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 알렉세이 아르히포비치 레오노프}}}[br]Алексе́й Архи́пович Лео́нов[br]Aleksey Arkhipovich Leonov'''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external/comstol.info/leonov.jpg|width=100%]]}}} || ||<|2> '''출생''' ||[[1934년]] [[5월 30일]] || ||[[소련]]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러시아 SFSR]] 서시베리아 지방 탸진스키 리스트뱐카 || ||<|2> '''사망''' ||[[2019년]] [[10월 11일]] (향년 85세) || ||[[러시아]] [[모스크바]]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소련)] → [include(틀:국기, 국명=러시아)] || || '''학력''' ||N. E. 주코프스키 공군학교 || || '''복무''' ||[[소련 공군]] || || '''최종 계급''' ||[[소장(계급)|소장]][* [[대한민국 국군]]의 [[준장]]에 대응한다.] || || '''주요 서훈''' ||[[대조국공훈훈장]] 1급[br]대조국공훈훈장 3급[br]대조국공훈훈장 4급[br][[레닌훈장]] (2회)[br][[소비에트 연방 영웅]] (2회)[br][[적성훈장]] || || '''가족''' ||배우자 스베틀라나 파블로브나 레오노바[br]장녀 빅토리아 알렉시브나 레오노바[br]차녀 옥사나 알렉시브나 레오노바 || || '''서명'''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argin: -1px; padding: 2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color: #fff" [[파일:알렉세이 레오노프 서명.svg|width=130]]}}} || [목차] [clearfix] == 개요 == [[소련]]의 1세대 [[우주 비행사]] 중 한 명. [[세계 최초]]로 우주선외활동([[EVA]]) 즉, 우주유영을 하였다. == 인류 최초의 우주유영 == [[파일:external/1.bp.blogspot.com/AlexeiLeonov-600.jpg]] [youtube(5xjaYSLWYOc)] [[파일:voskhod-2.jpg]] '''1965년 3월 18일 8시 34분. 인류가 우주 밖으로 나오는 순간.''' 파벨 벨라에프와 함께 [[보스호드 계획|보스호드]] 2호를 탔다가 생명을 잃을 뻔했다. 분명 시작은 세계 최초로 우주유영을 한 인간이 되어 전세계의 사람들이 널 부러워할 거라고 설명을 듣고 올라간 우주였다. 물론 처음에는 굉장한 경험을 하였고 별의별 명대사를 다 읊었으나... 즐거운 우주 산책을 마친 후 돌아가는 게 문제였다. 우주선과 우주 사이에 감압실(에어록)의 재질이 섬유로 되어 있었는데 이것의 폭이 상당히 좁다 보니 거꾸로 들어가는 게 안 되었다. 흔한 [[SF]]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큰 차폐문이 달린 넓직한 에어록을 생각하면 잘 이해가 안 가겠지만 이때 레오노프가 써야 했던 에어록은 우주선의 해치에 연결된 좁고 기다란 통로형으로 되어 있었다. 위의 개요도나 레오노프의 그림을 보아도 알 수 있지만 이 에어록이라는 게 사람 한 명이 [[우주복]] 입고 딱 차렷자세로 들어가면 꽉 차는 수준이었다. 물론 레오노프는 실제로 무중력 상태에서 이 에어록에 신속히 들어가는 훈련을 여러 번 수행했는데 여기에 예상하지 못한 기압 차이로 실제 우주공간에서 [[우주복]]이 부푸는 변수가 닥치자 에어록에 진입하지 못했던 것. 진입하려면 다리부터 에어록에 집어넣어야 했는데 우주복이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어오르니 팔다리가 굽혀지지 않고 대(大)자로 완전히 펴진 상태가 된 것이었다. 당연히 다리를 접어서 에어록 입구에 집어넣을 수 없었다. 