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경과]] [include(틀:상위 문서, top1=레이테 만 해전)] [목차] == 해전의 경과 == [[파일:attachment/레이테 만 해전/MAP.jpg|width=100%]] 1. 시부얀 해전 (구리다 VS 홀시) 1. 수리가오 해협 해전 (니시무라, 시마 VS 킨케이드 휘하 올덴도르프 함대) 1. 엔가노 곶 해전 (오자와 VS 홀시) 1. 사마르 해전 (구리다 VS 킨케이드 휘하 스프레이그 함대)[* 여기서 붉은 선이 갑자기 반전을 하는데 이게 '''구리다 턴'''이다.] == 팔라완 해협 == 브루나이를 출발한 구리다 함대는 레이테 만으로 향하지만, 10월 23일 0시 16분에 팔라완 해협에서 미국 잠수함 [[가토급 잠수함|다터(USS Darter)]]에게 발각되었다. 다터는 동행하던 잠수함 [[가토급 잠수함|데이스(USS Dace)]]와 함께 일본 함대를 추적했고, 새벽 5시 24분에 구리다 함대의 기함 아타고에 4발의 어뢰를 명중시킨다. 이후 다터는 중순양함 타카오에 어뢰 2발을 명중시켰고, 데이스는 중순양함 마야에 4발의 어뢰를 먹인다. 아타고와 마야는 침몰했지만 타카오는 살아남았고, 타카오를 추적하던 다터는 실수로 좌초하는 바람에 추적에 실패하고 만다. 타카오는 2척의 구축함을 호위로 대동하고 브루나이로 돌아갔다. 이후 수리받지 못한채로 싱가포르로 갔고, 같은 신세인 묘코와 함께 대공포대로 전락하게 된다. 다터의 승무원들은 전원 데이스에 구조되어 오스트레일리아로 탈출한다. 정원초과로 다터의 승무원 2명은 데이스에 들어가지 못하고 잠수함 위에 앉아서 가야 했다. 다터는 레이테 만 해전이 끝난 다음주에, 데이스와 노틸러스에 의해 처분된다. 아타고가 너무 빨리 침몰한 탓에, 구리다 사령관은 물에 빠졌다가 구축함 키시나미에 의해 구조되었다. 이후 새로운 기함을 골라야하는 상황에서, 전함 야마토를 선택한다. 반면 숙련된 사령부 통신요원들은 구출되지 못했는데, 이게 엔가노 곶 해전과 사마르 해전[* 사마르 해전에서 구리다 턴이 나오는 간접적인 원인 중 하나가 이거다.]에서 전황을 바꾸는 큰 문제를 일으켰다. == 시부얀 해전 == Battle of Sibuyan Sea === 개전 이전 === 다터와 데이스가 구리다 함대를 습격하기 전, 홀시는 식량과 탄약 보급을 위해 2개(38.1, 38.4)의 항모 전단을 울리히로 돌려보낸 상태였다. 하지만 다터로부터 일본 함대와의 접촉 보고를 받자, 홀시는 항모 전단의 복귀를 지시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정규 항공모함을 3척 보유하고 있어서 3함대의 최고 주력이었던 38.1 임무전대는, 지휘관인 매케인 제독의 재량으로 홀시의 허락을 받아, 레이테 만으로 복귀하지 않고 울리히로 갔다. 이 덕분에 미군은 압도적인 항공 우세에도 불구하고 석연찮은 전과+찜찜한 승리를 거두게 된다. 10월 24일 오전 8시에 구리다 함대는 3함대가 사방에 뿌린 미국 정찰기에 발각되었다. 홀시는 38.1 임무전대의 복귀를 재차 명령하고는, 남은 3함대의 3개 항모 전단을 총동원해서 구리다 함대를 공습한다. 하지만 공습하기에 최적인 위치에 전개되었던 38.2 임무전대의 항공 세력은 에식스급 항공모함 인트레피드[* 뉴욕에서 기념함으로 남아있는 그 항공모함이다.] 1척과, 2척의 경항모 뿐이었다. === 일본 항공대의 선공 === 일본의 오니시 다키지로 일본 해군 중장은 [[루손 섬]]의 항공대에 명령하여, 구리다 함대를 지키기 위해 홀시의 3함대를 공습하도록 지시한다. 미 3함대의 38.3 임무전대가 이 공습을 저지하였으나 50~60대의 항공기로 각각 구성된 3차례의 공습을 모두 저지하는데에는 실패하였다. [[인디펜던스급 경항공모함]] 프린스턴(USS Princeton, CVL-23)은 9시 38분에 폭탄에 맞고 화재 진화 중 15시 23분에 탄약고 폭발로 침몰한다. [[클리블랜드급 경순양함]] 버밍햄(USS Birmingham, CL-62)이 프린스턴의 화재 진화 중 폭발에 휘말려 손해를 입어 2개월 정도 전선에서 이탈하게 된다. 프린스턴이 유폭할 때 버밍햄을 덮친 화염이 갑판에 나와 있던 버밍햄의 함장에게 화상을 입혀 결국 사망하였으나, 함장은 '배를 버리지 말라'는 명령을 남기고 죽었고 승조원들은 필사적으로 배를 수습해서 살아 돌아간다.[* 이 일화는 레이테 만 해전 이후에 각 함별로 느낀 점, 개선할 점, 반성할 점을 취합하는 자리에서 버밍햄의 장교들이 제출한 것이다.] ||[[파일:USS_Princeton_(CVL-23)_burning_on_24_October_1944_(80-G-287970).jpg|width=100%]] || [[파일:USS_Birmingham_comes_alongside_the_burning_USS_Princeton.jpg|width=100%]]|| || 피격당한 프린스턴 || 버밍햄이 불을 끄고 있었으나.. || ||[[파일:800px-USS_Princeton_(CVL-23)_1944_10_24_1523explosion.jpg|width=100%]]||[[파일:USS_Princeton_(CVL-23)_blows_up_after_being_torpedoed_by_USS_Reno.jpg|width=100%]]|| || 프린스턴이 유폭하고, 치명타를 입은 버밍햄이 물러선다. || 프린스턴이 레노의 뇌격처분으로 굉침 || 이후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간, 오자와 함대도 38.3 임무전대를 공습한다. 하지만 항공대의 공습때문에 미군 함재기들의 대공 초계가 매우 삼엄했고, 오자와 함대의 함재기들은 아무런 성과도 올리지 못한다. 필리핀 해 해전 이후 파일럿의 숙련도는 더욱 떨어져 있었고, 오자와는 공격대 발진 직전 '''모함 귀환이 여의치 않으면 필리핀 지상기지에 착륙한 뒤 보고할 것''' 이라는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대부분의 일본군 함재기들은 아군의 도움을 더 빨리 받을 수 있는 루손섬의 항공대 기지로 도망가야 했다. 루손섬의 항공대와 전투를 벌이느라 담당 영역의 정찰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38.3 임무전대는, 바다로부터 날아든 적 항공기가 온 방향으로 정찰기를 뿌린다. === 미 해군 3함대의 [[무사시(전함)|무사시]] 공습 === ||[[파일:HLMNNPZ-1-1.jpg|width=100%]]|| || 가운데 있는 배가 공습당하는 무사시, 무사시 우측 뒷편에 보이는 배는 구축함이다. || 미 해군 역시 항공기로 구리다 함대를 공습했다. 전술한 38.2 임무전대의 첫 공습이 10월 24일 오전 10시 27분에 나가토, 야마토, 무사시에게 쏟아졌으며, 중순양함 묘코가 대파되어 보르네오로 회항한다. 무사시는 1번 포탑 천장에 폭탄 1발, 우현에 어뢰 1발을 피탄당했지만 폭탄은 운 좋게 도탄되었고 어뢰 피해도 무사시의 덩치가 워낙에 컸던지라 별 거 아니었고 금방 복구했다. 1시간 반이 지난 후, 38.2 임무전대의 인트레피드는 한번 더 공습을 시도한다. 무사시는 큰 덩치를 자랑하는 데다, 어그로를 끌기 위해 의도적으로 함체를 기존의 일본 해군 함선보다 밝은 회색으로 조금 다르게 칠했기에 미군 함재기들은 무사시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게 된다. ||[[파일:6IblWzl-1.jpg|width=100%]]|| || 레이테 만 해전 참가를 위해 브루나이에서 출항하는 무사시. 