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의 광역자치단체장(민선 8기))] [include(틀:역대 서울특별시장)] ||<-2> [[서울특별시|[[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width=20]]]][br]'''{{{+1 서울특별시장}}}[br]서울特別市長[br]Mayor of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오세훈|[[파일:제39대 서울특별시장 오세훈.jpg|width=100%]]]]}}} || || '''현직''' ||[[오세훈]] ,,/ 제33·34·38·39대 (민선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4]]·[[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5]]·[[2021년 재보궐선거|7]]·[[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8]]기),, || || '''취임일''' ||[[2021년]] [[4월 8일]] || || '''정당''' ||[include(틀:국민의힘)] || || '''공관''' ||[[서울특별시장 공관]] || [목차] [clearfix] == 개요 == '''서울특별시장'''은 [[서울특별시]]를 대표하고, 그 사무를 총괄하는 [[광역자치단체장]]이다. 임기는 4년이며, 최대 3선까지 연임할 수 있다.[* 3선 연임 단체장이 나온 다른 몇몇 광역자치단체장과 달리 서울특별시장은 12년 연속으로 재임한 사람이 없다. 사상 최초로 3선 서울특별시장이 된 [[박원순]]도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로 당선되어 초선 임기를 시작했고, 3선 임기 중 성범죄 피소 직전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사망 사건|자살]]했기 때문이다.] 중임에는 제한이 없으므로, 중간에 낙선하거나 중도 퇴임한 기록이 있으면 연속 재임 기록이 중단되고, 이후 다시 출마할 수 있다.[* 현직 시장인 [[오세훈]]이 예시. 민선 4·5기 서울시장직을 수행하다가 민선 5기 출범 1년이 약간 지난 후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투표율이 33.3% 밑으로 뜨자 시장직을 사퇴했었다. 이후 10년 만에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민선 7기 시장으로 돌아왔고,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며 헌정 사상 첫 '''4선''' 민선 광역자치단체장이라는 유례없는 대기록을 세웠다.] == 특수성 ==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특별시]]라는 상징성과 많은 [[인구]] 규모만큼이나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권한[* 상하수도를 비롯한 시군에서 다루는 업무 상당수를 손수 다루는 데다 수도를 관할하는 만큼 그 관할 구역 내에서 더 강한 권한과 위상을 지닌다.]과 나라에 미치는 영향력도 매우 크며, 정치적 비중도 아주 크다.[* 선출직 공무원으로 보면 대통령 바로 다음의 위상으로 정치권의 별칭이 '''소통령'''(小統領)일 정도. [[경기도지사]]가 급증한 인구를 기반으로 위상에 도전하고 있으나, 도지사와 시장의 권한 차이 문제로 인해 서울시장에는 아직 우위를 점하지는 못하고 있다.] 다른 [[광역자치단체장]]들이 [[차관]]급의 대우를 받지만, '''서울특별시장은 유일하게 [[대한민국의 장관#s-5|장관급]]이라는 매우 높은 대우를 받는다.'''[* 일단 선출직이고, 광역자치단체장들 중 유일하게 장관급 예우를 받는 만큼 위상에 있어 정치적 권력이나 실권 측면은 장관을 아득히 넘어선다고 보는 게 정설이다. 다만 어찌 됐든 지방직이라 국가직 위주의 [[의전서열(대한민국)|국가의전서열]] 목록에는 없다. 본래는 (서울특별시장도) 국가의전서열에 있었지만, [[2005년]] [[참여정부]] 때부터 명단에서 빠졌다. 참고로 장관급 인사 중에서 제일 마지막 순번이었다.] 서울특별시는 '서울특별시 행정특례에 관한 법률' 에 의거해서 [[행정안전부장관]]의 지휘를 받지 않고 [[국무총리]]가 직할하도록 되어 있다.[* 지방채 발행 등은 [[행정안전부장관]]이 승인하지만, 이 경우에도 [[국무총리]]에게 보고하여야 한다. 나아가 행안부가 서울시청 자치사무에 대해 감사를 하고자 할 때에도 총리의 조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서울특별시 행정특례에 관한 법률 제4조)] 따라서 선술했듯이 장관급이라는 매우 큰 대우를 받으며, 의결권은 없지만 [[국무회의]]에 직접 참석하여 발언이 가능하다. 이는 옛날 [[조선]] 때도 비슷했는데, 관찰사(지금의 도지사) 등은 참판(차관)급(종2품) 대우에 그쳤지만, [[한성판윤|한성부판윤]](지금의 서울시장)은 판서(장관)급(정2품)이라는 상당히 높은 대우를 받았다.[* 한성판윤 또는 그냥 판윤으로도 불렸으며, 조선 초에는 한성부윤이 정식 명칭이었으므로 한성부윤 혹은 부윤으로도 불렸다.] 일제강점기에는 [[경성부]]가 된 특성상 경성부윤이라고 불렸다. 한국 정계에서는 대통령으로 가는 중간단계로도 여겨지고 있다. 다른 광역자치단체장들보다 월등히 높은 위상 때문에 서울시장을 거치고 나면 차기 대권의 유력 후보에 포함되고 거론된다. 그러나 실제 서울시장 출신 중 대통령이 된 사례는 [[이명박]]이 유일하고 [[박원순]], [[오세훈]], [[고건]] 등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이들 모두 끝내 대통령 당선에는 이르지 못했다. 서울시장 경력이 대권 도전에 도움은 되지만 꼭 그 지지도와 위상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경기도]]의 인구가 [[서울특별시]]를 추월하기는 했지만, 서울특별시장의 특별 대우는 여전하다. 서울특별시장은 '수도의 시장'으로서 정치적 영향력 외에도 [[지방자치법]]에서 특례를 인정받아 지방자치법과 '[[서울특별시/지리#s-2.2|서울특별시 행정특례에 관한 법률]]'을 통해 일부 특례를 적용받지만, [[경기도지사]]는 다른 도지사들처럼 지방자치법만을 적용받기 때문이다. 다른 광역자치단체들의 경우 지방채 발행이나 자치사무의 감사를 행안부장관이 하지만 서울특별시는 행안부장관이 국무총리에게 손수 보고해야 한다. 또한 국가공무원의 임용 및 징계 등은 해당 주무부처 장관에게 있으나 [[대통령령]]에서 정하는 범위 내에서는 서울특별시장이 행사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서울특별시의 행정부시장 2인과 기조실장의 경우 서울특별시장이 국무총리를 경유하여 대통령에게 임명안을 상신하여 대통령 명의의 임명장을 받게 되며, [[행정안전부]]에서 국가직을 파견보내는 타 시도와는 달리 '''시장이 지명한 [[서울특별시청]] 내부 인사'''가 국가직으로 옷만 갈아입고 부시장 또는 기조실장이 된다. 더불어 서울시 소속 공무원의 상훈 수여도 타 시·도에서는 [[행정안전부장관]]을 경유해야 하는 것과는 달리, 서울특별시장은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에게 바로 상신할 수 있다.] 다만 장관급의 대우를 받는다고 해서 명목상 서열까지 다른 광역자치단체장보다 높은 건 아니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에서 서울특별시장이라고 특별히 권한이 더 크지도 않으며, 발언권도 똑같이 공평하게 받는다. 서울특별시가 설립하고 운영 중인 [[서울시립대학교]]의 운영위원장도 당연직으로 맡고 있다. 이 운영위원장을 이사장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보이는데, 서울시립대학교는 아직 법인화가 되지 않았으므로 이사장은 잘못된 표기이다. === 가장 강력한 독이 든 성배 === || '''선거''' || '''낙선자''' || '''비고''' || ||<|2>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1995년]] || [[박찬종|{{{#ffffff 박찬종^^2^^}}}]] ||계속된 낙선[*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1998년 재보궐선거#s-3|1998년 7월 재보궐선거]],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후 '''정계 은퇴''' || || [[정원식|{{{#ffffff 정원식^^3^^}}}]] ||낙선 후 '''정계 은퇴''', 소속 정당인 [[민주자유당]] 참패 여파로 [[김대중]]의 정계 복귀 || ||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1998년]] || [[최병렬|{{{#ffffff 최병렬^^2^^}}}]]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 |노무현 탄핵 소추안]] 제출 후 가결로 인한 정치적 [[역풍]]으로 [[한나라당]] 대표직 사퇴, 이후 '''정계 은퇴''' || ||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02년]] || [[김민석(1964)|{{{#ffffff 김민석^^2^^}}}]] ||지방선거 패배 후 [[새천년민주당]] [[제16대 대통령 선거]] 후보였던 [[노무현]]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탈당하여 [[정몽준]] 캠프로 이적하였지만 이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노무현으로 단일화]]되며 복당하였고, 이로 인해 [[철새(정치)|철새]] 이미지가 생기며 '''원내 복귀까지 장장 18년 소요'''[* [[2002년]]에 [[영등포구 을]] 지역구 의원을 사퇴하고 출마한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한 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는 낙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는 [[비례대표]]로 출마했지만 역시나 낙선, 그러다가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원래 지역구였던 영등포 을에 출마하여 장장 '''20년''' 만에 다시 당선되면서 마침내 원내 복귀에 성공했다. 또한 국회 복귀까지 텀이 길었던 과정에서 개인적으로는 비리로 인해 출마도 좌절되거나 [[이혼]]도 하는 등 사생활적인 면에서도 고충을 꽤나 겪었다.] || ||<|2>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06년]] || [[강금실|{{{#000000 강금실^^2^^}}}]]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 선언, '''사실상 정계 은퇴''' || || [[박주선|{{{#ffffff 박주선^^3^^}}}]] ||이후 [[광주광역시]] [[동구·남구 을#s-2.1.7|동구]]로 지역구 옮김, 4선까지 성공하며 [[대한민국 국회부의장|국회부의장]] 자리까지 오르지만, 본인의 소속 정당인 [[민생당]]의 몰락과 3위 낙선으로 5선에는 실패[* 이후 [[2021년]] 말, [[제20대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는 당시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였고 본선에서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되며 취임식준비위원장에 임명되었고, [[국무총리]] 하마평에도 올랐지만, 국무총리로는 [[한덕수]]가 임명된다.] || ||<|3>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10년]] || [[한명숙|{{{#ffffff 한명숙^^2^^}}}]] ||이후 [[민주통합당]] 대표 역임과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참패, [[한명숙 불법정치자금 수수 사건|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복역, 사실상 '''정계 은퇴''' || || [[노회찬|{{{#ffffff 노회찬^^3^^}}}]] ||이후 [[정의당]] [[원내대표]], 2018년 [[드루킹]] [[노회찬/일생#s-3.8|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에 연루되어 수사 중 '''투신자살''' || || [[지상욱|{{{#ffffff 지상욱^^4^^}}}]] ||본인의 소속 정당인 [[자유선진당]]의 몰락, [[새누리당]]으로 흡수 합당[* 이후 [[바른미래당]]과 [[새로운보수당]]을 거쳐 현재는 [[국민의힘]] 소속이다.], 이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을 통해 원내 입성에 성공하지만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낙선[* 다만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직후 [[2020년]] [[6월]]에는 국민의힘 산하의 [[정책연구소]]인 [[여의도연구원]] 원장에 임명된다. 수도권 출신의 원외 인사라 당무 집중이 가능한 점이 고려됐다고 한다.] || ||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2011년]] || [[나경원|{{{#ffffff 나경원^^2^^}}}]] ||[[나경원/일생#s-2.2|선거 기간 동안]] 제기된 각종 의혹과 논란으로 인한 이미지 추락, 이후 [[동작구 을]]로 지역구를 옮겨서 4선 의원까지 성공하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지내며 재기하였으나, 연이은 선거에서 패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낙선, [[2021년 재보궐선거]] 서울특별시장 후보 경선 패배, [[국민의힘/제1차 전당대회|2021년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 패배, [[국민의힘/제3차 전당대회|2023년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 출마 좌절.] ||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14년]] || [[정몽준|{{{#ffffff 정몽준^^2^^}}}]] ||[[정몽준/사건사고 및 논란#s-2|버스비 70원]], [[정예선 미개 발언 논란|정몽주니어 논란]] 등으로 인한 이미지 추락, 이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불출마하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새누리당]]을 탈당하며 '''정계 은퇴''' || ||<|2>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18년]] || [[김문수|{{{#ffffff 김문수^^2^^}}}]] ||강성 [[친박]]으로 전향[* [[박근혜 정부]] 이전에는 철저한 비박 정치인이었다.], [[박근혜 석방 집회]] 참석과 [[전광훈]]과의 커넥션으로 인한 [[극우]] 이미지 고착화와 사실상 제도권 정계에서의 축출[*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며 기사회생했다.] || || [[안철수|{{{#ffffff 안철수^^3^^}}}]] ||[[막스 플랑크 협회/연구소|막스 플랑크 혁신과 경쟁 연구소]]로 연수 후 정계 복귀, 차기 대선 지지율 급락[* [[2021년 재보궐선거]]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출마했으며 서울특별시장 후보 지지율도 40%대로 다시 급상승하긴 했으나 [[오세훈]]과의 범야권 단일화 경선에서 패하여 후보에서 사퇴했다. 그러나 자신이 단일화로 양보해준 오세훈이 당선되어 야권에서 생명의 은인으로 감사를 받고 있고 오세훈도 안철수와의 협치를 약속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윈윈이 되었으며 명예로운 패배가 되어 향후 정치 전망이 다시 밝아졌으며 이후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 후 지지율이 한때 15%까지 급상승했으나 이후 상승세가 꺾였고 대선 막판에 과정이 매끄럽지는 못했지만 [[윤석열]]과 [[윤석열-안철수 단일화|단일화]]하고 윤석열이 당선된 후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 되었고, [[2022년 6월 보궐선거]] 성남시 분당구 갑에 당선되며 3선 국회의원이 되면서 정치적 입지가 넓어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당선된 [[김기현]]의 득표율의 절반도 못 미치는 득표율로 낙선하면서 대통령 선거 주자급이라 평가받던 정치적 위상에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 || [[2021년 재보궐선거|2021년]] || [[박영선|{{{#ffffff 박영선^^2^^}}}]] ||[[박영선/비판 및 논란#s-19|선거 기간 동안 잦은 실언과 네거티브 전략]]으로 인한 이미지 추락과 큰 표차로 참패하며 정치적 입지 좁아짐[* [[중소벤처기업부장관]]까지 사퇴하고 출마한 선거에서 패배하였기에 정치 경력이 끊어졌다. 또한 이 낙선은 박영선 개인에게는 첫 낙선이며, 특히 3선을 한 자신의 정치적 고향과 같은 [[구로구]]에서도 오세훈 후보에게 패배했기에 필연적으로 정치적 입지가 좁아질 것이다. 또한 더불어민주당에게도 연승하다 처음으로 패배한 선거라서 더욱더 뼈아프다. 또한 당시 선거를 진두지휘했던 이낙연과 친낙계 또한 엄청난 타격을 입고 나가 떨어졌다. 거기다가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를 상대로 패배하여 당 전체가 다운된 상황이라 박영선의 정치적 입지가 되살아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12년 만에''' [[구로구청장]]을 탈환하는 등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는 악재의 연속이다.] || ||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22년]] || [[송영길|{{{#ffffff 송영길^^2^^}}}]] ||정치적 입지 좁아짐[* 본인이 5선 의원 및 [[인천광역시장]]을 하면서 정치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해 오고 다져 온 [[계양구 을]] 지역구와 정치적 고향인 [[인천광역시]]를 버리고 [[서울특별시]]로 거처까지 옮기면서 출마를 강행했으나, 대패하여 뱃지만 잃었다. 세간에서는 향후 정치적 행보가 불투명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더군다나 2022년 1월에 일찌감치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까지 선언한 상태라서 향후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계속 갈지 어떻게 될지 모르게 되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3/0011223803|#]],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사건]] 책임론과 그에 따른 탈당. || ---- 특이하게도 서울특별시장 선거 패자는 그걸 끝으로 아예 정계를 떠나서 잊혀지거나, 정치 생활은 연명하되 상승세는 확 꺾이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보이는데, 다음은 그 목록이다. 위첨자 표시된 숫자(^^2, 3^^ 등)는 서울시장 선거 순위이다. 당선인들 역시 [[이명박]] 전 시장 이후로 계속 끝이 안 좋다.[* 이명박 또한 대통령 퇴임 후에 감옥에 간 만큼 끝이 좋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서울시장 퇴임 1년 후에 대통령이 되었으므로 서울특별시장으로서의 끝만 보면 매우 성공적이었다. 반면 오세훈(1·2기)은 무상급식 문제로 불명예 사퇴했고 박원순은 자살했으니 서울특별시장으로서의 끝이 최악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박원순이 사망하고 오세훈이 10년 만에 서울특별시장으로 복귀하였다.] 다만 위에서 거론된 사례들을 비교해 보면 각 낙선자의 사례간에 차이가 커서 일률적으로 일일이 비교하기는 어렵고, 특이한 [[징크스]]라기보다는 그냥 서울특별시장이라는 직위 자체의 특수성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다. 일단 서울특별시장 자체가 선출직 공무원 중에서는 수도이자 인구 900만 명 도시이기 때문에 정치적 위상이 높은 자리[* [[국무총리]] 및 장관직은 임명직이니 선출직의 위상을 가질 수 없고,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경우 정수만 300석에 이르는 데 비해 서울특별시장은 광역자치단체장 17석 중 1석이다. 차관급인 타 광역자치단체장들에 비해 서울특별시장은 위에 썼던 것처럼 장관급이라 의전상 위상이 더 높다. 또한 광역자치단체장들은 장관직에 비하면 권한이 매우 강한 편에 속한다. 특히 [[경기도지사]]는 1360만의 인구가 거주하는 [[경기도]]의 대표자라는 점에서 서울시장과 비슷한 위상을 지니며, 21세기 들어서면서부터는 서울시장과 마찬가지로 당선되는 순간부터 잠재적 대권주자 후보군에 들어간다. [[손학규]], [[김문수]], [[남경필]], [[이재명]], [[김동연]] 등이 그들이다.]이고, 정치적으로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를 비롯한 주요 선거들마다 승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표밭으로 여겨지는 서울특별시(수도권)의 지지를 얻어야 당선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비수도권 거주자도 서울시장만큼은 누군지 알지만, 반대로 수도권 거주자는 [[경기도지사]]나 [[인천광역시장]] 정도만 알지 충청도나 전라도, 강원특별자치도, 경상도, 제주특별자치도, 대전광역시, 광주광역시, 대구광역시, 울산광역시, 부산광역시 등 지방 지역들의 시장이나 도지사는 누군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사실 이것도 어디까지나 케바케라 수도권 시도지사보다도 전국민에게 인지도가 높은 지방 시도지사는 드물게 있다. 대표적인 예가 [[홍준표]] 대구광역시장/전 경상남도지사다. 홍준표 시장은 서울특별시에서 4선 의원을 지냈고 유력 대권 주자로서 전국민에게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수도권 주민들이라 해도 홍준표 정도의 대권 주자급 지방 시도지사는 잘 알고 있다. 다만 여기에는 일종의 함정이 숨어있는데, 홍준표의 경우 그 이력에 <[[제19대 대통령 선거]] [[자유한국당]] 후보> (2위), <초대 자유한국당 대표>, <[[제20대 대통령 선거]] [[국민의힘]] 경선 2위>등 쟁쟁한 전국구 정치인 경력이 왕창 들어가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까 전국민이 홍준표의 이름을 알기는 잘 알 것인데, 그 이유는 그가 경상남도지사 및 대구광역시장을 지내서 아는게 아니라 주요정당 대표를 지내고 대통령 선거에서 2위까지 한 적이 있는 정치인이니 당연히 아는 것이 아니냐는 것. 말하자면 '개인적 지명도가 특별히 높은 인물이 광역지자체장을 역임한 사례'와 '해당 지자체장이라는 직위의 지명도'는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현재 기준으로 (민선) 서울특별시장을 거쳐 대통령에 이른 인물이라곤 겨우 [[이명박]]밖에 없는데, 이는 6공 이후 우리나라의 정치 제도 특징상 서울특별시장은 국내의 선출직 공무원 중에서는 사실상 2인자로서 소통령이라고 불릴 정도지만, 실제 업무라곤 지방자치단체의 장으로서 중앙 정계와는 한 발짝 떨어져 있다는 특성을 가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으로 이르는 정치적 경력을 착착 밟아나가고 있는 유력 대권 후보급 주요 정치인의 입장에서 보면 중앙 정계에서 물러나 서울특별시장에 도전하기보다 국회의원이나 장관 등 중앙 정계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것이 더 매력적이고 안정적인 선택지로 여겨질 가능성도 충분히 높은 것. 실제로 역대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도전한 주요 정치인들의 사례를 보더라도 성공적인 경력(국회의원, 국무위원 등)을 이어가고 있던 도중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한 사례보다는[* 광역자치단체장은 국회의원 및 국무위원과 겸임이 불가능하므로 시장 선거에 도전하려면 먼저 의원직 혹은 장관직부터 사퇴해야 한다. 즉 국회의원이나 장관에 재직 중이라면 일단 그 경력부터 포기해야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도전할 수 있다. 반면 국회의원과 국무위원은 서로 겸임이 가능하므로 장관+국회의원 경력을 유지한다면 그 위상은 서울특별시장에 비해 좀 떨어진다 해도 일단 탄탄한 중앙 정계 경력을 지속하고 있는 셈이 된다. 물론 2002년 김민석, 2011년 나경원, 2014년 정몽준, 2022년 송영길처럼 의원직을 포기하거나 2021년의 박영선처럼 장관직을 포기하고 서울특별시장에 출마한 사례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들의 경우 제각기 특수성이 있는데, 일단 2011년 나경원/2021년 박영선의 사례는 개인의 정치적 커리어 이전에 소속 정당의 서울시장(각각 오세훈/박원순)이 자폭하여 열린 재보궐선거라는 특수성이 있다. 즉 개인의 경력을 위한 도전이기도 하지만, 소속 정당의 입장에서 서울특별시장이라는 핵심 [[요직]]을 상대 당에게 빼앗기는 상황, 특히 처참한 격차로 패배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일단 그 상황에서 경쟁력 있는 정치인에게 '당이 위험하니 [[험지(정치)|험지]]로 나가달라'고 요청한 성격이 강하다. 즉, 해당 정당 차원에서 커리어상 적절한 정치인을 찾아 공천할 만한 여유도 없는 상황이었고, 어설픈 카드를 내밀었다가는 처참한 패배로 정당 자체가 큰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 단, 2011년 서울시장 보선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은 이듬해 [[새누리당]]으로 간판을 바꾸고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에서 연달아 승리하였다.]에서 두 정치인이 자신들의 희생 가능성을 감수하고 구원투수로 등판한 격이다. 