나갈 때야 기압 문제도 없었고 우주선 내부에서 머리부터 에어록으로 들어가면 되는 일이었지만, 우주복이 부푼 상태에서 잡을 곳이나 지지할 곳도 없는 우주 공간에서 좁은 에어록 입구에 다리를 집어넣은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머리부터 입구에 넣고 양손을 번갈아 뻗으면서 조금씩 앞으로 기어가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에어록의 외부 출입구는 자동으로 닫히게 설계되어 있었지만 혹시나 제대로 동작하지 않을 경우에는 우주비행사가 손으로 당겨 닫도록 되어 있었다. 이래서 나갈 때는 머리부터 나가고, 들어올 때는 다리부터 들어와야 했다.] 결국 인류 최초의 우주 유영자가 최초의 유영 중 사망자가 될 판이었다. 이 상태로 다리를 집어넣으려고 20분쯤 사투를 벌이다가 결국 선택한 방법이 자신의 우주복 내 기압을 진공 수준으로 낮춰서 부풀림을 제거한 것이었다.[* BBC에서 제작되어 E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드라마인 '우주 전쟁(Space Race)'에서는 [[세르게이 코롤료프]]가 지시하는 것으로 나온다.] 어쨌든 성공하여 생환했지만 잠수병에 걸려서 [[지구]]로 돌아올 때 하마터면 얼어죽을 뻔했다.[* 이후에 고백하길 발사 직전에 '''독약을 숨겼다고 했다.'''][* 참고로 이때의 일은 [[우주공간에 맨몸으로 나가면 터져 죽는다]]를 반박하는 훌륭한 사례이기도 하다. 진공상태는 우주의 상태와 거의 비슷한데 진공에 가까운 상태였음에도 죽지 않고 돌아왔다.] 귀환 도중 우주선의 난방장치가 고장이 나고 냉각장치만 작동하게 되었고 귀환선은 평지에 착륙하지 못하고 착륙 예정지에서 무려 1200마일이나 북쪽으로 떨어진 눈으로 덮힌 [[우랄 산맥]] 깊은 [[전나무]] 숲에 불시착하게 되었다. 우랄 산맥의 춥고 깊은 전나무 숲 속 나무들 사이에 우주선이 껴 출입구를 열 수 없는 상황에다 난방장치까지 고장나서 난방은 되지 않고 냉방 장치의 냉방만 가동되는 우주선 안에서 파올 벨라에프와 알렉세이 레오노프는 늑대들에 둘러싸인 채 평생 가장 추운 밤을 보내야만 했다. 뒤늦게 귀환선을 발견한 구조대가 도착했지만 울창한 나무 때문에 헬리콥터가 착륙할 수 없어 구조 헬리콥터가 착륙할 수 있는 착륙장을 만들기 위해 그 주위의 나무를 베어내야 했다. 비록 중간에 추운 밤을 보낼 수 있는 의복을 공수받긴 했지만 인류 최초로 우주유영에 성공한 우주영웅은 이틀 밤을 추운 우랄 산맥의 깊은 숲 속에서 지냈던 것이다. [[http://spacesite.biz/ussrspace3.htm|자세한 부분은 이곳으로(일본어).]] 2017년 러시아에서 영화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68130|스페이스 워커]]로 영화화되었다. == 우주 유영 이후 == 이후 소련에서는 '''당연히''' 그 대사건이자 사고를 편집 후 전세계에 공표했고 이로써 소련은 [[미국]]에 일격 후 3연타를 날렸다.[* [[스푸트니크]]로 일격, [[라이카(개)|라이카]], [[유리 가가린]], 알렉세이 레오노프의 우주유영으로 3연타.] 1968년 소련의 [[http://ja.wikipedia.org/wiki/%E3%82%BD%E3%83%A6%E3%83%BC%E3%82%BAL1%E8%A8%88%E7%94%BB|유인 달 근접 비행 계획(소유즈L1계획)]]과 [[http://ja.wikipedia.org/wiki/%E3%82%BD%E3%83%A6%E3%83%BC%E3%82%BAL3%E8%A8%88%E7%94%BB|유인 달 착륙 계획(소유즈L3계획)]]의 멤버로 선발되었으나 [[N1]] 로켓의 개발 실패와 [[아폴로 계획]]의 성공으로 인해 소련의 달 탐사 계획이 취소되어 버렸다. 1971년에 3명이 사망한 소유즈 11호는 원래 레오노프를 선장으로 3명이 탑승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일원인 발레리 쿠바소프가 검진에서 결핵이 발견되자 백업요원인 그 3명이 교대하여 대신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고 이후 쿠바소프의 결핵 진단은 '''오진'''으로 판명되었다. [[아폴로 13호]]가 연상되는 순간.] 이후에는 공군 소장으로 진급하여 소련 우주비행사들의 구심점 역할을 했고 1975년의 [[아폴로-소유즈 테스트 프로젝트|아폴로-소유즈 도킹 미션]]에서도 소련측 대표로 뽑혀 소유즈 19호를 타고 아폴로 18호와 도킹했다. [[2019년]] [[10월 11일]] 향년 85세로 사망했다. == 여담 == 그림에도 소질이 있어서[* 원래는 화가가 꿈이었다고 한다.] 