확실히 다른 일본군 군함보다 색이 밝다. || [* [[파일:w201_01.jpg]]시부얀 해전 당시 무사시의 모습을 재현해둔 프라모델이다. 당시 일본 군함들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색이 더 밝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목재갑판이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다.] 인트레피드의 공습은 불발탄 1발과 엔진룸 바로 위에서 폭발한 폭탄 하나가 기록되었으며, 스팀 파이프를 파손시킨 탓에 엔진룸과 보일러룸을 포기하게 되어서 스크류 하나가 멈추게 된다. 당연히 함속이 내려갔다. 구리다 제독은 무사시를 낙오시키지 않기 위해 함대의 속도를 줄였다. 13시 31분이 되자, 38.3 임무전대의 [[에식스급 항공모함]] 에식스, 렉싱턴이 공습을 퍼붓는다. 이들의 함재기는 무사시의 양현에 어뢰 3발을 명중시켰다. 그 결과 또 다른 엔진룸이 침수되어 함속이 또 내려갔다. 다른 어뢰는 1번 포탑의 수압식 펌프를 고장내서 보조 유압 펌프로 전환하게 하였다. 무사시는 이에 대응하여 주포에 [[3식탄]]을 장전하고 사격을 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거기에 사전 경고 없이 사격을 가하는 바람에 무사시의 대공포 사수들이 주포 발사의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생존자 중 일부의 증언에 의하면 주포사격의 충격으로 인해 무사시의 주포 조준 방위판이 고장났다는 주장도 있었다.[* 거기다가 영점을 잘못맞춘 덕분에 명중탄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사실 조종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대공사격이 구름 사이로 들어갔을때 날아오지 않았다는 말이 있어 레이더가 아니라 육안으로 조준했다고 봐도 될것이다.] 이 3식탄 발사 과정에서 1번 포탑의 중앙 포신에서 포탄이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났으며, 탄약고에서 1번 포탑으로 탄약을 올려주는 양탄기가 전부 고장나버렸다. 무사시는 이 시점에서 버티지 못하고 회항을 결정하였으나, 38.2 임무전대의 [[인트레피드]]와 38.4 임무전대의 [[엔터프라이즈(항공모함)|엔터프라이즈]]와 에식스급 항공모함 프랭클린이 15시 25분에 네 번째 공습을 한다. 이 공습에서 엔터프라이즈의 함재기들에게 3발의 어뢰를 맞고, 인트레피드와 프랭클린으로부터는 13발의 폭탄과 11발의 어뢰를 얻어맞는다.[* 레이테 만 해전에서 야마토가 1번 주포탑 옆에 폭탄을 맞는 사진이 있는데, 이 4번째 공습에서 프랭클린의 함재기가 공격한 것이다.] 이 공습으로 무사시는 대화재가 발생하고, 좌현 함수가 물 속에 잠기기 시작할 만큼 기울어졌다. 무사시는 최고로 보수적으로 따지더라도, 4번의 공습을 통해 총 19발의 어뢰와 17발의 폭탄을 두들겨 맞은 것으로 기록되었다. 구리다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보고, 15시 30분 경에 무사시를 방패막이로 버려둔 채 함대를 반전해 도망치기 시작한다. 미군은 이걸 보고 구리다 함대를 성공적으로 격퇴했다고 간주했지만, 미군의 정찰기가 사라지자마자 구리다는 함대를 다시 돌려, 산 베르난디노 해협을 통과해 목적지로 향한다. 구리다 함대는 16시 21분 경에 만신창이가 된 무사시를 다시 지나친다. ||[[파일:구축함에서 본 침몰중인 무사시.jpg|width=400]]|| ||선수부가 크게 가라앉은 상태로 돌아가는 무사시.구축함 이소카제에서 촬영.|| 그 동안 무사시는 1척의 중순양함과 2척의 구축함의 호위를 받으며, 북쪽으로 침로를 잡고 좌현으로 10도나 기울여진채로 6노트의 속도로 항구를 향해 항해했다. 하지만 엔진에 누적된 타격이 너무 컸으며, 무사시는 해변에 좌초하기로 하지만 그 전에 엔진이 멈춰버린다. 19시 15분에 배를 버리기로 결정되었다. 2,399명의 승조원 중에서 1,376명이 구출된다. 절반 정도는 일본으로 돌아갔으며, 다른 절반은 필리핀 방어전에 해군 육전대로 동원된다. 그 외에 마야로부터 구출한 635명이 동승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구축함 [[시마카제급 구축함|시마카제]]가 대신 항구로 실어보낸다. 구리다 함대는 잠수함 뇌격으로 중순양함 2척 격침, 1척 대파의 손실을 입었고, 공습으로 전함 1척 격침과 중순양함 1척 대파의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홀시는 당장 이 전과를 확인할 도리가 없었으니, 눈앞에 보이는 프린스턴의 격침, 그것도 공습에 의한 격침이 그저 뼈아플 뿐이었다. == 홀시의 북상 == === 34 임무부대의 편성 === 오자와 지사부로의 함대가 발견되기도 전에, 미 함대는 구리다 함대와 니시무라 함대를 포착한 상태였다. 홀시와 3함대 참모들은 [[아이오와급 전함]] 뉴저지에 모여, 구리다 함대를 저지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한다. 여기서 34 임무부대의 편성이 결정되었으며, 윌리스 리 제독[* 과달카날 전역 때 [[공고급 순양전함]] [[기리시마(순양전함)|키리시마]]를 털어버린 그 제독이다.] 휘하에 4척의 전함, 5척의 순양함, 14척의 구축함을 편성하여 산 베르난디노 해협을 봉쇄하고, 3함대의 항공모함과 38.4 임무전대의 항공모함의 지원을 받도록 하는 방안이 결정된다. 무사시를 향한 마지막 공습이 하늘을 날던 10월 24일 오후 15시 12분. 홀시는 이 결정을 태평양 함대 사령부의 니미츠 제독과 워싱턴 해군 본부의 어니스트 킹 제독에게 전달한다. 7함대의 킨케이드 제독은 수신인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미 해군 지휘부의 통신병들은 누가 수신인인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신들이 수신한 모든 통신을 전부 참모들에게 전달하였기 때문에, 킨케이드 제독에게도 그 결정이 전달된다. 니미츠 제독도 동일한 결론을 내린 상태였고, 거기에 동의한다. 홀시 제독은 오후 17시 10분에 두번째 전문을 보내면서, 다음과 같이 다시 의사를 표명한다. ||IF THE ENEMY SORTIES (THROUGH SAN BERNADINO STRAIT) TF 34 WILL BE FORMED WHEN DIRECTED BY ME. 적 함대가 산 베르난디노[* 뉴저지에서 통신을 보낼때, 오타를 냈다. Bernadino가 아닌 Berna'''r'''dino이다. 후술할 The world wonder 건과 관련된 내용이기도 하다.] 해협을 통해 진격할때, 내 지시에 따라 34 임무부대를 편성할 것임.|| 하지만 여기에 문제가 있었다. 홀시는 첫 전문을 미래형(즉, 아직 안했음.)으로 보냈는데, 킨케이드는 현재형인 것으로 착각했다. 게다가 첫번째 전문처럼 미래형으로 작성된 두번째 전문은 킨케이드가 아예 받지 못했다. 실제 34 임무부대를 편성하는 경우, 거기에 들어갈 4척의 전함은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사우스다코타, 매사추세츠, 앨러배마,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워싱턴이었다. 