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이슬람 도시 기구의 도시)] [[파일:바스라 이라크 풍경.jpg]] 운하와 샤트 알 아랍 사이의 시가지 [[파일:바스라 이라크 밤.png]] 바스라 대교 (일명 이탈리아 다리) [[파일:바스라 이라크.webp]] 구도심의 운하와 옛 건물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asra_location.png]]|| ||||<#000000><:>{{{#white {{{+3 바스라 (이라크)}}}}}}|| ||<-3><:> [include(틀:지도, 장소=이라크 바스라)] || [목차] [clearfix] == 개요 == [youtube(_c7AuSQdvow)] [[아랍어]]: {{{+1 البصرة }}} [[영어]]: Basra [[이라크]] 남부에 위치한 [[도시]]. [[인구]]는 약 130만명으로 [[이라크]] 제3의 도시이다. 알 바스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바스라는 이라크의 유일한 초거대 [[항구도시]]로서 특히 [[석유]] 관련 운송에 중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수심이 얕아 [[심해]]로의 접근은 불가능하여, 그 경우는 걸프 해역에 직접 접한 [[움카스르]] [[항구]]에서 처리한다. [[중세]] 시기 번영할 때에는 복잡하게 놓인 [[운하]] 때문에 [[동방]]의 [[베네치아]]라 불리기도 했으나 현재는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오염된 상태이다. 다만 샤트 알 아랍을 이용한 수운은 여전히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 지역이 격전지 중 하나였는데 이라크 입장에서 여기를 뺏기면 이라크는 [[내륙국]] 신세가 되기 때문이다. 내륙국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내륙국은 [[바다]]가 없어 갇혀있기에 발전에 좋지 않은데 수도 바그다드가 위치한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강 유역 일대와 산악지대가 많은 북부 쿠르디스탄 지역을 제외하면 [[사막]] 지형이 대부분인 이라크는 말이 필요없다. 그래서 [[이란군]]과 이 도시와 [[위성도시]] 움 카스르를 둘러싸고 격전을 벌여 간신히 사수해 내었다. 이 전쟁은 결국 이란이 무한 버티기로 나가 둘다 원하는 목표를 달성 못하는 상태여서[* 애당초 인구라든지 경제력이라든지 [[국력]]이라든지 군사력이라든지 모든 면에서 이라크가 이란에 열세였다. 이란혁명 이후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틈을 타서 이라크의 후세인이 무모하게 선빵을 날렸다가 발리다시피한 전쟁이었다. 당시 이라크는 주로 소련제 구식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으나 이란은 당시로써는 최첨단 미국제 전투기 F-14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란도 이 도시를 손에 넣는데는 실패했었다. [[쿠웨이트]]와 가까우며 실제로 [[사담 후세인]]은 [[오스만 제국]] 때 쿠웨이트가 바스라 주 소속이었단 것 하나만을 근거로 [[1990년]] 쿠웨이트를 무작정 침공했다가 [[걸프 전쟁]]에서 패퇴해 쿠웨이트를 토해내야 했을 정도였다. == 특징 == [[파일:바스라 이라크 8.jpg|width=760]] 지리적으로는 [[페르시아 만]]에서 55km 떨어져 있고 샤트 알 아랍 수로에 접해 있다. 