁색해진 [[가문]]의 이야기를 다룬 「안조 가의 무도회」(安城家の舞踏会)라는 [[영화]]가 상영되기도 했는데, 몰락한 화족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전 최후의 무도회를 연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천황가와 달리 화족들의 재산은 박탈되지 않았다. 그들 대부분은 미군정 이후에도 대부분 [[명문가]]로 남았고, 지금도 여전히 [[일본]]의 상류층으로 군림하고 있다. 물론 모두 그런 것도 아니어서 신직계 화족 가문들은 [[메이지 시대]]에 재산 관리 실패로 [[연금]] 외의 재산이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라 지위를 빼앗긴 뒤 진짜로 몰락해버렸고, 공경계 화족들도 최상위 가문들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재산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다. [[다이묘]] 집안으로서 작위를 받은 화족들은 재산이 많았지만 이마저도 후작 이상에서나 해당되는 이야기고, 석고 ([[고쿠다카]]) 5만 석 이하 다이묘에서 시작된 화족들은 [[다이쇼 시대]]에 접어들면서 재정난에 시달리다가 결국 패망과 함께 지위를 잃고 평민으로 전락하면서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나마 석고 5~10만 석 이상 재산이 많았던 다이묘 출신 백/후작 이상되는 집안조차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사기]] (...) 등에 걸려서 몰락하거나, 땅만 넓었지 수익이 낮은 [[부동산]]으로 인해 고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정말로 돈 걱정이 없던 화족들은 당대에 [[재산]]을 모아서 [[귀족원(일본)|귀족원]] 의원이 되고 남작위를 받은 소수 [[부르주아]]들 뿐이다.[* [[에도 시대]] 중기 이래로의 [[상인]] 집안이던 미츠이, 스미토모의 당주 집안이나 [[미쓰비시 그룹|미쓰비시]] 재벌의 창립자인 이와사키 남작가 정도. 그 외에 [[세계]] 최초로 [[진주]]의 인공양식에 성공한 후 진주 판매로 [[소득세]] 납세액 1위를 기록하면서 귀족원 의원이 된 [[미키모토]] 집안 정도가 있다.] 그런데 이들은 화족 지위를 잃어도 자기 재산과 사업 수완으로 부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라 단지 상류층에 들어갔다는 상징으로 화족 자리를 얻었을 뿐이었으니 의미가 없다. '''황족들조차 돈이 없어서 처가에 신세를 지는 판국이었다.'''[* [[이방자]] 비의 친정어머니 나시모토 이츠코는 [[사가현|사가 번주]] [[나베시마]] [[후작]] 가문의 딸인데, 나베시마 가문에서는 매달 2천엔씩 '''[[화장품]] 값'''이라는 명목으로 시집간 이츠코에게 돈을 보내왔다고 한다. [[나베시마]] 가문이 다스리던 사가 번은 오랫동안 일본 유일의 개항장이던 [[나가사키]]가 있었는데, 여기서 [[무역]]을 해 많은 [[돈]]을 벌었다.] [[이방자]] 비가 막대한 재산을 운용하는 이왕가의 [[영친왕]]에게 [[시집]]가던 때, 황족들이 부러워한 것도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이왕가의 경우는 합방 전 [[대한제국]] 황실의 재산을 거의 다 물려받았다. 또한 관리하는 전답이 어마어마한 수준이었고 일본 황족들과 달리 이왕직이라는 기관에서 돈을 원하는 만큼 가져다 쓸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왕가도 일제 패망 후 재산이 모조리 [[대한민국]] 국고로 환수되어 몰락했다. 화족의 사전적인 정의는 전근대의 귀족과 같이 [[법률]]로 규정한 특권 집단이지만 실제로 세간에 통용되고 인식되던 화족의 이미지는 전근대 [[유럽]]의 귀족보다는 [[근대]]의 [[부르주아]], [[정치인]], 고위 [[관료]], [[군인]] 등의 기득권층 집합체에 가깝다. 특히 부르주아를 대표하는 [[자이바츠|재벌]]이 가장 일반적이고 널리 알려진 이미지인데, 예를 들자면 게임 [[화려한 나의 일족]]에 나오는 미야노모리 가문이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하나인 소설 [[이누가미 일족]]에 나오는 [[이누가미 가문]]의 모습이 바로 세간에 흔히 알려진 모습에 가깝다. 즉, 화족의 [[서열]]은 작위 순으로 정해져 있기는 했지만, 단순히 [[작위]]만 높은 가문보다는 작위는 다소 낮더라도 재력이나 영향력이 컸던 [[가문]]이 세간에 알려진 화족의 이미지를 더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화족들의 친목 단체였던 화족회관은 [[1947년]] 이후 카스미 회관(霞会館)이라는 [[사단법인]]으로 이름을 바꾸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2017년]] [[마이니치신문]] [[https://mainichi.jp/articles/20170531/ddm/002/040/092000c|기사(유료)]]에 따르면 '구 화족가의 [[남성]] [[당주]]와 [[성인]]이 된 직계 자식을 회원으로 하여 650가문 740명의 회원'이 있다고 하며 [[천황]] 부부도 매년 [[1월]]에 1회 방문하여 교류한다고 한다.] 살아남은 화족 가문은 현재 [[일본]]의 [[일본/정치|정치]], [[일본/경제|경제]], [[일본/사법|사법]]체계에서 막대한 영향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 [[정치인]]들이 자신의 혈족이나 측근들에게 자신의 선거구를 [[세습|물려주는 관습]]도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들은 [[총선]]이나 [[재보궐선거]]에서 한번 패배했더라도 다음 [[공천]]에는 아무런 무리가 없을 정도의 세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선거]] 때 격전지에 속하는 일이 드문 지역의 경우는 아예 대를 이어 수성하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공짜로 수성하는 건 아니고 평판관리도 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이거저거 뿌리고 해서 그 지위를 유지하는 것. [[현대]] 화족들은 대부분 보수적인 기득권층이기는 하지만 [[극우]] 세력과는 거리가 멀다. 일단 '''[[아키히토|아키히토 상황]],''' '''[[나루히토|나루히토 천황]],'''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일본 총리[* [[고노에 후미마로]]의 외손자로, 제79대 [[일본 내각총리대신]]이었다.] 등 오히려 화족 서열에서 최상위에 있는 이들이 극우 세력과 대립각을 세운다. 일본 국내외의 정치학계에서도 현재 [[일본의 우경화]]를 부추기는 세력으로는 [[일본회의]]를 언급하지 가스미 회관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가스미 회관은 구 화족들의 친목 단체이지, 정치적인 집단으로 보기 어렵다. 이는 실제 가스미 회관에서 소개하는 주요 활동들도 일본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연구 및 계승 등 학술적인 면을 치우치고, 관련 [[인터뷰]] 등을 보더라도 옛 화족들의 사교 클럽 정도이다. 이에 대해선 그 [[일본회의]] 자체가 화족 구성원이 많은 준 혈족 집단이 아니냐는 의문이 있기도 하나, 사실 일본 현지에서는 일본회의의 사상적 구심점은 '''생장의 집(生長の家)'''이라는 [[신흥종교]]가 담당했기 때문에 전통적인 [[신토]]와도 동떨어졌다는 설이 주류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