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동오의 인물, rd1=손성(삼국지))] [include(틀:진서)] [목차] == 개요 == 孫盛 302년 ~ 373년 동진(東晉)의 병주 태원(太原)군 중도(中都)현 사람이며 자는 안국(安國)으로 [[손자(삼국지)|손자]]의 현손이다. == 생애 == 박학하며 명리(名理)를 잘 말했기에 당시 이름을 날리던 [[은호]]와 더불어 대항하며 논의하던 이는, 오직 손성 뿐이었다고 한다. 좌저작랑으로 천거됐다가, 유양령으로 보임됐다. [[도간]], 유량, 유익, [[환온]]의 군사에 두루 참여했고, 작위 안회현후를 받았다가, 오창현후로 진봉됐다. 차츰 승진해 비서감이 됐고, 급사중이 더해졌다. 향년 72살의 나이에 죽었다. 위씨춘추(魏氏春秋)20권, 진양추(晉陽秋)32권, 촉세보(蜀世譜), 이동잡어(異同雑語) 등을 저술했고, 그 외에도 시(詩), 부(賦), 논란(論難)을 합쳐 수십 편을 지었다. 손성은 젊을때 가난하고 고생했기 때문에, 출세하면서 횡령(...)을 저질렀지만, 환온은 묵인하고 죄를 묻지 않았다. 그의 저서들을 [[배송지]]가 [[삼국지]]에 주석을 넣을 때 많이 활용해서 유명하다. 성향은 [[이순철|모두 까기 인형]]. [[예형]]이나 [[우번]]에 걸맞는 양비론자다. 배송지는 삼국지 주석에 손성의 기록이나 평가를 맞장구 치는 경우도 있지만 기록이 말이 안 된다거나 그 평가가 잘못되었다고 디스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사서의 인물의 발언을 춘추좌씨전 등에서 인용된 고사로 윤색하는 경향이 있는 점을 비판했다. 진양추를 집필할 때 환온의 북벌이 실패한 일을 기록하였고, 환온이 노해 손성의 아들에게 재작성을 요구했는데, 이에 손성이 환온의 적인 전연(前燕)의 모용준(慕容儁)에게 자신의 저작을 주어, 결과적으로 손성의 저서가 보존되었다고 한다. 태원(太元) 중, [[효무제]](孝武帝)가 이문(異聞)을 널리 구하다, 비로소 [[요동]]에서 이를 얻어서, 서로 참고하여 조사하니, 다수가 같지 않아, 책은 마침내 두 판본이 존재하게 됐다. == 손성의 삼국지 인물 평가 == 다음은 삼국지에 있는 그가 한 부정적인 평들을 대충 줄여놓은 것들. * [[강유]] * [[극정]]이 얘를 한 시대의 모범이라 평가했는데, 강유가 제대로 한 게 뭐가 있다고? 이건 마치 도둑이 훔친 재물을 나눠주는 걸 의롭다고 하는 것과 다름없구만. * 촉나라 사람들이 왜 강유가 촉을 부흥시키지 못한 걸 안타까워하는가? 절의를 지키지도 못히고 항복한 주제에 이제와서 무슨 거창한 계획을 세우는가? * [[소칙]]: 이미 한나라를 섬겼다가 위나라로 갈아탄 양반이 뭐가 찔려서 거기서 발끈하고 난리야? 시경이나 읽고 다시 생각하시지? * [[손권]] * [[능통]]이 죽자 남은 아들을 보살피고, [[주태]]가 다치니까 눈물을 흘리고, [[여몽]]이 위독하니까 눈물을 흘리고, [[진무(삼국지)|진무]]가 죽으니 첩을 [[순장]]하는 식으로 부하를 챙겨주다니, 과연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황제를 칭할 만한 이유가 다 있었네. 하지만 찌질하게 부하한테 그런 세세한 짓을 왜 해주는데? * 거기다가 부하를 애도한답시고 첩을 순장시키다니 과연 동오가 3대밖에 안 간 것은 다 이유가 있었네. * [[손책]]: 나라 사정이 그 모양 그 꼬라지면서 [[관도대전|조조가 관도에 간 틈]]을 타서 허도를 점령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작작해라! * [[손호]]: 이 인간은 닥치고 효수해서 원혼들에게 사과했어야 했다. 귀명후라고 우대한 것은 잘못이다. * [[여대(삼국지)|여대]]: 그딴 식으로 남을 속여서 해쳤으니 후손을 남기지도 못 했지. ㅉㅉ * [[유비]]: 어떻게 죽을 때 [[제갈량]]에게 [[유선(삼국지)|자기 아들]]이 능력이 부족하면 대신 다스려 달라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나? 