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미국 영화 감독]] [[분류:1886년 출생]] [[분류:1912년 데뷔]] [[분류: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분류:1962년 사망]][[분류:부다페스트 출신 인물]][[분류:헝가리 영화 감독]][[분류:유대계 미국인]][[분류:헝가리계 미국인]][[분류: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 ||<-5>
{{{#e5d85c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e5d85c 아카데미 시상식}}}]]''' }}} || ||<-5> [[파일:oscar_logo.svg|width=80]] || ||<-5> [[아카데미 감독상|{{{#e5d85c '''감독상''' }}}]] || || '''제15회[br](1943년)''' || {{{+1 → }}} || '''제16회[br](1944년)''' || {{{+1 → }}} || '''제17회[br](1945년)''' || || [[윌리엄 와일러]][br](미니버 부인) || {{{+1 → }}} || '''마이클 커티즈'''[br]('''[[카사블랑카(영화)|카사블랑카]]''') || {{{+1 → }}} || [[레오 맥캐리]][br]([[나의 길을 가련다]]) || ||<-2> '''{{{+1 마이클 커티즈}}}[br]Michael Curtiz''' || ||<-2>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마이클 커티즈.jpg|width=100%]]}}} || ||<:>'''{{{#white 본명}}}'''||마노 카르테즈 카미너 Mano Kertesz Kaminer || ||<:>'''{{{#white 국적}}}'''||[[미국]] [[파일:미국 국기.svg|width=28]]|| ||<:>'''{{{#white 출생}}}'''||[[1886년]] [[12월 24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 ||<:>'''{{{#white 사망}}}'''||[[1962년]] [[4월]] [[10]][[일]] (향년 75세) [[미국]] [[캘리포니아주]] [[할리우드]]|| ||<:>'''{{{#white 가족}}}'''||배우자 루시 도레인 (1918~1923) 릴리 더미타 (1925~1926) 베스 메러디스 (1929~1961) 자녀 2|| ||<:>'''{{{#white 직업}}}'''||[[영화 감독]]|| ||<:>'''{{{#white 활동 기간}}}'''||[[1912년]] ~ [[1961년]]|| [목차] [clearfix] == 개요 == <[[로빈 후드의 모험]]>, <[[카사블랑카(영화)|카사블랑카]]>, <[[화이트 크리스마스]]> 등 걸작 영화들을 감독한 것으로 유명하며 당시 [[할리우드]]에서 고평가 받는 감독 중 한명이었다. 대표적인 클래식 할리우드 고용 감독으로 꼽히는 감독이다. 자기 색도 그리 강하지 않았고 만든 장르도 다양했고, 심지어 다작이었다. [[워너 브라더스]]가 총애했던 감독이기도 했다. 대표작 대다수가 당시에도 지금도 대중들에게 사랑받아 지금까지도 언급되지만 평단에서는 [[존 포드]], [[하워드 혹스]], [[알프레드 히치콕]], [[오슨 웰스]], [[레오 맥캐리]], [[프랭크 카프라]]보다는 대접이 박했던 편이다. 하지만 고용 감독으로서 실력이 대단했으며, 특히 필름 느와르에서 나름 분명한 자취를 남겼기에 여전히 잊혀지지 않고 언급되는 편. 인성과 사생활에서는 좋은 소리를 못 들었다. 성격이 괴팍해 현장에서는 폭군이나 다름없어 같이 일했던 배우들도 흉볼 정도였고, [[경기병대의 돌격]] The Charge Of The Light Brigade이라는 영화에서 트립와이어로 말 스턴트한답시고 125마리 말 중 25마리나 폐사시켜 당시에도 승마 애호가로 말을 아꼈던 [[에롤 플린]]과 ASPCA에게 [[동물 학대]]로 욕과 소송을 바가지로 들어 먹었다.[* [[태종 이방원(드라마)/말 학대 및 죽음 사고 논란]]에서 1939년 이후 할리우드에서 트립와이어로 말 쓰러뜨리는 게 금기시되었다는 서술이 있는데 이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당시 에롤 플린과는 몸싸움 직전까지 갔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이 둘은 [[로빈 후드의 모험]]에서 당시 같이 출연한 드 하빌랜드까지 포함해 다시 작업 하면서 평생 가는 대표작을 만들었다.] 사생활도 복잡해 도미할 당시에도 혼외자식이 있었다고 한다. 사생아 딸은 거의 의절급으로 평생 사이가 안 좋았다고. 유대인이라 [[홀로코스트]]의 간접적인 피해자이기도 하다. 본인은 타이밍 좋게 빠져나와 미국 정착에 성공했고 워너브라더스 사장 잭 워너의 도움으로 어머니도 빼내서 데려오는데 성공했지만, 누나네 가족은 빼내는 데 실패해 [[아우슈비츠]]로 보내졌고 매형과 두 자식은 사망했다고 한다. 비록 1933년 헝가리 국적을 포기해 쭉 [[헝가리계 미국인]]으로 살아갔지만, 헝가리에서는 국민 감독급 취급을 받아 전기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