또한 2014년 정몽준의 사례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년의 전성기]]를 놓친 이후 장기간의 침체기에 빠져 있던 정몽준이 상황 타개를 위해 던진 승부수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정몽준이 '''성공적인 정치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고 보기에는 단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을 이어가고 있을 뿐, 여야를 불문하고 한손에 꼽히는 주요 대권 주자 중 하나이자 사실상 [[무소속]]이나 다름없는 일인 정당으로 거대 정당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전성기의 위세에 비하면 퇴조가 명확했다.], 일시적 정치 활동 중단이나 [[낙선]] 등으로 인해 기존 경력이 중단된 상태에서 다시 정치 무대에 복귀하기 위한 토대로써 지방선거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역대 서울특별시장 중 가장 성공적인 정치적 경력인 대통령을 거친 이명박의 경우를 보더라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의 불법 선거 운동으로 의원직을 상실당할 위기에 쳐하자 자진 사퇴한 후 결국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가 사면 복권된 후 서울시장 도전으로 정계 복귀를 시도한 뒤 성공한 케이스다. [[제16대 국회]] 당시 [[정치]]에 갓 입문한 [[초선(동음이의어)#s-4|초선]] 국회의원에 불과하였던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 선언을 하고 정계와 잠시 거리를 두고 있다가,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에 복귀한 뒤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케이스다. 이런 점을 종합해 보면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 패배한 사람은 그것을 끝으로 정계를 떠나서 잊혀지거나 설사 정치 생활은 연명하되 상승세가 확 꺾이고 입지도 좁아지는 경우가 많은 이유가 무엇인지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서울특별시장 자체가 선출직 공무원들 중 대통령에 이어 사실상 2위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서울특별시장에 도전했던 정치인이 정치적 상승세를 보이려면 먼저 대권 주자급이 되어야 한다. 즉, 서울특별시장 후보급에서 경력이 상승할 길[* 서울특별시장까지 지낸 정치인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더 윗급의 자리는 오로지 대통령 하나 뿐이라고 봐도 무방하고, 비슷한 위상의 자리라고 해도 국무총리, 거대 양당 당대표 정도밖에 없다.] 자체가 워낙 좁으니 그 좁은 길로 들어가지 못하면 상승세가 확 꺾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서울특별시장 후보급 경력의 정치인 정도라면 이미 정치 경력 자체가 상당히 긴 원로급 정치인[* 물론 2002년의 [[김민석(정치인)|김민석]], 2006년의 [[오세훈]], 2011년의 [[박원순]] 같은 예외도 있다.]일 가능성이 높고, 나이 역시 적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니 선거에서 패배하면 재기와 재도전을 하지 못하고 정계 은퇴 수순을 밟게 되더라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더구나 지방자치단체장인 서울특별시장에 도전하는 정치인 중 중앙 정계에서의 경력이 단절되어 지방선거를 통해 정계에 복귀하려는 이들의 비중이 상당하다는 점도 생각하면 정계 복귀에 실패하면 정치적 은퇴 수순을 밟게 되는 것 역시 이상한 일이 아닌 셈. 뿐만 아니라 [[이명박]] 이후 서울특별시장을 거친 이들은 어째서인지 말년이 안 좋다. [[이명박]] 전 시장의 경우 임기를 무사히 마쳤고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까지 [[제17대 대통령 선거|당선]]되었으나, [[이명박/재판|각종 범죄 사실들]]로 인해 징역형을 선고 받아 수감 생활을 했다가 2022년 12월에 사면되었다.[* 사면은 됐지만, 비리로 인하여 이미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전직 대통령 예우]]는 박탈당한 상태라서 사면되었다 해도 경호와 경비를 제외한 기타 모든 예우들은 제공받지 못한다.] [[오세훈]] 시장은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개표 무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재선 임기 시작 1년 1개월 만에 사퇴했다가 [[2021년 재보궐선거|서울특별시장으로 복귀할 때까지]] '''10년'''을 야인으로 지내야 했으며, [[박원순]] 전 시장은 [[박원순 성폭력 사건|여비서 성추행 사건]]으로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사망 사건|피고소된 후 자살]]'''했다. 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해 중도 사퇴를 한 초대 민선 시장 [[조순]] 전 시장을 제외하면 초선 기준으로는 모두 임기를 무사히 마쳤다. 하지만 [[이명박]], [[고건]] 전 시장을 제외하면 [[재선#s-1|재선]]까지 포함했을 때 임기를 무사히 마치지는 못했다. 그리고 [[정태흥]], [[김종민(1970)|김종민]], [[송명숙]], [[권수정]], [[허경영]] 같은 소수정당 소속 후보들은 이런 징크스가 발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대 정당(민주당계 정당 및 보수정당)[*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한 안철수 역시 그의 소속 정당인 바른미래당이 민주당계 정당과 보수 정당이 합당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여기에 포함된다.]과 유력 무소속 후보([[박찬종]], [[박원순]])에게만 한정된 징크스라고 볼 수 있다. 소수 정당 후보들 중 이 징크스가 걸려 말로가 좋지 않았던 김종철, 노회찬 후보는 그나마 이들 중에서는 이름값이 있는 후보였다. 즉 김종철, 노회찬 정도가 아닌 이상 소수 정당 후보들은 서울특별시장에 출마한들 사람들의 주목조차 못 받고, 거대 양당 및 유력 무소속 후보는 큰 관심을 받았다가 낙선, 혹은 당선되고도 불명예 퇴진하면 데미지도 거기에 비례해서 커지는 것이다. === 서울특별시장 선거 100% 적중 지역 === ||<-6> '''서울특별시장 선거 적중 지역 결과''' || || 연도 || 당선인 || 중구 || 양천구 || 영등포구 || 강동구 || ||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1995년]] || [[조순]][br](42.4%) || 조순[br](44.1%) || 조순[br](41.8%) || 조순[br](41.7%) || 조순[br](39.8%) || ||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1998년]] || [[고건]][br](53.5%) || 고건[br](54.9%) || 고건[br](54.5%) || 고건[br](53.9%) || 고건[br](52.1%) || ||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02년]] || [[이명박]][br](52.3%) || 이명박[br](50.1%) || 이명박[br](52.6%) || 이명박[br](50.9%) || 이명박[br](55.1%) || ||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06년]] || [[오세훈]][br](61.1%) || 오세훈[br](59.6%) || 오세훈[br](61.5%) || 오세훈[br](60.8%) || 오세훈[br](64.6%) || ||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10년]] || [[오세훈]][br](47.4%) || 오세훈[br](47.6%) || 오세훈[br](47.5%) || 오세훈[br](47.5%) || 오세훈[br](50.0%) || ||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2011년]] || [[박원순]][br](53.4%) || 박원순[br](52.0%) || 박원순[br](53.5%) || 박원순[br](53.6%) || 박원순[br](51.6%) ||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14년]] || [[박원순]][br](56.1%) || 박원순[br](55.3%) || 박원순[br](57.6%) || 박원순[br](56.3%) || 박원순[br](54.5%) ||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18년]] || [[박원순]][br](52.8%) || 박원순[br](52.3%) || 박원순[br](53.2%) || 박원순[br](52.1%) || 박원순[br](52.7%) || || [[2021년 재보궐선거|2021년]] || [[오세훈]][br](57.5%) || 오세훈[br](56.8%) || 오세훈[br](57.5%) || 오세훈[br](58.4%) || 오세훈[br](59.2%) || ||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22년]] || [[오세훈]][br](59.1%) || 오세훈[br](58.5%) || 오세훈[br](58.8%) || 오세훈[br](60.1%) || 오세훈[br](60.6%) || ---- || 득표율 차이(%p) || 1995 || 1998 || 2002 || 2006 || 2010 || 2011 || 2014 || 2018 || 2021 || 2022 || 평균 || || 양천구 || '''0.6''' || 1.0 || '''0.3''' || 0.4 || 0.1 || '''0.1''' || 1.5 || '''0.4''' || {{{#red '''0.0'''}}} || '''0.3''' || 0.47 || || 영등포구 || 0.7 || '''0.4''' || 1.4 || '''0.3''' || 0.1 || 0.2 || '''0.2''' || 0.7 || 0.9 || 1.0 || 0.59 || ---- [[1987년]] 민주화 이후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서울특별시장 선거는 총 10번을 진행하였다. [[전국동시지방선거|지방선거]] 8번, [[재보궐선거]] 2번. 서울특별시는 [[자치구(대한민국)|자치구]]가 25개 있는데, 25개 자치구 중 10번의 서울시장 선거를 정확히 예측한 100% 적중 지역, 즉 구 개표 결과 1위와 서울특별시장 당선인이 일치한 지역은 딱 4개 구가 있다. 나머지 지역은 거의 대부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명숙]] 후보를 더 많이 지지하여 떨어졌다. * [[중구(서울특별시)|중구]] - [[서울특별시청]], [[서울특별시의회]]: 재미있게도 [[부산광역시장]], [[대구광역시장]], [[인천광역시장]], [[울산광역시장]] 선거도 중구 1위가 시장에 당선 된다는 징크스가 있다. * [[영등포구]] * [[양천구]] * [[강동구]] 중구와 영등포구는 대표적인 상업지구로 지역 주민보다 외지인들이 더 많은 곳이고, 목동이 있는 양천구와 둔촌동이 있는 강동구는 주거 지역이다. 중구를 제외하고 나머지 3곳 모두 한강 이남에 있다. 서울시장 선거와 '''득표율까지 가장 가까이 맞히는 지역은 바로 [[양천구]].''' 특히 [[2021년 재보궐선거]]의 경우에는 소수점 단위까지 일치하여 득표율까지 동률이 되었다. 아래는 서울특별시 전체 득표율과 해당 구의 득표율 차이를 정리해 놓은 것이다. == 법적 권한 == >[[https://www.law.go.kr/법령/서울특별시행정특례에관한법률|서울특별시 행정특례에 관한 법률]] >'''제4조(일반행정 운영상의 특례)''' >⑤ 서울특별시 소속 국가공무원의 임용 등에 관한 「국가공무원법」 제32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 제78조제1항ㆍ제4항 및 제82조에 따른 소속 장관 또는 중앙행정기관의 장의 권한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은 서울특별시장이 행사하며[* 이 조항에 따라서 [[서울특별시청]]에 들어가는 국가직공무원인 [[서울특별시 부시장|행정부시장 2인]]과 기획조정실장에 대한 인사권 역시 서울특별시장이 사실상 행사하며, 실제로는 시장의 임명제청에 따라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이 임명'''한다. 따라서 [[대통령실]] 인사검증에서 탈락한 경우, 시장의 임명제청을 대통령이 '''거부'''할 수도 있다. 2021년 4월 [[오세훈]] 시장이 임명제청한 [[황보연]] 기조실장 후보자가 [[청와대]] 인사검증에 막혀 정식 임명을 거부당한 것이 그 예시.], 이와 관련된 행정소송의 피고는 같은 법 제16조에도 불구하고 서울특별시장이 된다. <개정 2011.5.30.> >⑦ 서울특별시 소속 공무원 등에 대한 서훈(敍勳)의 추천은 「상훈법」 제5조제1항에도 불구하고 서울특별시장이 한다. <개정 2011.5.30.> ---- > [[http://www.law.go.kr/법령/국무회의 규정|국무회의 규정]] >'''제7조(대리 출석)''' ① 국무위원이 국무회의에 출석하지 못할 때에는 각 부의 차관(행정안전부의 재난안전관리사무에 관하여는 이를 담당하는 본부장을 포함한다)이 대리하여 출석한다. >② 대리 출석한 차관은 관계 의안에 관하여 발언할 수 있으나 표결에는 참가할 수 없다. >'''제8조(배석 등)''' ① [[국무회의]]에는 대통령비서실장, 국가안보실장,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국무조정실장, 국가보훈처장, 인사혁신처장, 법제처장, 식품의약품안전처장,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금융위원회위원장, 과학기술혁신본부장, 통상교섭본부장 및 '''서울특별시장이 배석한다'''. 다만, 의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중요 직위에 있는 공무원을 배석하게 할 수 있다. > ② 의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중앙행정기관인 청(廳)의 장으로 하여금 소관 사무와 관련하여 국무회의에 출석하여 발언하게 하거나 관계 전문가를 참석하게 하여 의견을 들을 수 있다. ---- 서울특별시장은 국무회의에 배석할 권리 혹은 의무(과거)가 있다. 이는 대한민국 출범 후 [[참여정부]] 시기를 제외하고 서울시장에게 주어진 의무 혹은 권리였다. 단 참여정부는 서울특별시장(당시 32대 [[한나라당]] [[이명박]], 33대 [[한나라당]] [[오세훈]])에게 보장된 국무회의 배석 및 발언권을 박탈했다.[* 현안 관련 공무원을 국무회의에 참석시킬 수 있는 규정을 통해 [[청계천 복원사업]] 질의와 관련하여 이명박 전 시장을 국무회의에 출석시킨 적은 있다.] == 상세 == [[관선#s-2|임명직]] 시장 시절부터 현행 [[민선|선출직]] 시장까지 '''[[국무회의]]'''에도 참석이 가능하며, 발언권은 있지만 의결권은 없다. 실제로 [[박원순]] 전 시장도 의결권이 없다는 것을 발언한 적이 있다.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A&nNewsNumb=201611100026|관련 기사]] [[국무회의]]에서 발언권과 표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무위원]]들은 모두 '''[[국무총리|국무회의 부의장]]'''의 제청에 따라 '''[[대한민국 대통령|국무회의 의장]]'''이 임명한 자들[* 예외로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및 [[법원행정처장]]은 각각 [[헌법재판소장]]과 [[대한민국 대법원장|대법원장]]이 임명하기에 [[대한민국 대통령|국무회의 의장]]이 그 인사에 직접 개입할 수 없다.]이고 그 외의 다른 배석 인원들은 모두 '''[[대한민국 대통령|국무회의 의장]]'''이 직접 임명한 자들이다. 또한 모든 국무회의 안건들은 의장이나 부의장, 그리고 국무위원들에 의해서 제의되기 때문에 국무회의를 이끄는 주류에 반대 입장을 내는 참석자는 십중팔구 '''야당 소속 서울특별시장''' 밖에 없다.[* 가끔씩 전임 [[대한민국 대통령|국무회의 의장]]이 지명한 배석자의 임기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가 자리를 지켰다면 소수의견을 낼 수도 있다.] 그래서 가끔씩 반대 의견이 나오면 이런 이유에서다. [[장면 내각]] 시절에는 '''민선''' 서울시장도 각의(현재의 [[국무회의]])에 '''의무적'''으로 참석했다. [[1960년 지방선거|이때 민선]] 서울시장이 [[김상돈]] 한 명뿐이고 임기도 몇 달 못 갔다는게 함정이지만. [[5.16 군사정변]]으로 지방자치제도가 폐지되고 난 관선제 시절에는 당연히 서울시장도 국무회의에 의무적으로 참석했고, [[1995년]]에 다시 민선 서울시장이 들어오면서 '''권리'''로 약화된 것이다. 그래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민선 1기]] [[조순]] 전 시장과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민선 2기]] [[고건]] 전 시장은 다른 일정이 없는 한 [[화요일]] 정례 국무회의에 매주 참석했다.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02년]]에는 [[이명박]]이 서울시장이 되면서 정무부시장을 [[대타]]로 보내는 등 조금씩 출석율이 떨어졌다. 그러다가 [[참여정부]] 시기(2003~2008)에는 서울시장의 국무회의 참석을 금지시켰다가 [[2008년]]에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다시 국무회의에 배석되어 당시 [[오세훈/서울시정/제33·34대|오세훈 시장(2006~2011)]]은 국무회의에 꽤 자주 참석했다. 3개월에 1회는 정례적으로 참석하고[* 보통 [[예산]] 문제다.], 보통은 정무부시장을 배석시켰다. 그러나 [[박원순]] 전 시장 때는 정무부시장도 보내지 않아 '''국무회의 참석율이 10% 아래로 떨어지기에 이른다'''. 지금은 정말로 [[예산]]시즌 아니면 아예 서울시장이 국무회의에 찾아가질 않지만 정권이 교체되었고, [[오세훈]] 시장은 이전부터 국무회의에 잘 참석했으므로 추이는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규정은 서울특별시장이 '''배석한다'''이지 배석할 '''수 있다'''가 {{{#ff0000 '''아니다'''}}}. 즉 현재까지도 규정상 서울시장은 '''의무적'''으로 국무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존재이며, 약간 다른 관점에서 보면 서울시장이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은 서울시장을 국무회의에서 [[기수열외]]시켜버릴 수 없다'''는 뜻으로도 읽어, 야당 서울시장의 국무회의에서의 발언권을 보장하는 규정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한편, 서울시장한테 출석 '''의무'''를 달아놓은 규정은 2008년 2월 29일에 생겼으며, 이렇게 [[대통령령]] 개정으로 서울시장에게 국무회의 출석 의무를 지워놓은 인물은 바로 서울시장 출신 [[이명박]]이다. 여하간 정치적 위치와 상징성 때문에 서울특별시장은 사실상 차기 대권주자로 보내기에 딱 좋은 위치이어서 뭇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다. 정치에 관심 많은 전국의 시민들이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많은 관심을 쏟는 것도 다음 차기 대선후보를 점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라서 그런 것이다. 이 테크가 아니어도 전·현직 시장이 가지는 정치적 가치는 어마어마해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로 전·현직 서울특별시장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정치계에선 당연한 일로 자리를 잡았다. 아래 주요 서울특별시장만 봐도 한국 정치사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윤보선]], [[이명박]]이 서울시장을 지낸 뒤에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이 되었고, [[허정]]과 [[고건]]은 [[국무총리]]로 지내다가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기도 했다. 특이한 점으로 서울시장 출신 총리는 허정, 고건 둘밖에 없어서 '''서울시장 출신 총리 =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것이다.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사고]]로 전임 시장([[이원종(1942)|이원종]])의 경질 이후, 후임 시장에 취임했던 [[우명규]]는 취임하자마자 첫 임무를 무겁게 시작했다. 그러나 성수대교 건설 당시 [[서울특별시청]] 건설본부장으로서 실무 총책임자였다는 게 밝혀져 '''11일 만에''' 자진 사퇴[* [[문민정부]] 출범 초기 '''7일 만에''' 경질된 [[김상철(1947)|김상철]] 전 시장에 이어 두번째로 단명한 서울시장으로 남았다.]하고 [[최병렬]]이 시장으로 임명된다. 그러나 최병렬 전 시장도 퇴임 전날에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일어나, 조순 전 시장은 취임식하자마자 바로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서 상황을 살피고 첫 임무를 무겁게 시작했다. 역대 최연소 서울시장은 경성부윤 취임 당시 39세였던 [[김형민(정치인)|김형민]] 전 시장이며, 그 다음은 40세였던 [[김현옥]] 전 시장이다. 민선 기준으로는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초선]] 취임 당시 45세였던 오세훈 시장이 있다. 시장에게는 재임 기간 동안 거처할 수 있는 [[공관]]이 제공된다. 위치는 [[종로구]] [[혜화동]]에서 [[삼청동 공관촌]]과 [[가회동]] [[서울재동초등학교]]의 인근으로 이전하였다. 기존의 공관은 [[서울 한양도성]] 전시안내센터로 리모델링되었다. 참고로 민선 [[구청장]] 및 [[지방의회의원|시의원]] 출신은 아직 없는게 특징이다. 구청장 출신은 시장은 물론 주요 정당의 시장 후보로조차 선출되는 일이 없다시피한데, 구청장의 권한이 동급인 자치시장보다 확연히 적고 반대로 서울특별시장은 동격인 광역시장이나 도지사에 비해서도 위상이 높다 보니 구청장 정도로는 서울시장을 노리기에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울시내의 구청장만 해도 25명이나 되다 보니 서울 전체에서 단 1명 뿐인 서울특별시장을 노리기에는 정치적 관심도나 언론 노출 빈도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기도 하다. 시의원은 시정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지만, [[권수정]] 10대 [[서울특별시의회|서울시의원]]이 유일하게 출마하였다.[* [[민영삼]] 제4대 서울특별시의원은 [[전라남도지사]]에 출마했었다.][* 서울시의원 출신들은 주로 구청장에 많이 도전하며, 구청장 출신들은 국회의원에 주로 도전한다. 구의원-시의원-구청장-국회의원-서울시장 순의 테크를 보통 타며, [[더불어민주당]] [[김성환(1965)|김성환]] 의원의 커리어가 이 테크를 아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케이스.] [[전라도|호남]] 출향민 비중이 높은 서울로 비록 [[김형민(정치인)|초대 서울시장]]이 호남 출신이지만 민선 서울시장 중 호남 출신은 아직까지는 [[고건]][* 그나마도 본적이 호남이어서 호남 출신으로 분류된 케이스이며, 고건 본인은 서울 출신이다. [[윤석열]]이 [[충청남도]] 출신인 부친의 영향으로, 충청 출신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것과 비슷한 케이스.] 한 명뿐이다. 다만 호남 출향민들을 의식해서인지 박원순 전 시장은 임기 중 [[서울특별시 부시장|서울 부시장]] 3인을 호남 출신으로 기용한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단, 박원순의 마지막 부시장들이었던 [[서정협]](행정1부시장), [[김학진]](행정2부시장), [[김우영(1969)|김우영]](정무부시장)은 모두 비호남 출신이었다. 서정협은 [[울산광역시]], 김학진은 [[경상북도]] [[경주시]], 김우영은 [[강원도]] [[강릉시]] 출신.] 또한 역대 민선 서울특별시장 중 위의 고건의 경우를 제외하면, 순수 서울특별시 출신은 아주 엄격하게 따지면 없다.[* [[오세훈]] 시장이 그나마 제일 가깝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본적이 [[경기도]] [[용인시]]인 탓에 '성골' 토박이는 아니다.] 역대 서울시장 선거에서 적중률 100%의 승패 판독기 역할을 한 자치구는 '''[[중구(서울특별시)|중구]], [[양천구]], [[영등포구]], [[강동구]]'''다. [[https://m.ytn.co.kr/news_view.php?key=202104080426164061&s_mcd=0101|#]] 이 4개의 자치구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까지 각 선거의 서울시장 당선인들이 모두 승리한 지역이다. 다시말해 해당 지역에서 승리한 후보들은 모두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다는 의미다. 이 중에서 특히 [[양천구]]와 [[영등포구]]는 각 후보의 해당 지역에서의 득표율과 서울 전체 득표율이 비슷하게 나온 적이 많아 서울시장 선거 때 특히 주목을 받는다. [[https://www.chosun.com/politics/politics_general/2021/02/26/D4KPOVLEWJGKVJ66GEXF42DKCA/|#]] 그 외에도 [[송파구]]가 서울시장 선거의 판독기 역할을 했는데, 이는 송파구의 인구가 많은 것도 있지만[* 인구가 [[춘천시]], [[강릉시]], [[속초시]], [[동해시]]를 합한 것과 비슷하고 [[중구(서울특별시)|중구]]의 5배 이상이라 총선에서도 개표 속도가 가장 늦다.] 다른 지역에서 인구가 많이 유입된 지역이기 때문이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접전 끝에 패배한 [[한명숙]]은 25개 지역구 가운데 17곳에서 승리하고도 [[오세훈]]에 패배했는데 오세훈이 승리한 지역 8곳 중 하나가 송파구였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77&aid=0004787615|#]] 하지만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당시에는 [[박원순]]이 아닌 [[나경원]]이 [[송파구]]에서 1위를 기록하면서, 적중률 100%의 족집게 지역에서 탈락했다. 그래도 재보궐선거를 제외한 정식 선거에서의 승자는 모두 맞혔기 때문에, 위의 4개 자치구와 함께 족집게 지역으로 종종 거론된다. == 주요 인물 == * '''[[김형민(정치인)|김형민]]''': 초대 시장. 시작은 경성부윤이었다가 서울특별자유시장으로 직함명이 바뀌었다. 후임자가 대통령까지 돼서 워낙 유명해지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묻혔으나 '''[[이승만|우남]]시가 될 뻔한''' 현 서울시 지명을 지켜내었고 그 외 다수의 일제 잔재 지명을 바꾸는 데에 기여한 인물이다. * '''[[윤보선]]''': 제2대 시장. 이후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지만 [[5.16 군사정변]]으로 대통령직을 사퇴한다. * '''[[이기붕]]''': 제3·4대 시장. 재임 중에 서울시의 정식 명칭이 현재의 [[서울특별시]]로 확정되면서 4대 임기부터 서울특별시장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이후 [[대한민국 부통령]] 선거에 나갔으나 그 선거가 [[3.15 부정선거]]였던 탓에 당선이 무효화되고, [[4.19 혁명]] 후 아들에게 살해된다. * '''[[허정]]''': 제8대 시장. 