유선과 제갈량이 그렇게 생각 없는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자기가 세운 나라를 스스로 말아먹을 유언을 함부로 하다니 참으로 생각이 없네. * [[조조]], [[조비]], [[조예]]: 미천한 자들이다. 그렇게 비천한 여자를 [[황후]]로 들여서 어쩌려는데? * [[조비]]: [[하후돈]]의 장례를 치루는데 직접 성문 밖까지 나가서 곡을 하다니, 황제란 사람이 함부로 그러는 거 아니란다? * [[조조]] * [[도겸(삼국지)|도겸]]이 죄 좀 지었다고 죄도 없는 백성들을 [[서주 대학살|학살]]하다니! * 역적 [[원소(삼국지)|원소]]의 가문을 챙겨주는 것이 큰 실수이다. 조조는 그런 실수를 왜 하는가? * 아무리 [[조충#s-1|막내 아들]]을 귀여워해도 그렇지, 얘가 죽었다고 다른 아들들 앞에서 후계자 얘기를 함부로 하면 안 되지! * [[모개]]가 자기를 좀 원망했다고 겨우 모함 한 마디 듣고 내쫓아버리다니! [[고제(전한)|한고조]]가 [[소하]]를 대우한 일을 본받아봐라. * [[조엄]]: 그따위로 백성을 속이다니 그게 사람이 할 짓이냐? 옛날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생각 좀 해라! * [[종예#s-1]]: 오와 촉이 없으면 서로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고 작작 아첨해라. * [[제갈량]] : 공신이란 이유로 함부로 나대는 법정도 제대로 제어하지 못 했으면서 어떻게 법과 형벌을 제대로 처리했다고 할 수 있겠느냐? * [[허정(삼국지)|허정]]: [[법정(삼국지)|법정]]이 얘를 곽외 급으로 대우해달라던데, 허정이 곽외 급으로 대우될만한 껀덕지가 있기는 하던가? * [[화흠]]: 속세를 떠나서 은둔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목숨을 바쳐서 충성한 것도 아니고. 한다는 게 고작 [[우번]]처럼 [[손책]]에게 굴복하다니, 참으로 어리석은 인간이로구만. * [[허자]], [[호잠]]: 촉한에 인물이 얼마나 없었길래 이 따위 능력도 없는 잉여들이 진수가 만든 촉지에 따로 전에 실려 있냐? == 기타 == 의외의 사실이지만 [[동진]] 시조 [[진원제]] 사마예의 '우씨' 논란을 만든것이 손성이라고 한다. 그는 사마예의 어머니 [[하후광희]]가 [[우금(서진)|우금]]과 사통했다는 말을 지어낸 최초의 사람으로 의심받는다.[[https://zh.wikipedia.org/zh/%E7%89%9B%E7%BB%A7%E9%A9%AC%E5%90%8E|중국어 위키백과의 '우계마후(牛繼馬後)' 에 관련 글]] 왜 그랬는가 하면 일단 손성 자신이 [[조위]]의 명문집안 출신이었다. 그의 조상들은 모두 조위때 고관을 지냈고 때문에 손성은 사마씨가 권력을 찬탈한데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또 오나라 멸망 이후 반중원 친[[손오]] 정서가 팽배한 강남은 "중원은 마땅히 패하고 오나라는 응당 복귀될 것이다(中國當敗吳當復)", "다섯 필의 말이 강을 건너가서, 한 마리의 말이 용이 되었네.(五馬遊渡江, 一馬化爲龍)"[* [[서진]] 멸망 당시 사마씨 친왕 다섯명이 강남으로 도망갔는데 그 중에 사마예만이 세력을 떨쳐 황제가 된 일을 이른다.]과 같은 진나라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사마씨를 비웃는 참위설이 성행하였다. 이렇게 강남의 민심을 휘어잡지 못하고 휘둘리는 사마씨에 대해 손성이 실망했다는 것이다. 또한 손성 당대에 동진황실은 이미 [[환온]] 등 권신에게 완전히 장악되어 허수아비가 되고 있었다. 이런 연유로 손성은 참위설을 이용해 동진 사마씨 황실을 조롱하며, 동진황실은 진짜 사마씨도 아니라는 의미에서 사마예 우씨설을 자신의 저서 진양추(晉陽秋)에 집어넣었다는 것이다.[[https://blog.naver.com/shanghaicrab/222893222094|#]] [[분류:동진 및 오호십육국시대/인물]][[분류:중국의 역사가]][[분류:302년 출생]][[분류:373년 사망]][[분류:진중시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