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세르비아의 역사]][[분류:나치 독일의 괴뢰국]][[분류:1944년 멸망]] [include(틀:발칸의 역사/현대)] [include(틀:세르비아의 역사)] ||<-3><:> '''{{{#fff {{{+1 세르비아 구국정부}}} [br] Vlada narodnog spasa / Влада народног спаса[br]Regierung der nationalen Rettung }}}''' || ||<-3><:> [[세르비아 군정청]] 내의 자치 정부[br][[나치 독일]]의 [[괴뢰국]] || ||<:><-2> [[파일:세르비아 구국정부 국기.svg|width=85%]] ||<:> [[파일:세르비아 구국정부 국장.svg|width=65%]] || ||<-2><:> '''국기''' ||<:> '''국장''' || ||<-3>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Serbia_1941_44_Map01.png|width=100%]] || ||<-3><:> '''{{{#fff [[1941년|{{{#fff 1941년}}}]] [[8월 29일|{{{#fff 8월 29일}}}]] ~ [[1944년|{{{#fff 1944년}}}]] [[10월 4일|{{{#fff 10월 4일}}}]] }}}''' || ||<-2><:>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2><:> '''[[세르비아 위원정부|{{{#fff 세르비아 위원정부}}}]]''' ||<:>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fff 유고슬라비아 SFR}}}]][br][[세르비아 사회주의 공화국|{{{#!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fd700; font-size: .8em" {{{#cd0000 '''세르비아 SR'''}}}}}}]]''' || ||<:> '''위치''' ||<-2>[[세르비아]] 중부, [[코소보]] 북부 || ||<:> '''[[수도(행정구역)|{{{#fff 수도}}}]]''' ||<-2>[[베오그라드]] || ||<:> '''[[언어|{{{#fff 언어}}}]]''' ||<-2>[[세르비아어]], [[독일어]][* 바나트 지방] || ||<:> '''[[민족|{{{#fff 민족}}}]]''' ||<-2>[[슬라브족|세르비아인]] || ||<:> '''[[종교|{{{#fff 종교}}}]]''' ||<-2>세르비아 [[정교]] || [목차] [clearfix] == 개요 == [[추축국]]의 [[유고슬라비아 침공]] 이후 [[나치 독일]]이 세운 괴뢰국이다. 세르비아 구국정부를 지칭한 세르비아의 통치 기구는 스스로 [[독립국]]이라고 규정했지만, 실제로는 독일이 세운 [[세르비아 군정청|군정청]]의 지배하에 놓였다. 세르비아 구국정부의 영토는 현재의 중앙 [[세르비아]] 및 [[코소보]] 북부 및 바나트 지방이었다. 정부의 수반은 밀란 네디치이며, 공식적으로는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수상의 지위에 있었다. == 역사 == 1941년 4월 독일과 그 [[이탈리아 왕국|추]][[불가리아 왕국|축]][[헝가리 왕국|국]]들은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침공한 후 점령했다. 추축국에 점령되자 유고슬라비아의 영토는 해체되었고 유고슬라비아령이었던 지역 중 서부의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달마티아]]의 일부 및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지방은 새로히 독립된 [[크로아티아 독립국]]의 영토로 넘어갔다. 달마티아의 일부 및 남부 [[몬테네그로]], [[코소보|코소보·메토히야]], [[마케도니아]] 서부는 이탈리아 왕국의 점령 아래로 들어갔다. 북서부는 헝가리 왕국에 할양되고, 또 불가리아에 인접하는 중앙 세르비아의 일부 지역과 바르다르 마케도니아 지방은 [[불가리아 왕국]]이 점령하였다.[* 사실 얼마 안가 불가리아 점령군단은 베오그라드 인근과 그 이북을 제외한 세르비아 구국정부 관할지역까지 점령하는데, 독일군들은 다른 전선을 감당하기 위해 파르티잔을 상대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불가리아군이 대타를 뛴 것. 물론 기존 세르비아 구국정부로 정해진 지역들은 명목상으로 여전히 세르비아 구국정부의 영토였다.][* 전쟁 후반인 1944년, 불가리아가 점령한 마케도니아 지역에 괴뢰 정부인 [[바르다르 마케도니아]]가 들어선다.] 남겨진 세르비아 지역은 독일 군정([[세르비아 군정청]]) 하에 놓여지게 되었다. 독일이 점령지에는 잠시 [[세르비아 위원정부]]가 들어서고 1941년 8월 29일 본 문서의 구국정부로 바뀐다. 군정은 유고슬라비아를 지배하는 세력에 대해서 세르비아인이 저항하는 것을 저지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세르비아인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이 배경에는 독일인의 점령자와 크로아티아 독립국 [[우스타샤]]의 세르비아인에 대한 극심한 [[학살]]이 있었다. 많은 세르비아인들은 독일과 크로아티아의 우스타샤에 대한 저항에 참여하였다. 세르비아의 군정은 나치 독일과 우스타샤의 유고슬라비아 지배에 대한 저항을 억제하려 애썼지만 독일의 점령 당국의 세르비아인에 대한 만행은 그치지 않았다. == 내정 == 세르비아 내정은 나치의 인종 정책 영향 아래 놓였다. 이는 점령 하 모든 지역에 적용되어 [[유대인]], [[집시]], 반(反) 나치 인사들은 체포되어 강제 수용소에 끌려갔다. 또한 바나트 지방은 [[바나트 자치주]]라는 이름으로 현지에 사는 소수 독일인에 의해 통치되었다. 세르비아 구국정부 지도자 네디치는 개인적으로 망명한 유고슬라비아 왕 [[페타르 2세]]와 계속 연락했다. 네디치를 재평가하려는 수정주의 역사가들은 이 점을 이유로 네디치를 [[프랑스]] [[비시 프랑스|비시 정권]] [[필리프 페탱]]처럼 재평가하려고 한다. 그러나 독일에 협력한 세르비아인 협력자들은 대중 지지를 거의 얻지 못했고 세르비아인들은 지배에 저항한 [[체트니크]] 혹은 [[파르티잔]] 2개 조직에 관여하고 있었다. == 기타 == [[2008년]] 세르비아의 야당인 세르비아 자유당은 베오그라드의 카운티 법원에 대해서 군정기 세르비아의 지도자 밀란 네디치의 명예를 회복하는 요구를 냈다. 이는 세르비아의 유대인 사회의 반발을 불렀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추축국)] [include(틀:나치 독일의 괴뢰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