재임 중에 [[미국]] [[필라델피아]] 시장의 초청을 받아 미국의 여러 도시들을 시찰하고 오기도했다. 훗날 4.19 혁명 직후 [[국무총리]] 겸 [[외교부장관|외무부장관]]으로서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허정 내각|과도내각]]의 수반이 되었다. * '''[[김상돈]]''': 제11대 시장, [[1960년 지방선거|최초의 민선]] 서울특별시장이다. 그러나 취임 1년도 안되어 [[5.16 군사정변]]으로 시정이 붕괴됐다. * '''[[김현옥]]''': 제14대 시장. [[5.16 군사정변]]에 가담하여 제12대 [[경상남도]] [[부산광역시장|부산시장]]에 임명되었으며 [[부산광역시/역사#s-6|부산시]]를 [[직할시]]로 승격시키고자 부산과 [[국가재건최고회의|중앙]]을 새벽 열차로 왕래하면서 직할시 승격 필요성을 역설한 끝에 중앙의 승인을 획득하여 부산직할시 승격에 성공하고[* 당시에는 정식으로 '부산직할시'의 이름은 얻지 못하고 '경상남도'만 빠져서 시장 직함명 역시 1981년 부산직할시 정식 개칭 전까지는 그냥 '부산시장'이었다. 다만 비공식적으로는 이때부터 이미 부산직할시라는 명칭이 통용되고 있었어서 지금은 소급 적용되었다.] 초대 부산직할시장(대수로는 13대)이 되었다가 몇 년 뒤 이 자리로 이임하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특별시장 재임 시절 가졌던 '''불도저 시장'''이라는 별명의 원조가 되는 인물로, 파리의 오스만 시장에 버금가도록 서울과 부산에 대개조 사업을 벌였다. 1960년대 말 서울특별시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판잣집]]을 철거하고 [[시민아파트]]를 짓는 개발 정책을 주도했고, [[서울전차]] 폐선[* [[부산전차]]도 이때 동시에 폐선되었는데, 부산전차 폐선 계획을 최초로 수립한 사람 역시 김현옥 전 시장이었다. 다만 임기 내에는 실행하지 않고 후임 김대만 시장이 실행한 것.]과 [[서울 지하철]] 기본 계획 수립도 이 사람이 했다. 오늘날 [[아파트/대한민국|우리나라 아파트 문화]]를 연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너무 개발 정책에만 목을 맨 나머지 '''[[와우 시민아파트 붕괴사고]]'''를 일으키고 사퇴하였다. 나중에 [[행정안전부장관|내무부장관]]으로 영전한다. * '''[[양택식]]''': 제15대 시장. '''두더지 시장'''이란 별명으로 유명하다. 이 사람 임기에 그 악명 높은 [[광주대단지사건]]이 터졌다. 앞의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서울 지하철 1호선]]의 공사를 총지휘했던 시장인데 하필이면 1호선 완공 당일 '''[[육영수]] 여사가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비명횡사하여]]''' 얼마 후에 사퇴하였다. * '''[[구자춘]]''': 제16대 시장. 전임자가 만든 [[서울 지하철]] 계획을 자기 입맛에 맞게 적절하게 변형하여 지금의 [[서울 지하철 2호선]], [[서울 지하철 3호선]], [[서울 지하철 4호선]]의 서울시내 구간을 만들어냈다. 특히 2호선 계획 당시 '''지도에 줄 그어서 30분 만에 순환선'''으로 만들었다는 전설이 나름 유명.[* 더 엄청난 것은 2호선 계획에서 [[영등포역]] 예정지 공사가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해서 [[신도림역|신도림]]으로 위치가 바뀐 것을 빼면 '''난공사라 할 것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구 시장은 포병장교 출신답게 지도 읽는 눈썰미가 상당히 뛰어났다.] 이러한 서울특별시 지하철 계획 변경으로 인해 [[서울특별시/강남|강남]] 개발이 가속화 되었다. 별명은 '''황야의 무법자'''였다. 구 시장도 훗날 [[행정안전부장관|내무부장관]]을 지냈다. * '''[[박영수(1928)|박영수]]''': 제18대 시장. 임기 중에 [[1988 서울 올림픽]] 유치에 성공하기도 하였으나 1982년 4월 [[서울 지하철 3호선]] 무악재 구간 공사장에서 붕괴 사고가 일어나 경질되었다. * '''[[염보현]]''': 제20대 시장. 치안본부장(현 [[경찰청장]]) 출신이다. 재임 기간 서울특별시 지하철 2, 3, 4호선을 완공했고, [[한강#s-5.1|한강종합개발]]을 추진했으며, [[가락시장|가락동 농수산물시장]] 개장, [[목동신시가지아파트|목동신시가지]] 건설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경희궁#s-3.6|경희궁]], [[보라매공원]], [[종묘|종묘공원]], [[석촌호수]] 공원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기도 하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성공은 실질적으로 염보현의 공적이라 보는 사람이 많다. 부임 중에 [[이규동]] 대한노인회장 등 [[전두환]] [[전직 대통령|전 대통령]]의 친인척과 연루됐던 비리로 인해 1988년 구속되었다. * '''[[고건]]''': 제22·31대 시장. 관선과 민선으로 2번 시장을 한 특이한 사례.[* 비슷한 사례로 서울시장은 아니지만 관선 1번 + 민선 3번으로 4번 [[도지사]]를 지냈던 [[심대평]] 전 [[충청남도지사]]의 사례, 제25대 부산직할시장(관선)과 제31·32대 부산광역시장(민선)을 지낸 [[안상영]] 전 [[부산광역시장|부산시장]]이 있다.] 임기 초부터 제일 중요한 시정 현안은 교통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교통관련 정책을 많이 펼쳤다. [[2기 지하철 계획|2기 지하철]]과 [[동부간선도로]]를 개통시키고, [[서울특별시 시내버스]]에 [[천연가스버스]]를 도입해 당시 심각했던 서울특별시의 대기오염을 대폭 감소시키는데 기여했다. 뒷날 [[국무총리]] 재임 중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대통령 권한대행]]을 [[고건 권한대행 체제|맡았다.]] * '''[[박세직]]''': 제23대 시장. 1990년 12월 27일 임명되었으나 2달도 못 되어 [[수서지구 택지 특혜 분양 사건|수서 비리 사건]]으로 경질되었다. * '''[[최병렬]]''': 제29대 시장. 마지막 관선 시장이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 직후부터 퇴임 전날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즉 '사고에서 시작하여 사고로 끝난' 비운의 서울시장이다. '최틀러'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사고 현장에서 너무 기가 막혀 눈물만 흘렸다고 한다. 민선제가 도입된 이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서 [[새정치국민회의]] [[고건]] 후보에 맞섰지만 패배하였다. 훗날 [[한나라당]] 대표가 되어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 '''[[조순]]''': 제30대 시장. 최초이자 [[대한민국 제5공화국|5공]] 이전의 유일한 민선 서울시장이었던 제11대 김상돈 전 시장([[대한민국 제2공화국|2공]])의 뒤를 잇는 민선 서울시장인 동시에 [[대한민국 제6공화국|6공]] 최초의 민선 서울특별시장이다. 안타깝게도 시장에 당선된지 2일 후에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발생하는 바람에 취임식도 대폭 축소하여 간소하게 치르고 바로 사고 현장부터 가서 상황을 살핌으로써 첫 임무를 무겁게 시작하였다. 임기 중 [[통합민주당(1995년)|통합민주당]] 후보로서 [[제1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시장직에서 사퇴하였으나 지지율이 정체되며 대통령 선거 후보직에서 사퇴하였다. 직후에는 [[신한국당]]과 합당하여 [[한나라당]]을 창당하며 초대 총재가 된다. * '''[[이명박]]''': 제32대 시장. 재임기간 동안 [[청계천 복원사업|청계천 복원]], [[서울광장#s-1.3|서울광장 개장]], [[2004년 서울 시내버스 개편]] 등으로 [[김현옥]]에 이어 제2의 불도저 시장으로 불리며 성과가 크게 부각되어 이후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 '''[[오세훈]]''': 제33·34·38·39대 시장. 최초로 재선에 성공한 민선 시장이다. [[오세훈/서울시정/제33·34대|뚜렷한 행정 성과]], 반듯한 이미지와 외모로 강력한 차기 대권 후보로 거론됐지만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승리 아닌 승리를 거두며[* 본인부터가 여론조사 결과와는 다르게 매우 아슬아슬하게 이겼고, [[서울특별시의회|서울시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이 크게 패배하며 팔다리가 잘렸다.] 불안한 모습을 보이더니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패배로 사퇴하였다. 그러나 중도 사퇴 후 10년 간의 공백기를 보낸 뒤 [[2021년 재보궐선거]]로 서울특별시장에 다시 당선되어 [[박원순]]에 이은 헌정 사상 두 번째 3선 서울특별시장이 되었고, 2021년 4월 8일 제38대 서울특별시장으로 취임하여 [[오세훈/서울시정/제38·39대|현재까지 시정을 이끌고 있다.]] 2022년 6월 2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헌정 사상 '''최초의 민선 4선 광역자치단체장''', '''최초의 4선 서울특별시장''' 자리에 올랐다. * '''[[박원순]]''': 제35-37대 시장. 위의 오세훈 시장의 사퇴로 열린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다. 첫 출마 당시 [[아름다운가게]]와 [[참여연대]] 설립에 참여한 인권변호사 이력에 비해 인지도가 높지 못해 5% 정도의 인기 없는 후보였으나, 당시 야권 후보 [[안철수]]의 양보 및 적극적인 지원으로 인하여 극적으로 시장에 당선되었다.[* 이 때 박원순이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 깨고 올라간 상대가 다름아닌 [[나경원]]이었다.] 2011년 10월 27일에 취임하여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재선]]에 성공하였고 재선 임기 3년차에 들어서면서 '''조선 건국 이래 최장 기간을 재임하는 서울의 책임자(한성판윤과 경성부윤 포함)'''였으며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연속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3선]]'''에 성공한 서울특별시장이다. '''그러나 재임 중 [[박원순 성폭력 사건|여비서를 성추행한 사건]]으로 피고소된 후 [[2020년]] [[7월 9일]] 밤 북악산 부근에서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사망 사건|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 역대 시장 목록 == 역대 시장의 사진과 주요 업적에 대해서는 [[https://www.seoul.go.kr/seoul/mayor.do?tr_code=short|서울시 홈페이지의 이 문서]]를 참고. 서울시 측에서는 초대 시장을 [[김형민(정치인)|김형민]]으로 삼고 있다. 조선시대의 판한성부사 -> 한성부 판윤을 거쳐간 인물 2016명의 명단 중 일부는 [[https://ko.wikipedia.org/wiki/%ED%95%9C%EC%84%B1%EB%B6%80%ED%8C%90%EC%9C%A4|이 곳]]에서 볼 수 있다.[* 왜 이렇게 많냐면, 조선 시대의 한성부윤은 임기가 '''반년도 채 안 됐다.'''] 다른 자료로 [[https://news.seoul.go.kr/gov/files/2012/06/4fe97c28de6e82.44241128.pdf|서울특별시 조직변천사I(1987)]]의 부록[* 571p.~606p.] 있는데, 이 자료에서는 총 인원이 현재 시장인 39대 오세훈 시장까지 포함해도 1430명 밖에 되지 않는다. ===# [[한성판윤]] #=== * '''판한성부사''' (1395~1466) [[조선]] [[태조(조선)|태조]] 시대인 [[1395년]]부터 [[세조(조선)|세조]] 시대의 [[1466년]]까지 86명이 판한성부사를 거쳐갔다. * '''한성 부윤''' (1466~1567) [[세조(조선)|세조]] 시대의 [[1466년]]부터 [[명종(조선)|명종]] 시대의 [[1567년]]까지의 142명이 한성 부윤을 거쳐갔다. * '''한성부 판윤''' (1567~1910) [[명종(조선)|명종]] 시대의 [[1567년]]부터 [[대한제국]] [[순종(대한제국)|순종]] 시대의 [[1910년]]까지 1716명이 한성부 판윤을 거쳐갔다. ===# [[경성부|경성부윤]] #=== ||<-5> '''일제강점기 조선 경기도 경성부윤'''[* 주임관 3~5등으로 보했다. 이는 현재의 2~5급 공무원과 비슷한 지위이며 당시 일본군의 영관급 장교에 맞먹었다. 즉, 일반 시장, 군수와 같거나 위고 도지사보다는 아래인 셈.] || || '''대수''' || '''이름''' || '''임기''' || '''정부''' || '''비고''' || || 초대 || 오바 간이치 (大庭寛一) || 1910년 10월 1일 ~ 1912년 3월 31일 ||<|18> [[조선총독부]] || [* 1년 183일. [[에히메 현]] 현지사 등을 역임했다. [[https://ja.wikipedia.org/wiki/%E5%A4%A7%E5%BA%AD%E5%AF%9B%E4%B8%80|#]]] || || 2대 || 가나야 미쓰루 (金谷充) || 1912년 4월 1일 ~ 1919년 12월 3일 || [* 7년 247일. 판한성부사부터 서울시장까지 통틀어 최장 기간 역임자였으나 [[2019년]] [[박원순]]이 이 기록을 깼다. [[마산시|마산부]]윤 등을 역임했다.] || || 3대 || 사이토 레이조 (斎藤礼三) || 1919년 12월 4일 ~ 1921년 8월 4일 || [* 1년 244일. [[함경북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https://ja.wikipedia.org/wiki/%E6%96%8E%E8%97%A4%E7%A4%BC%E4%B8%89|#]]] || || 4대 || 요시마쓰 노리오 (吉松憲郎) || 1921년 8월 5일 ~ 1923년 2월 23일 || [* 1년 203일. [[인천광역시장|인천부윤]] 등을 역임했다. [[https://ja.wikipedia.org/wiki/%E5%90%89%E6%9D%BE%E6%86%B2%E9%83%8E|#]]] || || 5대 || 다니 다키마 (谷多喜磨) || 1923년 2월 24일 ~ 1925년 6월 14일 || [* 2년 112일. [[평안북도지사]], [[경상남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https://ja.wikipedia.org/wiki/%E8%B0%B7%E5%A4%9A%E5%96%9C%E7%A3%A8|#]]] || || 6대 || 마노 세이이치 (馬野精一) || 1925년 6월 15일 ~ 1929년 1월 20일 || [* 3년 220일. [[함경남도지사]], [[전라남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https://ja.wikipedia.org/wiki/%E9%A6%AC%E9%87%8E%E7%B2%BE%E4%B8%80|#]]] || || 7대 || 마쓰이 후사지로 (松井房治郎) || 1929년 1월 21일 ~ 1929년 12월 10일 || [* 325일. [[함경남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https://ja.wikipedia.org/wiki/%E6%9D%BE%E4%BA%95%E6%88%BF%E6%B2%BB%E9%83%8E|#]]] || || 8대 || 세키미즈 다케시 (関水武) || 1929년 12월 11일 ~ 1930년 12월 11일 || [* 1년. [[함경남도지사]], [[경상남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https://ja.wikipedia.org/wiki/%E9%96%A2%E6%B0%B4%E6%AD%A6|#]]] || || 9대 || 안도 게사이치 (安藤袈裟一) || 1930년 12월 12일 ~ 1931년 9월 22일 || [* 285일. [[함경북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https://ja.wikipedia.org/wiki/%E5%AE%89%E8%97%A4%E8%A2%88%E8%A3%9F%E4%B8%80|#]]] || || 10대 || 이노우에 기요시 (井上清) || 1931년 9월 23일 ~ 1933년 12월 4일 || [* 2년 72일. 총독부 체신국장 등을 역임했다. [[https://ja.wikipedia.org/wiki/%E4%BA%95%E4%B8%8A%E6%B8%85_(%E5%AE%98%E5%83%9A)|#]]] || || 11대 || 다테 요쓰오 (伊達四雄) || 1933년 12월 5일 ~ 1936년 5월 20일 || [* 2년 167일. [[경상북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https://ja.wikipedia.org/wiki/%E4%BC%8A%E9%81%94%E5%9B%9B%E9%9B%84|#]]] || || 12대 || 간자 요시쿠니 (甘蔗義邦) || 1936년 5월 21일 ~ 1937년 7월 2일 || [* 1년 43일. 직속상관인 [[경기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https://ko.wikipedia.org/wiki/%EA%B0%84%EC%9E%90_%EC%9A%94%EC%8B%9C%EC%BF%A0%EB%8B%88|#]]] || || 13대 || 사에키 아키라 (佐伯顕) || 1937년 7월 3일 ~ 1938년 11월 8일 || [* 1년 129일. [[경기도]] 경찰부장, 내무부장 등을 역임했다. [[https://ja.wikipedia.org/wiki/%E4%BD%90%E4%BC%AF%E9%A1%95|#]]] || || 14대 || 다카하시 사토시 (高橋敏) || 1938년 11월 9일 ~ 1941년 1월 23일 || [* 2년 76일. [[경상북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 || 15대 || 야노 모모로 (矢野桃郎) || 1941년 1월 24일 ~ 1942년 5월 21일 || [* 1년 118일. [[평양부(일제강점기)|평앙부]]윤, [[부산부]]윤 등을 역임했다. [[https://ja.wikipedia.org/wiki/%E7%9F%A2%E9%87%8E%E6%A1%83%E9%83%8E|#]]] || || 16대 || 후루이치 스스무 (古市進) || 1942년 5월 22일 ~ 1945년 5월 1일 || [* 2년 344일. [[대구광역시장|대구부윤]] 등을 역임했다. [[https://ja.wikipedia.org/wiki/%E5%8F%A4%E5%B8%82%E9%80%B2|#]]] || || 17대 || 이쿠타 세이자부로 (生田清三郎) || 1945년 5월 2일 ~ 1945년 6월 15일 || [* 44일. 마지막 일제강점기 [[경기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BF%A0%EB%8B%A4_%EC%84%B8%EC%9D%B4%EC%9E%90%EB%B6%80%EB%A1%9C|#]]] || || 18대 || 쓰지 게이고 (辻桂五) || 1945년 6월 16일 ~ 1945년 8월 15일[* 공식적으로 [[미군정]]에 사표를 제출한 날짜는 1945년 9월 15일이다.] || [* 60일. 주로 총독부 본청에서 근무했으며 [[8.15 광복]]과 동시에 직무 이탈했다.] || ||<-5> '''미군정 조선 경기도 경성부 군정부윤'''[* 미군정부윤(military mayor)과 한국인 민정부윤으로 이원화되어 있었다. 1945년 9월 9일 미군이 서울에 진주하면서 제임스 킬러프(James S. Killough) 소령이 군정부윤으로 시정을 맡았고 1945년 11월 17일 제40 군정중대가 경성부의 행정권을 인수하면서 제임스 윌슨(James E. Wilson) 중령이 맡았다.] || || 초대 || 제임스 킬러프 (James S. Killough) || 1945년 9월 9일 ~ 1945년 11월 16일 ||<|2> [[미군정]] || [* 69일. [[미합중국 육군|미 육군]] [[소령]].] || || 2대 || 제임스 윌슨 (James Willson) || 1945년 11월 17일 ~ 1946년 9월 27일 || [* 315일. 미 육군 [[중령]].] || ||<-5> '''미군정 조선 경기도 경성부 민정부윤'''[* 광복 당시 경성부윤이었던 일본인 쓰지 게이고(辻桂五)가 업무를 놓으면서 [[김창영]](金昌永)이 추대되어 사무를 인계받아 경성부 행정을 담당했다. 김창영은 이후 미군정이 주둔하면서 경성부 부부윤(부시장) 겸 기획실장으로 임명되어 실무를 담당했다. 김창영을 초대 부윤으로 언급하기도 하지만 공식적으로 부윤으로 임명되거나 권한이 위임된 것은 아니다. 일본인 경성부윤과 부서장들은 미군정이 들어오고 나서 1945년 9월 15일에 사표를 제출했다.] || || 초대 || [[이범승]] (李範昇) || 1945년 10월 25일[* 서울특별시史의 기록이다. 미군정 문서에는 10월 26일 임명되어 10월 27일부터 업무를 맡았으며 첫 번째 공식 행사는 10월 27일 대회의실에 집결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연설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 1946년 5월 9일[* 신병을 사유로 1946년 5월 9일 사표를 제출하여 수리됨.] ||<|3> [[미군정]] || [* 197일.] || || 권한대행 || [[김성환(1910)|김성환]] (金聖煥) || 1946년 5월 10일 ~ 1946년 6월 29일 || [* 51일. [[경성부]] 총무부장. 이후에는 [[감사원|심계원]] 차장을 역임했다.] || || 2대 || [[김형민(정치인)|김형민]] (金炯敏) || 1946년 6월 30일[* 서울특별시史 해방후 시정편의 기록이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46070700209202008&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46-07-07&officeId=00020&pageNo=2&printNo=7021&publishType=00020|동아일보 1946년 7월 7일 기사]]에서는 7월 1일 오후 2시에 취임식을 거행했다고 나온다.] ~ 1946년 9월 27일 || [* 90일. 임기 중 [[경성부]]가 [[서울특별시|서울시]]로 개칭되면서 초대 서울특별자유시장이 된다.] || === 역대 서울특별자유시장 === ||<-6> '''관선 서울특별자유시장''' || || '''대수''' || '''사진''' || '''이름''' || '''임기''' || '''정부''' || '''비고''' || || 초대 || [[파일:1대김형민.png]] || [[김형민(정치인)|김형민]] (金炯敏) || 1946년 9월 28일 ~ 1948년 12월 14일 || [[미군정]] || [* 2년 78일. [[8.15 광복|해방]] 이후 초대 서울시장. '''서울'''(특별자유시)이라는 명칭을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초창기에는 '''경성'''부윤이었으나 곧 '서울시장'으로 개칭되었다. 여담으로 [[이승만]] [[전직 대통령|전 대통령]]은 미국의 [[워싱턴 D.C.]]처럼 서울시를 '''[[아호|우남]]시'''로 만들고 싶어했다.] || || 2대 || [[파일:2대윤보선.png]] || [[윤보선]] (尹潽善) || 1948년 12월 15일 ~ 1949년 6월 5일 ||<|2> [[이승만 정부]] || [* 172일.] || || 3대 || [[파일:3대이기붕.png]] || [[이기붕]] (李起鵬) || 1949년 6월 6일 ~ 1949년 8월 14일 || [* 69일.] || === 역대 서울특별시장 === ==== 관선 1차 ==== ||<-6> '''관선 서울특별시장''' || || '''대수''' || '''사진''' || '''이름''' || '''임기''' || '''정부''' || '''비고''' || || 4대 || [[파일:3대이기붕.png]] || [[이기붕]] (李起鵬) || 1949년 8월 15일 ~ 1951년 5월 8일 ||<|6> [[이승만 정부]] || [* 1년 266일.][* 후임 김태선 취임까지 [[전예용]] 전 [[서울특별시 부시장|부시장]]이 권한대행.] || || 5대 ||<|2> [[파일:5대김태선.png]] ||<|2> [[김태선]] (金泰善) || 1951년 6월 27일 ~ 1952년 7월 23일 || [* 1년 26일.] || || 6대 || 1952년 8월 29일 ~ 1956년 7월 5일 || [* 3년 337일.][* 김태선 전 시장이 [[행정안전부장관|내무부장관]]으로 잠시 자리를 옮겼다가 복귀할 때까지 [[이익흥]] 전 부시장이 권한대행.] || || 7대 || [[파일:7대고재봉.png]] || [[고재봉]] (高在鳳) || 1956년 7월 6일 ~ 1957년 12월 13일 || [* 1년 160일.] || || 8대 || [[파일:8대허정.png]] || [[허정]] (許政) || 1957년 12월 14일 ~ 1959년 6월 11일 || [* 1년 179일.] || || 9대 || [[파일:9대임흥순.png]] || [[임흥순]] (任興淳) || 1959년 6월 12일 ~ 1960년 4월 30일 || [* 323일.] || || 10대 || [[파일:10대장기영.png]] || [[장기영(1903)|장기영]] (張基永) || 1960년 5월 2일 ~ 1960년 12월 30일 || [[허정 내각]] || [* 242일.] || ==== 민선 1차 ==== ||<-6> '''민선 서울특별시장'''[* [[장면 내각]]이 들어서면서 시민들의 선거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얼마 안 있다가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서울시장은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대통령 임명직으로 회귀했다.][* 이 당시의 지방선거는 [[시장(공무원)|시장]], [[도지사]], [[군수]], '''[[읍장]]''', '''[[면장]]''', [[지방의회의원|시/도의원, '''시/읍/면의원''']]을 선출하였다. 현재의 [[전국동시지방선거]]와는 조금 다르다.] || || '''대수''' || '''사진''' || '''이름''' || '''임기''' || '''당적'''[* 선거 당시 당적.] || '''비고''' || || [[1960년 지방선거|11대]] || [[파일:11대김상돈.png]] || [[김상돈]] (金相敦) || 1960년 12월 30일 ~ 1961년 5월 16일 || [include(틀:민주당(1955년))] || [* 137일. [[4.19 혁명]]으로 [[장면 내각]]이 들어서면서 선거를 통해 최초의 민선 시장이 되었다. 