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1934년]] [[5월 28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코베일 마을에서 '''세계 최초의 5명 [[쌍둥이]]'''가 태어났다. 다섯 쌍둥이는 이전에도 있었으나 모두 살아남은 사례는 이게 최초였다. 모두 일란성 여자아이들이었으며, 태어날 당시에는 5명의 몸무게를 합쳐도 6kg 정도이며 상태도 매우 좋지 않았으나, 주민들의 지원 덕분에 한 명도 사망하지 않았다. 전부 살아남은 다섯 쌍둥이는 최초 사례인 만큼, 전국의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다섯 쌍둥이 중에서 3명은 사망하고, 나머지 살아있는 사람들은 [age(1934-05-28)]세이다. == 다섯 쌍둥이의 비극 == 처음에는 한 [[기자]]가 쌍둥이 부부에게 많은 액수의 사례금을 제시하며 [[박람회]]에 전시할 것을 제안했다. 당시엔 희귀한 사람들이 종종 전시되기도 했다. 부부는 프랑스에서 온 이민자로 마땅한 직업도 없고 다섯 쌍둥이 외에도 5명 아이들을 더 키우고 있는 상태다보니 경제적 부담이 커서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다섯 쌍둥이는 그대로 박람회에 전시될 운명에 처했다. 하지만 [[온타리오주]] 정부는 다섯 [[쌍둥이]]가 [[박람회]]에 [[전시]]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고, 이를 [[아동 학대]]로 판단하여 부모에게서 다섯 쌍둥이의 친권와 양육권을 박탈하여 데리고 가게 된다. 이후 주 정부는 다섯 쌍둥이가 살 수 있는 집을 짓고 전담 [[의사]]와 3명의 [[보모]]를 배치하여 다섯 쌍둥이는 이들과 같이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비극이 끝나는가 싶었다. 하지만 뜬금없이 [[온타리오주|온타리오 주]] 정부가 당시 주의 낙후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자금 마련용으로 다섯 [[쌍둥이]]의 유명세를 이용해 주변을 유명 [[관광지]]로 만들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를 위해 주 정부는 '퀸트랜드'(다섯 쌍둥이 나라)라는 놀이공원을 세우고 그 안에 전시장을 세운 뒤 다섯 쌍둥이를 전시하고 입장료를 낸 관람객에게 보여주게 했다. 그 외 다섯 쌍둥이의 모습을 딴 [[인형]]이나 [[엽서]] 등의 기념품까지 판매하기 시작했고, 퀸트랜드는 이 전시장을 중심으로 큰 주차장을 만들고 각종 놀이기구도 설치하는 등 다섯 쌍둥이의 유명세 덕분에 규모가 빠르게 확장되었다. 당시 매일 '''6천명'''의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찾아 오고 몇몇 할리우드 스타들도 구경 올 정도로 다섯 쌍둥이의 유명세는 높았다. 또한 다섯 쌍둥이의 유명세가 점점 올라가서 이제는 다양한 제품의 광고 모델로도 활약하게 되었고 영화에 출현되기도 했다. 하여튼 이로 인해 [[온타리오주|온타리오 주]]는 유명한 관광지가 생겼고, 지역도 제법 부유해지게 된다. 물론 오로지 다섯 [[쌍둥이]] 때문에 온타리오 주가 발전했다는 식의 논리는 과장이 섞인 소리지만, 다섯 쌍둥이가 주의 발전에 상당히 기여하긴 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다섯 [[쌍둥이]]는 주 정부의 엄격한 통제를 받았다. 한 방에 가둬놓고 어떠한 가족과도 만날 수 없고 자유로운 외출은 절대로 불가능한데다 정해진 시간표대로 생활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들의 수익은 주 정부가 전부 차지하게 되었다. 9년 동안 다섯 쌍둥이로 벌어들인 수익은 무려 '''5억 달러''', 현재 한화로 약 '''5천억원'''에 해당된다. 결국 자기들이 지적한 아동학대를 자기들이 돈벌이 수단으로 저지른 꼴이다. == 해방 == 9년 동안 주 정부의 돈벌이로 전략하던 다섯 [[쌍둥이]]는 마침내 해방을 맞이했다. 전 부모가 주 정부와의 소송 끝에 양육권을 되찾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부모는 다섯 [[쌍둥이]]를 찾는 이유가 단순히 '''돈''' 때문이었고 양육권을 찾았을 땐 이미 많이 자라서 인기가 시들해진 뒤였기에 부모는 이들을 학대를 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아버지는 [[성추행]]을 하기도 했다. 결국 다섯 쌍둥이는 견디지 못하고 집에서 나가 부모는 몰론이고 주변 사람들과의 연락을 차단한 채 살아가게 되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52312220001075|기사]] 하지만 이후 다섯 쌍둥이 자매 중 에밀리와 마리는 각각 1954년과 1970년에 먼저 사망하고 남은 3명은 결혼했지만 그중 2명은 이혼하는 등 그닥 행복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았다. 1998년, 3명은 주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소]]하여 정부의 사과와 함께 300만 이상의 달러 및 1930~40년대에 이들에게 일어난 진실규명 약속을 받게 되어 분쟁은 완전히 끝나게 되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4375505|기사]] 이후 2001년 첫째 이본이 사망하면서 현재는 2명만 남았다. == 기타 == 주 정부가 부모가 다섯 [[쌍둥이]]를 [[박람회]]에 전시하려던 것을 [[아동 학대]]로 보고 양육권을 박탈했는데 오히러 다섯 쌍둥이를 돈벌이로 사용하는 것을 보면 윤리성 문제가 상당하다. 부모가 1차 가해자였지만, 다섯 쌍둥이를 이용해서 발생한 수익을 전부 차지해버린 주 정부도 2차 가해자였다. 이는 당시 아동 인권이나 윤리 개념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던 것도 한몫했다. 다섯 쌍둥이 전에도 어떤 특징을 가지고 태어난 희귀한 사람을 전시하는 경향이 있었다보니 이런 일도 발생한 것이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2017년#s-18|2017년 4월 30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소개되었다. [[https://youtu.be/UC8GmRYTDds|영상]] [[분류:온타리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