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2차 세계대전/영국 기갑차량)]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sherman IC-argentino.jpg|width=100%]]}}} || || '''Sherman IC''' || [목차] == 개요 ==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영국군]]과 [[캐나다군]]이 운용한 [[중형전차]]. 미국이 개발한 [[M4 셔먼]]을 [[M4 셔먼/형식|개조하여]] 당시 [[영국 육군]]의 최강 [[대전차포]]인 [[17파운더|OQF 17파운더]] 대전차포를 장착한 모델이다. 베이스가 된 차체에 따라서 셔먼 IC([[M4 셔먼|M4]] 개조), 셔먼 IC 하이브리드,[* M4(셔먼 I)의 각진 용접 차체를 기본으로 주물 제작된 M4A1(셔먼 II)의 차체 전면부를 이어 붙인 차량.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차체 전부를 제작할 능력은 갖추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의 규모는 가지고 있는' 주물 공장들에게 M4A1의 차체 전면부만을 주물로 제작하게끔 하고 다른 공장에서 제작한 용접형 차체와 결합하여 용접하는 방식으로 생산이 이뤄졌다고 한다.M4 컴포지트 헐이 바로 이 차체 형식.] [[M4A4#s-6.2.1.1|셔먼 VC]].[* 영국군의 셔먼 분류는 M4->셔먼 I, M4A1-> 셔먼 II 식으로 가고, 여기에 무장에 따라 알파벳기호가 추가 된다. 75mm M3 전차포는 기호가 없고, 76mm M1 전차포는 A, 105mm M4 곡사포는 B, 그리고 17파운더 포는 '''C'''를 붙인다.] 버전이 존재한다. 사실 명칭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면 스티븐 잘로가의 조사에 따르면 종전까지 공식명칭으로 '파이어플라이'를 사용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후술하겠지만 'Firefly([[반딧불이]])'라는 별명은 [[17파운더]] 주포의 엄청난 포구 섬광 때문에 일선 병사들이 붙인 일종의 [[별명]]이라고 하며, 이 섬광의 막장성 때문에 종종 조롱의 의미로 '[[하루살이|Mayfly]]'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섬광이 너무 크면 적에게 탐지당하기 쉬우니까다.] 2차대전 중 미국식 [[대전차자주포]] 운용 이론을 실현시키기에는 미국 대전차주포들의 대전차 화력이 [[M36 잭슨]] 이전에는 너무나도 부족했기에 엉뚱하게도 가장 대전차자주포이론에 들어 맞는 '''전차'''로 볼 수 있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쓰였다.[* 정확히는 17파운더의 문제점으로 그렇게 밖에 쓸 수 없었다.] == 제원 == ||<-2> '''Sherman IC "Firefly"''' || || 중량 ||33t || || 전장 ||5.89m || || 전폭 ||2.64m || || 전고 ||2.7m || || 승무원 ||4명 (전차장, 포수, 탄약수/무전수, 조종수) || || 장갑 ||89mm (포탑 전면) || || 주무장 ||OQF 17-pounder ([[17파운더]]) || || 부무장 ||[[M2 브라우닝 중기관총]] 1정, [[M1919 브라우닝]] 1정 || || 엔진 ||Chrysler Multibank (425hp) || || 출력비 ||11.8hp/t || || 현가장치 ||VVSS || || 항속거리 ||193km || || 속도 ||32km/h(일반), 40km/h(최대 가속시) || == 개발 동기 == 영국군은 자국산 전차 대신 미제 전차가 주력을 이루는 사태를 거북하게 여겨, 자국산 전차인 [[크롬웰 전차]]와 [[처칠 전차]] 위주로 부대를 새롭게 재편할 계획을 세우고, 크롬웰과 처칠 부대의 화력 지원용으로 각각 [[A30 챌린저]]와 [[A43 블랙 프린스]] 등의 [[17파운더]] 대포를 장착한 차기 전차의 개발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의 개발은 순조롭지 못했고, 개발이 완료될때까지 써먹기 위한 대안이 필요했다. 