거기에다가 후방에 [[에식스급 항공모함]] 프랭클린과 [[엔터프라이즈]]를 포함한 38.4 임무전대가 항공지원을 하게 되므로, 구리다 함대가 제 아무리 야마토와 나가토를 데리고 온다 한들, 산 베르난디노 해협을 통과할 가능성은 0%였다. === [[오자와 지사부로]] 함대의 출현과 홀시의 북상 === 한편 [[오자와 지사부로]]는 항공모함까지 포함한 제1기동함대 본대(미군 명칭 북방함대)를 지휘하고 있었으나, 항공전력이 부실한 상태에서 항공모함은 그저 크고 무장한 수송선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어찌됐건 항공모함은 상당히 전략적인 요소였고, [[진주만 공습]] 당시 참가해서 미국의 격침우선순위에 든 [[즈이카쿠]]도 있었다. 오자와는 이를 이용해 미군의 주력 함대를 유인하려 하였다. 전략적 가치가 없어진 아군 항모를 미끼로 미군의 항모를 꼬셔낸 뒤, 전함을 주축으로 이루어진 수상함대가 미 육군 수송선단을 공격할 기회를 노렸던 것. 24일 11시 58분, 4척의 항공모함에서 총계 57기의 공격대가 발진한다. 하지만 루손 섬의 항공대가 38.3 임무전대를 공습하고 난 직후여서, 대공 초계가 삼엄했다. 공격대는 초계중이던 38.3 임무전대의 항공기들에게 대부분 격추되어서, 미 3함대의 수상함에게는 단 1건의 공격도 하지 못했다. 살아남은 일본 함재기들은 루손 섬의 일본군 항공대 기지로 도망갔다. 오자와 함대에게 공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미 해군은 정작 오자와 함대를 제외한 구리다, 니시무라, 시마 함대, 심지어는 16전대까지도 모두 포착한 상태였다. 정작 이들보다 먼저 포착되어야할 오자와 함대는 10월 24일 16시 40분까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일본 측의 기록에서는 24일 15시경 즈이호가 미군의 정찰기로 추정되는 항공기와 조우했다.] 그날 저녁, 오자와는 미군이 실수로 평문으로 송신한 통신 하나를 감청하게 되는데, 구리다 함대가 퇴각한다는 내용이었다. 자살행 특급열차를 타는 미끼 임무를 하고 싶은 의사가 전~혀 없었던 오자와 역시 그를 핑계삼아 해질 무렵에 도망가기로 결정하고, 미끼 역을 위해 남쪽으로 전개시켰던 이세급 전함 2척을 불러들였다. 한편 해가 진 직후의 20시, 연합함대 장관인 도요타 소에무 제독이 구리다 함대에게 돌격을 재촉하는 무전을 발신한다. 이 무전은 오자와 측에게도 수신되었지만, 정작 오자와는 구리다가 함대를 다시 반전시켜 돌입을 시도했다는 것을 작전이 끝날 때까지 알지 못했다. 오자와 함대는 구리다가 퇴각했다고 판단해 북상을 계속한다. 그리고 다음날인 25일 아침 7시 12분, 38 임무부대의 공습선도기를 발견하면서 엉겁결에 미끼 역할을 완수하게 된다. 그때는 이미 미 해군의 항공모함 3개 전단에서 대대적으로 함재기를 발진시킨 상태였다. 반면, 이 시기의 홀시는 항공모함 예찬론자가 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16시 40분에 북동쪽 해상에서 일본 해군의 항공모함 다수를 발견했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전함 위주의 구리다 함대보다 오자와 함대가 더 중요한 목표라고 생각하고는, 북상하기로 결정한다. 이 결정에는 공습에 경항공모함을 잃었다는 점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ENTRAL FORCE HEAVILY DAMAGED ACCORDING TO STRIKE REPORTS. AM PROCEEDING NORTH WITH THREE GROUPS TO ATTACK CARRIER FORCES AT DAWN 공습 리포트에 따르면 중앙함대(구리다 함대)는 심한 피해를 입었음. 나는 새벽까지 3개의 항모 전단을 이끌고 북쪽으로 진출할 것임.|| 문제는, 3함대는 4개의 항모 전단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홀시는 그중 보급하고 복귀중인 '''38.1을 제외한 3개만 가지고 올라갈게.'''라고 언질한 것이지만, 킨케이드, 니미츠, 킹 제독은 전부 34 임무부대를 편성하면서 38.4를 거기에 배속시키고, 남은 38.1, 38.2, 38.3 그룹만 데리고 올라간다고 이해했다. 이 실수로 인해, 처음의 두 메시지를 받은 니미츠와 킹 조차도 홀시 제독의 의사를 잘못 받아들이게 된다. 이제 산 베르난디노 해협은 텅텅 빈 상태가 되었으나, 미 해군의 다른 제독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 미 함대 참모진의 우려 === 그날 밤, 함대가 북상하는 동안, 미 해군 3함대의 제독들과 참모들이 계속해서 이의를 제기했다. 후술하지만, 보급을 마치고 3함대로 복귀하던 38.1 임무전대의 지휘관 매케인 제독은, 홀시의 결정에 소극적인 항명을 하기로 한다. 38.2 임무전대의 지휘관이었던 제럴드 보건 제독은 경항공모함 인디펜던스에서 발진시킨 야간 정찰기와 산 베르난디노 해협에 두고온 구축함들로부터 해협에 항해등이 켜진 것을 관측했다는 정보를 각각 받았다며 우려를 표했지만, 그 정보를 접수한 홀시 제독의 참모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면서 기각한다. 홀시 제독은 38.2 임무전대에 소속된 아이오급 전함 뉴저지에 승함하고 있었다. 워싱턴을 기함 삼아 38.3 임무전대에서 전함들을 이끌고 있었던 월리스 리 제독은, 오자와 함대가 미끼라는 결론을 홀시의 기함에 점멸 메시지로 전달했지만 역시 기각된다. 마크 미처 제독은 38 임무부대 지휘관이었으며, 38.3 임무전대의 렉싱턴을 기함으로 삼고 있었다. 그의 참모장이던 [[알레이 버크]] 대령과 비행단장인 제임스 플래트리도 동일한 결론을 내리고, 위험한 상황이라 생각해 마크 미처 제독을 깨운다. 하지만 홀시에게 보고했냐는 소리에 그렇다고 하니, 홀시의 성격상 '''본인이 필요할때나 내 의견을 들을 것'''이라고 답변하고는 도로 자러 갔다... 흩어서 서술하니 감이 잘 안오겠지만, 4개 임무전대 중에서 3개 함대의 지휘관 혹은 참모들이 우려를 표명한 상황이며, 38.3의 경우는 반쯤 체념한 것에 가깝다. 같은 시간, 사령부의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제독은 홀시 제독이 3개 전단을 이끌고 북상한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라면 함대를 북상시키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렀을 거라고 했다.[* 애석하게도 스프루언스 제독은 당시 휘하에 함대가 없이 사령부와 참모진만 유지한 채 진주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5함대 사령관(사실 5함대나 3함대나 같은 함대로 사령관인 제독이 누구인가에 따라 이름만 다르게 줬을 뿐이다. 홀시가 사령관이면 3함대, 스프루언스가 사령관이면 5함대라는 식으로 구성원은 똑같았다.)으로서 홀시와 동격의 제독이였고, 필리핀 해 해전에서 연합함대를 끝장내지 못했다는 좋지 못한 평가를 받고 있었으며 자신도 지나가는 말처럼 언급한 바람에 그의 말에 신경쓴 사람은 별로 없었다고 한다.] == 수리가오 해협 해전 == Battle of Surigao Strait スリガオ海峡海戦 === 별동 함대의 출격 === 10월 22일 15시, [[후소급 전함]] [[야마시로]]를 기함으로 하여[* 원래는 나가토도 2전대에 소속되어 기함역할을 할 예정이었으나 취소되었다.] 