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오베르뉴론알프의 데파르트망)] ||<-3> '''{{{+1 Savoie}}}[br]사부아''' || ||<-3> {{{#!wiki style="margin: -16px -10px" ||<-2> [[파일:사보이아 공국 국기.svg|width=100%]] || [[파일:840px-Coat_of_arms_of_Savoie.svg.png|width=60%]] || ||<-2> '''깃발''' || '''문장''' ||}}}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 장소=Savoie 프랑스, 너비=100%, 높이=300px)]}}} || ||<-3> '''행정''' || || '''국가''' ||<-2>[[프랑스]] || || '''레지옹''' ||<-2>[[오베르뉴론알프]] || || '''INSEE 코드''' ||<-2>73 || || '''중심도시''' ||<-2>[[샹베리]] || ||<-3> '''인문지리''' || || '''면적''' ||<-2>6,028㎢ || || '''인구''' ||<-2>439,750명 (2020년) || || '''인구밀도''' ||<-2>73명/㎢ || ||<-3> '''하위 행정구역''' || || '''아롱디스망''' ||<-2>3개 || || '''선거구''' ||<-2>4개 || || '''캉통''' ||<-2>19개 || || '''앵테르코뮌''' ||<-2>17개 || || '''코뮌''' ||273개 || ||<-3> '''정치''' || || '''의회 의장''' ||<-2>에르베 게마르([include(틀:공화당(프랑스))]) || || '''의회''' ||<-2>34석 || [목차] [clearfix] == 개요 == [[알프스 산맥]] 서부 현 [[프랑스]]의 사부아(Savoie) 주와 [[오트사부아]](Haute-Savoie) 주에 해당하는 지역. 주요 도시로는 [[샹베리]](Chambéry)와 [[안시]](Annecy)가 있다. [[에비앙]]으로 유명한 [[에비앙레뱅]](Évian-les-Bains), [[1924 샤모니 동계올림픽|1924년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샤모니몽블랑]](Chamonix-Mont-Blanc),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1992년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알베르빌]](Albertville)은 오트사부아에 속한 마을이다. == 언어별 표기 == ||[[프랑스어]]||Savoie (사부아)|| ||[[이탈리아어]]||Savoia (사보이아)|| ||[[프랑코프로방스어]]||Savouè (사부에)|| ||[[독일어]]||Savoyen (자포이엔)|| ||[[영어]]||Savoy (사보이)|| 한국에서는 프랑스어인 사부아보다는 영어에서 유래한 사보이(Savoy)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과거에는 [[사보이아 공국]]도 사보이 공국, [[사보이아 가문]]도 사보이 왕조로 불렀으나 현재는 원어 표기를 존중해 사보이보다는 사부아, 사보이아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 == 역사 == 원래는 현재 [[이탈리아]]의 [[발레다오스타]]와 더불어 [[사보이아 가문]]이 800여년간 대대로 세습해온 영토였으나, [[이탈리아 통일]]전쟁에서 [[나폴레옹 3세]]에게 도움을 받은 대가로 1860년 토리노 조약을 체결하여 [[프랑스 제2제국]]에 [[니스|니차]](Nizza)와 이 지방을 할양하면서, 각각 현재 프랑스 공화국의 [[알프마리팀]] 주와 사부아 지역이 되었다. [[이탈리아 왕국]]은 이 지역을 잃은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 하였고[* [[카보우르]]는 나중에 회고록에서 ''''인생 최악의 순간이었다.''''라고 남겼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도 조상들의 본관을 넘기는 것을 주저하였다. 