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南毛 }}} ? ~ ? [목차] == 개요 == [[진흥왕]]대 [[신라]]의 [[원화(신라)|원화]]. == 상세 ==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진흥왕 37년(576년)[* 삼국유사는 540년 일로 전한다.] [[원화(신라)|원화]]라는 [[화랑]]의 전신이 되는 제도를 만들었는데 남모(南毛)와 [[준정]](俊貞)이라는 두 여인이 초대 원화로 뽑혔다. 신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였다고 기록에서 공식으로 공인한 셈이다. 진흥왕의 생각은 이 둘을 [[아이돌]]격으로 삼아서 이런저런 활동을 시켜서 유능한 젊은이들을 모아서 인재를 등용하려 했던 것이고 곧 300~400여명의 남성 무리가 각각 남모와 준정을 따르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남모와 준정은 서로의 미모를 질투해 기싸움을 벌였고, 결국 준정이 남모를 자기 집에 유인해서 독이 든 술을 먹여 취하게 한 다음 강물에 던져 죽여버렸는데,[* [[삼국유사]]에서는 취하게 한 뒤 강가에 메고 가서 묻어서 죽였다고 한다.] 후에 이 사건이 발각되어 준정도 사형당했다.[* 혹은 남모를 따르는 무리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도 한다.] 원화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진흥왕은 여자들 대신 곱상한 [[꽃미남]]들을 뽑아서 비슷한 일을 시키는데 그게 바로 [[화랑]]이다. == 필사본 [[화랑세기]] == ||<-5><:> [[천마도|[[파일: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png|width=60]]]] [br] '''[[풍월주#s-3|{{{+1 {{{#ffffff 신라의 원화(源花) 겸 풍월량}}}}}}]]'''[br],,[[박창화|{{{#ffffff 박창화}}}]]{{{#ffffff 가 필사했다고}}} [[위서|{{{#ffffff 주장하는}}}]] [[화랑세기|{{{#ffffff 화랑세기}}}]]{{{#ffffff 의 기록}}},, || || [[풍월주]] 6대 [[김세종|세종]] || {{{+1 ←}}} ||<#FAFAD2> 초대 '''남모''' / [[준정]] || {{{+1 →}}} || [[풍월주]] 7대 [[설원#s-2.1|설원]] || 필사본 [[화랑세기]]에 의하자면 [[법흥왕]]과 보과공주 부여씨의 딸이자 [[백제]] [[동성왕]]의 외동손녀. 화랑의 3세 [[풍월주]] 모랑의 동생이라고 전해진다. 즉, 신분은 공주. 또한 [[지소태후]]와 [[미진부]][* 남모의 연인으로 남모가 죽은 후 그 어떠한 여자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의 도움을 받아 원화로서의 입지를 다졌다고 한다. 그 뒤로는 삼국사기와 동일하다. 그러나 남모의 가족관계와 미진부와의 관계에 대하여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그런거 없다| 확인할 법이 없다]]. 그저 화랑의 탄생배경에만 언급된 인물일 뿐. 거기다가 유일하게 남모의 신분이나 가족을 언급한 필사본 화랑세기 역시 내용을 놓고 학계에서의 진위논란이 여전한만큼 아직까지도 그녀가 공주였는지 미진부와 어떤 관계였는지에 관해서는 미지수다. == 창작물 == * [[KBS]] [[드라마]] [[화랑전사 마루]]에서는 강남희(박효빈 분)가 남모의 정기를 이어받은 것으로 나온다. 남모가 시대를 풍미한 미인이었기에 남희도 화려하고 단아한 얼굴을 지녔다. 예쁜 얼굴이지만 수줍음 많고 소극적인 성격. * [[점프(EBS)|점프]] 2 에피소드 3에서 팔주령의 힘으로 역사속에 들어간 인물로 등장한다. 화랑세기의 내용이 적극 반영되었으며 라이벌 준정과 경쟁하면서도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에게 배우는 바람직한 관계로 바뀌었다. 교육적인 면을 고려해 실제 역사의 내용을 순화시켰다.~~물론 사이가 틀어지게 되면 준정이 남모를 죽일 수 있겠지만~~ 여담으로 두 작품은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나왔는데 두 사람의 관계는 정 반대로 묘사되었다. 또한 한 쪽은 준정이 악역으로 남모는 신라를 지키는 영웅으로 나왔고 다른 쪽은 준정이 지적이고 쿨하고 다른 사람에게 배려하는 사람으로 나왔으나 남모는 준정에 비해 다소 이기적인 인물로 나온다. [각주] [[분류:몰년 미상]][[분류:신라의 인물]][[분류:암살된 인물/한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