그건 기존의 [[M4 셔먼]]에 주포만 17파운더로 교체한 파이어플라이였고 1944년 1월부터 생산했다. 그러나 [[노르망디 상륙 작전]] 직전까지도 크롬웰과 처칠을 다 합친 것보다 셔먼의 수가 여전히 더 많은 데다가, [[A30 챌린저|챌린저]]는 갖은 고장과 트러블을 일으켜 소량 생산(200여대)만 하고 중지했고, [[A43 블랙 프린스|블랙프린스]]는 종전 후에나 완성되어 결국 17파운더를 탑재한 전차의 주력은 파이어플라이가 차지하게 되었다. 미국 또한 이 계획에 흥미를 느껴 17파운더 몇 문을 받아가 테스트 하였으나 지나친 섬광등의 문제가 있었고 이미 스스로 76mm와 90mm 포의 개발 계획이 진행중이었기에 굳이 채택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여 계획은 중단되었다. 그러나 [[아르덴 대공세]] 이후 이 계획은 다시 부활하여 1945년 3월에 75mm 셔먼의 업건이 시작되었다. 대상은 M4와 M4A3 였으며 영국의 파이어플라이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계획이 중단되기 전까지 160에서 200대의 셔먼이 개수되었지만 실전에 투입되는 일은 없었다. 종전 이후 이 파이어플라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현재 생존한 미국 파이어플라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이어플라이 외에 17파운더를 장착하는데 성공하여 실전까지 널리 유용하게 쓰인 것으로는 [[Mk.I 아처|아처]], [[M10 아킬레스]]가 있다. == 기존 셔먼과의 차이점 == 기존의 셔먼과는 17파운더 특유의 기다란 포신과 동그랗게 생긴 특이한 모양의 머즐 브레이크로 한눈에 구분된다. 안쪽은 17파운더 대전차포의 포미가 포탑 뒷쪽 내벽에 거의 맞닿을 정도로 덩치가 컸던 관계로 탄약수가 포탑 상부의 전차장 해치를 이용하기 곤란해졌기 때문에, 기본형 셔먼에는 없던 장전수용 해치를 추가하고, 포탄 탑재량을 늘리기 위해 보조 조종수 좌석이 있던 자리에 추가 포탄 랙이 설치되었으며, 쓸모가 없어진 차체 전면의 기관총 볼마운트는 장갑으로 덮어놓았다. [[무전기]]는 포탑 후미에 있었으나 17파운더의 보호대에 닿을수 있어 포탑 후방을 뚫고 철판을 용접해 박스를 만든 다음 무전기를 넣었으며 이 무전기 박스 후방에 공구상자를 배치하기도 했다. 영국제 [[연막탄]] 발사기[* 파이어플라이 뿐 아닌 [[영연방]] 국가가 사용하는 모든 셔먼과 그 바리에이션들의 특징이다.]와 차외에서 차내로 연락하기 위한 [[전화기]]([[인터폰]])가 추가 설치되는 등 외형상 눈에 잘 띄이지 않는 자잘한 변화도 많다. 이렇게 써놓으면 셔먼의 포탑 내부가 좁아터져서 문제가 생긴 것 같아보이기 쉽겠지만, [[M4 셔먼#s-3.2.7]] 문서에도 나와있듯 셔먼의 포탑링 넓이와 크기는 중형전차치고는 오히려 넓은 편에 속한다. 오히려 동급의 전차들 중 내부공간이 상당히 여유로운 셔먼조차도 17파운더 포를 때려박기 위해선 이 정도는 해줘야 했다는 편이 옳다. 17파운더 포는 당장 무게만 봐도 비슷한 구경의 7,5cm [[PaK 40]] 대전차포의 2배, 76.2mm [[ZiS-3]] 대전차포의 3배에 달하는 커다란 포다.[* 17파운더는 7,5cm KwK 42와 8,8cm KwK 36급의 위력이 나오는 물건이다. 더 무거운게 당연하다. 