당시 [[사르데냐 왕국]]의 국방장관 만프레도 판티는 수도인 [[토리노]]가 완충 지대가 사라져 프랑스 위협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안보상 우려가 생길 것을 경고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때 [[무솔리니]]는 [[이탈리아의 프랑스 침공|프랑스를 침공]]하여 사부아를 이탈리아의 행정구역으로 재합병하려 했다. 하지만 1943년 9월 [[나치 독일]]이 사부아를 점령하면서 실패로 끝났고, 전후 프랑스로 반환되었다.[* 반환에서 끝나지 않고 1947년 체결된 [[파리 조약]]에 따라 이탈리아는 프랑스에 소 베르나르 고개와 몽스니 고개 일대를 추가로 할양하였고 오늘날 프랑스-이탈리아 국경이 완성되었다.] == 행정구역 == 사부아는 알베르빌(Albertville), 샹베리(Chambéry), 생장드모리엔(Saint-Jean-de-Maurienne) 아롱디스망으로 나뉘며, 다시 19개의 캉통, 273개의 코뮌으로 구성된다. == 정치 == 오베르뉴론알프 레지옹 의회의 전체 의석 204석 중 사부아에 할당된 의석은 11석이다. == 기타 == 주의 [[문장(그림)|문장]]이 이탈리아의 [[피에몬테]]의 문장과 비슷한데, 두 지역 모두 오랜 세월동안 사보이아 가문의 지배를 받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사실은 아니다. 과거 [[사보이아 공국]] 시절 [[카를로 에마누엘레 2세]]는 이 지역의 이름을 따 사보이아 기병연대를 창설했다. 당시 사보이아 공국을 구성하던 지역들인 사보이아, [[피에몬테]], [[몬페라토]], [[살루초]] 등의 이름을 따 총 5개의 부대를 창설했다. 정식 명칭은 사보이아 제3기병연대[* Reggimento "Savoia Cavalleria" (3º).]로 사보이아가 프랑스로 할양된 이후에도 왕실의 유래가 된 지역이라 이름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탈리아군의 졸전 기록|막장]]이었던 [[이탈리아 왕국군]] 내에서도 손꼽히는 정예 부대였다. [[독소전쟁]] 때 [[독일 국방군]]을 지원하여 파견을 나가 [[소련군]]을 상대로 기병 돌격을 해서 격퇴하는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 세계 각지에는 사보이의 이름을 딴 호텔이 여럿 있는데, [[영국]] [[런던]] 스트랜드 구역의 사보이 호텔(Savoy Hotel)[* 과거 [[사보이아 백국]]의 [[피에트로 2세]]가 사보이아 백작이 되기 전 조카인 [[프로방스의 엘레오노르]]를 위해 [[잉글랜드 왕국]] [[헨리 3세]] 휘하에서 활약한 적이 있었는데 헨리 3세는 피에트로 2세의 공헌을 치하하며 스트랜드와 [[템스강]] 사이의 땅을 주었고 피에트로 2세는 여기에 사보이 궁전(Savoy Palace)을 지었다. 피에트로 2세는 조카 [[보니파초(사보이아)|보니파초]]가 전사한 후 사보이아 백작이 되어 런던을 떠난 후에도 궁전은 남았으나 [[와트 타일러의 난]]으로 불에 타 사라졌고 [[헨리 7세]]에 의해 그 터에 병원이 세워졌다. 이 병원은 19세기까지 남았다가 1864년 화재로 불탔는데 이 자리에 들어선 건물이 바로 사보이 호텔이다.] 이 가장 유명하다 할 수 있으며, 대부분 이 런던 사보이 호텔의 유명세에 기댄 것들이라 볼 수 있다. 한국에도 서울, 대구 등에 사보이 호텔이 있으며, [[대한민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구 마산시) [[창원 NC 파크]] 야구장 옆에도 '사보이 호텔'이란 호텔이 있다. 구 마산시에서 셋밖에 없던 호텔급 숙소였는데, 이 호텔은 위치가 야구장 바로 옆인 덕에 [[NC 다이노스]] 선수단 및 마산야구장에 원정 온 팀 선수단이 숙소로 자주 이용했으며, 한창 [[에릭 테임즈]]가 KBO를 씹어먹고 다닐 때 호텔 지하에는 테임즈 이름을 딴 '템즈 노래방'까지 있었다(현재는 폐업). [각주] [[분류:유럽의 지명]][[분류:오베르뉴론알프의 데파르트망]][[분류:프랑스-이탈리아 관계]][[분류:사보이아 가문]]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사보이,version=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