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일본의 소설가]][[분류:1934년 출생]][[분류:1996년 사망]][[분류:교토시 출신 인물]][[분류:추리 소설가]][[분류: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초등학교 출신]][[분류:심부전으로 죽은 인물]] [목차] == 개요 == [ruby(山,ruby=やま)][ruby(村,ruby=むら)] [ruby(美,ruby=み)][ruby(紗,ruby=さ)], [[1934년]] [[8월 25일]] ~ [[1996년]] [[9월 5일]] [[추리소설]] 작가. '미스터리의 여왕', '트릭의 여왕', '일본의 [[애거서 크리스티]]' 등으로 불린다. [[교토]]를 무대로 한 젊은 여성이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이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를 얻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미국 부통령]]의 딸인 [[금발벽안]] [[백인]] 여성 캐서린 터너가 [[교토]]에서 활약하는 '캐서린 시리즈'가 유명하다. == 생애 == [[교토]]에서 1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조선총독부]] 경성법학전문학교 학장으로 근무하게 되면서 아버지를 따라 [[일제강점기]] 시절 [[경성부]](지금의 [[서울]])에서 자랐다.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초등학교|경성사범부속소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제일[[고등여학교]][* 일본인 학교였고 [[8.15 광복|해방]] 이후 건물은 [[경기여자고등학교]]에서 사용했다.]에 다녔다. 이때 집안은 [[수행기사|운전수]]와 [[가정부]]까지 두고 부유하게 잘 살았는데 [[1945년]] 일본이 패전하고 한국이 [[광복]]되어 [[히키아게샤|일본으로 돌아올 때는 돈 한 푼 못 가지고 돌아왔다고 한다.]] 이후 아버지는 3년 간 실직 상태였고 다행히 1950년에 어머니의 고향 [[교토]]로 가서 [[교토대학]]에서 일자리를 얻어 집안이 겨우 안정되었다. 그의 나이 17살 때 일이다. 전쟁이 끝나기 전인 한국에 있을 때 [[징용]]당해서 비행기의 유리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건강에 나쁜 유리 가루를 들이마셨고, 전후에는 고생을 많이 해서 영양실조에 걸리기도 해서, [[천식]]을 지병으로 얻어서 평생 고생했다. 이 시절 교토에 옮겨와서는 고등학교에는 거의 가지 않고 집에서 쭉 책만 읽었다. 이런 요양생활을 할 때 [[에도가와 란포]] 등을 알게 되면서 [[추리소설]] 팬이 되고, 마침내 '추리소설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다. 1957년에 교토부립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교토시립 후시미 중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제자들의 회상을 들어보면 "젊은 여선생이 자주 학교 근처에 있는 경찰서를 찾아가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경찰서에서 인간 관찰 같은 것을 했을 것 같다"고 회상했다. 한동안 교사로 일하다 같은 학원에서 교사였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교사로 일하면서 추리소설 습작을 쓰고 가정과 아이를 돌보는 일을 동시에 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고, 당시 [[일본/경제]]가 호황인 점도 있고 타고난 좋은 두뇌로 주식으로 큰 돈을 벌었고, 1964년에 [[교사]] 생활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어서 작가 도전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나이 30살 때였다. [[에도가와 란포#s-4|에도가와 란포상]]에 응모했지만, 3번이나 후보에는 들었지만 수상을 하지 못하고 낙방한다. "트릭은 휼륭하지만 문장력이나 문학성이 부족하다"는 평가였다. 제16회 란포상의 후보에 든 작품 『京城の死(경성의 죽음)』(1970)은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경성부]](지금의 서울)를 무대로 하고 있다. 1973년에도 후보작으로 올랐으나 수상에는 실패. 이런 그의 작품을 아깝게 여긴 [[고단샤]] 출판사의 어떤 편집자가 도와줘서, 그 후보작「ゆらぐ海溝」을「マラッカの海に消えた」로 제목을 바꿔서 다음해에 작가에 도전한 지 10년 만인 40살의 나이로 (잡지에 단편을 게재하는 것이 아닌) 정식으로 장편 단행본 출판을 하고 프로 작가로 데뷔했다. 이후 [[교토]]를 무대로 젊은 여성이 살인사건을 해결한다는 일련의 시리즈를 써내려갔고, 때마침 1980년부터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버블 경제]]와 함께 교토 붐이 일면서 잡지에 교토가 자주 소개되었다. 