말이 같은 구경이지 관통력만 따져도 [[철갑탄]] 기준으로 PaK 40의 1.5배, [[ZiS-3]]의 2배 가까이 나오는 흉악한 물건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파이어플라이는 포탑 내부가 좁긴 했지만, 챌린저와 달리 기계적 신뢰성은 높은 관계로, 챌린저를 제치고 주력으로 자리잡는다. == 실전 == 편제는 중형전차([[M4 셔먼]] or [[크롬웰 전차|크롬웰]]) 3대에 1대의 파이어플라이 or 챌린저[* [[A30 챌린저|챌린저]]는 크롬웰 부대에만 배치되었다고 하며,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는 배제되고, 항구건설 후 투입되었다.]였으며, 처칠 전차의 경우 파이어플라이가 아닌 [[M10 아킬레스]]와 같이 편제했다고 한다. 미군이 [[76mm M1 전차포]] 탑재 셔먼과 [[M36 잭슨]]이 [[노르망디 상륙작전]] 시행 전까지 상륙부대에 전달되지 못한 것과 반대로 파이어플라이는 계획한 모든 수량이 생산, 전달되어 적절한 순간에 사용될 수 있었는데 병기의 단점이니 성능이니 해도 필요한 순간에 곁에 있어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퍼니전차]]를 필두로 한 상륙작전 준비도 영국이 더욱 철저했다.] [[피모철갑탄#s-2|저저항피모철갑탄]]으로도 약 1500미터 거리에서 [[6호 전차 티거|티거]]의 정면장갑을 관통할 수 있는 강력한 [[17파운더]] 선회 포탑을 올린 파이어플라이는 등장과 거의 동시에 [[서부전선]]에서 독일 전차병들이 가장 껄끄럽게 생각하는 연합군 전차가 되어 최우선 격파목표가 되었다. 문제는 파이어플라이의 방어력은 일반 셔먼 전차의 방어력에서 달라진 것이 없었다는 점이다. 독일 전차들은 긴 장포신 전차를 먼저 공격했기 때문에, 긴 포신을 숨기기 위해 위장망, 위장 도색, 가짜 머즐 브레이크, 다른 전차에 가짜포 달기 등 전차병들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위장술을 총동원하여 이에 맞섰다. 독일의 [[6호 전차 티거|티거]] 에이스 [[미하엘 비트만]]을 전사시킨 것도 영국군 제1노샘프턴셔 요먼(1st Northamptonshire Yeomanry) 기병연대 A대대 3중대의 [[조 에킨스]]의 셔먼 VC라는 추측이 정설이다.[* 일부 역사가들은 래들리-월터스 소령의 파이어플라이가 잡았다는 가설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도 조 에킨스설보다 현실적이고 피탄 위치도 더 정확하다. 조 에킨스는 약 1km에서 공격했으나 레들리 월터스는 500m에서 아예 매복까지 했기 때문. 후술할 명중률을 생각하면 레들리 월터스가 더욱 [[신빙성]]이 높다.] 비트만은 토털라이즈(Totalize) 작전을 저지하기 위해 기동하던 도중 파이어플라이의 [[매복]]에 걸려 우측방을 피격당했고 그 직후 차내의 포탄이 발화되어 [[유폭]]했다. 이 폭발로 비트만의 007호 티거는 포탑이 수 미터 바깥으로 튕겨나갈 정도의 처참한 피해를 입었고 비트만을 포함한 [[전차 승무원]] 전원이 즉사. 비트만의 죽음은 영국군 [[호커 타이푼]] [[전폭기]]의 로켓 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파괴된 사진[* 당시 프랑스인 농부가 찍어두고 홀로 간직하던 사진이 시간이 한참 지난 70년대에 공개되었다.]과 영국군의 작전계획서가 공개되면서 타이푼 공격설은 수십년 전에 이미 완벽한 낭설로 일축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wiki/Michael_Wittmann#Death|비트만의 죽음]] 항목을 참고. 또한 전선에 [[자유 폴란드군|자유 폴란드 기갑부대]]와 [[캐나다군]] 기갑부대도 있었기 때문에 이들에 의해 [[전사]]했다는 설도 있다. 17파운더의 위력은 [[5호 전차 판터|판터]]의 주포보다 더 관통력이 높다고 한다. 