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오대십국시대 십국/왕조)] || '''[[시호]]''' ||정의왕(貞懿王) || || '''[[성씨|성]]''' ||고(高) || || '''[[휘]]''' ||보융(保融) || || '''[[자(이름)|자]]''' ||덕장(德長) || || '''생몰년도''' ||920년 ~ 960년 || || '''재위기간''' ||948년 ~ 960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오대십국시대]] [[남평]]의 제3대 군주. 자는 덕장([[德]][[長]])이다. == 상세 == 고보융은 920년에 2대 군주였던 고종회(高從誨)의 3남으로 태어났다. 고종회가 형남 절도사로 있을 때, 고보융은 절도부사 겸 협주(峽州) 자사가 되어 부친 고종회를 보좌하였고, 948년에 고종회가 죽으면서 절도사가 되었다. 그런데 고보융의 위로 장남인 고보훈과 차남인 고보정이 있었는데, 고보융이 어떻게 절도사 지위를 계승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고보융은 [[후주]]에 대하여 신하를 자청하였고, 처음 작위가 발해군왕이었다가 남평왕으로 격상했다. 후주의 명군 [[세종(후주)|세종]]의 통일사업이 시작되어 [[남당]]을 공격하려 할 때 고보융도 남당 정벌에 호응하여 군대를 파견하였다. 960년에 [[진교의 변]]으로 후주가 멸망하고 [[북송]]이 들어서자, 고보융은 북송에 대해서도 신하를 자청하며 한해에만 조공을 3번 바쳤다. 고보융은 형남 절도사로 있을 때 업무를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모두 고보욱에게 위임하였다. 고보융이 절도사로 있을 때 그의 종숙인 고종의가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부하의 밀고로 실패하여 송자에서 고종의를 처형하기도 하였다. 고보융은 960년에 세상을 떠났고, 정의왕(貞懿王)으로 추시되었으며 태위로 추증되었다. 그의 아우인 [[고보욱]]이 절도사 지위를 이어받았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송사)] [[분류:오대십국시대/황제]][[분류:920년 출생]][[분류:960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