같은 후소급 전함인 후소, [[모가미급 중순양함]] 1번함 모가미, [[시라츠유급 구축함]] 2번함 시구레, [[아사시오급 구축함]] 미치시오, 아사구모, 야마구모의 7척으로 구성된 2전대, 일명 니시무라 함대(미군 명칭 남방함대)가 구리다 함대의 뒤를 이어 브루나이를 출항했다. 중순양함 나치(기함)와 아시가라, 경순양함 아부쿠마, 그리고 구축함 시라누이, 아케보노, 우시오, 카스미의 4척으로 구성된 5함대 2유격부대, 일명 시마 함대가 2차 타격 함대로 그 뒤를 이어 출항했다. 니시무라, 시마 함대의 역할은 구리다 함대와 정반대 방향에서 레이테만에 접근한뒤, 저지하는 적 해상 세력을 양쪽에서 협공하여 분쇄하고, 레이테만의 상륙함대를 일소하는데 화력을 보태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구성에서 보듯이 양동함대의 성격이 더 컸다. 하지만 이들은 무선 침묵을 지나치게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구리다 함대나 오자와 함대, 시마 함대와 니시무라 함대끼리의 협조체제조차도 결여되어 있었다. === 죽음의 돌입 === ||[[파일:Surigao_straight.jpg|width=400px]]|| ||검은선 : 미 해군 77.2 임무전대 붉은선 : 니시무라 함대 붉은 점선 : 시마 함대|| 10월 24일, 미 해군이 니시무라 함대를 발견하자 38.4 임무전대의 엔터프라이즈와 프랭클린에서 함재기를 발진해, 니시무라 함대를 공습한다. 야마시로는 우현에 떨어진 지근탄이 벌지를 파손시키면서 침수가 진행되어 우측으로 15도나 기울어 결국 좌현 벌지를 침수시켜서 함의 평형을 되찾는다. 후소에는 2발이 명중했다. 한발은 캐터필트와 2개의 수상기를 부수고 다른 한발은 2번 포탑 주변을 관통해서 1번 부포의 포반원 전부를 전멸시켰다. 피격 결과 배는 우현으로 2도 기울었다. 작은 손상은 아니었으나, 일방적인 공습을 당한 것 치고는 양호했다. 하지만 미 해군 함대에게 니시무라 함대가 노출된 것은 분명했고, 항공 작전이 시작되는 새벽이 오기 전에 모든 것을 마쳐야 했다. 함대는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20시 13분, 니시무라 제독은 도요타 연합함대 장관에게 25일 새벽 4시에 레이테 만으로 돌격하겠다는 전보를 발송한다. 그러나 같은 시간, 구리다 함대는 미 3함대의 공습을 따돌리느라 지체하고 있었고, 아직도 아까전의 전장이던 시부얀 해를 지나고 있었다. 시마 함대는 그보다는 나았지만, 니시무라 함대보단 약간 늦어서 46킬로미터 정도 뒤쳐진 상태였다. 22시 36분, 니시무라 함대는 미군 어뢰정 PT-131과 조우한다. 어뢰정은 뇌격을 시도했으나, 명중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니시무라 함대를 계속 추적하며 침로와 순항속도를 보고했다. 어뢰정의 공격이 실패한 것은 니시무라 함대의 사기와 긴장감도 동시에 높였다. 이후 미군 어뢰정들은 뇌격 시도와 도주를 반복하면서 니시무라 함대를 계속 괴롭힌다. 반면, 니시무라 함대는 어뢰정들을 견제하며 최대한 빨리 레이테 만을 향해 달렸다. 그 과정에서 어뢰정 PT-130과 PT-132가 야마시로의 공격에 피해를 입는다. 10월 25일 밤 1시 5분, 후소는 좌현 전방에 함영을 발견하고 함포로 공격한다. 그러나 [[팀킬|후소가 공격한 상대는 모가미였고]], 모가미의 의무실에 있던 승조원 3명이 사망한다. 니시무라 함대를 뒤덮은 긴장감 때문에 생긴 불상사였다. === 미군의 습격 === 어뢰정으로부터 정보를 전달받은 올덴도르프 제독은 본격적으로 니시무라 함대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우선, 제일 후열에 6척의 전함들을 단종진으로 배치했다. 전함 부대의 기함 [[웨스트버지니아(전함)|웨스트버지니아]]를 앞장세우고, 메릴랜드, 미시시피, 테네시, 캘리포니아, 펜실베이니아가 그 뒤를 따랐다. 미시시피를 제외한 모든 전함이 [[진주만 공습]]에서 피해를 입었고, 웨스트버지니아와 테네시, 캘리포니아는 공습으로 인한 손상 때문에 대개장을 받은 전함이었다. 특히 기함 웨스트버지니아는 전쟁 전의 지위도 그렇거니와 대개장 이후의 성능도 기함을 달만한 배였는데다가, 이것이 복귀 후 첫 실전이기도 했다. 전함 앞열에는 구축함과 중순양함들을 배치했다. 적의 침로로 예상되는 우측 열에는 올덴도르프 제독 본인의 기함인 [[노스햄프턴급 중순양함]] 루이스빌을 선두로 해서 [[포틀랜드급 중순양함]] 포틀랜드, [[뉴올리언스급 중순양함]] 미니애폴리스가 그 뒤를 따랐으며, 그 뒤를 최신예 [[클리블랜드급 경순양함]] 덴버와 콜롬비아가 따랐다. 좌측열은 [[브루클린급 경순양함]] 보이쉬(Boise)와 피닉스, 그리고 호주 해군의 중순양함 슈롭셔[* 원래 영국 해군의 런던급([[카운티급 중순양함]]의 하위 함급)인데, [[사보섬 해전]]에서 호주 해군의 중순양함 캔버라가 격침되자, 영국 국왕인 [[조지 6세]]가 동형함인 슈롭셔를 선물로 주었다. 원래는 이름도 캔버라로 개명하려 했으나, 침몰한 캔버라의 전과를 기념하기 위하여 [[미합중국 대통령]] [[프랭클린 D.루스벨트]]가 건조 중이던 [[볼티모어급 중순양함]] USS Pittsburgh의 함명을 캔버라로 변경한 점, 슈롭셔 지역은 이 배 말고는 해당 지역의 이름을 딴 배가 없던 관계로 개명에 반발이 있었던 점 등으로 인하여 함명 변경 없이 슈롭셔로 호주 해군에 가게 된다.]가 배치되었다. 그리고 구축함들은 해협 양쪽의 지형을 은엄폐삼아서[* 그림자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미군과 일본군 모두의 레이더로도 구축함과 어뢰정을 감지하기 힘든 지형이었다.] 뇌격을 시도하기 위해 앞으로 내달렸다. 새벽 3시가 되자, 미 구축함 3척이 니시무라 함대에 뇌격을 시작했다. 3시 9분, [[플레처급 구축함]] 멜빈이 발사한 어뢰중 1~3발이 후소의 우현에 명중했다. 후소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으며 대열에서 이탈했다. 이후 연료에 인화되어 침몰했다. 후소의 경우, 불타며 두동강이 났으나, 양쪽 조각 모두 기울지 않고 가라앉았다 해서 논란이 있었다.[* 이 증언을 한 사람들 중에서 파고다 마스트에 대해 언급한 사람이 없었기에, 증언의 신뢰성에 의심이 있었다.] 2017년 말에 발견되어 탐사한 결과로는 어뢰에 맞은 함수 부분이 부러져서 휘어진 것으로 판명되었고, 파고다 마스트는 부러져서 사라져 있었다고 해서, 증언이 맞는 게 아닌가 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여지는 듯 하다. 이후 후소는 순양함 루이스빌에게 추가로 포격을 받았으나, 일반적으로는 멜빈의 단독 전과로 본다. 후소의 승조원들은 아사구모에 의해 구출되었으나, 아사구모마저 격침되면서 결국 10명만이 살아남았다. 어뢰들은 후소에게만 달려든 것이 아니었다. 미 구축함들의 어뢰는 구축함 야마구모를 격침하고 미치시오와 아사구모[* 미치시오는 추가 공격을 받고 격침되었고, 아사구모는 이후 항해 능력을 일부 수복하여 표류하면서 퇴각을 시도했으나 느린 속도로 인해 실패하고 최종적으로 격침되었다.]를 항해 불능 상태로 만들었다. 