날짜를 보면 예상되지만, 1961년 일어난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임기를 반 년도 못 채우고 경질된다.] || ==== 관선 2차 ==== ||<-6> '''관선 서울특별시장''' || || '''대수''' || '''사진''' || '''이름''' || '''임기''' || '''정부''' || '''비고''' || || 12대 || [[파일:12대윤태일.png]] || [[윤태일]] (尹泰日) || 1961년 5월 20일 ~ 1963년 12월 16일 || [[국가재건최고회의]] || [* 2년 210일.] || || 13대 || [[파일:13대윤치영.png]] || [[윤치영]] (尹致暎) || 1963년 12월 17일 ~ 1966년 3월 30일 ||<|5> [[박정희 정부]] || [* 2년 104일.] || || 14대 || [[파일:14대김현옥.png]] || [[김현옥]] (金玄玉) || 1966년 3월 31일 ~ 1970년 4월 15일 || [* 4년 15일. [[박정희]] [[전직 대통령|전 대통령]]의 오른팔이자 최측근으로 서울시장에 임명되어 불도저라는 별명답게 서울 대개조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와우 시민아파트 붕괴사고|와우 아파트 붕괴사고]]가 일어나 그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 || 15대 || [[파일:15대양택식.png]] || [[양택식]] (梁鐸植) || 1970년 4월 16일 ~ 1974년 9월 1일 || [* 4년 139일. 임명직 시장 중 최장기간 재임. 그러나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육영수 저격 사건]]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 || 16대 || [[파일:16대구자춘.png]] || [[구자춘]] (具滋春) || 1974년 9월 2일 ~ 1978년 12월 21일 || [* 4년 111일.] || || 17대 || [[파일:17대정상천.png]] || [[정상천]] (鄭相千) || 1978년 12월 22일 ~ 1980년 9월 1일 || [* 1년 254일.] || || 18대 || [[파일:18대박영수.png]] || [[박영수(1928)|박영수]] (朴英秀) || 1980년 9월 2일 ~ 1982년 4월 27일 ||<|4> [[전두환 정부]] || [* 1년 237일.] || || 19대 || [[파일:19대김성배.png]] || [[김성배(1927)|김성배]] (金聖培) || 1982년 4월 28일 ~ 1983년 10월 14일 || [* 1년 169일.] || || 20대 || [[파일:20대염보현.png]] || [[염보현]] (廉普鉉) || 1983년 10월 15일 ~ 1987년 12월 29일 || [* 4년 76일. [[1986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 서울 올림픽]] 성공의 주역. 재임기간 [[서울 지하철|지하철]] [[서울 지하철 2호선|2]], [[서울 지하철 3호선|3]], [[서울 지하철 4호선|4]]호선을 완공하였다.] || || 21대 || [[파일:21대김용래.png]] || [[김용래]] (金庸來) || 1987년 12월 30일 ~ 1988년 12월 4일 || [* 340일.] || || 22대 || [[파일:22대고건.png]] || [[고건]] (高建) || 1988년 12월 5일 ~ 1990년 12월 26일 ||<|4> [[노태우 정부]] || [* 2년 21일, [include(틀:민주정의당)] → [include(틀:민주자유당)] 소속.] || || 23대 || [[파일:23대박세직.png]] || [[박세직]] (朴世直) || 1990년 12월 27일 ~ 1991년 2월 18일 || [* 53일.] || || 24대 || [[파일:24대이해원.png]] || [[이해원(1930)|이해원]] (李海元) || 1991년 2월 19일 ~ 1992년 6월 25일 || [* 1년 127일.] || || 25대 || [[파일:25대이상배.png]] || [[이상배]] (李相培) || 1992년 6월 26일 ~ 1993년 2월 25일 || [* 244일. [[김영삼|새 대통령]] [[제14대 대통령 취임식|취임일]]에 맞춰 퇴임했다.] || || 26대 || [[파일:26대김상철.png]] || [[김상철(1947)|김상철]] (金尙哲) || 1993년 2월 26일 ~ 1993년 3월 4일 ||<|4> [[문민정부|김영삼 정부]] || [* 7일. 당시 매우 유명했던 인권 변호사 출신에 40대라는 젊은 나이로 참신한 이미지까지 갖추고 있어, 당시 최초의 민주 세력 정부였던 김영삼 정부의 주요 인사로 내세울 만했다. 하지만 시장 취임 후 곧바로 서울 근교에 위치한 수려한 본인 소유의 전원 주택이 그린 벨트를 무단 훼손해서 건축된 사실이 언론 보도로 드러남으로써 1주일 만에 자진 사퇴하였다. 여담으로 [[국민의 정부|김대중 정부]] 출범 후에는 보수 세력으로 변신하였다. 역대 최단 기간 재임.] || || 27대 || [[파일:27대이원종.png]] || [[이원종(1942)|이원종]] (李元鐘) || 1993년 3월 8일 ~ 1994년 10월 21일 || [* 1년 227일. 날짜를 보면 알겠지만,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일어난 그날 오후 7시에 문책성으로 경질되었다. 후에 민선 [[충청북도지사]]를 지냈다.] || || 28대 ||[[파일:28대우명규.png]] || [[우명규]] (禹命奎) || 1994년 10월 22일 ~ 1994년 11월 2일 || [* 11일. [[경상북도지사]]를 하던 중에 이원종 전 시장의 경질로 급히 신임 시장에 임명되었지만 11일 만에 자진 사퇴했다.] || || 29대 || [[파일:29대최병렬.png]] || [[최병렬]] (崔炳烈) || 1994년 11월 3일 ~ 1995년 6월 30일 || [* 239일. 마지막 관선 시장. [include(틀:민주자유당)] 소속.] || ==== 민선 2차 ==== ||<-7> '''민선 서울특별시장''' || ||''' 대수''' || '''사진''' || '''이름''' || '''임기''' || '''당적'''[* 선거 당시 당적.] || '''출신지''' || '''비고''' || ||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30대]] || [[파일:30대조순.png]] || [[조순]] (趙淳) || 1995년 7월 1일 ~ 1997년 9월 9일 || [include(틀:민주당(1991년))] || [[강원특별자치도|강원]] [[강릉시|강릉]] || [* 2년 71일.][* 1997.9.9. [[제15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해 시장직 사퇴.] || || 권한대행 || [[파일:대행강덕기.png]] || [[강덕기]] (姜德基) || 1997년 9월 10일 ~ 1998년 6월 30일 || 행정1부시장 || [[경상남도|경남]] [[진주시|진주]] || [* 293일.] || ||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31대]] || [[파일:22대고건.png]] || [[고건]] (高建) || 1998년 7월 1일 ~ 2002년 6월 30일 || [include(틀:새정치국민회의)] || [[서울특별시|서울]] [[종로구|종로]] || [* 4년.][* 2000.1.20. [include(틀:새천년민주당)]으로 당명 변경.] || ||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32대]] || [[파일:32대이명박.png]] || [[이명박]] (李明博) || 2002년 7월 1일 ~ 2006년 6월 30일 || [include(틀:한나라당(1997~2004))] || [[일본]] [[오사카시|오사카]][* 외국 태생. 실질적 고향은 [[이충우(1907)|아버지]]의 고향인 [[경상북도|경북]] [[포항시|포항]].] || [* 4년.][* 임기 만료로 퇴임 직후 바로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어 당선,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 민선 서울특별시장 출신 첫 대통령. 임명직 서울시장 출신 대통령으로는 2대 시장인 [[윤보선]]이 있다.] || ||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33대]] ||<|2> [[파일:33대오세훈.png]] ||<|2> [[오세훈]] (吳世勳) || 2006년 7월 1일 ~ 2010년 6월 30일 ||<|2> [include(틀:한나라당)] ||<|2> [[서울특별시|서울]] [[성동구|성동]] || [* 4년.][* 민선 기준 최초의 재선 서울특별시장.] || ||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34대]] || 2010년 7월 1일 ~ 2011년 8월 26일 || [* 1년 56일.][*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당시 투표율이 33.3%에 못 미치자 사퇴했다.] || || 권한대행 || [[파일:권부시장.jpg|width=100%]] || [[권영규]] (權寧奎) || 2011년 8월 27일 ~ 2011년 10월 26일 || 행정1부시장 || [[경상북도|경북]] [[안동시|안동]] || [* 60일.] || ||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35대]] ||<|3> [[파일:35대박원순.png]] ||<|3> [[박원순]] (朴元淳) || 2011년 10월 27일 ~ 2014년 6월 30일 || [include(틀:무소속)] ||<|3> [[경상남도|경남]] [[창녕군|창녕]] || [* 2년 247일.][* 무소속으로 당선되었으나 사실상 야권의 단일 후보였다. 재보궐선거 당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꺾었고, 시장 취임 후 [include(틀:민주통합당)]에 입당한다.][* 2012.2.23. [include(틀:민주통합당)] 입당.] ||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36대]] || 2014년 7월 1일 ~ 2018년 6월 30일 || [include(틀:새정치민주연합)] || [* 4년.][* 2015.12.28. [include(틀: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 변경.] ||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37대]] || 2018년 7월 1일 ~ 2020년 7월 9일 || [include(틀:더불어민주당)] || [* 2년 9일.][* 최초의 3선 서울특별시장. 역대 최장 기간 재임(8년 256일). 재임 중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사망 사건|사망]].] || || 권한대행 || [[파일:B37CEA46-6375-4890-A888-7154035AD14E.gif|width=100%]] || [[서정협]] (徐正協) || 2020년 7월 10일 ~ 2021년 4월 7일 || 행정1부시장 || [[울산광역시|울산]] || [* 272일.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사망 사건|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으로 인한 서울특별시장 권한대행.][* 직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 사실이 10일 0시(9일 자정)를 넘겨 확인되었기 때문에 실종 당일인 9일에는 임시로 직무 대리를 맡았던 것. 주된 차이가 시장으로서 현직이 누구냐 정도이다. 결재권자가 현직 시장인데 임시로 현상 유지의 범위 내에서 대결하는 자리가 직무 대리이고 권한대행자가 바로 최종 결재권자가 되는 것이 권한대행이다.] || || [[2021년 재보궐선거|38대]] ||<|2> [[파일:38대오세훈.jpg]] ||<|2> [[오세훈]] (吳世勳) || 2021년 4월 8일 ~ 2022년 6월 30일 ||<|2> [include(틀:국민의힘)] ||<|2> [[서울특별시|서울]] [[성동구|성동]] || [* 1년 84일.][* 두번째 3선 서울특별시장이고 임기 이후 재출마하여 당선된 세 번째 [[광역자치단체장]]이다. 이전에는 [[염홍철]] 전 [[대전광역시장|대전시장]]과 [[우근민]] 전 [[제주특별자치도지사|제주도지사]]가 임기 이후 재당선된 사례가 있다. 오세훈 다음에는 [[홍준표]] 전 [[경상남도지사|경남지사]]와 [[유정복]] 전 [[인천광역시장|인천시장]]이 각각 [[대구광역시장]]과 [[인천광역시장]]에 재당선되었다.] || ||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39대]] || 2022년 7월 1일 ~ 현재 || [* 최초의 4선 서울특별시장.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칠 경우 역대 최장 기간 재임 기록을 가져오게 된다. (통산 10년 139일).] || == 생존 중인 전직 민선 서울특별시장 == * [[2023년]] 기준 생존 중인 전직 민선 서울특별시장은 [[고건]], [[이명박]] 총 2명이다. * [[고건]] (1998년 7월 1일 ~ 2002년 6월 30일 재임, 민선 2기, [[1938년]] [[1월 2일]] 출생, [age(1938-01-02)]세) * [[이명박]] (2002년 7월 1일 ~ 2006년 6월 30일 재임, 민선 3기, [[1941년]] [[12월 19일]] 출생, [age(1941-12-19)]세) * [[조순]] 전 시장은 [[2022년]] [[6월 23일]] 지병으로 사망하였고, [[박원순]] 전 시장은 [[2020년]] [[7월 9일]]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사망 사건|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 역대 선거 결과 == ||<-5> [[서울특별시|[[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width=20px]]]] {{{#fff '''역대 민선 서울특별시장'''}}} || || [[1960년 지방선거|{{{#fff '''1960'''}}}]] ||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fff '''1995'''}}}]] ||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fff '''1998'''}}}]] ||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fff '''2002'''}}}]] ||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fff '''2006'''}}}]] || || [[민주당(1955년)|{{{#fff {{{#!html
민주당
}}}}}}]] || [[민주당(1991년)|{{{#fff {{{#!html
민주당
}}}}}}]] || {{{#!wiki style="margin: 0px -10px;" [[새정치국민회의|{{{#ffffff {{{#!html
새정치국민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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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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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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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 || [[무소속|{{{#fff {{{#!html
무소속
}}}}}}]] || {{{#!wiki style="margin: 0px -10px;" [[새정치민주연합|{{{#ffffff {{{#!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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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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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 || || [[오세훈|{{{#373a3c,#ddd 오세훈}}}]] ||<-3> [[박원순|{{{#373a3c,#ddd 박원순}}}]] || [[오세훈|{{{#373a3c,#ddd 오세훈}}}]] || ||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fff '''2022'''}}}]] || || || || || || [[국민의힘|{{{#fff {{{#!html
국민의힘
}}}}}}]] || || || || || || [[오세훈|{{{#373a3c,#ddd 오세훈}}}]] || || || || || ||<-5>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fff '''구분'''}}} || {{{#fff '''주요 후보 득표율'''}}} || || [[1960년 지방선거|1960년]] ||'''1위: [include(틀:민주당(1955년))] [[김상돈]] 60.25%'''[br]2위: [include(틀:무소속)] [[장기영(1916)|장기영]] 32.35% || ||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1995년]] ||'''1위: [include(틀:민주당(1991년))] [[조순]] 42.35%'''[br]2위: [include(틀:무소속)] [[박찬종]] 33.51%[br]3위: [include(틀:민주자유당)] [[정원식]] 20.67% || ||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1998년]] ||'''1위: [include(틀:새정치국민회의)] [[고건]] 53.46%'''[br]2위: [include(틀:한나라당(1997~2004))] [[최병렬]] 43.99% || ||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02년]] ||'''1위: [include(틀:한나라당(1997~2004))] [[이명박]] 52.28%'''[br]2위: [include(틀:새천년민주당)] [[김민석(정치인)|김민석]] 43.02% || ||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06년]] ||'''1위: [include(틀:한나라당)] [[오세훈]] 61.05%'''[br]2위: [include(틀:열린우리당)] [[강금실]] 27.31% || ||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10년]] ||'''1위: [include(틀:한나라당)] [[오세훈]] 47.43%'''[br]2위: [include(틀:민주당(2008년))] [[한명숙]] 46.83% || ||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2011년]] ||'''1위: [include(틀:무소속)] [[박원순]] 53.40%'''[br]2위: [include(틀:한나라당)] [[나경원]] 46.21% ||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14년]] ||'''1위: [include(틀:새정치민주연합)] [[박원순]] 56.12%'''[br]2위: [include(틀:새누리당(2012년))] [[정몽준]] 43.02% ||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18년]] ||'''1위: [include(틀:더불어민주당)] [[박원순]] 52.79%'''[br]2위: [include(틀:자유한국당)] [[김문수]] 23.34%[br]3위: [include(틀:바른미래당)] [[안철수]] 19.55% || || [[2021년 재보궐선거|2021년]] ||'''1위: [include(틀:국민의힘)] [[오세훈]] 57.50%'''[br]2위: [include(틀:더불어민주당)] [[박영선]] 39.18% || ||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22년]] ||'''1위: [include(틀:국민의힘)] [[오세훈]] 59.05%'''[br]2위: [include(틀:더불어민주당)] [[송영길]] 39.23% ||}}}}}}}}} || === [[1960년 지방선거|1960년]] === ||<-4> [[서울특별시|{{{+1 [[파일:구 서울특별시 휘장(백색).svg|width=23px]]}}}]] [[서울특별시장|{{{#ffffff {{{+1 '''서울특별시장'''}}}}}}]]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계성범|{{{#373a3c,#dddddd 계성범}}}]](桂性範) || 388 || 6위 || || [include(틀:무소속)] || 0.85% || 낙선 || ||<|2> {{{#ffffff {{{+5 '''2'''}}}}}} || {{{#373a3c,#dddddd 안학순}}}(安鶴淳) || 266 || 10위 || || [include(틀:무소속)] || 0.36% || 낙선 || ||<|2> {{{#ffffff {{{+5 '''3'''}}}}}} || {{{#373a3c,#dddddd 최주열}}}(崔柱烈) || 301 || 9위 || || [include(틀:무소속)] || 0.58% || 낙선 || ||<|2> {{{#ffffff {{{+5 '''4'''}}}}}} || {{{#373a3c,#dddddd 정인해}}}(鄭寅海) || 180 || 14위 || || [include(틀:무소속)] || 0.09% || 낙선 || ||<|2> {{{#ffffff {{{+5 '''5'''}}}}}} || {{{#373a3c,#dddddd 송태희}}}(宋泰熙) || 124 || 15위 || || [include(틀:무소속)] || 0.05% || 낙선 || ||<|2> {{{#ffffff {{{+5 '''6'''}}}}}} || {{{#373a3c,#dddddd 이석점}}}(李錫漸) || 374 || 7위 || || [include(틀:무소속)] || 0.73% || 낙선 || ||<|2> {{{#ffffff {{{+5 '''7'''}}}}}} || {{{#373a3c,#dddddd 오인환}}}(吳仁煥) || 341 || 8위 || || [include(틀:무소속)] || 0.64% || 낙선 || ||<|2> {{{#000 {{{+5 '''8'''}}}}}} || [[문용채|{{{#373a3c,#dddddd 문용채}}}]](文容彩) || 456 || 5위 || || [include(틀:삼민당)] || 1.01% || 낙선 || ||<|2> {{{#ffffff {{{+5 '''9'''}}}}}} || '''[[김상돈|{{{#373a3c,#dddddd 김상돈}}}]](金相敦)''' || '''217,475''' || '''1위''' || || [include(틀:민주당(1955년))] || '''60.25%''' || '''당선''' || ||<|2> {{{#ffffff {{{+5 '''10'''}}}}}} || {{{#373a3c,#dddddd 백준관}}}(白陖寬) || 181 || 12위 || || [include(틀:무소속)] || 0.16% || 낙선 || ||<|2> {{{#ffffff {{{+5 '''--11--'''}}}}}} || --{{{#373a3c,#dddddd 김수룡}}}(金水龍)-- ||<|2><-2> 사퇴 || || --[include(틀:무소속)]-- || ||<|2> {{{#ffffff {{{+5 '''12'''}}}}}} || {{{#373a3c,#dddddd 이희운}}}(李熙雲) || 228 || 11위 || || [include(틀:무소속)] || 0.20% || 낙선 || ||<|2> {{{#ffffff {{{+5 '''--13--'''}}}}}} || --{{{#373a3c,#dddddd 임병기}}}(林炳亓)-- ||<|2><-2> 등록 무효 || || --[include(틀:사회대중당)]-- || ||<|2> {{{#000 {{{+5 '''14'''}}}}}} || {{{#373a3c,#dddddd 김헌}}}(金憲) || 2,088 || 4위 || || [include(틀:한국실업자협회)] || 2.68% || 낙선 || ||<|2> {{{#ffffff {{{+5 '''15'''}}}}}} || [[장기영(1916)|{{{#373a3c,#dddddd 장기영}}}]](張基榮) || 117,145 || 2위 || || [include(틀:무소속)] || 32.35% || 낙선 || ||<|2> {{{#ffffff {{{+5 '''16'''}}}}}} || {{{#373a3c,#dddddd 김득조}}}(金得照) || 150 || 13위 || || [include(틀:조국봉찬회)] || 0.12% || 낙선 || ||<|2> {{{#ffffff {{{+5 '''17'''}}}}}} || [[정준(정치인)|{{{#373a3c,#dddddd 정준}}}]](鄭濬) || 22,794 || 3위 || || [include(틀:무소속)] || 6.30%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1,226,079 ||<|3> '''투표율'''[br]32.73% || || '''투표 수''' || 401,338 || || '''무효표 수''' || - || ===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1995년]] === ||<-4> [[서울특별시|{{{+1 [[파일:구 서울특별시 휘장(백색).svg|width=23px]]}}}]] [[서울특별시장|{{{#ffffff {{{+1 '''서울특별시장'''}}}}}}]]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정원식|{{{#373a3c,#dddddd 정원식}}}]](鄭元植) || 1,001,446 || 3위 || || [include(틀:민주자유당)] || 20.67% || 낙선 || ||<|2> {{{#ffffff {{{+5 '''2'''}}}}}} || '''[[조순|{{{#373a3c,#dddddd 조순}}}]](趙淳)''' || '''2,051,441''' || '''1위''' || || [include(틀:민주당(1991년))] || '''42.35%''' || '''당선''' || ||<|2> {{{#ffffff {{{+5 '''3'''}}}}}} || {{{#373a3c,#dddddd 박홍래}}}(朴弘來) || 25,054 || 5위 || || [include(틀:친민당(대한민국))] || 0.51% || 낙선 || ||<|2> {{{#ffffff {{{+5 '''4'''}}}}}} || {{{#373a3c,#dddddd 고순복}}}(高順福) || 10,488 || 7위 || || [include(틀:통일한국당(1995년))] || 0.21% || 낙선 || ||<|2> {{{#ffffff {{{+5 '''5'''}}}}}} || {{{#373a3c,#dddddd 김명호}}}(金明豪) || 9,992 || 8위 || || [include(틀:무소속)] || 0.20% || 낙선 || ||<|2> {{{#ffffff {{{+5 '''6'''}}}}}} || [[김옥선|{{{#373a3c,#dddddd 김옥선}}}]](金鈺仙) || 17,728 || 6위 || || [include(틀:무소속)] || 0.36% || 낙선 || ||<|2> {{{#ffffff {{{+5 '''7'''}}}}}} || [[박찬종|{{{#373a3c,#dddddd 박찬종}}}]](朴燦鍾) || 1,623,356 || 2위 || || [include(틀:무소속)] || 33.51% || 낙선 || ||<|2> {{{#ffffff {{{+5 '''8'''}}}}}} || {{{#373a3c,#dddddd 정기용}}}(鄭基用) || 6,156 || 9위 || || [include(틀:무소속)] || 0.12% || 낙선 || ||<|2> {{{#ffffff {{{+5 '''9'''}}}}}} || [[황산성|{{{#373a3c,#dddddd 황산성}}}]](黃山城) || 97,709 || 4위 || || [include(틀:무소속)] || 2.01%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7,438,025 ||<|3> '''투표율'''[br]66.18% || || '''투표 수''' || 4,922,210 || || '''무효표 수''' || 78,840 || ---- {{{#!folding [서울특별시장 구별 개표 결과 