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블라디미르 레닌)] [include(틀:소련 관련 문서)] [목차] == 개요 == > Социализм бедняков — это паршивый социализм. (가난한 사회주의는 후진 사회주의다.) > ----- > [[니콜라이 부하린]] '''Новая Экономическая Политика''' (New Economic Policy) [[러시아 내전]] 말기인 1921년, [[블라디미르 레닌]]에 의해 시행된 [[소련]]의 경제정책. [[시장경제]]의 부분적인 허용을 골자로 한다. == 상세 == 보통 '신경제정책'으로 번역되지만 '새로운 경제정책'이라는 일반용어로 오해를 살 여지가 있는만큼[* '닉슨 쇼크'를 불러일으킨 1971년 [[리처드 닉슨]]의 경제안정책도 신경제정책으로 불린다.] 보통 소련의 것을 가리킬 때는 명확하게 NEP 또는 네프라고 표기한다. 시장경제의 부분적 재도입을 특징으로 한다. 볼셰비키 혁명 후 [[토지개혁]]을 단행했지만 소비에트 정부가 사유재산을 불허함에 따라 자신의 농토를 국가에 다시 빼앗기는 꼴이되면서 농민들의 저항이 엄청났고,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에 따라 통화가치를 의도적으로 떨어트려놓았는데 오히려 생필품 구매에 불편함만 주는 결과를 낳았으며 이 때문에 곡물 생산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또한 내전까지 겹치면서 소련의 산업기반이 파괴된데다가 설상가상격으로 1921년에 들어닥친 기록적인 가뭄까지 겹쳐 대기근이 닥쳐왔고, 장티푸스, 콜레라같은 전염병까지 나돌면서 약 500만명 가량이 죽어나갔다. 러시아 내전이 끝나갈 무렵인 1921년 3월엔 비볼셰비키 좌파 봉기인 크론슈타트 반란도 일어났다. 내전에서 어렵게 승리한 볼셰비키였지만 이러한 경제상황을 극복하지 못하면 내전이 재개될 위험성이 높았기에 전시 공산주의 정책을 폐기하고 외국으로부터 식량을 지원받아 구호에 나서는 한편, 원할한 전후 재건을 위해서 기존의 [[마르크스주의]] 강령을 토대로 수정된 신경제정책을 발표했다. 농민 개인이 자기 생산물을 팔 수 있도록 허가하고, 일정한 기준의 사기업 활동도 허가하였으며, 외국 자본을 허용하는 등 자본주의 경제 정책을 일부 도입하며 시장경제의 요소들을 대거 도입했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일체 허용하지 않던 기존 마르크스주의 강령에 전적으로 배치되는 정책이었기 때문에 소비에트 러시아 공산당 내에서 많은 논쟁과 반발이 야기되기도 했으나 전후복구와 기근을 조속히 종식시켜야된다는 레닌의 강력한 의지에 의해 관철되었다. 신경제정책 실시 후에 소련 경제는 빠른 속도로 회복하기 시작하여 1923년에 이르러 기근에서 벗어났고, 1928년 들어서는 전쟁전인 1913년도의 경제수준을 회복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신경제정책이 대중들에게 인기가 높아져갔지만 한편 빈부격차도 점차 벌어져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고, 이오시프 스탈린은 공산당의 부분시장경제파의 지지를 받아 권력을 장악했음에도 계획경제파의 정책을 받아들여 [[5개년 계획]]을 내세워 신경제정책을 뒤엎고, 농업집산화를 시행하면서 동시에 무지막지한 스케일로 산업화를 밀어붙이게 된다. == 문제점 == 1923년 여름에 대규모 경제 위기가 일어난다. [[트로츠키]]는 1923년 4월에 열린 12차 당대회에서 농업 가격과 산업 가격의 차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도표를 소개한다. 1923년 10월에 그 차이가 가장 크게 벌어졌을 때, 농업 가격 대비 산업 가격의 비율은 1913년에 비해 3배나 높았다. 또한 신경제정책이 도입되면서 소비재 경공업은 번성했지만, 생산수단 생산과 관련된 중공업은 뒤쳐졌다. 1924년 10월 1일의 산업 생산은 1920년의 2.5배에 달했지만 전쟁 전 수준의 40%에 불과했고, 금속 산업은 겨우 28.7%였다. [[분류:1920년대 사건사고]][[분류:소련의 역사]][[분류:경제 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