다만 어디까지나 파이어플라이는 보다 작고 약한 포를 쓰도록 만든 초기형 셔먼을 개조한 것이기 때문에[* 미군도 티거가 등장하기 전인 1942년에 이미 [[76mm M1 전차포]]를 같은 포탑에 장비하여 [[M4A1|M4A1 (T1)]]이라는 제식명으로 채용한 바 있지만, 자신들의 기준으로는 포탑 용적이 너무 비좁아서 전투 지속 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소량 생산에 그쳤다. 하지만 당장 티거를 잡아야 살아남는 영국의 입장에서는 전투 지속 능력이니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였고 새로 대형 포탑을 생산할 여유도 적었으므로 기존 포탑에 장착하는 계획안이 강행되었다.] 위력이 강해진 만큼 늘어난 반동을 완전히 흡수하기 힘들었고, 이에 더불어 17파운더 특유의 무식한 [[장약]]량에서 비롯한 크고 아름다운 포구 섬광으로 탄착 [[오차]] 수정이 어려워 초탄에 상대방을 거꾸러트리지 못하면 역으로 당할 위험이 높았다. 17파운더는 [[분리철갑탄]]을 써야 제대로 된 관통력이 나오고, 분리철갑탄은 명중률이 시궁창이라 별 위협이 아니였다는 주장도 있지만, 17파운더는 분리철갑탄이 아닌 [[피모철갑탄]]을 사용할 경우의 명중률은 준수한 편이고 관통력도 1500야드 거리에서 130mm의 균질 압연 장갑을 관통이 가능하다는 점만 봐도 틀린 말이다. 이게 감이 안 잡힌다면 1500야드(=1300m)내에서는 [[6호 전차 티거|티거]]조차도 포탑과 포방패가 겹치는 부분(200mm)만 빼고 포탑과 차체 전 부분은 안전한 곳이 없다고 보면 된다. 애초에 파이어플라이가 명중률이 떨어지는 분리철갑탄 하나만 믿고 튀어나온 '핵주먹 가진 장님'이였다면 독일군 전차병들에게 위협적인 대상으로 취급되지도, 최우선 제거대상으로 지목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만 명중률이 기존의 셔먼과 비교해서 많이 떨어지는 것 만큼은 사실이다. 독일군이 노획해서 실험한 결과 1000m 정지목표를 향해 발사한 포탄 10발 중 단 3,4발만이 목표에 명중했으며 그나마도 완전히 중앙에 맞은 경우는 단 1발이었다.[* 출처 Tank Firefly.] 알다시피 반동이 워낙 크고 발사할 때마다 주포와 조준장치에 워낙 무리가 가서 그렇기 때문. 게다가 안 그래도 궤도폭이 좁아 덩치와 무게에 비해 접지압이 높은 편이였던 셔먼이 17파운더의 장착으로 무게가 늘어나는 바람에 무려 56톤의 덩치를 자랑하는 티거를 접지압에서 이겨버린 것. 셔먼조차 좁은 궤도 때문에 무게에 비해 높은 접지압으로 야지 기동시 빌빌거리며 경우에 따라선 훨씬 무거운 [[5호 전차 판터|판터]]나 티거와 기동성이 비슷하다며 욕을 쳐먹던 판국이였으니...원판보다 무게가 더 늘어난 파이어플라이는 좁은 궤도덕에 고생한 셔먼보다 더한 개고생을 해야만 했다. 75mm와 3인치 포면 독일군 전차를 계속 문제없이 때려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던 미군의 경우 [[5호 전차 판터|판터]]와 [[6호 전차 티거|티거]]들이 예상보다 강력하게 등장하자 17파운더 포를 영국에서 지원받아 연구를 좀 해보긴 했으나, 떨어지는 명중율과 포구화염이 심하다는 등의 단점 때문에 사용하지 않았다. 애초에 셔먼에 76mm를 장착한 뒤 [[고속철갑탄]]을 사용할 경우 17파운더보다 약간 떨어지는 관통력 대신 17파운드보다는 상대적으로 좋은 명중률을 낼 수 있었다. 문제는 미리 대량 생산되어 실전에 투입된 17파운더와 달리 76mm용 고속철갑탄은 나중에 급히 생산하다보니 생산량이 너무 적어 실제 전장에서는 별로 유용하게 쓰이지 못했다는 것. 결국 미군은 75mm 포와 76mm 일반 철갑탄으로 계속 싸워야 했다. 정작 76mm를 보편화할 때 쯤엔 판터나 티거는 씨가 마르고 [[보병]]과 상대하는 전투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원래 야포인 75mm가 더 쓸모가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안하느니만 못하게 되었다. 