이 지역은 과거 [[수메르]] 문명이 위치했던 곳과 가까운 곳이며 [[에덴동산]]의 위치로 추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초기 [[이슬람]]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지역이다. [[파일:external/gckuwait.com/Gulf%20Consult%20-%20City%20of%20Basra%20Master%20Plan%2002.jpg|width=500]] 항구도시면서도 특이하게도 [[운하]] 도시다. 샤트 알 아랍 수로에 접해 있기 때문인데, 이리저리 연결된 운하가 도시를 관통하므로 [[중동]]의 [[베네치아]]라 불리기도 한다. 이 운하들은 20년 전까지는 실제 운송에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강 상류 [[튀르키예]]의 댐 건설 사업으로 강물의 수량이 부족해져서 수질이 악화되고 운하 운송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실질적 무역항 역할은 위성도시인 [[움카스르]]가 행한다. 수로로 접한 항구도시라는 점에서 [[스페인]]의 [[아프리카]]라고 불리는 [[세비야]]와 유사하다. === 자원의 보고 === [[이라크]]는 [[세계]] 4위의 [[원유(연료)|원유]] 매장량을 가진 나라인데, 대부분이 바스라 근처에 묻혀있다. 바스라 지역 [[유전]] 예상 지역의 80%는 아직 탐사조차 안된 상태. 따라서 인근에 유정이 많다. 현재 [[키르쿠크]], [[모술]]과 함께 바스라와 [[나시리야]]가 주 유전지대이며 [[쿠르디스탄]]에 위치한데다 튀르키예와 국경 분쟁을 겪는 [[키르쿠크]]나 [[모술]]과 달리 바스라는 안정된 남부에 위치해 생산에 차질도 없다.[* [[모술]] 그리고 [[키르쿠크]] 등은 튀르키예가 과거 [[오스만 제국]] 때 행정구역이었다는 것과 [[튀르크]]계 주민이 일부 거주한다는 것을 근거로 영유권을 주장 중이다.] 그리고 [[사막]]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의외로 풍요로운 [[곡창지대]]라서 주로 [[밀]], [[보리]], [[쌀]], [[옥수수]], [[귀리]] 등이 산출되고 있으며 가축 또한 생산되고 있다. 곡식 외의 농작물의 경우 [[오아시스]]에서 나는 고품질의 [[대추야자]]로도 유명하다. 바스라의 곡창은 50 [[이라크 디나르]]권에도 도안되어 있다. == 역사 == [[파일:이라크 중세 바스라.jpg]] [[주바이르]] 동북부에 남아있는 옛 바스라 (البصرة القديمة) 유적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Alibinabitaleb.jpg|width=350]]|| ||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모스크 || 바스라는 [[수메르]]의 고대 도시들과 가까이 위치하지만 [[메소포타미아 문명]] 시절에는 바다 아래에 존재하던 땅이었다. 이후 수면이 낮아지며 그 자리에 땅이 생기게 되었고 중동 지역의 중심지 중 하나가 된다. 바스라는 636년에 [[이슬람 제국]]의 군사 주둔지 ([[암사르]]) 및 경비 초소로 건설되었다. [[페르시아 만]]에 가깝고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및 동쪽의 [[국경]]에 접근이 쉬워서 점차 주요한 도시로 성장했다. 정치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거점으로써 [[이슬람 정복]] 당시 페르시아 전역의 본부와도 같은 곳이었고, 바스라 총독은 이라크에서 [[호라산]]에 이르는 이슬람 제국의 동쪽 절반을 다스리는 중요한 역할이었다. 656년에는 이슬람 제국의 첫 내전인 [[1차 피트나]]가 바스라에서 벌어진 낙타 전투와 함께 시작되기도 하였다. 바스라는 8세기부터 9세기까지 문화의 중심이었고, [[종교]]와 문예가 발달하였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신밧드]]가 바로 바스라 출신인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다만 9세기 말엽 흑인 노예 봉기인 [[잔즈 반란]]과 10세기 [[카르마트]]의 습격을 겪으며 경제적인 쇠퇴와 함께 토양의 염분화 조절이 실패하자 930년경 기존 도시를 버리고 현재의 위치에 새 도시를 세웠다. 