새벽 3시 11분이 되자, [[플레처급 구축함]] 몬슨(Monssen)과 킬렌(Killen)이 추가적으로 뇌격을 했고, 1~2발이 기함 야마시로에 명중했다. 그 결과 야마시로는 느려졌고, 좌현으로 기울었다. 후미의 탄약고 2개에 침수도 발생했다. 야마시로는 3시 40분에 함수 부분에 어뢰 한대를 더 맞았다. 니시무라는 함대가 입은 괴멸적인 피해에도 불구하고, 연합함대로부터 받은 명령, 즉 구리다 함대의 돌입을 지원하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계속 전진한다. === 최후의 전함간 포격전 === ||[[파일:bb48-Surigao-c1a.jpg|width=400]]|| ||웨스트버지니아가 제출한 보고서에 나오는 레이더 추적 기록 점선으로 표시된 Able이 야마시로로 보이고, 지그재그 기동을 하면서 돌격하다 반전한 Baker가 모가미로 보인다.|| 새벽 3시 16분경, [[콜로라도급 전함]] 웨스트버지니아가 미 전함중에서는 홀로 야마시로와 모가미를 포착한다. SG 레이더로 포착한 거리는 38킬로미터 거리였다. 올덴도르프 제독은 니시무라 함대가 구축함들에게 유린당할 때까지 기다리며, 웨스트버지니아로부터 들려오는 보고를 받는다. ||[[파일:USS_West_Virginia_(BB-48)_firing_during_the_Battle_of_Surigao_Strait_in_October_1944.jpg|width=400]]|| ||니시무라 함대에 포격 중인 웨스트버지니아|| 새벽 3시 50분, 모가미와 야마시로가 이를 악물고 20.8킬로미터 거리까지 다가오자, 웨스트버지니아는 레이더 사격통제 시스템으로 적을 조준해서 16인치 주포 8문으로 일제 사격을 시작하고, 도합 93발의 주포를 퍼붓는다. 웨스트버지니아의 주포 사격은 첫 사격부터 야마시로에게 명중했다. 이후 6척의 전함 중에서 제대로 사격한 것은 최신 사격통제장치를 갖춘 웨스트버지니아, 캘리포니아, 테네시 3척 뿐이며, 나머지 세 척은 구식 사격통제장치의 저성능 때문에 제대로 포격하지 못했다. 메릴랜드는 남들의 포격으로 일어나는 물보라를 보고 대충 포격이라도 했고, 미시시피는 마지막 순간에 적을 발견하고 일제사격이라도 한 번 해봤지만, 펜실베이니아는 대상을 찾지 못했고 사격 선상에 아군 함정이 있어서 결국 제대로 쏘지도 못했다. 덧붙여서 미시시피의 포격은 전사(戰史)상 전함이 전함에게 가한 마지막 포격이다.[* 이렇게 명확히 기록된 계기가 좀 웃긴데, 올덴도르프 제독이 사격 중지 명령을 내리고 나서, 함대의 전함과 순양함의 전 포문이 침묵하는데 혼자 뿜 하고 일제사격을 해버린 것...] 그 결과 이 해전은 세계 해전사에서 수상함들로만 이루어진 마지막 해전이자 전함들끼리 포탄을 교환한 마지막 해전이며 여기서 가라앉은 일본 전함 야마시로는 전함 주포에 가라앉은 최후의 전함으로 기록된다. 1, 2번 포탑으로 사격을 가하며 응전하던 야마시로는 [[플레처급 구축함]] 베니언(Bennion)의 뇌격을 추가로 맞은 후 주포탑 탄약고가 폭발하였고, 파고다 마스트가 무너져 내리며 대파되었다. 4시 17분, 더이상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한 함장 시노다 대좌는 총원 퇴함을 명령했고, 약 2분 뒤, 야마시로는 함미 방향부터 심해의 무덤속으로 가라앉았다. 니시무라 제독 이하 지휘부 및 시노다 대좌 이하 함 승조원 중 대다수가 전사했고, 생존자는 포로가 되어 전후 귀국한 10명 정도 뿐이었다. === 일본 함대의 퇴각 === 포문을 연 것은 전함만이 아니었으며, 그 앞열의 순양함들도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후일에 말하기를 '''360도 전 방향에서 강철이 폭포처럼 쏟아졌다'''고 할 정도. [[모가미급 중순양함]] 모가미는 포틀랜드의 8인치 주포 사격에 맞아 함교와 대공사격 관제소가 대파되었고, 함장과 부장이 전사, 포술장이 직무를 대리했다. 궁지에 몰린 모가미와 구축함 [[시구레]]는 남쪽으로 도망치기로 한다. 그러나 도망치려는 와중에, 시마 함대의 기함 나치가 모가미의 우현을 들이받는다. 모가미는 수면 아래쪽의 우현에 큰 구멍이 났고, 나치의 함수에도 침수가 시작된다. 모가미는 이 충격으로 조타실에 침수가 발생했으며, 어뢰가 폭발해 모가미의 우현 엔진을 날려버린다. 그 와중에도 모가미는 안간힘을 쓰며 남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올덴도르프 제독 휘하의 순양함대와 구축함대, 어뢰정들은 잔존한 시마, 니시무라 함대를 추격하러 남하하고 있었다. 새벽 5시 30분에 포틀랜드, 덴버와 기함 루이스빌의 포격도 모가미에게 쏟아진다. 모가미는 그것을 얻어맞으며 남쪽으로 계속 도망갔다. 결국 사마르 해전이 시작되자 77.2 임무전대의 순양함들은 추격을 포기하고 태피 3을 구하기 위해 돌아간다. 모가미는 살아남은 것이다. 그러나 아침 8시 반이 되자, 운명의 여신이 모가미를 버린다. 모가미의 좌현 엔진이 파괴되었고, 배는 표류하기 시작했다. 표류한지 30분이 지난 9시 2분이 되자, 태피 1의 함재기들이 나타난다. 태피 1과 4는 태피 3을 구원하기 위해 북상하고 있었는데, 같은 이유로 수리가오 해협을 비운 77.2 임무전대를 대신하여 수색하기 위해, 짬을 내서 함재기를 띄운 것이었다. 모가미는 태피 1의 어벤저 뇌격기에게 발견되었고, 공습을 당해 폭탄 2발을 맞는다. 결국 모가미로부터 [[퇴함]] 명령이 내려진다. 시마 함대의 구축함 아케보노가 퇴함하는 이들을 수용한 다음, 모가미를 뇌격 처분했다. 새벽 3시 25분, 시마 함대의 경순양함 아부쿠마는 미 해군 어뢰정 PT-137에게 뇌격을 받아서 1번 보일러 룸이 대파되었으나, 새벽 4시 45분에 가까스로 복구해서 20노트로 도망간다. 5시 35분에 아부쿠마 역시 올덴도르프 제독의 추격함대에게 따라잡히나, 가까스로 탈출한다. 그러나 아부쿠마는 그 다음날인 10월 26일, 구축함 우시오의 호위를 받으며 수리를 위해 다피탄으로 향하던 도중, 미 육군의 폭격을 맞고 격침된다. 결과적으로, 시마 함대는 아부쿠마 한 척을 잃은 데 그쳤으나, 니시무라 함대는 시구레 한 척을 제외하고 전멸했다. === 기타 === 일본 해군의 함대는 올덴도르프 함대의 견고한 방어진을 뚫지는 못했다. 시마와 니시무라의 협력이 전혀 없어서, 니시무라 함대가 먼저 돌입해서 [[개박살]] 난 후 시마 함대가 돌입한 것도 패인이었다. 다만 일본 해군의 전력 대부분, 특히 전함 두 척이 니시무라 함대에 집중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미 해군 전함열의 화력이 워낙 압도적인 상황이었다. 올덴도르프 함대는 오스트레일리아 해군 소속의 2척을 포함해서 79척(이 중 주력함은 전함 6척, 중순양함 4척, 경순양함 4척으로 나머지는 구축함과 어뢰정이었지만 그걸 감안해도 압도적인 전력차이다.), 이에 대해 니시무라, 시마 두 함대를 합쳐도 14척, 별도 행동중이던 시마 함대 휘하의 21구축대까지 포함시켜도 17척이었다. 시마 함대가 협력해서 같이 진입했다고 한들 돌파의 가능성은 애초부터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당시 개량을 받지 못한 미국의 구식 전함 2척은 밤에 상대가 안 보여서 명중탄을 내는게 불가능에 가까웠다. 전함 미시시피는 보이는게 없다고 그냥 멍 때리다가 교전이 끝났다고 하자 ~~혼나기 싫어서인지~~ 그때서야 딱 1발만 쏘고 전투를 끝내기도 했다. 6척의 전함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레이더 등의 개량을 받은 전함만이 일했던 것. 