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대한민국 국회의장비서실장)] 金得榥 1915년 10월 7일 ~ 2011년 5월 18일 대한민국의 전 독립운동가, 공무원, 역사학자이다. 호는 고암(孤岩)이다. 본관은 백천. 1915년 [[평안북도]] [[의주군]]에서 태어났다. 일본 [[니혼대학]]을 졸업했다. 1942년에 [[고등문관시험#만주국 고등관고시|만주국 고등관고시]]에 합격하였고, 퉁화에서 관방 사무관을 지내며 만주국 관리로 근무하는 한편 비밀리에 항일운동에 참여하였다. 8.15 광복으로 만주국이 소멸하자 귀국하였다. 이후 [[백낙준]] 참의원 국회의장의 [[국회의장비서실장|비서실장]], 제3공화국 [[행정안전부차관|내무부차관]]을 지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용산구(선거구)|용산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당(1967년)|신민당]] [[김원만]]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0년대부터 간도와 만주 연구를 중심으로 민족주의 재야 역사학자로서도 활발히 활동하였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해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해외 부문에 이 경력을 근거로 김득황을 포함시켰다. 이에 대하여 김득황의 지인들이 그의 항일운동참여 경력과 그 증빙자료를 첨부하여 민족문제연구소에 정정신청을 요구했다. 그 결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오류를 인정하고 정식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서 그 이름을 제외시켰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도 선항일 후친일은 등재하지만 선친일 후항일 혹은 친일을 가장하고 독립운동을 한 사람은 등재를 하지 않는다. [[분류:실향민]][[분류:의주군 출신 인물]][[분류:1915년 출생]][[분류:2011년 사망]][[분류:니혼대학 출신]][[분류:내무부 차관]] [[분류:국회의장비서실장]][[분류:만주국 고등관고시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