우주로 나온 순간을 직접 그리거나[* 우주복에 장착된 카메라로 밖의 우주선을 찍으려고 했으나 우주복이 팽창해서 못 찍었다.] 우주의 풍경들을 그림으로 남겼다. [[파일:external/www.spaceistheplace.ca/voskhod2painting.jpg]] [[파일:external/65610636a5d678000d37ffbf19c7a8254d65973858d2c28726b06ee1a32d8ec4.jpg]] 인간적으로도 붙임성 좋고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NASA]] 소속 우주비행사들과도 친분을 많이 쌓았고 [[소련 붕괴]] 후 미국과 러시아가 협력해서 [[ISS]]를 건설하는 데도 중재역으로 노력했다. 우주비행 관련 서적들을 보면 레오노프 장군의 인간성을 칭찬하지 않는 책이 없을 정도. [[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를 2회 수훈받았다. [[대조국공훈훈장]] 1등급을 수훈받았다. [[아서 클라크]]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후속작인 2010: 오디세이 2에서 목성을 향해 날아가는 우주선의 이름을 '알렉세이 레오노프 호'로 설정했다.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구 소련과 미국의 협력을 생각했을 때 의미심장한 이름. 태어났을 때 친가, 외가 할머니들이 서로 얘기도 안 하고 갓난아기를 교회에 각각(...) 데려가는 바람에 세례를 [[꼭 해라 두 번 해라|두 번 받았다]] [[카더라]].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http://web.archive.org/web/20190811222351/https://www.youtube.com/watch?v=aUz9AzKftF0&feature=youtu.be|어머니가 트랜스젠더 딸에게 수술하고 세례 한번 더 받자고 설득할 때]] 세례 두 번 받은 사례로 들먹일 정도면 꽤 알려진 이야기인 것 같다. 사실 종교를 금지하던 소련 시절[* 그것도 1934년이면 스탈린의 반종교 정책이 절정에 달하던 때였다.]의 갓난아기 [[정교회]] 세례 기록이 남아 있는 것도 대단한 거고 종교가 금지되던 시절에 서로 대놓고 상의도 못해서 세례를 두 번이나 받는 게 그리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인류 최초로 [[우주 쓰레기]]를 버렸다. 위의 우주유영 영상은 바로 우주선의 에어록 출구에 부착된 카메라로 찍은 것인데 이런 우주선용 카메라는 렌즈 보호를 위해서 발사시에는 렌즈 덮게를 부착해서 발사한 뒤 사용시에 우주비행사가 덮개를 제거해야 했다. 레오노프도 우주유영 실시 전에 에어록 밖으로 나와서 먼저 카메라에 달린 커버를 벗겼는데 이후에 대한 메뉴얼이란 게 당연히 없었으므로 우주에 그냥 버렸다(...) 영화 [[스페이스 워커]]에서는 레오노프가 무전으로 이건 어떻게 하냐고 묻는데 [[세르게이 코롤료프]]가 무전으로 '''그냥 버려!''' 라고 답하는 장면으로 처리되었다. [[애플TV+]]의 오리지널 [[대체역사]] 드라마 시리즈 [[포 올 맨카인드]]에서는 [[아폴로 11호]]보다 먼저 소련의 [[N1]] 로켓이 달에 가서 레오노프가 인류 최초로 달착륙을 한 것으로 나온다. 2017년 러시아에서 레오노프의 우주유영을 소재로 한 시대극 영화를 제작했다. 제목은 스페이스 워커. 레오노프 본인도 영화의 자문을 맡았다. == 관련 항목 == * [[우주공간에서의 기압요건]] * [[보스호드 계획]] [[분류:1934년 출생]][[분류:2019년 사망]][[분류:케메로보 주 출신 인물]][[분류:소련의 우주 비행사]][[분류:소련의 군인]][[분류:러시아의 남성 작가]][[분류:러시아의 화가]][[분류:소비에트 연방 영웅]][[분류:대조국공훈훈장 1등급 수훈자]][[분류:대조국공훈훈장 3등급 수훈자]][[분류:대조국공훈훈장 4등급 수훈자]][[분류:테러 피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