그리고 미국 함대는 함대전을 예상하지 못해서 철갑탄 수량이 상당히 적었다는 걸 감안하면, 철갑탄이 다 떨어지고 거의 고폭탄만 남은 미국 해군은 생생한 시마 함대에 보다 취약했다. 미친척하고 시마 함대가 돌격했다면 뚫고 나갔을 가능성 자체는 있었던 셈. 레이테 만 해전의 일본측의 빡빡한 시간 스케쥴이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만약 충분한 시간과 연료[* 일본의 시간 스케쥴이 빡빡해져 버린 이유 중 하나는 연료부족이 심해져서 이동시간, 루트까지 연료 문제가 적용되었기 때문이다]가 있었으면 시마와 니시무라 함대가 함께 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케쥴에 맞춰서 레이테 만으로 가기 위해선 니시무라 함대가 바로 닥돌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스케쥴이 촉박했다. 시마 함대 소속이지만 별개 행동을 했던 16전대는 레이테 섬 돌입에 성공했다. 이들은 원래 구리다 함대에 소속될 예정이었다가 시마 함대로 소속이 변경된 뒤, 별도 행동을 했는데,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별도로 서술된 '1차 다호 작전'에 서술되어 있다. 수리가오 해협에선 미군에게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니시무라 함대의 돌입을 알고 나서 77.2 임무전대가 단종진으로 전개하자, [[더글러스 맥아더]]는 올덴도르프 제독에게 전함의 포격전을 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가 거절당한다. 이후 상륙지가 위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미 육군 지휘부는 상륙함에서 전부 내려, 필리핀 내륙으로 '''이동된다.''' == 엔가노 곶 해전 == [[일본어]] :エンカノ岬沖海戦 [[영어]] : Battle of Cape Engaño === 홀시의 추격 === 10월 24일 오후 4시 40분, 3함대 예하 38.3 임무전대는 오자와 제독의 함대 위치를 파악하고 홀시에게 보고했다. 홀시는 오자와를 때려잡으러 북상을 시작한다. 10월 25일 새벽 2시 50분, 홀시는 3 함대에 배속된 6척의 고속전함 전부를 34 임무부대로 재편성한 뒤, 윌리스 리 제독에게 34 임무부대를 맡아 오자와 함대를 쫒아 북상하라고 지시한다.[* 앞서 말한 산 베르난디노 해협을 방어하기로 한 (구) 34 임무부대와 다름에 주의.] 홀시 제독은 일본 항공모함을 완벽하게 끝장내기 위해, 미처 제독의 공습과 함께 전함의 주포 사격을 퍼부을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 홀시는 항공모함의 전술적인 운용에 대해서는 전부 마크 미처 제독에게 위임하게 된다. 34 임무부대가 편성될 즈음 수리가오 해협 해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고, 구리다 함대는 산 베르난디노 해협을 막 통과한 상태였다. 덧붙여서, 킨케이드 제독으로부터 첫 지원 요청 무전이 온 것은 이보다 50분 전인 새벽 2시, 수리가오 해협에서 교전이 벌어질 것이 분명할 때였다. === 엔가노 곶의 항공전 === ||[[파일:Zuikaku_at_Cape_Engano.jpg|width=400]]|| ||공습당하는 즈이카쿠(왼쪽)과 즈이호(추정. 오른쪽). 좌측 하단에 즈이카쿠를 향해 급강하 중인 [[SB2C 헬다이버]]도 있다.|| 25일 새벽 미해군 3함대는 180대의 항공기를 발진시켰다. 먼저 발진한 공습 선도기는 7시 12분에 이미 접적보고를 올린 상태였다. 미 해군 함재기 편대는 아침 8시에 오자와 함대의 상공에 도달한다. 전투기들은 항공 초계중이던 30여대의 일본기를 전부 격추했고, 급강하 폭격기와 뇌격기들은 공습을 진행한다. 그날 저녁까지, 3함대는 오자와 함대를 상대로 527 [[소티]]를 기록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Lowering_the_flag_on_Zuikaku.jpg|width=250]]||<:>[[파일:attachment/LASTBANZAI.jpg|width=250]]|| ||퇴함 도중 마지막 경례를 하고 있는 즈이카쿠의 승조원들||퇴함 도중 마지막 반자이를 외치는 즈이카쿠의 승조원들|| 홀시의 3함대는 엔가노 곶에서 오자와 함대와 교전에 들어가 큰 피해없이 항공모함 [[즈이카쿠]], 경항공모함 [[즈이호]], [[치토세]]를 격침시키는 등의 성과를 올렸다. 즈이카쿠는 연합함대와 오자와가 예상했듯이, 홀시가 북상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중 하나였으며, 항공모함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많은 7발의 어뢰와 9발의 폭탄을 흠씬 두들겨 맞고 좌현으로 전복된 뒤, '''출격 열흘 전에 제독으로 진급한 함장''', 카이즈카 타케오와 842명의 승조원들의 시신과 함께 가라앉았다. [[진주만 공습]]에 참가한 6척의 일본군 주력 항모들 중 미드웨이 해전 때 가라앉은 [[아카기(항공모함)|아카기]], [[카가(항공모함)|카가]], [[히류(항공모함)|히류]], [[소류(항공모함)|소류]], 이후 필리핀 해 해전 때 가라앉은 [[쇼카쿠]]를 빼고 마지막인 즈이카쿠가 가라앉음으로써 일본 항공전대는 사실상 붕괴됐다. 그 외에도 3함대는 구축함 아키즈키를 격침시키고, 경항모 [[치요다]]와 [[쿠마급 경순양함]] 타마를 대파시켰다. 타마는 이스즈의 호위를 받으면서 퇴각하였으나, 이스즈는 치요다를 구하라는 명령을 받고 이탈한다. 이후 구축함 시모츠키가 함께하나, 시모츠키 역시 즈이호를 도우라는 명령을 받고 이탈한다. 타마는 홀로 오키나와로 향하다가 미군의 [[발라오급 잠수함]] 잘라오에게 발견되었고, 뇌격을 받아 격침되었다. 잘라오는 이것이 첫 출동이었고, 타마의 생존자는 한 명도 없었다. 치요다는 2번째 공습이 끝난후 휴가가 견인하려고 하였으나, 세번째 공습으로 포기한다. 이후 이스즈가 3번이나 승조원들을 구하려는 시도를 하였으나, 계속되는 미군의 공습을 피하다가 이스즈 역시 공습에 손상을 입고 말았다. 이스즈는 남을 돕기에 앞서 스스로를 구해야할 상황이 되었고, 치요다로부터 승조원들을 구출하려는 시도는 실패하고 만다. 이후 치요다는 북쪽으로 느리게 도망가다, 듀보세 제독이 이끄는 미 해군 추격함대의 공격으로 생존자 없이 격침되었다. 이제 오자와 함대에는 항공전함 휴가, 이세, 그리고 경순양함 오요도와 이스즈, 그리고 구축함 8척이 남았다. 오자와는 기함을 침몰한 즈이카쿠에서 오요도로 옮긴뒤 철수했다. 홀시의 3함대를 끌어낸다는 미끼 작전은 성공했고, 작전 성공을 구리다 함대에 무전으로 알렸으니 더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자와의 기대와는 다르게, 그 무전은 구리다 함대에 끝내 전해지지 않았다. === THE WORLD WONDERS === 일반적으로는 니미츠 제독이 보낸 제목의 메시지가 유명하나, 사실 하나만 보낸 것이 아니다. 킨케이드 제독은 수리가오 해협 해전이 시작되는 25일 새벽 2시에 3함대를 처음으로 호출해서, 3개 항모 전단을 꼭 싹 끌고가야 했는지 애걸복걸한다. 이 당시만 해도 킨케이드는 34 임무부대와 38.4 임무전대가 산 베르난디노 해협을 방어하고 있는 줄 알았다. 