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황소 (문단 편집) == 이중섭의 작품 황소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이중섭 황소.jpg|width=100%]]}}}|| [[이중섭]]이 1953년 38세 때 그린 작품으로 활력이 넘치는 붓 터치와 과감한 묘사, 그리고 황소의 기운을 순간적으로 잘 포착한 작품이다. 가족과 함께 희망적인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그의 강인한 의지가 돋보인다. 현재 이건희 회장의 기증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일화에 따르면 1955년 당시 대구 미국문화원장이었던 미국인 아서 조지프 맥타카트 박사[* 1915년 인디애나주에서 출생, 퍼듀 사범대학, 코넬대학을 다녔으며 2차 세계대전 중에 교관으로 복무했다. 전후 스탠퍼드 대학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953년 주한 미국대사관 재무관으로 파견된 인연으로 한국에 왔다. 1960년부터 1964년까진 서울의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하였으며 1964년부터 1975년까지 11년동안 남베트남에서 공보관을 지냈다. 1976년 미국 국무부 관리에서 퇴직한 후 영남대 교수로 부임하여 1997년까지 20년 넘게 교편을 잡았으며 독신으로 살며 교육사업에 전념한 것으로 유명했다. 명예 대구시민증, 자랑스러운 영남대인 상 등을 받았으며 2000년에는 미국으로 반출된 한국 문화재 482점을 한국으로 반환한 업적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문화공로훈장을 받았다. 퇴임 후 미국으로 돌아가 워싱턴 근교의 양로원에서 살다가 2003년 7월 15일,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가 이 그림을 대단히 좋아하여 이중섭의 친구 최태응을 통해서 이중섭을 직접 만나기도 했는데, 맥타카트가 스페인의 투우를 보는 것 같다고 그림을 칭찬하자 이중섭은 오히려 그 말에 큰 상처를 받고 평안도 사투리로 "뭐라고, 투우라고? 내가 그린 소는 그런 소가 아니고 착하고 고생하는 소, 한국의 소란 말이우다."라고 외친 후에 자리를 뛰쳐나와서 여관방에서 몇날며칠을 울면서 자기 그림이 투우처럼 보이면 틀린 것이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이후 맥타카트는 대구 매일신문에 이중섭의 그림을 호평하는 평론을 실었고 이중섭 개인전에서 그의 그림을 사려 했으나 이중섭이 거절하여 최태응이 몰래 사서 전달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맥타카트는 이중섭 그림 10점을 사서 미국으로 가져갔고 뉴욕 현대미술관에 소장된 은지화도 이 경위로 미국에 가게 되었다고 한다.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2/18/2014021804643.html|#]]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소, version=952, title2=백인, version2=1468)] [[분류:동음이의어]][[분류:소]][[분류:화폐의 도안]][[분류:한국의 록밴드]][[분류:1980년 데뷔]][[분류:회화 작품]][[분류: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