생산된 파이어플라이들은 거의 모든 수량이 유럽 [[서부전선]]에 투입하였으며, 태평양 전선에는 사실상 배치되지 않았다. [[치하]] 등 [[일본군]]의 빈약한 전차들에게는 기존의 [[2파운더]]나 75mm 주포로도 충분하였기 때문. 일본군 상대로는 [[M3 리]]의 37mm 부포로도 무쌍을 찍을 수 있었다. 호주군이 영국으로부터 받은 비교적 단단한 [[마틸다 II]]나 [[밸런타인 전차|발렌타인]]으로도 일본군을 상대하기 충분했을 정도. 같은 이유로 17파운더 견인포나 17파운더를 [[M10 GMC]]에 탑재한 아킬레스 역시 태평양 전선에는 거의 없었다. == 문제점 == [[밀리터리 동호인|밀리터리 마니아]]나 각종 미디어에서의 인식은 원래의 셔먼에서 비록 방어력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17파운더]]의 절륜한 관통력을 이용하여 독일 중전차들도 원거리에서 때려 눕히는 저격수 내지는 카운터 펀치의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실제 파이어플라이 운용병들의 증언을 모아보면 그나마 현실적인 전투 거리는 700m 이내였으며 독일군 기갑 에이스들이 한 것같은 km 단위 장거리 기갑전용으로는 운용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한다.[* 포구 화염 문제 뿐 아니라 초탄 사격 이후로는 동급 대전차포 대비 괴랄한 반동 때문에 포구 진동에 의한 명중률 저하를 해결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추정.] 그러니까 중장거리 관통력 감소 때문에 근접 기갑전 밖에 못하는 걸로 악명 높았던 대전 초기 소련군의 [[T-34-57]] 급의 망작이었는데도 어쩔수 없이 계속 썼던 셈이다. 이는 극단적인 장약량으로 관통력을 늘린 17파운더 주포의 문제에 기인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엄청난 포구 화염.''' 이 포구 화염이 얼마나 심했냐면, 승무원들은 주포 발사 시 눈을 질끈 감지 않으면 [[눈뽕|포구섬광에 수초 간 장님이 될 정도]]였다고 하며, 전역하고도 야맹증으로 고생해야 했다고 한다.[* 당시 전차 조준경과 잠망경에 과잉광 차단 필터를 적용했던 건 독일군 뿐이었던 이유도 있다.] 또한 17파운더의 포구 화염은 종종 위장에 사용된 수풀에까지 쉽게 불을 질러서 적군에게 나 여기있다고 광고하는 수준이라 매복공격에도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미군은 1000야드 거리에 24인치의 [[십자가]]를 그리고 주포 발사 후 십자가를 또렷하게 확인할 때까지의 시간을 측정하였다. 실험은 마른 땅과 젖은 땅에서 각각 이루어졌으며 평균치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 승무원 || 셔먼 파이어플라이 || 76mm셔먼 || 90mm[* 당시 [[M26 퍼싱]]은 개발되지 않아서 대전차포 형태로 측정하였다. 지면과 가깝고 충격이 그대로 전달되어 불리했다는 이야기.] || >|| 전차장 || 3.4초 || 영향없음 || 2.2초 || >|| 포수 || 3.5초 || 0.8초 || 3초 || >미군 실험에서 머즐 블래스트는 6미터 거리까지 뿜어져 나왔다고 하며 그 안에서는 면화 보호구와 귀마개 없이는 반복 시험을 견딜 수 없다고 기록했다. 장약량에 따른 또 다른 문제는 포연인데 장약량이 너무 많다보니 불완전연소하는 화약에서 나온 대량의 탄매가 연기를 타고 그대로 차내로 역류해 최루성 스모그가 되어 승무원들의 눈과 코를 고문했다. 게다가 건조한 지형에서는 포구 폭압이 엄청난 먼지 폭풍을 일으켜 승무원들의 시야를 차단하는 동시에 아군의 위치는 즉시 노출시켰다. 