새벽 3시~4시 즈음에 수리가오 해협 해전이 끝나자, 킨케이드 제독은 홀시 제독에게 다시 메시지를 보낸다. 7함대의 77.2 임무전대에 소속된 전함들이 교전을 했으며, 그 결과 탄약이 심각하게 부족하다는 애걸복걸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홀시는 7함대 세력이 막강한데 뭐가 문제냐 라는 반응을 보였다. 덧붙이자면 77.2 임무전대는 니시무라 함대를 괴멸시킨 이후에도 탄약이 부족한 상황이 전혀 아니었지만,[* 전술했다시피, 아예 한 번도 함포사격을 하지 못한 펜실베이니아와 딱 한 번 일제사격한 미시시피도 있을 뿐더러, 가장 많이 사격을 한 웨스트버지니아도 철갑탄의 절반도 안 쏜 상태였다. 단, 펜실베이니아와 미시시피가 제대로 함포를 못 쏜 것은 사격 통제장치가 웨스트버지니아보다 구형이라서 난전 상황에서 아군 오폭을 주저하다 놓친 것이다. 또한 7함대 본연의 임무는 해상포격지원이라 가진 포탄 절반 이상이 고폭탄이고 함대 결전에 필요한 철갑탄 재고가 부족했기에, 훨씬 규모가 큰 구리타 함대와 맞부딪혔을 경우 포격전 중 철갑탄이 다 떨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다.] 홀시가 이 사실을 알 도리는 없었다. 정리하자면, 두번째 메시지는 킨케이드 제독이 엄살을 부린 것. 25일 아침 6시 45분을 기점으로 사마르 해전이 벌어지자, 태피 3의 아수라장으로부터 온갖 무선이 날아들기 시작한다. 킨케이드 제독은 원래의 평서문에 더해, 문장을 점점 더 간략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보내기 시작한다. >"My situation is critical. Fast battleships and support by air strikes may be able to keep enemy from destroying CVES and entering Leyte. >내 상황이 위급하다. 고속전함과 항공지원이 있다면, 적이 호위항공모함을 파괴하고, 레이테에 진입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8시 0분에 킨케이드 제독이 보냄. 홀시는 이 호출문을 듣고 깊게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홀시는 오전 10시 이전까지 킨케이드 제독의 메시지를 하나도 전달받지 못했다고 변명했다.[* 즉, 뒤늦게 전달되었다고 변명한 것.] 그러나 이후 38.1 임무전대의 지휘관인 매케인 제독이 자신은 이 메시지를 받았다고 폭로했고, 후에 홀시는 킨케이드가 곤경에 처한건 알았지만, 야마토같은 게 튀어나와서 근거리에서 호위항공모함에게 주포를 쏴대는 어마무시한 상황씩이나 될 줄은 몰랐다고 변명했다. >Fast Battleships are Urgently Needed Immediately at Leyte Gulf >레이테 만에 고속 전함이 긴급하게, 즉시[* 동어 반복으로 강조.] 필요하다. >8시 22분에 킨케이드 제독이 보냄. >Need Fast Battleships and Air Support >고속전함과 항공지원이 필요함. >9시 5분에 킨케이드 제독이 보냄. >4 Battleships, 8 Cruisers Attack Our Escort Carriers >전함 4척, 순양함 8척이 아군의 호위항공모함을 공격중 >9시 7분에 킨케이드 제독이 보냄. 여기까지 다다르자, 니미츠 제독은 더 이상 상황을 좌시할 수 없었고, 홀시에게 34 임무부대의 위치를 묻는 식으로 완곡하게 의사를 표명하고자, 아래와 같이 메시지를 보낸다. >TURKEY TROTS TO WATER >GG[* 시작.] >FROM CINCPAC >ACTION COM THIRD FLEET INFO COMINCH CTF SEVENTY-SEVEN >X[* 수신인과 본문을 구분.] >WHERE IS RPT WHERE IS TASK FORCE THIRTY FOUR > RR[* 끝.] >THE WORLD WONDERS > >''해석을 막기 위한 더미 문자'' >태평양 함대 사령부로부터 >수신인 : 3함대 지휘부, 해군장관,[* INFO COMINCH : COMINCH는 해군장관이지만 여기선 CNO인 [[어니스트 킹]] 본인을 지칭한다.] 77임무부대[* CTF SEVENTY-SEVEN : 태피3는 77 임무부대에 소속되어 있었다.] >어디 있는가, 반복한다.[* RPT : repeat.] 34임무부대는 어디 있는가. >''해석을 막기 위한 더미 문자'' 위의 메시지가 홀시에게 전달될 때는 기가 막히게도 아래와 같은 문장이 되어 있었다. >WHERE IS RPT WHERE IS TASK FORCE THIRTY FOUR THE WORLD WONDERS >어디 있는가, 반복한다. 34임무부대는 어디 있는가. '''온 세상이 알고 싶어한다'''[* 쉽게 말하면, "도대체 어디 있는거야, 딴짓 하지 말고 얼른 나와!" 정도 될 내용이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인고 하니, 통신을 보낼 때는 도청 방지를 위해 아무 문구나 집어넣어서 보내게 된다. 왜냐하면 위에서 보듯이 문장에서 어떤 문구는 고정될 수 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수신인이 그렇고, Yours sincerely같이 예의상 붙이는 관용어구가 그렇다. 그리고 미국은 일본의 외교 암호를 해독할 때 같은 방식으로 공략에 성공했다. 그 문제의 문구는 '''덴노헤이카 반자이'''. 추축동맹인 독일 또한 '''하일 히틀러'''를 써넣다가 에니그마가 해독되어 영국한테 털렸다. 그런데 하와이의 통신장교가 [[체스터 니미츠]]의 전문을 보내면서, 하필 '''온 세상이 알고 싶어한다'''라는 문구를 넣은 것이다. 이 문구는 [[발라클라바 전투]]의 경기병대의 돌격을 다룬 테니슨 경의 시구이며, 마침 그 날이 경기병대의 돌격 기념일이라 해당 문구를 골랐던 것이다. 이를 기함인 전함 뉴저지의 통신요원들이 번역하면서, 뒤의 더미 문구를 통신 주문에 그대로 붙여버린 것이다. 결국 실제로는 니미츠가 보낸 내용이 아니었지만, 홀시의 입장에선 자신은 이전에 니미츠가 어려울 때 그를 도와준 바 있는데, 이제 와서 본인이 큰 실수를 하자 니미츠가 이를 조롱하는 문구를 보낸 셈이 되었다. 홀시는 입으로 이 문구를 다 읊으며 읽었다고 하는데, 마지막 문장을 읽자마자 항공모함 갑판에 자신의 모자를 내동댕이치고는, 분노의 괴성을 지르며 니미츠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리고 나서는 그 자리에서 흐느꼈다. '''멘붕'''한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니미츠에 대한 분노일 것이다. 니미츠를 절대적이게 믿고 지지한 홀시 입장에서 저런 명령문이 왔을 때 그 심정은...] 그의 참모장이었던 로버트 카니 제독[* 로버트 카니 제독도 오자와 함대를 추격한 것을 반대하긴 했다.]은 홀시 제독 앞에 마주 서서 홀시 제독의 어깨를 붙잡아 흔들고는, 진정하라고 이야기한다. 홀시는 그제서야 이성을 찾았지만, 오자와 함대를 격멸하겠다는 목적을 바꾸진 않았다. 3함대는 이후로도 1시간 동안 더 북상하며, 오자와 함대의 잔존 함정을 추격한다. 결국 홀시는 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38.1 임무전대에게 구원을 명령한다. 