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인도유럽어족]][[분류:선사 시대]][[분류:미라]][[분류:폐암으로 죽은 인물]] [include(틀:관련 문서, top1=미라)] [목차] == 개요 == [[누란]]미녀(楼兰美女, Loulan Beauty) 혹은 '누란의 미녀'는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 신장 지역의 여성 [[미라]]이다. 초기에는 [[실크로드]]에 위치한 고대 왕국인 누란의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연대를 분석해 보니 그보다 과거였다고 한다. 즉, '누란의 미녀'도 어찌 보면 별명이다. == 상세 == [[파일:누란의 미녀 생전 복원 밀랍 인형.jpg]] 미라를 통해 그녀의 생전 모습을 추측해 재구성한 박물관의 밀랍인형. [[일본]]에서 2005년에 미라를 토대로 생전 모습을 복원해서 제작한 다음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박물관에 기증했다. [[:파일:누란의 미녀 미라.jpg|누란의 미녀 미라]](충격적일 수 있는 사진이므로 링크 처리함). 신장 우루무치 박물관 2층 고시실에 다른 미라들과 함께 있다. [[1980년]] [[4월 1일]] 중국 위구르 사회과학원 소속 무순잉(穆舜英) 등이 바인궈렁 [[몽골]] 자치주 동부지방이며 [[우루무치]] 시 남동쪽 러우란(누란) 고성의 북쪽에 있는 철판하변 철판하 묘지 / 태양묘[* 철판하 묘지인데 태양묘로 많이 알려져 있다.]의 사막에서 발견된 여성 미라이다. 당연히 미라는 건조되어 변형되었으나, 외형을 재구성해 보았을 때 현대적인 관점으로 굉장한 미인이어서 누란의 미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깎아내린 절벽 중 [[인도]]에 가까운 지점에서 발견했다. 시신은 가죽과 포로 감싸진 상태이며 털모자에는 깃털이 꽂혀 있었고 발에는 가죽 신발을 신고 있었다. 40~45세 사이에 모래 먼지로 인한 [[폐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봉숭아물 든 손톱|봉숭아물을 들인 손톱]]도 완벽하게 보존되었다. 키는 151~152cm로 생전에는 155cm 정도로 추정되며 혈액형은 O형이다. 40~48세 사이에 사망했다. 부계 쪽으로는 [[시베리아]] 남쪽에 있던 사람들을 거쳐서 [[켈트족]]과 같은 계열이었다. 그러나 누란의 미녀 본인은 켈트인은 아니고 [[토하라인]]이다.[* [[아르메니아 가설]]에 의하면 [[켈트|켈트족]]은 [[토하라인]]과 동계로 추정된다.] 머리 색은 [[적발]]로 추정되며 [[고대 로마]]의 [[대 플리니우스]][* [[베수비오 산]]의 분화로 인한 [[폼페이]]의 멸망 과정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남기고 현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유명하다.]가 토하라인이 붉은 머리에 푸른 눈이라는 기록을 남긴 점과, [[당나라]]의 구법승인 [[현장]]이 [[타림 분지]]의 주민들이 적발에 [[벽안]]이 많았다는 기록을 보면 벽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 여담 == '''태양묘와 다른 지역인 소하 묘지에서 발견된 [[소하공주]]와 혼동되기도 한다.''' 심지어 뉴스에서조차 사진을 두고 혼동하기도 하지만 엄연히 다른 미라다. 아래는 소하공주 문서에 있는 그림과 설명이다. [[파일:소하공주 생전 복원.jpg]] 위의 그림은 그녀의 생전 모습을 추측해 재구성한 그림으로 알려진 그림이다. [[중국]] 웹상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으로, 실제 해부학적 근거를 토대로 재구성한 것인지 불분명하며 발굴 당시의 모습을 바탕으로 그린 것으로 보인다. 미라가 더 심한 [[곱슬머리]]인 데 비하면 곱슬기가 줄어 있다. 소하공주가 아닌 누란의 미녀 미이라의 복원 그림에 가깝다. "가깝다"고 한 이유는 모자는 누란의 미녀, 직모인 머릿결과 얼굴은 소하공주를 더 닮았기 때문이다. 심한 곱슬이란 표현도 누란 미녀의 특징. 즉 중국 웹에서도, [[나무위키]]에서도 혼동되고 있다. 발굴 당시 한국 신문에도 컬러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살렸으며,[* 당시의 신문은 기준이 지금과 달라서 시신이 그대로 나오는 일도 왕왕 있었다. 불에 타거나 열차 사고로 인해 차체에 끼어 있는 참혹한 시신 사진도 그냥 나오는 판이었는데, 죽은 지 오래된 이런 미이라는 당당히 그냥 나왔다.] 크게 화제가 되었다. 당시 일간지 한국일보가 [[고우영 삼국지]]를 연재 중이었는데, 고우영 화백이 삼국지의 한 장면에 이 누란의 미녀를 등장시키기도 했다. == 매체에서 == [youtube(aefr1D5W4fs)] 누란의 미녀를 주제로 한 《KIROREN GUZILI》란 노래도 있다. [[일본]]의 소설가 [[이노우에 야스시]]가 이 누란의 미녀와 [[로프누르 호]]를 주제로 《누란》이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다. 줄거리는 로프누르 호 가까이 [[흉노]]와 [[한나라|한]](漢) 사이에 끼어 있던 [[실크로드]] 왕국 [[누란]]이 겪은 비극에 대한 것으로, 누란 왕국의 왕이 죽은 뒤 흉노에 인질로 갔던 첫째 왕자가 누란의 왕이 되어 친 흉노 정책을 펴지만 이는 한의 심기를 거스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결국 한은 자객 부개자를 보내 누란 왕을 죽여버리고 자신들이 인질로 데리고 있던 옛 누란 왕의 둘째 왕자(즉 살해 당한 누란 왕의 동생)를 새로운 누란의 왕으로 앉혔으며, 누란이 흉노 땅과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아예 선선이라는 땅으로 나라 자체를 전부 옮기라는 명령을 내린다. 누란 왕국이 선선 땅으로 옮겨가기 전날에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았던 전 왕의 왕비는 자신을 누란의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결했고, 유언대로 호수가 보이는 언덕 위에 묻어준 뒤 누란 사람들은 모두 고향 땅을 떠났는데, 누란 사람들이 떠난 뒤에 차츰 그들의 기억 속에서 옛 누란 땅이 잊혀지면서(기억하는 사람들은 모두 늙어 죽고, 새로 태어난 사람들은 애초에 기억이 없는) 호수는 차츰 말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누란 왕국의 옛 땅은 잊혀졌다. 그리고 천 년이 지난 뒤에 이곳을 답사한 탐험가 헤딘에 의해 누란 왕국의 옛 터와 함께 이 땅에 묻힌 왕비의 미라도 함께 발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