옛 도시는 현대 [[주바이르]] 내에 유적으로 남아있고, 새 도시에는 1123년 성벽이 둘러졌다. 1258년 [[몽골 제국|몽골]] 침공기에는 바그다드의 선례를 보고 바로 항복하여 그와 같은 파괴와 학살을 당하지 않았다. 따라서 1411년 ~ 1432년까지 [[잘라이르 왕조]]의 수도이기도 하였다. 17세기와 18세기에는 [[영국]], [[네덜란드]], [[포르투갈]]의 무역상들이 들어와 국제적 도시가 되었고 이후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에 의해 점령당했다. ||[[파일:이라크 바스라 6.jpg|width=500]]|| || 영국 위임 통치기의 우표 || 뒤이은 영국의 [[위임통치]] 기간 동안 바스라는 [[제국주의]]의 중동 거점으로 성장하였다. 아무래도 다른 나라와 가까운 데다가 주요 [[항구]]도시이다 보니 [[근대]] 및 [[현대]]에도 이래저래 [[전쟁]]이나 [[혁명]]에 휩쓸린 이력이 있다. 근현대에서의 바스라와 관련된 주요 역사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 [[제1차 세계대전]] [[영국]]과 [[오스만 제국]] 간에 [[바스라 전투(1914년)|바스라 전투]]가 있었다. 전투에서 승리한 영국이 바스라를 점령하였다. * [[제2차 세계대전]] [[러시아]]로의 보급물자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는 중요한 항구 역할을 했다. * [[이란-이라크 전쟁]] 심심하면 [[이란]]의 포격을 받았고, "라마단 작전"이나 "카르발라 5 작전" 같은 여러 격렬한 전투의 전장이 되었다. * [[걸프전]](1991) 제 2의 도시이므로 당연히 전쟁에 휘말렸고 수많은 유적과 시가지가 파괴되었다. 걸프전 중에 일어난 [[전투]] 중, [[쿠르스크 전투]] 이후 최대의 전차전이라 불리는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Medina_Ridge|메디나 능선 전투(Battle of Medina Ridge)]]"의 무대가 바스라 근처이다. 걸프전이 끝난 후에는 바스라가 사담 후세인에 반대하는 저항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지만 이 저항은 폭압적으로 진압되었다. 1999년에 다시 한번 저항 운동이 일어났지만 이 역시 대량 처형 등을 통해 진압되었다. * [[이라크 전쟁]](2003) 바스라 외곽이 초기 이라크 전의 [[바스라 전투(2003년)|격전지]]가 되었다. * 바스라 전투(2008) 반미 무장단체인 메흐디 민병대를 바스라로부터 몰아내기 위해 이라크군이 대규모 공세를 펼쳤다. 6일간에 걸친 전투에서 1,000명의 사상자가 났다. == 기후 == 북쪽 [[시리아]]와는 다르게 [[아라비아 사막]]에 있다보니 당연히 날씨가 매우 덥다. 특히 바스라 일대는 아랍 지역에서도 가장 더운 지역 중 하나이다. 눈은 꿈도 못꿀 정도이다. [[쾨펜의 기후 구분]]으로는 더운 사막기후(BWh)에 속한다. 그나마 해안에 접해있기 때문에 내륙의 도시보다는 [[강수량]]이 약간 많은 편. [[7월]]의 평균 기온은 34°C로 사막의 높은 일교차를 생각해 보아도 매우 높은 편이고, 평균 최고 기온은 41°C에 달한다. 이 경우 체온보다 높은 기온이기 때문에 [[선풍기]]를 쐬면 더 덥다. 덥다기보단 '''뜨겁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당연히 한국에서 제일 더운 [[대구광역시]] 정도는 그냥 쌈싸먹는다. [[스페인]]에서 유일하게 겨울에도 더운 [[세비야]]보다도 덥다. 바스라 등 남부 이라크 일대는 덥다고 알려진 [[아프리카]] 어지간한 곳보다 덥다.