보기] ||<-6> {{{#ffffff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구별 개표 결과'''}}} || ||<:> '''정당''' ||<:> [include(틀:민주자유당)] ||<:> [include(틀:민주당(1991년))] ||<:> [include(틀:무소속)] ||<:> '''격차''' ||<:> '''투표율''' || || '''후보''' ||<:> [[정원식|{{{#ffffff '''정원식'''}}}]] ||<:> [[조순|{{{#ffffff '''조순'''}}}]] ||<:> [[박찬종|{{{#ffffff '''박찬종'''}}}]] ||<:> '''(1위/2위)''' ||<:> '''(선거인/표수)''' || || '''득표수[br](득표율)''' ||<:> '''1,001,446[br](20.67%)''' ||<:> {{{#ffffff '''2,051,441[br](42.35%)'''}}} ||<:> '''1,623,356[br](33.51%)''' || '''+428,085[br](△8.84)''' || '''66.18%''' || || '''종로구''' ||<:> 21.87% ||<:> {{{#d82634 45.09%}}} ||<:> 29.47% ||<:> △15.62 ||<:> 66.45% || || '''중구''' ||<:> 23.47% ||<:> {{{#d82634 44.11%}}} ||<:> 29.05% ||<:> △15.06 ||<:> 67.16% || || '''용산구''' ||<:> 23.01% ||<:> {{{#d82634 41.18%}}} ||<:> 32.32% ||<:> △8.86 ||<:> 65.80% || || '''성동구''' ||<:> 20.36% ||<:> {{{#d82634 44.01%}}} ||<:> 31.97% ||<:> △12.04 ||<:> 66.04% || || '''광진구''' ||<:> 19.23% ||<:> {{{#d82634 43.04%}}} ||<:> 34.41% ||<:> △8.63 ||<:> 66.05% || || '''동대문구''' ||<:> 20.68% ||<:> {{{#d82634 41.84%}}} ||<:> 33.90% ||<:> △7.94 ||<:> 66.30% || || '''중랑구''' ||<:> 19.41% ||<:> {{{#d82634 40.56%}}} ||<:> 36.11% ||<:> △4.45 ||<:> 65.33% || || '''성북구''' ||<:> 20.64% ||<:> {{{#d82634 43.60%}}} ||<:> 31.97% ||<:> △11.63 ||<:> 66.06% || || '''강북구''' ||<:> 18.71% ||<:> {{{#d82634 45.20%}}} ||<:> 31.35% ||<:> △13.85 ||<:> 64.39% || || '''도봉구''' ||<:> 19.11% ||<:> {{{#d82634 42.16%}}} ||<:> 35.34% ||<:> △6.82 ||<:> 66.21% || || '''노원구''' ||<:> 19.62% ||<:> {{{#d82634 41.12%}}} ||<:> 35.59% ||<:> △5.53 ||<:> '''67.51%''' || || '''은평구''' ||<:> 19.69% ||<:> {{{#d82634 43.27%}}} ||<:> 33.48% ||<:> △9.79 ||<:> 65.49% || || '''서대문구''' ||<:> 20.89% ||<:> {{{#d82634 44.64%}}} ||<:> 30.88% ||<:> △13.76 ||<:> 66.73% || || '''마포구''' ||<:> 21.11% ||<:> {{{#d82634 42.83%}}} ||<:> 32.60% ||<:> △10.23 ||<:> 66.23% || || '''양천구''' ||<:> 20.37% ||<:> {{{#d82634 41.80%}}} ||<:> 34.52% ||<:> △7.28 ||<:> 67.35% || || '''강서구''' ||<:> 22.11% ||<:> {{{#d82634 39.64%}}} ||<:> 34.69% ||<:> △4.95 ||<:> 66.57% || || '''구로구''' ||<:> 18.78% ||<:> {{{#d82634 41.60%}}} ||<:> 35.48% ||<:> △6.12 ||<:> 65.98% || || '''영등포구''' ||<:> 20.60% ||<:> {{{#d82634 41.89%}}} ||<:> 34.31% ||<:> △7.58 ||<:> 65.96% || || '''동작구''' ||<:> 21.31% ||<:> {{{#d82634 43.72%}}} ||<:> 32.08% ||<:> △11.64 ||<:> 66.23% || || '''관악구''' ||<:> 18.15% ||<:> {{{#d82634 '''48.30%'''}}} ||<:> 30.32% ||<:> △'''17.98''' ||<:> 66.79% || || '''서초구''' ||<:> 23.96% ||<:> {{{#d82634 38.46%}}} ||<:> 35.35% ||<:> △3.11 ||<:> 66.26% || || '''강남구''' ||<:> '''25.27%''' ||<:> {{{#d82634 38.65%}}} ||<:> 33.29% ||<:> △5.36 ||<:> 65.70% || || '''송파구''' ||<:> 21.27% ||<:> {{{#d82634 41.84%}}} ||<:> 33.83% ||<:> △8.01 ||<:> 66.09% || || '''강동구''' ||<:> 20.33% ||<:> {{{#d82634 39.79%}}} ||<:> '''36.47%''' ||<:> △3.32 ||<:> 66.44% ||}}} ===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1998년]] === ||<-4> [[서울특별시|{{{+1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width=20px]]}}}]] [[서울특별시장|{{{#ffffff {{{+1 '''서울특별시장'''}}}}}}]]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최병렬|{{{#373a3c,#dddddd 최병렬}}}]](崔秉烈) || 1,512,854 || 2위 || || [include(틀:한나라당(1997~2004))] || 43.99% || 낙선 || ||<|2> {{{#FFFFFF {{{+5 '''2'''}}}}}} || '''[[고건|{{{#373a3c,#dddddd 고건}}}]](高建)''' || '''1,838,348''' || '''1위''' || || [include(틀:새정치국민회의)] || '''53.46%''' || '''당선''' || ||<|2> {{{#FFFFFF {{{+5 '''4'''}}}}}} || [[이병호(변호사)|{{{#373a3c,#dddddd 이병호}}}]](李丙昊) || 87,495 || 3위 || || [include(틀:무소속)] || 2.54%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7,377,751 ||<|3> '''투표율'''[br]47.13% || || '''투표 수''' || 3,477,105 || || '''무효표 수''' || 38,408 || ---- 여담으로 [[최병렬]] 후보[* [[서울특별시]] [[서초구 갑]]의 제15대 국회의원이었지만 서울특별시장 선거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사퇴했다.]와 고건 후보는 모두 관선 서울특별시장 출신으로, 이로 인해 전직 서울특별시장간의 대결로 주목을 받았다. 김대중 정부의 허니문 효과와 IMF 사태로 인한 한나라당 심판 열기에 힘입어 고건 후보가 서초구와 강남구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승리하며 당선되었다. ===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02년]] === ||<-4> [[서울특별시|{{{+1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width=20px]]}}}]] [[서울특별시장|{{{#ffffff {{{+1 '''서울특별시장'''}}}}}}]]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이명박|{{{#373a3c,#dddddd 이명박}}}]](李明博)''' || '''1,819,057''' || '''1위''' || || [include(틀:한나라당(1997~2004))] || '''52.28%''' || '''당선''' || ||<|2> {{{#ffffff {{{+5 '''2'''}}}}}} || [[김민석(1964)|{{{#373a3c,#dddddd 김민석}}}]](金民錫) || 1,496,754 || 2위 || || [include(틀:새천년민주당)] || 43.02% || 낙선 || ||<|2> {{{#ffffff {{{+5 '''3'''}}}}}} || {{{#373a3c,#dddddd 임삼진}}}(林三鎭) || 28,034 || 5위 || || [include(틀:녹색평화당)] || 0.80% || 낙선 || ||<|2> {{{#ffffff {{{+5 '''4'''}}}}}} || [[이문옥|{{{#373a3c,#dddddd 이문옥}}}]](李文玉) || 87,965 || 3위 || || [include(틀:민주노동당)] || 2.52% || 낙선 || ||<|2> {{{#ffffff {{{+5 '''5'''}}}}}} || [[원용수|{{{#373a3c,#dddddd 원용수}}}]](元容秀) || 12,982 || 6위 || || [include(틀:사회당(1998년))] || 0.37% || 낙선 || ||<|2> {{{#ffffff {{{+5 '''6'''}}}}}} || [[이경희|{{{#373a3c,#dddddd 이경희}}}]](李京熹) || 34,313 || 4위 || || [include(틀:무소속)] || 0.98%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7,665,343 ||<|3> '''투표율'''[br]45.80% || || '''투표 수''' || 3,510,898 || || '''무효표 수''' || 31,793 || ----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인 이명박이 당선된 선거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의 열기로 인한 투표율 저하로 인해 [[관악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이겼다. ===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06년]] === ||<-4> [[서울특별시|{{{+1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width=20px]]}}}]] [[서울특별시장|{{{#ffffff {{{+1 '''서울특별시장'''}}}}}}]]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000000 {{{+5 '''1'''}}}}}} || [[강금실|{{{#373a3c,#dddddd 강금실}}}]](康錦實) || 1,077,890 || 2위 || || [include(틀:열린우리당)] || 27.31% || 낙선 || ||<|2> {{{#ffffff {{{+5 '''2'''}}}}}} || '''[[오세훈|{{{#373a3c,#dddddd 오세훈}}}]](吳世勳)''' || '''2,409,760''' || '''1위''' || || [include(틀:한나라당)] || '''61.05%''' || '''당선''' || ||<|2> {{{#ffffff {{{+5 '''3'''}}}}}} || [[박주선|{{{#373a3c,#dddddd 박주선}}}]](朴柱宣) || 304,565 || 3위 || || [include(틀:민주당(2005년))] || 7.71% || 낙선 || ||<|2> {{{#ffffff {{{+5 '''4'''}}}}}} || [[김종철(1970)|{{{#373a3c,#dddddd 김종철}}}]](金鍾哲) || 117,421 || 4위 || || [include(틀:민주노동당)] || 2.97% || 낙선 || ||<|2> {{{#ffffff {{{+5 '''5'''}}}}}} || [[임웅균|{{{#373a3c,#dddddd 임웅균}}}]](任雄均) || 14,111 || 5위 || || [include(틀:국민중심당)] || 0.35% || 낙선 || ||<|2> {{{#ffffff {{{+5 '''6'''}}}}}} || {{{#373a3c,#dddddd 이귀선}}}(李貴仙) || 4,790 || 7위 || || [include(틀:시민당(2006년))] || 0.12% || 낙선 || ||<|2> {{{#ffffff {{{+5 '''7'''}}}}}} || [[이태희(정치인)|{{{#373a3c,#dddddd 이태희}}}]](李泰熙) || 4,481 || 8위 || || [include(틀:한국의미래를준비하는당)] || 0.11% || 낙선 || ||<|2> {{{#ffffff {{{+5 '''8'''}}}}}} || {{{#373a3c,#dddddd 백승원}}}(白承元) || 13,808 || 6위 || || [include(틀:무소속)] || 0.34%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7,983,648 ||<|3> '''투표율'''[br]49.82% || || '''투표 수''' || 3,977,842 || || '''무효표 수''' || 31,016 || ---- {{{#!folding [서울특별시장 구별 개표 결과 보기] ||<:><-5> {{{#ffffff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구별 개표 결과'''}}} || ||<:> '''정당''' ||<:> [include(틀:열린우리당)] ||<:> [include(틀:한나라당)] ||<:><|2> '''투표 수[br](투표율)''' || ||<:> '''후보''' ||<:> [[강금실|{{{#000000 '''강금실'''}}}]] ||<:> [[오세훈|{{{#ffffff '''오세훈'''}}}]] || ||<|2> '''전체''' || '''1,077,890[br](27.31%)''' || {{{#ffffff '''2,409,760[br](61.05%)'''}}} ||<|2> '''3,977,842'''[br]'''(49.82%)''' || ||<-2><:> ◁ 33.74%p {{{#0095da ▶}}} || ||<|2> '''종로구''' ||<:> 19,369[br](27.48%) ||<:> {{{#0095da 41,992[br](59.59%)}}} ||<|2> 71,240[br]('''52.9%''') || ||<-2><:> ◁ 32.11%p {{{#0095da ▶}}} || ||<|2> '''중구''' ||<:> 15,382[br](28.03%) ||<:> {{{#0095da 32,708[br](59.62%)}}} ||<|2> 55,369[br](51.7%) || ||<-2><:> ◁ 31.59%p {{{#0095da ▶}}} || ||<|2> '''용산구''' ||<:> 26,087[br](27.45%) ||<:> {{{#0095da 58,427[br](61.48%)}}} ||<|2> 95,809[br](51.1%) || ||<-2><:> ◁ 34.03%p {{{#0095da ▶}}} || ||<|2> '''성동구''' ||<:> 35,842[br](27.42%) ||<:> {{{#0095da 77,631[br](59.40%)}}} ||<|2> 131,927[br](49.4%) || ||<-2><:> ◁ 31.98%p {{{#0095da ▶}}} || ||<|2> '''광진구''' ||<:> 39,716[br](28.36%) ||<:> {{{#0095da 83,209[br](59.42%)}}} ||<|2> 141,079[br](48.1%) || ||<-2><:> ◁ 31.06%p {{{#0095da ▶}}} || ||<|2> {{{#!wiki style="letter-spacing: -1px; margin: -5px; font-size: 14px" '''동대문구'''}}} ||<:> 40,952[br](26.92%) ||<:> {{{#0095da 92,583[br](60.87%)}}} ||<|2> 153,571[br](50.3%) || ||<-2><:> ◁ 33.95%p {{{#0095da ▶}}} || ||<|2> '''중랑구''' ||<:> 41,950[br](27.17%) ||<:> {{{#0095da 94,016[br](60.90%)}}} ||<|2> 155,626[br](46.8%) || ||<-2><:> ◁ 33.73%p {{{#0095da ▶}}} || ||<|2> '''성북구''' ||<:> 52,218[br](28.66%) ||<:> {{{#0095da 107,844[br](59.21%)}}} ||<|2> 183,552[br](49.7%) || ||<-2><:> ◁ 30.55%p {{{#0095da ▶}}} || ||<|2> '''강북구''' ||<:> 37,446[br](28.20%) ||<:> {{{#0095da 75,788[br](57.07%)}}} ||<|2> 133,339[br](47.8%) || ||<-2><:> ◁ 28.87%p {{{#0095da ▶}}} || ||<|2> '''도봉구''' ||<:> 41,460[br](28.27%) ||<:> {{{#0095da 88,101[br](60.08%)}}} ||<|2> 147,638[br](50.6%) || ||<-2><:> ◁ 31.81%p {{{#0095da ▶}}} || ||<|2> '''노원구''' ||<:> 70,050[br](29.40%) ||<:> {{{#0095da 140,438[br](58.95%)}}} ||<|2> '''239,926'''[br](51.5%) || ||<-2><:> ◁ 29.55%p {{{#0095da ▶}}} || ||<|2> '''은평구''' ||<:> 50,411[br](29.30%) ||<:>{{{#0095da 100,572[br](58.45%)}}} ||<|2> 173,479[br](47.2%) || ||<-2><:> ◁ 29.15%p {{{#0095da ▶}}} || ||<|2> {{{#!wiki style="letter-spacing: -1px; margin: -5px; font-size: 14px" '''서대문구'''}}} ||<:> 40,422[br](29.55%) ||<:> {{{#0095da 80,851[br](59.11%)}}} ||<|2> 137,876[br](49.7%) || ||<-2><:> ◁ 29.56%p {{{#0095da ▶}}} || ||<|2> '''마포구''' ||<:> 46,057[br](30.07%) ||<:> {{{#0095da 88,818[br](57.98%)}}} ||<|2> 154,442[br](49.4%) || ||<-2><:> ◁ 27.91%p {{{#0095da ▶}}} || ||<|2> '''양천구''' ||<:> 52,456[br](27.34%) ||<:> {{{#0095da 117,983[br](61.49%)}}} ||<|2> 193,234[br](51.7%) || ||<-2><:> ◁ 34.15%p {{{#0095da ▶}}} || ||<|2> '''강서구''' ||<:> 59,119[br](28.18%) ||<:> {{{#0095da 126,548[br](60.32%)}}} ||<|2> 211,567[br](49.2%) || ||<-2><:> ◁ 32.14%p {{{#0095da ▶}}} || ||<|2> '''구로구''' ||<:> 47,384[br](29.09%) ||<:> {{{#0095da 96,508[br](59.25%)}}} ||<|2> 164,398[br](50.1%) || ||<-2><:> ◁ 30.16%p {{{#0095da ▶}}} || ||<|2> '''금천구''' ||<:> 28,326[br](29.24%) ||<:> {{{#0095da 54,833[br](56.62%)}}} ||<|2> 97,796[br](48.9%) || ||<-2><:> ◁ 27.38%p {{{#0095da ▶}}} || ||<|2> {{{#!wiki style="letter-spacing: -1px; margin: -5px; font-size: 14px" '''영등포구'''}}} ||<:> 45,339[br](27.91%) ||<:> {{{#0095da 98,766[br](60.81%)}}} ||<|2> 163,818[br](50.4%) || ||<-2><:> ◁ 32.90%p {{{#0095da ▶}}} || ||<|2> '''동작구''' ||<:> 48,416[br](29.33%) ||<:> {{{#0095da 95,686[br](57.97%)}}} ||<|2> 166,416[br](50.7%) || ||<-2><:> ◁ 28.64%p {{{#0095da ▶}}} || ||<|2> '''관악구''' ||<:> '''66,667[br](31.85%)''' ||<:> {{{#0095da 110,710[br](52.90%)}}} ||<|2> 210,854[br](48.8%) || ||<-2><:> ◁ 21.05%p {{{#0095da ▶}}} || ||<|2> '''서초구''' ||<:> 33,010[br](20.18%) ||<:> {{{#0095da 117,293[br](71.70%)}}} ||<|2> 164,426[br](51.9%) || ||<-2><:> ◁ 51.52%p {{{#0095da ▶}}} || ||<|2> '''강남구''' ||<:> 39,314[br](18.22%) ||<:> {{{#0095da '''160,646[br](74.45%)'''}}} ||<|2> 216,768[br](50.0%) || ||<-2><:> ◁ 56.23%p {{{#0095da ▶}}} || ||<|2> '''송파구''' ||<:> 57,435[br](24.35%) ||<:> {{{#0095da 155,062[br](65.76%)}}} ||<|2> 237,313[br](50.8%) || ||<-2><:> ◁ 41.41%p {{{#0095da ▶}}} || ||<|2> '''강동구''' ||<:> 43,062[br](24.68%) ||<:> {{{#0095da 112,747[br](64.64%)}}} ||<|2> 175,779[br](49.3%) || ||<-2><:> ◁ 39.96%p {{{#0095da ▶}}} ||}}} ---- 당시 열린우리당은 참여정부의 낮은 지지율 + 잇따른 재보궐선거 패배로 조직력이 아작난 상황이였고,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오세훈 후보가 '''25개구 522개 동 전역에서''' 강금실 후보를 눌렀다. 이로써 3당 합당 이후 치른 지방선거에서 서울특별시에서 '''60%p''' 넘게 득표한 유일한 후보가 되었다. ===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10년]] === ||<-4> [[서울특별시|{{{+1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width=20px]]}}}]] [[서울특별시장|{{{#ffffff {{{+1 '''서울특별시장'''}}}}}}]]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오세훈|{{{#373a3c,#dddddd 오세훈}}}]](吳世勳)''' || '''2,086,127''' || '''1위''' || || [include(틀:한나라당)] || '''47.43%''' || '''당선''' || ||<|2> {{{#ffffff {{{+5 '''2'''}}}}}} || [[한명숙|{{{#373a3c,#dddddd 한명숙}}}]](韓明淑) || 2,059,715 || 2위 || || [include(틀:민주당(2008년))] || 46.83% || 낙선 || ||<|2> {{{#ffffff {{{+5 '''3'''}}}}}} || [[지상욱|{{{#373a3c,#dddddd 지상욱}}}]](池尙昱) || 90,032 || 4위 || || [include(틀:자유선진당)] || 2.04% || 낙선 || ||<|2> {{{#ffffff {{{+5 '''7'''}}}}}} || [[노회찬|{{{#373a3c,#dddddd 노회찬}}}]](魯會燦) || 143,459 || 3위 || || [include(틀:진보신당)] || 3.26% || 낙선 || ||<|2> {{{#ffffff {{{+5 '''8'''}}}}}} || [[석종현|{{{#373a3c,#dddddd 석종현}}}]](石琮顯) || 18,339 || 5위 || || [include(틀:미래연합)] || 0.41%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8,211,461 ||<|3> '''투표율'''[br]53.90% || || '''투표 수''' || 4,426,182 || || '''무효표 수''' || 28,510 || ---- {{{#!folding [서울특별시장 구별 개표 결과 보기] ||<-4>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구별 개표 결과''' || || '''정당''' || [include(틀:한나라당)] || [include(틀:민주당(2008년))] ||<|2> '''투표 수[br](투표율)''' || || '''후보''' || [[오세훈|{{{#ffffff '''오세훈'''}}}]] || [[한명숙|{{{#ffffff '''한명숙'''}}}]] || ||<|2> [[서울특별시|{{{#!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 '''전체'''}}}}}}]] || '''2,086,127[br](47.43%)''' || '''2,059,715[br](46.83%)''' ||<|2> '''4,426,182'''[br]'''(53.90%)''' || ||<-2> 표차 +26,412[br]{{{#0095da ◀ }}} 0.60%p ▷ || ||<|2> [[종로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 '''종로구'''}}}}}}]] || 35,476[br](46.04%) || '''36,910[br](47.90%)''' ||<|2> 77,812 [br](56.01%) || ||<-2> 표차 -1,434[br]◁ 1.86%p {{{#019e33 ▶}}} || ||<|2> [[중구(서울특별시)|{{{#!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 '''중구'''}}}}}}]] || '''28,648[br](47.55%)''' || 28,410[br](47.16%) ||<|2> {{{#0000ff '''60,763'''[* [[서울특별시]] 자치구 중 최소 투표수.]}}}[br](55.74%) || ||<-2> 표차 +238[br]{{{#0095da ◀ }}} 0.39%p ▷ || ||<|2> [[용산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 '''용산구'''}}}}}}]] || '''53,285[br](51.15%)''' || 44,706[br](42.91%) ||<|2> 105,005 [br](53.02%) || ||<-2> 표차 +8,579[br]{{{#0095da ◀ }}} 8.24%p ▷ || ||<|2> [[성동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 '''성동구'''}}}}}}]] || 63,448[br](47.22%) || '''63,966[br](47.60%)''' ||<|2> 135,277 [br](54.04%) || ||<-2> 표차 -518[br]◁ 0.38%p {{{#019e33 ▶}}} || ||<|2> [[광진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 '''광진구'''}}}}}}]] || 72,749[br](46.08%) || '''76,420[br](48.41%)''' ||<|2> 158,963 [br](52.70%) || ||<-2> 표차 -3,671[br]◁ 2.33%p {{{#019e33 ▶}}} || ||<|2> [[동대문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 '''동대문구'''}}}}}}]] || 74,536[br](46.77%) || '''76,032[br](47.71%)''' ||<|2> 160,497 [br](54.00%) || ||<-2> 표차 -1,496[br]◁ 0.94%p {{{#019e33 ▶}}} || ||<|2> [[중랑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 '''중랑구'''}}}}}}]] || 80,577[br](47.13%) || '''81,517[br](47.68%)''' ||<|2> 172,251 [br]{{{#0000ff '''(50.10%)'''[* [[서울특별시]] 자치구 중 최저 투표율.]