따라서 파이어플라이는 한자리에서 2탄 이상의 주포 발사가 어려웠고 기본적으로 치고 빠짐을 반복해야 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승무원의 눈을 멀게 하는 17파운더의 포구섬광과 화염, 후폭풍, 포연의 문제는 전차로써는 매우 치명적인 약점인데 일단 한발 쏘면 [[은엄폐]]는 강제로 풀리는데다[* 오죽하면 별명이 [[반딧불]]이다.] 장거리 전차전의 기본인 '''초탄 조준 발사 - 탄착점 확인&차탄 선택 및 장전 - 오차 수정 사격'''의 과정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매복-2,3탄 가량 사격-이동'''을 반복하는 이동 포대식으로 운용하게 되었다. 주포발사 후에는 목표 관측이 안 되니 [[미하일 비트만]]을 누가 죽였는지도 당당하게 주장 못하고 이러쿵 저러쿵 말이 오가는 것일 수도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초창기 Mk. IV 17파운터는 발사 직후 [[폐쇄기]]가 지나치게 빨리 열리면서 포구화염이 차체 내부로 역류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래서 셔먼 파이어플라이 승무원은 [[베레모]] 바깥으로 삐져나온 머리칼과 눈썹이 전부 그을려 없어진 걸로 알아 볼수 있다는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 때문에 2번이나 개량을 거쳐서 Mk. VII에 가서야 이 문제점이 해결된다. 그냥 구형 75mm 주포용 기본 포탑을 사용해서 [[https://www.youtube.com/watch?v=__Y8YJeas4I|포탑 용적이 너무나도 좁은 것]]도 문제였다. 17파운더가 사용한 76.2×583mm R 포탄은 길이가 미군의 90mm 포탄과 맞먹고 현용 APFSDS 탄보다 조금 짧은, 구경에 비해서 상당히 큰 탄이었는데, 이 때문에 폐쇄기를 측면으로 돌린 개량을 했음에도 장전이 상당히 어려워서 발사 속도가 떨어졌고, 포미가 너무나도 거대했던 탓에 포수는 부앙각 조절 핸들을 잡으면서 포수 조준경을 보려면 거의 아크로바틱 동작에 가까운 불편한 자세로 몸을 비비 꼬아야 했다. 당연히 속사 능력은 75mm/76mm급 셔먼에 비해 크게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미군이 파이어플라이를 채택하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군은 17파운더보다 훨씬 작은 76mm M1포조차도 기본포탑 기준으로는 너무 많은 용적을 차지한다고 평가해 100대 가량 만들어놓고서도 전투 부적합 판정을 내려 유럽에 보내지 않았고 T23의 포탑을 셔먼에 얹은 E6모델에 가서야 76mm를 채용했다. 그런데 영국군은 이 작은 포탑에 억지로 그 커다란 17파운더 포를 우겨넣은 것이다. 그밖에 76mm 주포와 마찬가지로 [[고폭탄]]의 위력이 너무 떨어져 보병이나 [[토치카]]에 대한 제압력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었다. 물론 전차는 적의 전차를 상대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이지만 실전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당연히 보병과 토치카였는데, 고폭탄의 작약량이 75mm 고폭탄의 2/3에 불과해서[* 큰 차이는 아니지만 미군의 76mm 셔먼, [[울버린]](같은 76mm지만 셔먼과 울버린의 주포는 다르다.)과 비교시 작약량은 오히려 약간 더 많았다.] 