하지만 38.1 임무전대의 지휘관 매케인 제독은 이미 새벽에 3함대와 합류하는 침로가 아닌 7함대 사이의 어중간한 침로를 타면서 물타기를 하고 있었고, 8시 0분의 킨케이드 제독의 메시지를 받자마자 이미 독단적으로 남쪽으로 전속 항해를 시작한 상태였다. '''이것이 이전 문단에서 언급한 매케인 제독의 항명 행위이다.'''[* 출처는 상원위원이었던 [[존 매케인]] 3세가 자신의 할아버지에 대해 쓴 책이다.] 9시 20분이 되자, 구리다 턴이 시전된다. 적이 퇴각한다는 사실에 안도한 킨케이드 제독은, 곧 어리둥절해서 다시 한번 메시지를 보낸다. >Who is guarding the San Bernardino Strait? >산 베르난디노 해협은 누가 지키고 있는가? >10시 5분에 킨케이드 제독이 보냄. === 홀시의 복귀 === 11시 15분이 되자, 쪼이는데 질린 홀시는, 윌리스 리 제독이 이끌던 고속전함 위주의 34 임무부대에게 반전하여 남하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이미 구리다 함대는 산 베르난디노 해협을 통해 탈출한 뒤였고, 리의 고속전함 함대는 치요다와 오자와 함대의 잔존 함정에게 포격을 개시하기 일보 직전이었으며[* 홀시가 고집을 꺾지 않았았다면, 연합함대의 다음 장관이 될 사람이 여기서 죽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항공모함 전단의 구축함들은 남하하기 전에 2시간 반동안 급유를 해야 했다. 이렇게 뒤늦은 타이밍에 결정을 뒤집는다면, 홀시는 아무런 성과도 얻을 수 없었다. 홀시는 [[클리블랜드급 경순양함]] 산타페, 모바일, [[위치타급 중순양함]] 위치타, [[뉴올리언스급 중순양함]] 뉴올리언스의 4척과 9척의 구축함을 떼어 38 임무부대를 만들고, 로렌스 듀보세 제독에게 추격을 계속하도록 지시하고는, 아래의 지침을 준다. >No survivors are permitted to be rescued. >어떤 생존자도 구출되지 못한다. >해설: 주어가 없으므로, 일본 해군이 항공모함의 운용 요원들을 구출하지 못하게 하고, 38 임무부대도 그들을 건져주지 말라는 이야기다. ||[[파일:Japanese_light_carrier_Chiyoda_sinks_during_the_Battle_of_Cape_Engaño,_25_October_1944.jpg|width=300]]|| || 38임무부대가 촬영한 치요다의 최후 || 리의 고속 전함 함대가 반전한 것은, 대파된 치요다와 구출되지 못한 승조원들의 최후를 아주 조금만 미룬 것에 불과했다. 38 임무부대는 홀시의 명령에 따라 경항모 치요다에서 단 한명의 생존자도 남기지 않는다. 홀시는 또한 구색을 맞추기 위해, 함대에서 가장 빠른 전함인 [[아이오와급 전함]] '뉴저지'와 '아이오와'의 2척, 그리고 3척의 순양함과 8척의 구축함으로 구성된 34.5 임무전대를 34 임무부대에서 독립 편성하여 오스카 뱃저 2세 제독에게 맡긴 뒤, 리 제독은 나머지 4척의 전함으로 뒤따르도록 하고, 34.5 임무전대를 최대 전속으로 태피 3를 향해 남하시킨다. 어쨌거나 구리다 함대는 도망갔으므로 34.5 임무전대는 얻을 것이 없어보였지만, 치쿠마의 승조원들을 구출해서 도망가던 구리다 함대의 구축함 노와키를 산 베르난디노 해협에서 포착해서 격침시킨다. 노와키는 [[헤일스톤 작전]]에서 아이오와급 전함에게 추격당하고도 살아남았지만, 이번에는 운이 따르지 않았다. 노와키는 추격함대의 순양함에게 포격을 맞았고, [[플레처급 구축함]] 오웬의 뇌격을 맞아 격침당했다. 치쿠마와 노와키의 모든 승조원이 익사했다. == 사마르 해전 == Battle off Samar[* of의 오타가 아니다. 사마르섬 바깥의 근해에서 벌어진 전투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サマル沖海戦 ||[[파일:Samar.jpg|width=400]]|| ||붉은 선 : '''2함대 1유격부대, 구리다 타케오 제독[* 붉은 선의 경로를 잘 보면 어느 순간 돌아가는 걸 볼 수 있는데 이게 구리다 턴.]''' 검은 실선 : '''77.4.3 임무분대 (태피3), 클립튼 앨버트 프레드릭 스프레이그 제독''' 우측의 검은 점선 : 77.4.2 임무분대 (태피2), 펠릭스 스텀프 제독 하단의 검은 점선 : 77.4 임무전대 본대 (태피 1, 4), 토마스 스프레이그 제독[* 태피3의 스프레이그와는 '''다른 인물'''이다. 골때리게도 둘 다 [[미국해군사관학교]] 1917년에 졸업한 '''임관동기'''인데, 둘 모두 [[태평양 전쟁]]에서 항공모함 기동부대를 지휘하며 이 레이테 만 해전, [[오키나와 전투]]에서 활약하는등 동선이 상당히 겹치는데다 군생활도 똑같이 중장까지 달고 전역했기 때문에 라이트 밀덕들에게는 왠지 동일 인물로 오인되는 경우가 많다. 정작 실제로는 고향도 다르고 다른 동네 다른 학교 졸업한 생판 '''남남'''이다. 흔히 '지기(Ziggy)'라는 별명의 태피3 사령관 스프레이그 제독이 그나마 더 자주 언급되는 편이다.] || === 구리다 함대의 필리핀해 진출 === 홀시가 이끄는 미 해군 3함대가 북상하면서 산 베르난디노 해협이 텅 비었다. 그 덕분에 구리다 함대는 10월 25일 새벽 3시에 무사히 해협을 통과할 수 있었다. 이들은 해협을 통과한 뒤 레이테 만을 향해 남하한다. 동이 트자, 7함대의 호위 함공모함 함대인 77.4 임무전대는 항공작전을 개시한다. 임무전대 예하의 호위 항공모함 부대는 태피 1, 2, 3, 4로 세분화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항공기를 발진시키기 위해 일제히 맞바람이 부는 북쪽으로 항진하기 시작한다. 그중에서, 태피 3의 호위 항공모함 5척은 상륙한 육군을 위한 항공 지원을 준비했고, 세인트 로에서는 태피 3가 담당한 북쪽 해역의 대잠 초계를 위해 정찰기 4대를 발진시킨다. 그리고 6시 37분, 정찰기를 조종하던 장교는 '''홀시의 3함대[* 즉, 논의만 되고 편성하지 않은 (구) 34 임무부대.]가 전개했을 것이라 믿은 장소에서, 일본 함대가 기동하고 있다'''는 보고를 올린다. 태피 3의 지휘관이던 클립튼 스프레이그 제독은 당연히 믿지 않았고, 좀 더 다가가서 확인하라고 내리 갈굼을 시전한다. 그래서 정찰기는 좀 더 다가갔고, 보고를 올린다. >I can see pagoda masts. I see the biggest meatball flag on the biggest battleship I ever saw! >파고다 마스트[* [[후소급 전함]]으로 대표되는 일본군 특유의 가느다랗고 높게 쌓여 있는 적층식 [[함교]].]가 보이고, [[야마토급 전함|제가 본 가장 큰 전함]]의 [[욱일기|가장 큰 미트볼 깃발]]이 보입니다! >---- > - 윌리엄 C. 브룩스 소위 정찰기는 일본 해군의 전함 야마토와 수많은 수상함들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구리다 함대 역시, 6시 45분에 항공모함 위주의 미해군 함대를 발견하고는, 머리 위의 정찰기에게도 대공포 사격을 한다. 정찰기가 야마토를 발견할 무렵, 구리다 함대는 태피 3의 북서쪽 방향으로 불과 3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기에, 태피 3의 견시도 이 대공 사격을 목격했다. 구리다 제독은 이 함대를 홀시가 이끄는 3함대라고 판단하고, 함재기의 공격을 받아 불덩어리가 되기 전에 항공모함을 벌집으로 만들어 수장시키기 위해서 즉각 교전에 들어갔다. === 양측 함대의 세력 비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