}}} || ||<-2> 표차 -940[br]◁ 0.55%p {{{#019e33 ▶}}} || ||<|2> [[성북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 '''성북구'''}}}}}}]] || 91,907[br](45.19%) || '''99,316[br](48.83%)''' ||<|2> 204,667 [br](53.36%) || ||<-2> 표차 -7,409[br]◁ 3.64%p {{{#019e33 ▶}}} || ||<|2> [[강북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 '''강북구'''}}}}}}]] || 63,231[br](44.84%) || '''70,115[br](49.72%)''' ||<|2> 142,061 [br](51.43%) || ||<-2> 표차 -6,884[br]◁ 4.88%p {{{#019e33 ▶}}} || ||<|2> [[도봉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 '''도봉구'''}}}}}}]] || 74,594[br](46.98%) || '''74,789[br](47.10%)''' ||<|2> 159,958 [br](54.62%) || ||<-2> 표차 -195[br]◁ 0.12%p {{{#019e33 ▶}}} || ||<|2> [[노원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 '''노원구'''}}}}}}]] || 119,567[br](45.58%) || '''124,603[br](47.50%)''' ||<|2> 264,044 [br](56.14%) || ||<-2> 표차 -5,036[br]◁ 1.92%p {{{#019e33 ▶}}} || ||<|2> [[은평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 '''은평구'''}}}}}}]] || 85,737[br](44.77%) || '''95,666[br](49.95%)''' ||<|2> 192,939 [br](51.26%) || ||<-2> 표차 -9,929[br]◁ 5.18%p {{{#019e33 ▶}}} || ||<|2> [[서대문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 '''서대문구'''}}}}}}]] || 64,769[br](44.42%) || '''72,788[br](49.92%)''' ||<|2> 146,827 [br](55.00%) || ||<-2> 표차 -8,019[br]◁ 5.50%p {{{#019e33 ▶}}} || ||<|2> [[마포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 '''마포구'''}}}}}}]] || 75,267[br](43.79%) || '''85,882[br](49.97%)''' ||<|2> 172,905 [br](55.13%) || ||<-2> 표차 -10,615[br]◁ 6.18%p {{{#019e33 ▶}}} || ||<|2> [[양천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 '''양천구'''}}}}}}]] || '''101,350[br](47.47%)''' || 100,272[br](46.96%) ||<|2> 214,849 [br](56.19%) || ||<-2> 표차 +1,078[br]{{{#0095da ◀ }}} 0.51%p ▷ || ||<|2> [[강서구(서울특별시)|{{{#!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 '''강서구'''}}}}}}]] || 111,082[br](46.05%) || '''116,689[br](48.37%)''' ||<|2> 242,758 [br](53.34%) || ||<-2> 표차 -5,607[br]◁ 2.32%p {{{#019e33 ▶}}} || ||<|2> [[구로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 '''구로구'''}}}}}}]] || 83,846[br](44.85%) || '''92,666[br](49.57%)''' ||<|2> 187,965 [br](55.35%) || ||<-2> 표차 -8,820[br]◁ 4.72%p {{{#019e33 ▶}}} || ||<|2> [[금천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 '''금천구'''}}}}}}]] || 44,702[br](43.45%) || '''52,451[br](50.99%)''' ||<|2> 103,679 [br](52.60%) || ||<-2> 표차 -7,749[br]◁ 7.54%p {{{#019e33 ▶}}} || ||<|2> [[영등포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 '''영등포구'''}}}}}}]] || '''84,999[br](47.45%)''' || 83,982[br](46.88%) ||<|2> 180,352 [br](54.75%) || ||<-2> 표차 +1,017[br]{{{#0095da ◀ }}} 0.57%p ▷ || ||<|2> [[동작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 '''동작구'''}}}}}}]] || 81,914[br](44.72%) || '''90,859[br](49.60%)''' ||<|2> 184,233 [br]{{{#ff0000 '''(56.58%)'''[* [[서울특별시]] 자치구 중 최고 투표율.]}}} || ||<-2> 표차 -8,945[br]◁ 4.88%p {{{#019e33 ▶}}} || ||<|2> [[관악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 '''관악구'''}}}}}}]] || 93,184[br](39.34%) || '''128,444[br](54.23%)''' ||<|2> 238,367 [br](53.92%) || ||<-2> 표차 {{{#019e33 '''-35,260'''[* 한명숙 승리 자치구 중 최다 득표수 차.]}}}[br]◁ {{{#019e33 '''14.89%p'''[* 한명숙 승리 자치구 중 최고 득표율 차.]}}} {{{#019e33 ▶}}} || ||<|2> [[서초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 '''서초구'''}}}}}}]] || '''109,446[br](59.07%)''' || 65,626[br](35.41%) ||<|2> 185,981 [br](54.44%) || ||<-2> 표차 +43,820[br]{{{#0095da ◀ }}} 23.66%p ▷ || ||<|2> [[강남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 '''강남구'''}}}}}}]] || '''138,390[br](59.94%)''' || 79,094[br](34.26%) ||<|2> 231,886 [br](51.21%) || ||<-2> 표차 {{{#0095da '''+59,296'''[* 오세훈 승리 자치구 중 최다 득표수 차.]}}}[br]{{{#0095da ◀ }}} {{{#0095da '''25.68%p'''[* 오세훈 승리 자치구 중 최고 득표율 차.]}}} ▷ || ||<|2> [[송파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 '''송파구'''}}}}}}]] || '''149,228[br](51.28%)''' || 125,414[br](43.09%) ||<|2> {{{#ff0000 '''292,420'''[* [[서울특별시]] 자치구 중 최다 투표수.]}}} [br](54.18%) || ||<-2> 표차 +23,814[br]{{{#0095da ◀ }}} 8.19%p ▷ || ||<|2> [[강동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 '''강동구'''}}}}}}]] || '''104,195[br](49.99%)''' || 93,098[br](44.66%) ||<|2> 209,723 [br](54.08%) || ||<-2> 표차 +11,097[br]{{{#0095da ◀ }}} 5.33%p ▷ ||}}} ---- 선거 이전 여론조사들에서는 오세훈 후보가 넉넉히 우세를 점하고 있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출구조사에서 오세훈 47.4% VS 한명숙 47.2%로 두 후보 간 예상 득표율 격차가 0.2%밖에 나지 않는 반전이 일어났다. 뒤이은 실제 개표 과정에서도 두 후보의 순위만 4번이 뒤바뀌는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역대 최고의 접전 승부[* 이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선거가 이 선거를 능가하는 '''초접전 선거'''가 되었다.]가 벌어졌다. 개표 초반에는 한명숙 후보가 앞서 나갔고, 한 때 2만표 이상 격차까지 벌어졌기에 자정을 넘긴 시각 한명숙 후보는 자체적으로 승리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도 잠깐, 개표율이 낮던 [[강남3구]]의 개표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며 이곳에서만 12만표 이상의 격차가 벌어졌고, 새벽 4시를 넘겨 오세훈 후보가 역전하였다. 최종적으로 오세훈 후보 0.60%p, 2만 6천여 표의 차이로 진땀승을 거두며 당선되었다. 당시 오세훈 후보는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양천구, 영등포구, 강동구, 중구, 용산구 '''단 8개 구에서만 이겼다.''' 하지만 상당수의 민주당 우위 지역에서 5%p 이내 격차로 상당히 선방했고[* 특히 성동구, 동대문구, 중랑구, 도봉구까지 강북 여러 자치구에서 1%p 이내 초접전을 벌였다.], 무엇보다도 강남3구에서 10%p~20%p 정도의 격차로 크게 이기면서 역전승에 기여했다. 한명숙 후보는 서울특별시 17개 자치구에서 승리했지만 한날 한시에 치른 서울특별시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 구청장 후보들이 크게 승리한 만큼 격차를 벌리지 못하며 상대적으로 부진했고[* 실제 한명숙 후보가 승리한 17개 구 중 1만 표 이상 차이를 벌린 곳은 관악구와 마포구뿐이었다.], 결정적으로 강남3구의 몰표에 막혀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여담으로 12년 뒤, 비슷하게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 출신으로 '''선출직이 없는 대선 후보로서 최초'''의 사례이다.]가 [[경기도지사]]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상대로 '''불과 0.73%p 차이'''로 꺾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참고로 역대 대선에서 '''가장 적은 격차'''였다.] 참고로, 1년뒤 직을 걸었던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 결과에 따라 1년만에 중도 사퇴하여 다음해인 2011년 다시 서울시장 선거를 시행하게 된다. ===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2011년]] === ||<-4> [[서울특별시|{{{+1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width=20px]]}}}]] [[서울특별시장|{{{#ffffff {{{+1 '''서울특별시장'''}}}}}}]]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나경원|{{{#373a3c,#dddddd 나경원}}}]](羅卿瑗) || 1,867,880 || 2위 || || [include(틀:한나라당)] || 46.21% || 낙선 || ||<|2> {{{#FFFFFF {{{+5 '''--8--'''}}}}}} || --[[김충립|{{{#373a3c,#dddddd 김충립}}}]](金忠立)-- ||<|2><-2> 등록 무효 || || --[include(틀:기독자유민주당)]-- || ||<|2> {{{#FFFFFF {{{+5 '''9'''}}}}}} || [[배일도|{{{#373a3c,#dddddd 배일도}}}]](裵一道) || 15,408 || 3위 || || [include(틀:무소속)] || 0.38% || 낙선 || ||<|2> {{{#FFFFFF {{{+5 '''10'''}}}}}} || '''[[박원순|{{{#373a3c,#dddddd 박원순}}}]](朴元淳)''' || '''2,158,476''' || '''1위''' || || [include(틀:무소속)] || '''53.40%''' || '''당선''' || ||<|3> '''계''' || '''선거인 수''' || 8,374,067 ||<|3> '''투표율'''[br]48.56% || || '''투표 수''' || 4,066,557 || || '''무효표 수''' || 24,793 || ---- {{{#!folding [서울특별시장 구별 개표 결과 보기] ||<-4> {{{#ffffff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서울특별시장 구별 개표 결과'''}}} || || '''정당''' || [include(틀:한나라당)] || [include(틀:무소속)] ||<|2> '''투표율''' || || '''후보''' || [[나경원|{{{#ffffff '''나경원'''}}}]] || [[박원순|{{{#ffffff '''박원순'''}}}]] || || '''전체''' || '''1,867,880[br](46.21%)''' || {{{#ffffff '''2,158,476[br](53.40%)'''}}} || '''48.56%''' || || '''종로구''' || 31,926[br](45.62%) || {{{#808080 37,770[br](53.97%)}}} || 49.5% || || '''중구''' || 26,564[br](47.65%) || {{{#808080 28,965[br](51.96%)}}} || 49.9% || || '''용산구''' || {{{#0095da 50,847[br](51.82%)}}} || 46,923[br](47.82%) || 47.4% || || '''성동구''' || 54,059[br](45.32%) || {{{#808080 64,766[br](54.30%)}}} || 48.0% || || '''광진구''' || 63,128[br](43.81%) || {{{#808080 80,449[br](55.83%)}}} || 47.4% || || {{{#!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동대문구'''}}} || 65,140[br](45.24%) || {{{#808080 78,221[br](54.32%)}}} || 47.6% || || '''중랑구''' || 68,501[br](44.75%) || {{{#808080 83,870[br](54.80%)}}} || 44.4% || || '''성북구''' || 81,902[br](42.74%) || {{{#808080 108,976[br](56.87%)}}} || 48.5% || || '''강북구''' || 54,531[br](42.58%) || {{{#808080 72,981[br](56.98%)}}} || 45.2% || || '''도봉구''' || 64,110[br](44.87%) || {{{#808080 78,179[br](54.72%)}}} || 48.5% || || '''노원구''' || 104,251[br](44.08%) || {{{#808080 131,293[br](55.51%)}}} || 50.3% || || '''은평구''' || 78,252[br](42.63%) || {{{#808080 104,533[br](56.96%)}}} || 46.2% || || {{{#!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서대문구'''}}} || 55,181[br](43.03%) || {{{#808080 72,542[br](56.57%)}}} || 49.0% || || '''마포구''' || 67,297[br](42.01%) || {{{#808080 92,375[br](57.66%)}}} || 49.9% || || '''양천구''' || 89,227[br](45.97%) || {{{#808080 103,780[br](53.47%)}}} || 50.4% || || '''강서구''' || 95,934[br](44.13%) || {{{#808080 120,537[br](55.45%)}}} || 47.4% || || '''구로구''' || 71,850[br](43.15%) || {{{#808080 94,015[br](56.46%)}}} || 48.5% || || '''금천구''' || 36,194[br](41.12%) || {{{#808080 51,418[br](58.42%)}}} || 44.3% || || {{{#!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영등포구'''}}} || 73,833[br](46.01%) || {{{#808080 86,069[br](53.63%)}}} || 48.7% || || '''동작구''' || 73,341[br](43.60%) || {{{#808080 94,283[br](56.05%)}}} || 50.8% || || '''관악구''' || 78,473[br](36.85%) || {{{#808080 '''133,587[br](62.74%)'''}}} || 47.9% || || '''서초구''' || {{{#0095da 111,014[br](60.12%)}}} || 73,139[br](39.61%) || '''53.1%''' || || '''강남구''' || {{{#0095da '''140,109[br](61.33%)'''}}} || 87,657[br](38.37%) || 49.7% || || '''송파구''' || {{{#0095da 140,183[br](51.12%)}}} || 133,087[br](48.53%) || 50.3% || || '''강동구''' || 92,033[br](47.98%) || {{{#808080 99,061[br](51.64%)}}} || 48.2% ||}}} ---- 상기한 바와 같이 1년만에 사퇴로 인해 남은 3년 시정을 맡을 시장 선거가 다시 진행되었다. [[강남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박원순이 승리를 거두었다. 세부적으로 보면 박원순 후보는 우세 지역에선 표 차이를 더 벌렸고, 스윙스테이트인 강동구, 중구, 양천구, 영등포구를 빼앗고 용산구에서 '''3,924표''' 차, 송파구에서 '''7,096표'''로 표차를 1/2 정도로 줄이는 데 성공하였다. 나경원 입장에선 강북에서 선전은 못한 건 물론 스윙스테이트였던 4개 지역을 뺏기고, 송파구, 용산구에서 표차가 반토막이 난 것이 패인이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경원]]은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중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의원직을 사퇴했는데, 그녀의 지역구였던 중구에서도 [[박원순]]에 밀렸다.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14년]] === ||<-4> [[서울특별시|{{{+1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width=20px]]}}}]] [[서울특별시장|{{{#ffffff {{{+1 '''서울특별시장'''}}}}}}]]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정몽준|{{{#373a3c,#dddddd 정몽준}}}]](鄭夢準) || 2,109,869 || 2위 || || [include(틀:새누리당(2012년))] || 43.02% || 낙선 || ||<|2> {{{#ffffff {{{+5 '''2'''}}}}}} || '''[[박원순|{{{#373a3c,#dddddd 박원순}}}]](朴元淳)''' || '''2,752,171''' || '''1위''' || || [include(틀:새정치민주연합)] || '''56.12%''' || '''당선''' || ||<|2> {{{#ffffff {{{+5 '''3'''}}}}}} || [[정태흥|{{{#373a3c,#dddddd 정태흥}}}]](鄭泰興) || 23,638 || 3위 || || [include(틀:통합진보당)] || 0.48% || 낙선 || ||<|2> {{{#ffffff {{{+5 '''4'''}}}}}} || {{{#373a3c,#dddddd 홍정식}}}(洪貞植) || 17,603 || 4위 || || [include(틀:새정치국민의당)] || 0.35%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8,441,594 ||<|3> '''투표율'''[br]58.63% || || '''투표 수''' || 4,948,897 || || '''무효표 수''' || 45,616 || ----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아무래도 여당에게 불리한 상황인데 정몽준의 아들인 [[정예선]]이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관련으로 [[정예선 미개 발언 논란|미개 발언]]을 하는 바람에 더 불리해졌다. 그리고 결국 박원순이 '''13.10%'''란 넉넉한 격차로 정몽준을 꺾음으로써 재선에 성공하였다. 특히 [[강남3구]]에서 엄청난 선전을 했는데, 강남구와 서초구에선 '''47%'''를 득표했고, 송파구에선 아예 '''52%'''로 정몽준을 꺾었다.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18년]] === ||<-4> [[서울특별시|{{{+1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width=20px]]}}}]] [[서울특별시장|{{{#ffffff {{{+1 '''서울특별시장'''}}}}}}]]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박원순|{{{#373a3c,#dddddd 박원순}}}]](朴元淳)''' || '''2,619,497''' || '''1위''' || || [include(틀:더불어민주당)] || '''52.79%''' || '''당선''' || ||<|2> {{{#FFFFFF {{{+5 '''2'''}}}}}} || [[김문수|{{{#373a3c,#dddddd 김문수}}}]](金文洙) || 1,158,487 || 2위 || || [include(틀:자유한국당)] || 23.34% || 낙선 || ||<|2> {{{#FFFFFF {{{+5 '''3'''}}}}}} || [[안철수|{{{#373a3c,#dddddd 안철수}}}]](安哲秀) || 970,374 || 3위 || || [include(틀:바른미래당)] || 19.55% || 낙선 || ||<|2> {{{#000000 {{{+5 '''5'''}}}}}} || [[김종민(1970)|{{{#373a3c,#dddddd 김종민}}}]](金鍾珉) || 81,664 || 5위 || || [include(틀:정의당(2013~2021))] || 1.64% || 낙선 || ||<|2> {{{#FFFFFF {{{+5 '''6'''}}}}}} || {{{#373a3c,#dddddd 김진숙}}}(金眞淑) || 22,134 || 6위 || || [include(틀:민중당)] || 0.44% || 낙선 || ||<|2> {{{#FFFFFF {{{+5 '''7'''}}}}}} || [[인지연|{{{#373a3c,#dddddd 인지연}}}]](印志涓) || 11,222 || 8위 || || [include(틀:대한애국당)] || 0.22% || 낙선 || ||<|2> {{{#FFFFFF {{{+5 '''8'''}}}}}} || [[신지예|{{{#373a3c,#dddddd 신지예}}}]](申智藝) || 82,874 || 4위 || || [include(틀:녹색당)] || 1.67% || 낙선 || ||<|2> {{{#FFFFFF {{{+5 '''9'''}}}}}} || [[우인철|{{{#373a3c,#dddddd 우인철}}}]](禹仁喆) || 11,599 || 7위 || || [include(틀:우리미래)] || 0.23% || 낙선 || ||<|2> {{{#FFFFFF {{{+5 '''10'''}}}}}} || {{{#373a3c,#dddddd 최태현}}}(崔泰賢) || 4,021 || 9위 || || [include(틀:친박연대)] || 0.08%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8,380,947 ||<|3> '''투표율'''[br]59.89% || || '''투표 수''' || 5,019,098 || || '''무효표 수''' || 57,226 || ---- 서울특별시의 모든 구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원순]] 후보가 승리했다. 어떻게 보면, 역대 선거에서 가장 역사적인 단일화를 이루어냈다는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오세훈]]이 서울특별시장직을 사퇴한 이후 재보궐선거가 있었는데, [[한나라당]]에서는 당시 서울특별시 [[중구(서울 선거구)|중구]] 국회의원이었던 [[나경원]]을 공천했고, 야권에서는 당시 서울특별시 [[구로구 을]] 국회의원이었던 [[박영선]]([[민주당(2008년)|민주당]]), [[안철수]](무소속), [[박원순]](무소속)이 야권 연대를 했고 이 중 박원순이 경선에서 승리해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공천되었다. 선거 결과,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7% 정도 앞서면서 당선되었다.] 이후, 7년 만에 다시 만난 셈인데, [[김문수]]와 [[안철수]]는 처음부터 네거티브 공세가 상당히 강했고, [[박원순]]은 역대 최악의 네거티브를 입었다고 할 정도로 네거티브 공세가 심해져 있었다. 하지만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의 압도적인 승리에 힘 입어서 민선 서울특별시장 최초로 3선에 성공했다. 3선 임기까지 마치게 된다면 조선 시대 [[한성판윤]]까지 올라가도 박원순보다 오래 임기를 유지하는 이는 없다.[* 그리고 [[박원순]]의 3선 임기는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사망 사건|미완으로 끝나게 되었다.]]] [[자유한국당]]은 막판까지 서울특별시에서 압승할 거라는 행복회로를 돌렸다. 하지만, [[박원순]]의 시정 평가는 중위권에서 아래로 내려간 적은 없는 편이다. 심지어 예전의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보이듯, 자유한국당이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 이기려면 [[강남3구]]에서 압도적으로 이겨야 하는데, 강남3구에서도 박원순에 대해 괜찮아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서울특별시장 여론조사 [[박원순]]의 3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여론조사에서 '''강남3구의 긍정 평가가 50%를 넘겨버렸다.'''] 사실, 이렇게 된 건 [[오세훈]]의 실책이 컸다. 강남 워터파크의 문제도 있었고, 오세훈은 강남구에서 국회의원을 하고 강남구민의 전적인 지지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물난리 문제를 개선하지 않았다. 그나마 공약을 안 했음 밉지나 않은데 [[그래서 대통령 되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토론에서 물난리를 개선하겠다고 말을 해놨으니]] 오세훈에 대한 부정 평가가 심할 수 밖에 없다. 