보병과 토치카를 제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구축전차]]로서는 쓸만했지만 당시 교리대로 고폭탄을 통한 보병 지원도 해야 하는 일반적인 전차를 기준으로는 범용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위에 열거한 다양한 이유로 일선의 많은 전차병들은 파이어플라이가 지급되면 수령을 거부하고 75mm 주포의 오리지널 셔먼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4호 전차나 3호 돌격포처럼 75mm나 미제 76mm로도 격파 가능한 전차들을 상대할 때는 괜히 명중률만 떨어지는 꼴이 되기도 하고, 파이어플라이를 받으면 티거나 판터 등 적 중전차들과의 전투에 우선적으로 투입되었기 때문에 타 전차보다 더 위험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맥락에서 가장 선호 받았던 전차가 다름아닌 방어력이 가장 후달리는 [[경전차]]들이었는데, 주 임무가 정찰이고 전투에서도 적 보병들 정도나 상대하는 비교적 가벼운 임무에만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맞추기만 하면 어떠한 독일 전차든 일격에 고철로 만들 수 있는 펀치력이 있었으므로 순발력과 포탑 선회속도의 차이를 활용하여 주로 수백미터 이내의 근접에서 운용을 선호 하였고 독일군도 이런 파이어 플라이를 무척 까다롭게 여기며 장포신이 달린 셔먼을 최우선 공격목표로 삼았다. == 종전 이후 ==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전차였지만, 파이어플라이는 압도적 생산력과 화력을 바탕으로 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군]]과 [[영연방]]군[* 당시 [[호주군]], [[캐나다군]], [[뉴질랜드군]], 남아프리카 연방군 등 영연방 각국의 군대도 파이어플라이를 이용했다.] 그리고 영국과 영연방의 지원을 받은 자유 [[체코슬로바키아]]군[* 체코슬로바키아 제 1기갑여단이 셔먼 파이어플라이를 받아서 사용하였다.] 과 [[자유 폴란드군]]의 주력 전차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종전 이후 5년만에 일어난 [[6.25 전쟁]] 시점에서 이미 파이어플라이는 주력에서 밀려나 퇴역한 상황이었는데, 그 이유는 이미 2차 세계대전 중반부부터 시작된 Universal Tank 프로젝트가 큰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었다. 당시 운영되던 순항전차/보병전차의 이원 체제의 문제점과 파이어플라이와 17파운더 주포의 태생적 한계를 느끼던 영국군은 순항전차와 보병전차를 통합한 새로운 플랫폼 체계와, 더욱더 강력하지만 뛰어난 안정성을 지닌 주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 보병전차의 뛰어난 장갑과 순항전차의 준수한 기동성, 셔먼 시리즈의 뛰어난 확장성을 두루 갖춘 새로운 전차 플랫폼이 완성되는데, 이것이 최초의 [[MBT]]라고 불리는 [[센추리온 전차]]이다. 센추리온 전차는 최초에는 17파운더를 장착했으나, 이후 개량을 통해 강력하고 안정적인 [[20파운더]](83.4mm)를 탑재하게 됐다. 17파운더에서도 사용됐으나 강력한 화력을 상회하는 단점이 즐비하던 [[APDS]] 탄종이 20파운더 주포에서는 크게 개랑돼 상당히 안정적인 탄종으로 자리매김하였고, 이는 20파운더 주포의 화력과 안정성을 동시에 획기적으로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다. 센추리온 전차에 장착된 20파운더는 [[6.25 전쟁]] 당시 관통력과 명중률에서 [[M26 퍼싱]]이나 [[M47 패튼]]의 90mm 주포보다 탁월함을 입증했다. 이 20파운더와 센추리온 전차는 6.25 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영국과 영연방 각국에 판매되었고, [[네덜란드]]나 [[스웨덴]] 같은 다른 서구권 국가들에서도 구매해가며 파이어플라이를 완벽히 밀어냈다. 참전 영국군에 의해 Mk.III 형식이 6.25 전쟁에 투입도 되었다. 1선에서 물러났다고 해도 영국 입장에서는 2선급인 본토 방위 부대나 영연방 내지 유럽의 돈없는 국가들에게 떨이로 넘겨서 좀 더 오래 사용할 수도 있었겠으나, 정확히 그 목적으로 20파운더 주포의 [[채리어티어]] 대전차자주포가 보급되는 바람에 파이어플라이의 가치는 1950년대 시점에선 완전히 소멸되었고, 도태된 파이어플라이들은 박물관에 보존되거나 사격 표적으로 소모되었다. 