[* 사실 아프리카는 덥다는 인식이 있지만 이는 [[사하라 사막]] 등 [[북아프리카]] 일부의 이미지에 불과하고 [[적도]] 근처는 의외로 비가 자주 와서 그렇게 덥지 않다. 아시아에 비해서 아프리카는 대륙 서안이라 건조한 편이라 그늘에 들어가면 쾌적하기까지 하다.] 그나마 [[습도]]가 동부 아시아보단 낮다는게 위안이면 위안. 한겨울인 1월달의 최저 [[기온]] 평균은 12°C, 낮 기온은 18°C 정도로서 평균 13도로 [[서울]]의 [[4월]] 기온, 아열대인 [[홍콩]] 및 [[타이베이]]의 1월 한겨울 기온과 비슷하다. [[1921년]] [[7월 8일]]에 58.8°C를 [[기록]],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의 기온으로 최고기록. ~~[[오이먀콘]]과 무려 129°C 차이가 난다~~ [[2016년]] [[7월 22일]]에도 낮 기온 53.8℃, 이어진 밤 기온 38.8℃라는 무시무시한 [[폭염]]이 기록되었다. 이렇게 어마무시한 날씨는 덥다기보단 뜨겁다고 해야 맞을 정도인데 옆의 [[쿠웨이트]]도 이와 비슷한 날씨를 보인다. == [[석유]] 중심 [[경제]] == [[파일:이라크 바스라 5.jpg|width=660]] 바스라의 쇼핑몰 [[파일:바스라 이라크 9.jpg|width=660]] 길거리 풍경 [[이라크]]라는 나라가 그렇듯이, 이 도시도 주로 [[석유]]가 주 수입원이다. 이라크 최대의 [[유전]] 중 몇 개가 이 근처에 있고[* [[키르쿠크]], [[모술]] 그리고 이 바스라와 나시리아 등이 이라크의 주요 유전지대다.] 대부분의 석유 수출분이 이 도시의 알 바스라 석유 터미널에서 출항한다. 직접적인 원유 산업뿐만 아니라 관련 석유화학 산업도 있어서 [[폴리에틸렌]]이나 [[PVC]] 같은 석유 화학 제품을 생산하기도 한다. 석유 덕분에 운송 및 물류 산업도 발달했다. 바스라는 이라크의 6개 항구 모두에 대한 근거지인데, 이들 항구 중 움 카스르(Umm Qasr)가 가장 크다. 허나 석유의 주산지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전쟁'''으로 인하여 파괴된 기반시설 복구 부진 등 정부의 무능이 장기화 됨에 따라, [[2018년]]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10329488|소요사태]]가 일어났다. [[산유국]]임에도 석유값이 비싸 에너지가 모자라는 상황은 [[베네수엘라]]와 비슷하다. [[파일:이라크 바스라 미래.webp]] 향후 시내 중심부에 대대적인 개발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른바 이라크의 맨해튼을 만들려는 계획이다. == 기타 == * 이곳은 한번도 [[ISIL]]에게 점령당하지 않았다. 이라크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최[[후방]]이기 때문. 현재 이라크 내 ISIL이 거의 소탕된 상태라 과거 전쟁이 있었지만 이제는 축복의 도시라고 불린다. 아직도 정국이 불안한 모술이나 [[바그다드]]를 대체할 이라크 경제의 미래로 전망된다. * 역시나 '''[[대항해시대]]'''로 꽤나 잘 알려진 도시이다. [[대항온]]에서는 [[우르]]를 끼고 있기 때문에 [[아덴]]에서 줄기차게 드나들어야 한다. * 범우사의 [[아라비안 나이트]]에서는 '바소라'로 오역되었다. [[중역]]의 폐해로 추정된다. * 1991년 도라에몽 극장판 도라비안 나이트에서 하룬 알 라시드 왕의 친필 통행증서를 받으면서 8세기 당시의 바스라 항구으로 가는 장면에 등장한다. == 갤러리 == [[파일:이라크 바스라 2.jpg]] [[파일:바스라 이라크 7.jpg]] [[파일:바스라 이라크 3.jpg]] [[파일:바스라 이라크 2.jpg]] [[파일:이라크 바스라 1.jpg]] [[파일:바스라 이라크 10.jpg]] [[파일:이라크 바스라 4.jpg]] [[분류: 이라크의 도시]][[분류:이라크의 옛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