여기다 [[DDP]], [[고척 스카이돔]], [[세빛섬]]은 [[오세훈]] 시정 때 디자인 서울특별시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어 이후 [[박원순]] 시정이 출범하면서 수익성이 있는지 감사원에다 의뢰한 결과 모두 엄청난 적자가 예상되었다. 이에 [[DDP]]는 무료시설을 없애고 모두 수익 시설로 돌려놓으며 자립시켰고, [[고척 스카이돔]]은 원래 예산보다 더 쓰면서까지 설계를 변경하고[* [[구일역]]의 설계를 변경해가면서 고척 스카이돔 방향 출구를 만들었고, 하필 일대가 헬게이트 터지는 [[경인로]]인지라 고척돔 인근의 도로를 다 뜯어고쳤다.] 반강제로 [[넥센 히어로즈]]를 입성시키고 나서 나름 성공하게 되면서 다른 지역에서도 돔구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사직 야구장]],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 같은 낡은 구장의 신축을 돔구장으로 해야한다는 주장이 있긴 하다.] [[세빛섬]]은 마땅한 사용처를 찾지 못 해 방치되다가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한국 촬영|어벤져스]] 촬영지로 활용됐음에도 불구하고 무료로 입장하는 관광객이 늘었을 뿐이라 자립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 외에도, 오세훈은 공군과 [[롯데월드타워]]에 관해서 군사적인 문제로 수차례 대립한 전례가 있었다.[* 인근에 서울공항이 있다. 군용기가 공항에 안전하게 착륙하기 위해선 시야 확보=안전 확보가 최우선인데, [[롯데월드타워]]가 세워지게 된다면 이 건물 때문에 시야 확보가 어려워지므로 활주로의 각도를 7도 가량 틀어야 한다며 공군이 반대하자 '''공군 의견은 그저 참고 사항일 뿐'''이라는 소리를 했다. [[https://ytn.co.kr/_ln/0103_201606141812065799|심지어 이런 논란도 있다.]] 안보를 외친다는 보수 정당의 서울시장이 현대전에서 지상 전력 만큼이나 중요한 공중 전력의 제공권 확보에 관한 사안을 무시해버린 셈.] 여튼 [[박원순]]은 ([[서울로7017]] 정도의 예산 낭비를 제외하면) [[심야버스(서울)|심야버스]]를 도입해 총알택시에 지친 직장인들을 상대로 대성공을 거뒀고, 실사판 [[타요 버스]]를 아이코닉스와 콜라보해서 스티킹을 해 운행하는 프로젝트도 성공하게 된다. 그 외에도 [[https://news.v.daum.net/v/20140408150702966|라바 지하철]]도 생겼다. 당연히, 아이들의 인기가 폭발했으며 타보겠다고 지방에서 올라오는 사람도 있는 모양.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4100600025&code=950201|결국 이 타요버스는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박원순]]은 이번의 당선으로 수많은 최초 기록을 얻었다. 최초의 3선 [[서울특별시장]]인 것도 있지만, '''민선 최초로 비 정치인 출신이 [[무소속]][* 물론 당선 뒤로 [[민주통합당]]에 입당하지만.]으로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된 이후, 나온 선거까지 포함 모두 과반수의 득표율로 전승한 전무후무한 사례.''' 그 전설의 3+2+3=8전 전승 신화를 이루어 낸 [[이시종]]도 3선 [[충주시|충주시장]]을 하고 지역구 국회의원도 두 번이나 한 끝에 [[충청북도지사]] 3선을 한 것과 50%를 넘은 적이 단 두 번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최초의 민선 서울특별시장이였던 [[김상돈]]도 국회의원 경력이 있었고,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선인이었던 [[조순]]을 빼면[* 그나마 불출마 후 [[1998년 재보궐선거]]에서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선거구)|강릉시 을]]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니 국회의원 무경력은 [[박원순]] 전 시장이 유일하다.], [[고건]], [[이명박]], [[오세훈]] 또한 국회의원 경력이 있었다. 김문수의 경우 큰 득표율 차로 2위로 낙선하긴 했지만 두 가지 면에서 선전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관악구]]와 [[노원구]]를 제외한[* 관악구는 서울특별시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지역이고 노원구는 안철수의 전 지역구다. 두 곳 다 호남 출신이 많아 민주당 지지세가 강하다.] 서울특별시 23개 구에서 20%를 넘기면서 안철수 후보를 누르고 2위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홍준표]]가 [[강남구]], [[서초구]], [[용산구]], [[종로구]]를 제외한 21개 구에서 안철수에 밀리면서 3위를 기록해 자유한국당이 수도권에서 3위로 밀리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는데 김문수는 강남3구 외 지역에서도 서울특별시 전반적으로 2위를 기록하며 이와 같은 우려를 불식시켰다.[* 물론 [[남경필]]이나 [[유정복]]도 경기도와 인천광역시에서 35%대의 득표율로 2위를 하긴 했지만 김문수의 경우 2위 싸움의 상대가 1년 전 대통령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2위를 차지한 안철수라는 점이 다르다.] 다음으로 부촌 지역의 보수표를 재결집시키는데 성공했다. 서울특별시에서 가장 보수세가 강한 부촌인 [[압구정동]]의 경우 제19대 대통령 선거 홍준표 41.93%에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김문수 52.11%로 '''10.18%'''나 상승했으며 [[강남구]]의 대치2동과 개포2동, [[서초구]]의 반포본동과 반포3동, [[용산구]]의 이촌1동의 결과를 뒤집으면서 [[중구(서울특별시)|중구]]의 을지로동과 회현동을 빼앗겼음에도 자유한국당의 1위 동을 13개동에서 16개 동으로 늘렸다. 이와 같은 부촌 지역의 자유한국당 재결집은 김문수 후보의 적극적 재개발 공약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가장 피해가 큰 대상은 [[바른미래당]] [[안철수]]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안철수는 비록 [[콘크리트 지지층]]을 자기 편으로 삼은 홍준표에게 밀려 종합 3위를 차지했으나, 적어도 서울에서는 2위였다.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홍준표보다 지지층이 월등히 좁은 [[김문수]]에게 밀려버렸다. 호사가들은 안철수는 어차피 질 선거, 적어도 서울특별시에서 의미 있는 스코어를 보이며 2등을 차지해 최소한 야권의 대권 주자로 자리매김하려고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나섰다고 추측했다. 만약 그렇다면 안철수는 결과적으로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만 셈이다. 안철수의 서울특별시 득표율은 1년 전 대통령 선거와는 다른 양상을 띄었는데 대통령 선거에서는 지역구인 [[노원구]] 및 인근의 [[강북구]], [[도봉구]] 등의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득표율을 올렸으나 이번 지방선거의 경우 강남3구 및 [[용산구]] 등 부촌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득표율을 올렸다. 특히 근소한 득표율 차로 [[강남구]]가 아닌 [[서초구]]에서 서울특별시 득표율 1위를 기록했다는 점은 대통령 선거에서의 [[유승민]]의 경우와 거의 비슷한데 안철수 개인의 성향도 중도 보수 성향이 강해지기도 했고 바른정당과의 합당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노원구]]의 경우 대통령 선거 출마로 인한 사퇴 논란이 있었지만 그래도 전 지역구라고 주민들이 나름 밀어준건지 안철수의 득표율이 서울특별시 내에서 서초구, 강남구에 이어 3번째로 높았다. 어찌 됐든 더불어민주당은 서울특별시에서 시의회와 기초자치단체장을 휩쓰는데 성공했고 그 결과 박원순은 가히 [[http://www.dogdrip.net/166068989|서울특별시의]]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2116534|타노스]]라고 불리기 부족함이 없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사망 사건|그러나...]] === [[2021년 재보궐선거|2021년]] === ||<-4> [[서울특별시|[[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width=20px]]]] [[서울특별시장|{{{#ffffff {{{+1 '''서울특별시장'''}}}}}}]]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박영선|{{{#373a3c,#dddddd 박영선}}}]](朴映宣) || 1,907,336 || 2위 || || [include(틀:더불어민주당)] || 39.18% || 낙선 || ||<|2> {{{#FFFFFF {{{+5 '''2'''}}}}}} || '''[[오세훈|{{{#373a3c,#dddddd 오세훈}}}]](吳世勳)''' || '''2,798,788''' || '''1위''' || || [include(틀:국민의힘)] || '''57.50%''' || '''당선''' || ||<|2> {{{#FFFFFF {{{+5 '''--4--'''}}}}}} || --[[안철수|{{{#373a3c,#dddddd 안철수}}}]](安哲秀)-- ||<|2><-2> 사퇴[* 2021년 3월 23일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와 단일화 확정으로 사퇴했다. 후보 등록일 이후 사퇴하였기 때문에 투표 용지에는 인쇄되었으나, 기표란에 '''사퇴'''라고 표시되었다.] || || --[include(틀:국민의당)]-- || ||<|2> {{{#FFFFFF {{{+5 '''6'''}}}}}} || [[신지혜|{{{#373a3c,#dddddd 신지혜}}}]](申智惠) || 23,628 || 5위 || || [include(틀:기본소득당)] || 0.48% || 낙선 || ||<|2> {{{#FFFFFF {{{+5 '''7'''}}}}}} || [[허경영|{{{#373a3c,#dddddd 허경영}}}]](許京寧) || 52,107 || 3위 || || [include(틀:국가혁명당)] || 1.07% || 낙선 || ||<|2> {{{#FFFFFF {{{+5 '''8'''}}}}}} || [[오태양|{{{#373a3c,#dddddd 오태양}}}]](吳太陽) || 6,483 || 9위 || || [include(틀:미래당)] || 0.13% || 낙선 || ||<|2> {{{#FFFFFF {{{+5 '''9'''}}}}}} || [[이수봉|{{{#373a3c,#dddddd 이수봉}}}]](李守峯) || 11,196 || 8위 || || [include(틀:민생당)] || 0.23% || 낙선 || ||<|2> {{{#FFFFFF {{{+5 '''10'''}}}}}} || [[배영규|{{{#373a3c,#dddddd 배영규}}}]](裵永奎) || 634 || 12위 || || [include(틀:신자유민주연합)] || 0.01% || 낙선 || ||<|2> {{{#FFFFFF {{{+5 '''11'''}}}}}} || {{{#373a3c,#dddddd 김진아}}}(金珍芽) || 33,421 || 4위 || || [include(틀:여성의당)] || 0.68% || 낙선 || ||<|2> {{{#FFFFFF {{{+5 '''12'''}}}}}} || [[송명숙|{{{#373a3c,#dddddd 송명숙}}}]](宋名淑) || 12,272 || 7위 || || [include(틀:진보당(2020년))] || 0.25% || 낙선 || ||<|2> {{{#FFFFFF {{{+5 '''13'''}}}}}} || [[정동희|{{{#373a3c,#dddddd 정동희}}}]](鄭東熙) || 1,874 || 10위 || || [include(틀:무소속)] || 0.03% || 낙선 || ||<|2> {{{#FFFFFF {{{+5 '''14'''}}}}}} || [[이도엽(작가)|{{{#373a3c,#dddddd 이도엽}}}]](李度燁) || 1,664 || 11위 || || [include(틀:무소속)] || 0.03% || 낙선 || ||<|2> {{{#FFFFFF {{{+5 '''15'''}}}}}} || [[신지예|{{{#373a3c,#dddddd 신지예}}}]](申智藝) || 18,039 || 6위 || || [include(틀:무소속)] || 0.37%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8,425,869 ||<|3> '''투표율'''[br]58.19% || || '''투표 수''' || 4,902,630 || || '''무효표 수''' || 35,188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결과표.png|width=100%]]}}} || || [[파일:재보선 동별 개표 결과.png|width=100%]] || ---- {{{#!folding [서울특별시장 구별 개표 결과 보기] ||<-5> {{{#ffffff '''2021년 재보궐선거 서울특별시장 구별 개표 결과'''}}} || || '''정당''' || [include(틀:더불어민주당)] || [include(틀:국민의힘)] ||<|2> '''투표 수[br](투표율)''' || || '''후보''' || [[박영선|{{{#ffffff '''박영선'''}}}]] || [[오세훈|{{{#ffffff '''오세훈'''}}}]] || ||<|2> '''전체''' || '''1,907,336[br](39.18%)''' || {{{#ffffff '''2,798,788[br](57.50%)'''}}} ||<|2> '''4,902,630'''[br]'''(58.19%)''' || ||<-2><:> ◁ 18.32%p {{{#e61e2b ▶}}} || ||<|2> '''종로구''' ||<:> 32,309[br](41.26%) ||<:> {{{#e61e2b 43,255[br](55.24%)}}} ||<|2> 78,852[br](59.6%) || ||<-2><:> ◁ 13.98%p {{{#e61e2b ▶}}} || ||<|2> '''중구''' ||<:> 25,958[br](39.98%) ||<:> {{{#e61e2b 36,881[br](56.81%)}}} ||<|2> 65,391[br](57.4%) || ||<-2><:> ◁ 16.83%p {{{#e61e2b ▶}}} || ||<|2> '''용산구''' ||<:> 39,280[br](33.36%) ||<:> {{{#e61e2b 74,689[br](63.44%)}}} ||<|2> 118,460[br](57.9%) || ||<-2><:> ◁ 30.08%p {{{#e61e2b ▶}}} || ||<|2> '''성동구''' ||<:> 55,941[br](37.17%) ||<:> {{{#e61e2b 89,924[br](59.76%)}}} ||<|2> 151,520[br](58.7%) || ||<-2><:> ◁ 22.59%p {{{#e61e2b ▶}}} || ||<|2> '''광진구''' ||<:> 69,179[br](39.77%) ||<:> {{{#e61e2b 98,620[br](56.69%)}}} ||<|2> 175,342[br](57.2%) || ||<-2><:> ◁ 16.92%p {{{#e61e2b ▶}}} || ||<|2> {{{#!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동대문구'''}}} ||<:> 69,406[br](40.46%) ||<:> {{{#e61e2b 96,340[br](56.16%)}}} ||<|2> 172,922[br](57.3%) || ||<-2><:> ◁ 15.70%p {{{#e61e2b ▶}}} || ||<|2> '''중랑구''' ||<:> 81,450[br](43.45%) ||<:> {{{#e61e2b 99,555[br](53.10%)}}} ||<|2> 188,880[br](53.9%) || ||<-2><:> ◁ 9.65%p {{{#e61e2b ▶}}} || ||<|2> '''성북구''' ||<:> 94,055[br](42.79%) ||<:> {{{#e61e2b 117,596[br](53.50%)}}} ||<|2> 221,414[br](58.5%) || ||<-2><:> ◁ 10.71%p {{{#e61e2b ▶}}} || ||<|2> '''강북구''' ||<:> '''66,451[br](45.17%)''' ||<:> {{{#e61e2b 75,327[br](51.21%)}}} ||<|2> 148,390[br](54.4%) || ||<-2><:> ◁ 6.04%p {{{#e61e2b ▶}}} || ||<|2> '''도봉구''' ||<:> 68,848[br](42.37%) ||<:> {{{#e61e2b 88,274[br](54.33%)}}} ||<|2> 163,628[br](57.5%) || ||<-2><:> ◁ 11.96%p {{{#e61e2b ▶}}} || ||<|2> '''노원구''' ||<:> 111,652[br](42.02%) ||<:> {{{#e61e2b 145,073[br](54.60%)}}} ||<|2> 267,498[br](60.0%) || ||<-2><:> ◁ 12.58%p {{{#e61e2b ▶}}} || ||<|2> '''은평구''' ||<:> 104,281[br](44.85%) ||<:>{{{#e61e2b 119,068[br](51.21%)}}} ||<|2> 234,238[br](56.0%) || ||<-2><:> ◁ 6.36%p {{{#e61e2b ▶}}} || ||<|2> {{{#!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서대문구'''}}} ||<:> 67,277[br](42.02%) ||<:> {{{#e61e2b 86,375[br](53.95%)}}} ||<|2> 161,388[br](59.1%) || ||<-2><:> ◁ 11.93%p {{{#e61e2b ▶}}} || ||<|2> '''마포구''' ||<:> 77,948[br](40.66%) ||<:> {{{#e61e2b 105,676[br](55.12%)}}} ||<|2> 193,234[br](59.7%) || ||<-2><:> ◁ 14.46%p {{{#e61e2b ▶}}} || ||<|2> '''양천구''' ||<:> 91,182[br](39.63%) ||<:> {{{#e61e2b 132,189[br](57.46%)}}} ||<|2> 231,478[br](60.5%) || ||<-2><:> ◁ 17.83%p {{{#e61e2b ▶}}} || ||<|2> '''강서구''' ||<:> 120.310[br](42.56%) ||<:> {{{#e61e2b 152,517[br](53.95%)}}} ||<|2> 284,823[br](56.4%) || ||<-2><:> ◁ 11.39%p {{{#e61e2b ▶}}} || ||<|2> '''구로구''' ||<:> 89,385[br](43.73%) ||<:> {{{#e61e2b 108,763[br](53.21%)}}} ||<|2> 205,837[br](57.7%) || ||<-2><:> ◁ 9.48%p {{{#e61e2b ▶}}} || ||<|2> '''금천구''' ||<:> 48,743[br](44.82%) ||<:> {{{#e61e2b 56,238[br](51.71%)}}} ||<|2> 109,584[br](52.2%) || ||<-2><:> ◁ 7.69%p {{{#e61e2b ▶}}} || ||<|2> {{{#!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영등포구'''}}} ||<:> 75,376[br](38.33%) ||<:> {{{#e61e2b 114,765[br](58.36%)}}} ||<|2> 198,145[br](58.3%) || ||<-2><:> ◁ 20.03%p {{{#e61e2b ▶}}} || ||<|2> '''동작구''' ||<:> 81,367[br](40.06%) ||<:> {{{#e61e2b 114,862[br](56.55%)}}} ||<|2> 204,664[br](59.3%) || ||<-2><:> ◁ 16.49%p {{{#e61e2b ▶}}} || ||<|2> '''관악구''' ||<:> 106,896[br](44.44%) ||<:> {{{#e61e2b 122,604[br](50.97%)}}} ||<|2> 242,935[br](53.9%) || ||<-2><:> ◁ 6.53%p {{{#e61e2b ▶}}} || ||<|2> '''서초구''' ||<:> 60,029[br](26.74%) ||<:> {{{#e61e2b 159,433[br](71.02%)}}} ||<|2> 225,574[br]('''64.0%''') || ||<-2><:> ◁ 44.28%p {{{#e61e2b ▶}}} || ||<|2> '''강남구''' ||<:> 66,907[br](24.32%) ||<:> {{{#e61e2b '''202,320[br](73.54%)'''}}} ||<|2> 276,485[br](61.1%) || ||<-2><:> ◁ 49.22%p {{{#e61e2b ▶}}} || ||<|2> '''송파구''' ||<:> 114,468[br](33.28%) ||<:> {{{#e61e2b 219,812[br](63.91%)}}} ||<|2> '''346,139'''[br](61.0%) || ||<-2><:> ◁ 30.63%p {{{#e61e2b ▶}}} || ||<|2> '''강동구''' ||<:> 88,638[br](37.83%) ||<:> {{{#e61e2b 138,632[br](59.17%)}}} ||<|2> 235,809[br](59.3%) || ||<-2><:> ◁ 21.34%p {{{#e61e2b ▶}}} ||}}} ---- '''전 자치구에서 이겼으며''', 세부적으로 보면 5개 동을 제외한 나머지 동에서 전부 오세훈 후보가 이겼다. 그리고 이 선거로 인해 오세훈은 '''최다 득표수로 당선된 서울특별시장, 역대 가장 높은 득표율[*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61.05%'''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로 당선된 서울특별시장'''이란 타이틀을 모두 갖게 되었다. 사전 투표에서도 오세훈 후보가 약 10만 표차로 승리하였다. 세부적으로 자치구별 사전투표 결과를 보면 25개 구 중 11개 구[* 종로구, 서대문구, 은평구, 성북구, 강북구, 도봉구, 중랑구, 강서구, 구로구, 금천구, 관악구.]에서 박영선 후보가 승리했다.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86630|#]] 그리고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는 전체 425개 동 중에서 420곳에서 이겼고,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는 5곳에서 이겼다. ===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22년]] === ||<-4> [[서울특별시|{{{+1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width=20px]]}}}]] [[서울특별시장|{{{#ffffff {{{+1 '''서울특별시장'''}}}}}}]]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송영길|{{{#373a3c,#dddddd 송영길}}}]](宋永吉) || 1,733,183 || 2위 || || [include(틀:더불어민주당)] || 39.23% || 낙선 || ||<|2> {{{#FFFFFF {{{+5 '''2'''}}}}}} || '''[[오세훈|{{{#373a3c,#dddddd 오세훈}}}]](吳世勳)''' || '''2,608,277''' || '''1위''' || || [include(틀:국민의힘)] || '''59.05%''' || '''당선''' || ||<|2> {{{#000000 {{{+5 '''3'''}}}}}} || [[권수정|{{{#373a3c,#dddddd 권수정}}}]](權秀靜) || 53,840 || 3위 || || [include(틀:정의당)] || 1.21% || 낙선 || ||<|2> {{{#FFFFFF {{{+5 '''4'''}}}}}} || [[신지혜|{{{#373a3c,#dddddd 신지혜}}}]](申智惠) || 12,619 || 4위 || || [include(틀:기본소득당)] || 0.28% || 낙선 || ||<|2> {{{#FFFFFF {{{+5 '''5''' }}}}}} || [[김광종|{{{#373a3c,#dddddd 김광종}}}]](金光宗) || 9,000 || 5위 || || [include(틀:무소속)] || 0.20%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8,378,339 ||<|3> '''투표율'''[br]53.17% || || '''투표 수''' || 4,455,161 || || '''무효표 수''' || 38,242 || ---- {{{#!folding [서울특별시장 구별 개표 결과 보기] ||<-4>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구별 개표 결과''' || || '''정당''' || [include(틀:더불어민주당)] || [include(틀:국민의힘)] ||<|2> '''투표 수[br](투표율)''' || || '''후보''' || [[송영길|{{{#ffffff '''송영길'''}}}]] || [[오세훈|{{{#ffffff '''오세훈'''}}}]] || ||<|2> [[서울특별시|{{{#!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FFFFFF '''전체'''}}}}}}]] || '''1,733,183[br](39.23%)''' || '''2,608,277[br](59.05%)''' ||<|2> '''4,455,161'''[* 무효표 38,242표.][br]'''(53.17%)''' || ||<-2> 표차 875,094[br]◁ 19.82%p {{{#e61e2b ▶}}} || ||<|2> [[종로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FFFFFF '''종로구'''}}}}}}]] || 28,327[br](40.45%) || '''40,145[br](57.33%)''' ||<|2> 70,657[* 무효표 수 641표.] [br](54.4%) || ||<-2> 표차 11,818[br]◁ 16.88%p {{{#e61e2b ▶}}} || ||<|2> [[중구(서울특별시)|{{{#!