전후 여러 모로 형편이 좋지 않았던 영국에서 파이어플라이가 이렇게 빠르게 퇴출된 것은 그만큼 소련의 기갑세력에 대한 공포가 컸기 때문이다. 이런 공포가 기우였던 것도 아니라서, [[소련]]의 [[IS-3]]나 [[헝가리 혁명]] 당시 입수한 소련의 신형 전차 [[T-54]]/[[T-55]]를 본 영국군과 로열 오드넌스 사는 20파운더도 한계가 왔다는 것을 느끼며 더욱 강력하고 더욱 안정적인 새로운 전차포 개발에 착수했다. 그리고 그 결과 1959년에 탄생한 것이 2017년 현재까지도 서구권 국가들에게 널리 쓰이고 있는 베스트 셀러 105mm [[로열 오드넌스 L7]]이다. == 미디어 == [[셔먼 VC]]에 관련해서는 [[M4A4]] 문서를, 셔먼 IC 하이브리드에 관련해서는 [[M4A1]] 문서를 참조. === 게임 === ==== [[워 썬더]]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GarageImage_Sherman_IC__Trzyniec_.jpg|width=100%]]}}} || || '''셔먼 IC "트르지네츠"''' || M4를 개조한 [[자유 폴란드군]] 소속 IC형이 영국 3랭크 프리미엄 전차로 등장하며, 막강한 관통력, 아쉬움이 남는 관통후 데미지, 부실한 방호력, 둔중한 기동성을 갖췄다. ==== [[브라더스 인 암즈]] ==== 헬즈 하이웨이에서 제101공수사단을 지원하는 영국군 기갑부대로 등장한다. 중간중간에 타고 플레이할 수 있는 미션이 나온다. ==== [[큐라레: 마법 도서관]] ==== 1성 카드인 파이어플라이와 5성 카드인 강철의 파이어플라이로 등장. 다만 해석 전후가 설정상 다른 모델인 셔먼과 달리 파이어플라이와 강철의 파이어플라이는 짬밥 차이를 빼면 동일인, 아니 동일 전차이다. 파이어플라이의 스킬은 격노 I, 강철의 파이어플라이의 스킬은 억압 IV이다. ====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assets.companyofheroes.com/ukf_blog_unitrender_shermanfirefly.png|width=100%]]}}} || ||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에 등장한 셔먼 IC 튤립''' || 1과 마찬가지로 영국군 유닛이다. 주포의 사정거리가 매우 길고 데미지도 높으며 튤립 로켓[* 영국 공군에서 사용한 RP-3 공대지 로켓을 셔먼 포탑 양측에 각각 1발씩 적재한 것이다.] 두 발을 발사해 적 전차를 상태이상에 빠뜨릴수 있다. 하지만 재장전과 포탑의 회전속도가 절망적으로 느려, 중형전차로서는 실용성이 떨어지고, 1편과 마찬가지로 처칠을 앞세우고 뒤에서 저격하는 방식으로 운용한다. 사실상 [[3호 돌격포]], [[SU-85]], [[M36 잭슨]], [[4호 구축전차]]에 대응하는 구축전차 포지션이다. 다만 영국군의 몇몇 지휘관은 전차 하나를 지휘 전차로 만들어 주변 유닛에게 버프를 주는 스킬이 있는데, 이 지휘 전차의 버프를 받는 셔먼 IC는 꽤 쓸만해지게 된다. === 인터넷 밈 === ==== [[2차대전 전차개그]] ==== 간간히 카메오 격으로 출연한다. 주로 [[6호 전차 티거|티거 전차]]가 무서워하는 상대 로 나온다. == 모형 == == 둘러보기 == [include(틀:2차 세계대전/뉴질랜드 기갑차량)] [include(틀:2차 세계대전/폴란드 기갑차량)] [include(틀:현대전/이탈리아 기갑차량)] [include(틀:현대전/영국 기갑차량)] [include(틀:현대전/벨기에 기갑차량)] [include(틀:기갑차량 둘러보기)] [[분류:M4 셔먼]][[분류:영국군/기갑차량]][[분류:캐나다군/기갑차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