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FFFFFF '''중구'''}}}}}}]] || 23,811[br](39.92%) || '''34,866[br](58.45%)''' ||<|2> {{{#0000ff '''60,323'''}}}[* 무효표 수 678표.][* [[서울특별시]] 지역 내 최소 투표 수.][br](53.8%) || ||<-2> 표차 11,055[br]◁ 18.53%p {{{#e61e2b ▶}}} || ||<|2> [[용산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FFFFFF '''용산구'''}}}}}}]] || 34,614[br](33.26%) || '''67,579[br](64.93%)''' ||<|2> 104,787[* 무효표 수 719표.] [br](52.6%) || ||<-2> 표차 32,965[br]◁ 31.67%p {{{#e61e2b ▶}}} || ||<|2> [[성동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FFFFFF '''성동구'''}}}}}}]] || 51,996[br](37.55%) || '''84,320[br](60.90%)''' ||<|2> 139,761[* 무효표 수 1,312표.][br](55.5%) || ||<-2> 표차 32,324[br]◁ 22.45%p {{{#e61e2b ▶}}} || ||<|2> [[광진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FFFFFF '''광진구'''}}}}}}]] || 62,217[br](40.45%) || '''90,734[br](58.31%)''' ||<|2> 157,005[* 무효표 수 1,399표.][br](51.4%) || ||<-2> 표차 28,517[br]◁ 17.86%p {{{#e61e2b ▶}}} || ||<|2> [[동대문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FFFFFF '''동대문구'''}}}}}}]] || 63,157[br](40.63%) || '''89,470[br](57.55%)''' ||<|2> 156,964[* 무효표 수 1,525표.][br](52.0%) || ||<-2> 표차 26,313[br]◁ 16.92%p {{{#e61e2b ▶}}} || ||<|2> [[중랑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FFFFFF '''중랑구'''}}}}}}]] || 76,660[br](43.61%) || '''96,447[br](54.86%)''' ||<|2> 177,701[* 무효표 수 1,926표.][br](51.0%) || ||<-2> 표차 19,787[br]◁ 11.25%p {{{#e61e2b ▶}}} || ||<|2> [[성북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FFFFFF '''성북구'''}}}}}}]] || 85,825[br](42.80%) || '''110,962[br](55.34%)''' ||<|2> 202,235[* 무효표 수 1,738표.][br](53.3%) || ||<-2> 표차 25,137[br]◁ 12.54%p {{{#e61e2b ▶}}} || ||<|2> [[강북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FFFFFF '''강북구'''}}}}}}]] || 58,962[br](44.69%) || '''70,747[br](53.62%)''' ||<|2> 133,390[* 무효표 수 1,465표.][br](49.7%) || ||<-2> 표차 11,785[br]◁ 8.93%p {{{#e61e2b ▶}}} || ||<|2> [[도봉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FFFFFF '''도봉구'''}}}}}}]] || 61,946[br](42.09%) || '''83,072[br](56.44%)''' ||<|2> 148,579[* 무효표 수 1,417표.][br](52.9%) || ||<-2> 표차 21,126[br]◁ 14.35%p {{{#e61e2b ▶}}} || ||<|2> [[노원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FFFFFF '''노원구'''}}}}}}]] || 102,771[br](42.35%) || '''135,812[br](55.96%)''' ||<|2> 245,152[* 무효표 수 2,485표.][br](55.5%) || ||<-2> 표차 33,041[br]◁ 13.61%p {{{#e61e2b ▶}}} || ||<|2> [[은평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FFFFFF '''은평구'''}}}}}}]] || 95,155[br](44.50%) || '''114,391[br](53.49%)''' ||<|2> 215,968[* 무효표 수 2,142표.][br](51.6%) || ||<-2> 표차 19,236[br]◁ 8.99%p {{{#e61e2b ▶}}} || ||<|2> [[서대문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FFFFFF '''서대문구'''}}}}}}]] || 61,182[br](41.99%) || '''81,312[br](55.80%)''' ||<|2> 146,970[* 무효표 수 1,275표.][br](54.1%) || ||<-2> 표차 20,130[br]◁ 13.81%p {{{#e61e2b ▶}}} || ||<|2> [[마포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FFFFFF '''마포구'''}}}}}}]] || 70,936[br](40.83%) || '''98,271[br](56.57%)''' ||<|2> 175,023[* 무효표 수 1,310표.][br](53.9%) || ||<-2> 표차 27,335[br]◁ 15.74%p {{{#e61e2b ▶}}} || ||<|2> [[양천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FFFFFF '''양천구'''}}}}}}]] || 82,777[br](39.73%) || '''122,449[br](58.77%)''' ||<|2> 209,694[* 무효표 수 1,374표.][br](55.4%) || ||<-2> 표차 39,672[br]◁ 19.04%p {{{#e61e2b ▶}}} || ||<|2> [[강서구(서울특별시)|{{{#!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FFFFFF '''강서구'''}}}}}}]] || 108,938[br](42.10%) || '''145,128[br](56.09%)''' ||<|2> 260,947[* 무효표 수 2,217표.][br](51.7%) || ||<-2> 표차 36,190[br]◁ 13.99%p {{{#e61e2b ▶}}} || ||<|2> [[구로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FFFFFF '''구로구'''}}}}}}]] || 78,250[br](42.02%) || '''104,643[br](56.20%)''' ||<|2> 188,094[* 무효표 수 1,914표.][br](53.2%) || ||<-2> 표차 26,393[br]◁ 14.18%p {{{#e61e2b ▶}}} || ||<|2> [[금천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FFFFFF '''금천구'''}}}}}}]] || 46,314[br](44.24%) || '''56,374[br](53.85%)''' ||<|2> 105,833[* 무효표 수 1,152표.][br]{{{#0000ff '''(49.7%)'''}}}[* [[서울특별시]] 지역 내 투표율 꼴찌.] || ||<-2> 표차 {{{#0000ff '''10,060'''}}}[* [[서울특별시]] 지역 내 최소 득표수 차.][br]◁ 9.61%p {{{#e61e2b ▶}}} || ||<|2> [[영등포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FFFFFF '''영등포구'''}}}}}}]] || 68,663[br](38.22%) || '''107,910[br](60.06%)''' ||<|2> 181,102[* 무효표 수 1,459표.][br](53.3%) || ||<-2> 표차 39,247[br]◁ 21.84%p {{{#e61e2b ▶}}} || ||<|2> [[동작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FFFFFF '''동작구'''}}}}}}]] || 74,678[br](40.13%) || '''108,122[br](58.11%)''' ||<|2> 187,383[* 무효표 수 1,337표.][br](54.4%) || ||<-2> 표차 33,444[br]◁ 17.98%p {{{#e61e2b ▶}}} || ||<|2> [[관악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FFFFFF '''관악구'''}}}}}}]] || '''100,445[br](44.76%)''' || '''119,009[br](53.03%)''' ||<|2> 226,801[* 무효표 수 2,408표.][br](50.4%) || ||<-2> 표차 18,564[br]◁ {{{#0000ff '''8.27%p'''}}}[* [[서울특별시]] 지역 내 최소 득표율 차.] {{{#e61e2b ▶}}} || ||<|2> [[서초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FFFFFF '''서초구'''}}}}}}]] || 50,545[br](26.47%) || '''138,050[br](72.31%)''' ||<|2> 191,862[* 무효표 수 958표.][br]{{{#ff0000 '''(56.0%)'''}}}[* [[서울특별시]] 지역 내 투표율 1위.] || ||<-2> 표차 87,505[br]◁ 45.84%p {{{#e61e2b ▶}}} || ||<|2> [[강남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FFFFFF '''강남구'''}}}}}}]] || 58,734[br](24.45%) || '''178,621[br](74.38%)''' ||<|2> 241,549[* 무효표 수 1,410표.][br](53.6%) || ||<-2> 표차 {{{#ff0000 '''119,887'''}}}[* [[서울특별시]] 지역 내 최다 득표 수 차.][br]◁ {{{#ff0000 '''49.93%p'''}}}[* [[서울특별시]] 지역 내 최다 득표율 차.] {{{#e61e2b ▶}}} || ||<|2> [[송파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FFFFFF '''송파구'''}}}}}}]] || 105,890[br](34.04%) || '''201,217[br](64.69%)''' ||<|2> {{{#ff0000 '''313,297'''}}}[* 무효표 수 2,280표.][* [[서울특별시]] 지역 내 최다 투표 수.][br](55.0%) || ||<-2> 표차 95,327[br]◁ 30.65%p {{{#e61e2b ▶}}} || ||<|2> [[강동구|{{{#!wiki style="letter-spacing:-1px;margin:-5px;font-size:14px;" {{{#000000,#FFFFFF '''강동구'''}}}}}}]] || 80,390[br](37.85%) || '''128,626[br](60.56%)''' ||<|2> 214,084[* 무효표 수 1,701표.][br](53.9%) || ||<-2> 표차 48,236[br]◁ 22.71%p {{{#e61e2b ▶}}} ||}}} ---- 오세훈 시장이 역대 2번째[* 공교롭게도 1번째 기록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자신이 기록했다. 당시는 522개 동 중 522개 동 전역에서 이겼다.]로 '''서울 25개 자치구 424개 동에서 모두 승리'''하는 등 [[송영길]] 후보를 압도하며 압승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21/0006136354?sid=100|#]] '''59.05%'''의 득표율을 얻어 [[송영길]] 후보를 '''19.82%p''' 차이로 이겼는데, 이 격차는 [[2021년 재보궐선거]] 당시 [[박영선]] 후보와의 '''18.32%p''' 격차보다 더 벌어진 결과다. 심지어 당시는 [[박원순 성폭력 사건]],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 부동산 투기 사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방역 실패란 큰 악재 3개가 있어서 [[더불어민주당]]에게 매우 불리한 선거였고, 그 때도 '''5개 행정동'''[* 창신2동, 구로3동, 항동, 화곡8동, 성산1동. 그나마 이 5곳 중 구로3동과 항동은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박영선]]의 정치적 고향인 [[구로구]] 관할이다.]에선 근소하게나마 이긴 걸 감안하면 송영길 후보 입장에선 매우 굴욕적인 결과를 만든 거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특히 송영길 후보가 기록한 득표율 39.23%는 이번 선거에서 '''非영남 지역 더불어민주당 광역자치단체장 후보 최저 득표율이다.'''[* 역시 전 행정동에서 전패한 [[변성완]]과 [[서재헌]]은 득표율 상으론 송영길보다 처참한 결과를 만들어냈긴 하나, 적어도 2명은 영남권이란 보수세가 강한 지역이고 상대 후보와 체급 차이도 어마어마하여 정치 생명에 타격이 크다고 볼 수 없다. 반면, 송영길은 비록 [[인천광역시]] 출신 후보이긴 하나, 엄연히 5선 의원에다 [[인천광역시장]]까지 지낸 한 대권 주자였기에 더 굴욕적인 결과로 볼 수 밖에 없으므로 이는 '''정치 생명에도 엄청난 타격'''이 가게 된다.] 이로써 오세훈은 역대 민선 광역자치단체장 중 최초로 '''4선'''을 한 광역자치단체장이 되었다. == 역대 정당별 전적 == || || [[민주당계 정당|{{{#000000 민주당계 정당}}}]] || [[대한민국의 보수정당|{{{#ffffff 보수 정당}}}]] || [[대한민국의 제3지대 정당|{{{#ffffff 제3후보}}}]][* 3% 이상 득표자만 기재.] || ||<|3>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1회]] || '''[[조순]]''' || [[정원식]] || [[박찬종]][* 중도 성향 후보.] || || [include(틀:민주당(1991년))] || [include(틀:민주자유당)] || [include(틀:무소속)] || || '''당선 42.35%''' || 낙선 20.67% || 낙선 33.51% || ||<|3>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2회]] || '''[[고건]]''' || [[최병렬]] ||<|3> - || || [include(틀:새정치국민회의)] || [include(틀:한나라당(1997~2004))] || || '''당선 53.46%''' || 낙선 43.99% || ||<|3>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3회]] || [[김민석(정치인)|김민석]] || '''[[이명박]]''' ||<|3> - || || [include(틀:새천년민주당)] || [include(틀:한나라당(1997~2004))] || || 낙선 43.02% || '''당선 52.28%''' || ||<|3>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4회]] || [[강금실]] || '''[[오세훈]]''' || [[박주선]][* [[민주당계 정당]] 후보.] || || [include(틀:열린우리당)] || [include(틀:한나라당)] || [include(틀:민주당(2005년))] || || 낙선 27.31% || '''당선 61.05%''' || 낙선 7.71% || ||<|3>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5회]] || [[한명숙]] || '''[[오세훈]]''' || [[노회찬]][* [[대한민국의 진보정당|진보 정당]] 후보.] || || [include(틀:민주당(2008년))] || [include(틀:한나라당)] || [include(틀:진보신당)] || || 낙선 46.83% || '''당선 47.43%''' || 낙선 3.26% || ||<|3>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재보선]] ||<|3> - || [[나경원]] || '''[[박원순]]'''[* [[민주당계 정당]]·진보 성향 후보.] || || [include(틀:한나라당)] || [include(틀:무소속)] || || 낙선 46.21% || '''당선 53.40%''' || ||<|3>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6회]] || '''[[박원순]]''' || [[정몽준]] ||<|3> - || || [include(틀:새정치민주연합)] || [include(틀:새누리당(2012년))] || || '''당선 56.12%''' || 낙선 43.02% || ||<|3>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7회]] || '''[[박원순]]''' || [[김문수]] || [[안철수]][* [[대한민국의 제3지대 정당|제3지대 정당]] 후보.] || || [include(틀:더불어민주당)] || [include(틀:자유한국당)] || [include(틀:바른미래당)] || || '''당선 52.79%''' || 낙선 23.34% || 낙선 19.55% || ||<|3> [[2021년 재보궐선거|재보선]] || [[박영선]] || '''[[오세훈]]''' ||<|3> - || || [include(틀:더불어민주당)] || [include(틀:국민의힘)] || || 낙선 39.18% || '''당선 57.50%''' || ||<|3>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8회]] || [[송영길]] || '''[[오세훈]]''' ||<|3> - || || [include(틀:더불어민주당)] || [include(틀:국민의힘)] || || 낙선 39.23% || '''당선 59.05%''' || == 역대 후보별 순위 == * 사퇴, 사망, 등록 무효 후보 제외.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11위 || 12위 || ||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1회]] || [[조순|{{{#ffffff '''조순'''}}}]] || [[박찬종|{{{#ffffff 박찬종}}}]] || [[정원식|{{{#ffffff 정원식}}}]] || [[황산성|{{{#ffffff 황산성}}}]] || {{{#ffffff 박홍래}}} || [[김옥선|{{{#ffffff 김옥선}}}]] || {{{#ffffff 고순복}}} || {{{#ffffff 김명호}}} || {{{#ffffff 정기용}}} || ||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2회]] || [[고건|{{{#ffffff '''고건'''}}}]] || [[최병렬|{{{#ffffff 최병렬}}}]] || [[이병호(변호사)|{{{#ffffff 이병호}}}]] || ||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3회]] || [[이명박|{{{#ffffff '''이명박'''}}}]] || [[김민석(정치인)|{{{#ffffff 김민석}}}]] || [[이문옥|{{{#ffffff 이문옥}}}]] || [[이경희|{{{#ffffff 이경희}}}]] || {{{#ffffff 임삼진}}} || [[원용수|{{{#ffffff 원용수}}}]] || ||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4회]] || [[오세훈|{{{#ffffff '''오세훈'''}}}]] || [[강금실|{{{#000000 강금실}}}]] || [[박주선|{{{#ffffff 박주선}}}]] || [[김종철(1970)|{{{#ffffff 김종철}}}]] || [[임웅균|{{{#ffffff 임웅균}}}]] || {{{#ffffff 백승원}}} || {{{#ffffff 이귀선}}} || [[이태희(정치인)|{{{#ffffff 이태희}}}]] || ||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5회]] || [[오세훈|{{{#ffffff '''오세훈'''}}}]] || [[한명숙|{{{#ffffff 한명숙}}}]] || [[노회찬|{{{#ffffff 노회찬}}}]] || [[지상욱|{{{#ffffff 지상욱}}}]] || [[석종현|{{{#ffffff 석종현}}}]] || ||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재보선]] || [[박원순|{{{#ffffff '''박원순'''}}}]] || [[나경원|{{{#ffffff 나경원}}}]] || [[배일도|{{{#ffffff 배일도}}}]] ||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6회]] || [[박원순|{{{#ffffff '''박원순'''}}}]] || [[정몽준|{{{#ffffff 정몽준}}}]] || [[정태흥|{{{#ffffff 정태흥}}}]] || {{{#ffffff 홍정식}}} ||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7회]] || [[박원순|{{{#ffffff '''박원순'''}}}]] || [[김문수|{{{#ffffff 김문수}}}]] || [[안철수|{{{#ffffff 안철수}}}]] || [[신지예|{{{#ffffff 신지예}}}]] || [[김종민(1970)|{{{#000000 김종민}}}]] || {{{#ffffff 김진숙}}} || [[우인철|{{{#ffffff 우인철}}}]] || [[인지연|{{{#ffffff 인지연}}}]] || {{{#ffffff 최태현}}} || || [[2021년 재보궐선거|재보선]] || [[오세훈|{{{#ffffff '''오세훈'''}}}]] || [[박영선|{{{#ffffff 박영선}}}]] || [[허경영|{{{#ffffff 허경영}}}]] || {{{#ffffff 김진아}}} || [[신지혜|{{{#ffffff 신지혜}}}]] || [[신지예|{{{#ffffff 신지예}}}]] || [[송명숙|{{{#ffffff 송명숙}}}]] || [[이수봉|{{{#ffffff 이수봉}}}]] || [[오태양|{{{#ffffff 오태양}}}]] || [[정동희|{{{#ffffff 정동희}}}]] || [[이도엽(작가)|{{{#ffffff 이도엽}}}]] || [[배영규|{{{#ffffff 배영규}}}]] || ||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8회]] || [[오세훈|{{{#ffffff '''오세훈'''}}}]] || [[송영길|{{{#ffffff 송영길}}}]] || [[권수정|{{{#000000 권수정}}}]] || [[신지혜|{{{#ffffff 신지혜}}}]] || {{{#ffffff 김광종}}} || == 역대 후보 득표율 순위 == * 3% 이하 득표한 후보는 제외 * 간선제 선거는 제외 * 당선된 후보는 볼드체 || '''{{{선거}}}''' || '''{{{후보}}}''' || '''{{{득표율}}}''' || '''{{{순위}}}''' || ||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4회''']] || '''[[오세훈]]''' || '''61.05%''' || '''1''' || || [[1960년 지방선거|1960]] || '''[[김상돈]]''' || 60.25% || 2 || ||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8회]] || '''[[오세훈]]''' || 59.05% || 3 || || [[2021년 재보궐선거|2021]] || '''[[오세훈]]''' || 57.50% || 4 ||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6회]] || '''[[박원순]]''' || 56.12% || 5 || ||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2회]] || '''[[고건]]''' || 53.46% || 6 || ||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2011]] || '''[[박원순]]''' || 53.40% || 7 ||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7회]] || '''[[박원순]]''' || 52.79% || 8 || ||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3회]] || '''[[이명박]]''' || 52.28% || 9 || ||<|2>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5회]] || '''[[오세훈]]''' || 47.43% || 10 || || [[한명숙]] || 46.83% || 11 || ||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2011]] || [[나경원]] || 46.21% || 12 || ||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2회]] || [[최병렬]] || 43.99% || 13 || ||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3회]] || [[김민석(정치인)|김민석]] ||<|2> 43.02% ||<|2> 14 ||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6회]] || [[정몽준]] || ||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1회]] || '''[[조순]]''' || 42.35% || 16 || ||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8회]] || [[송영길]] || 39.23% || 17 || || [[2021년 재보궐선거|2021]] || [[박영선]] || 39.18% || 18 || ||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1회]] || [[박찬종]] || 33.51% || 19 || || [[1960년 지방선거|1960]] || [[장기영(1916)|장기영]] || 32.35% || 20 || ||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4회]] || [[강금실]] || 27.31% || 21 ||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7회]] || [[김문수]] || 23.34% || 22 || ||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1회]] || [[정원식]] || 20.67% || 23 ||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7회]] || [[안철수]] || 19.55% || 24 || ||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4회]] || [[박주선]] || 7.71% || 25 || || [[1960년 지방선거|1960]] || [[정준(정치인)|정준]] || 6.30% || 26 || ||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5회]] || [[노회찬]] || 3.26% || 27 || == 시정 구호 == || {{{#white '''시장'''}}} || {{{#white '''슬로건'''}}} || || [[조순]] || - || || [[고건]] || - || || [[이명박]] || - || ||<|2> [[오세훈]] || 맑고 매력있는 세계도시 서울 || || 시민이 행복한 서울 세계가 사랑하는 서울 || ||<|3> [[박원순]] || 희망서울 - 함께 만드는 서울, 함께 누리는 서울 || || [[함께서울|함께 서울: 시민과 함께, 세계와 함께]] || || 내 삶을 바꾸는 서울 10년 혁명 || ||<|2> '''[[오세훈]]''' || '''다시 뛰는 공정도시 서울''' || || '''동행·매력 특별시 서울''' || == 창작물에서의 서울특별시장 == * 영화 <[[특별시민]]>: 변종구 ([[최민식]] 분) * [[60일, 지정생존자]] - [[강상구(60일, 지정생존자)|강상구]] * [[서울시장 키우기]]: 정확히는 [[2021년 재보궐선거]]를 패러디한 게임이다. *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 [[한승문]] * [[재벌집 막내아들]] - [[최창제]] * [[퀸메이커]] - [[오경숙]] ([[문소리]] 분) == 관련 문서 == * [[서울특별시]] * [[서울특별시/정치]] * [[시장(공무원)]] * [[서울특별시 부시장]] * [[서울특별시청]] * [[광역자치단체장]] == 둘러보기 == [include(틀:대한민국 국무회의의 배석)] ---- [include(틀:대한민국의 행정계통별 대표자)] [[분류:서울특별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