교토의 명소와 전통 축제 같은 문화, [[미식|교토 요리]], [[꽃꽂이]], [[다도]], 일본무용 등을 작품의 소재로 활용하는 그의 작품을 젊은 여성들이 너나 나나 찾아 읽으면서 시대를 선도하는 유행작가가 되었다. 특히나 1975년부터 써 내려간 [[미국 부통령]]의 딸인 금발벽안 백인 여성 캐서린 터너가 [[와패니즈|일본의 전통문화를 배우기 위해]] 교토에 머물면서 사건도 해결한다는 캐서린 시리즈는 대표적인 인기 시리즈가 되었다. 1983년에는 캐서린 시리즈의 [사라진 상속녀]가 제3회 일본문예대상을 수상하면서, 그동안 무관의 여왕이었던 것에 첫 수상을 맛보았다. [[https://www.google.com/search?biw=1035&bih=458&tbm=vid&ei=Vh2uXonxKo3_0gTP0K6QCw&q=%EC%82%AC%EB%9D%BC%EC%A7%84+%EC%83%81%EC%86%8D%EC%9D%B8&oq=%EC%82%AC%EB%9D%BC%EC%A7%84+%EC%83%81%EC%86%8D%EC%9D%B8&gs_l=psy-ab.3...8321.13710.0.13910.24.21.0.0.0.0.192.2182.6j13.20.0....0...1.1j4.64.psy-ab..10.6.761.0..0j0i131k1j0i5i30k1.96.57OAsh4p6i0|드라마화도 되었다.]] 그녀는 [[에도가와 란포]]를 정신적 스승으로 여기고 존경했는데, 에도가와 란포상에 3번이나 후보에도 올랐는데 결국 수상을 못하고 다른 상복도 거의 없어서[* 상이라고는 생전에 딸랑 이것을 포함해서 2개만 받았다.] 작가생활하는 내내 아쉬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에도가와 란포 선생님처럼 독자가 즐거워하는 소설을 쓰면 그것으로 좋다고 여겼다고 한다.[* 에도가와 란포도 생전에 소설을 써서 상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런데 그 시절에는 추리소설에게 주는 문학상 자체가 없었다. 1955년부터 시작된 에도가와 란포상은 그 첫 회의 상금은 에도가와 란포 본인이 후원금을 부담해서 태어난 상이다.] 야마무라의 작품은 인기를 얻고, 여러 작품이 TV 드라마로 많이 만들어졌다. 일본에서는 소설보다 드라마로 더 친근할 정도이다. 1996년 9월 5일, [[심부전]]으로 [[도쿄도]] [[세타가야구]]에 있는 [[제국호텔]]에서 급사했다. 향년 62세. == 기타 == 트래블 미스터리로 유명한 니시무라 교타로와의 우정이 유명하다. 스캔들 등의 소문이 날 것이 분명한데도 교토에서 여관으로 쓰던 [[저택]]을 공동으로 구입해서 본관은 니시무라가, 별관은 야마무라가 이용하는 형식으로써 서로 이웃사촌으로 살았다. 두 집사이에는 연결된 비밀 통로도 있었다. 니시무라는 야마무라와 결혼하고 싶었지만, 기혼이라 하지 못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인연은 무명 작가 당시 니시무라에게 야마무라가 [[팬레터]]를 보낸 것이 계기로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고, 니시무라는 야마무라를 여대생으로 착각하고, 이윽고 [[교토]]에 여행을 가게 되었을 때 서로 만나자고 해서 만났다고 한다. 그런데 야마무라는 첫 팬레터를 보낼 때도 결혼해서 아이도 있는 유부녀였다. 이 두 사람의 콤비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가 탐정 야마무라 미사'라는 2차 창작 드라마 시리즈도 있다. 딸인 모미지는 배우로 활동하면서 어머니와 니시무라 원작의 드라마의 작품에 많이 출연했다. [[꽃꽂이]]와 [[다도]], 일본무용은 취미생활 정도를 넘어서 사범 자격까지 가졌다. 특히 [[난초]]를 좋아했다. 항상 화려한 디자인의 옷을 입고 화려한 고급 저택에서 뭐든지 일류 물품을 지니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았다고 한다. 상복이 없는 대신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욕심이 있어서, 책 표지도 서점에서 눈에 띄고 잘 보이기를 원해 화려하고 타이틀도 큼직하게 보이기를 원해 출판사 측에 "내가 이렇게 열심히 썼는데 왜 표지를 이 정도밖에 못 만드느냐."라고 따졌다고 한다. 그래서 책 표지가 아름다운 젊은 여성의 얼굴 그림과 화려한 디자인과 색깔과 큼직한 타이틀이 달린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에서는 추리소설 팬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저명인사인데도, 한국에서는 다루는 소재가 소재라서인지, 무슨무슨 유명한 상을 받은 수상작이라는 선전 문구를 달 만한 요소가 없어서인지, 한국에서 일본 추리소설 번역에 관심을 가진 1990년대 중반에는 이미 사망하고 유행이 흘러간 옛날 작가 취급해서인지 여태까지 제대로 번역이 된 적도 없고, 인지도도 낮다. 1993년에 한국에서 펴낸 '일본 서스펜스 걸작선'이라는 단편 모음집에 '살의의 축제'가 번역 소개 된 적이 있다.[[http://howmystery.com/review/41425|감상글]] 그리고 1990년에 불륜여행 살인사건과 이혼여행 살인사건, 1993년에 춤추는 주사위, 1998년 비밀의 방이 번역 출판되었다. 1981부터 1985년까지 [[에도가와 란포]]가 창설한 [[일본추리작가협회]]의 이사장을 맡았다. == 작품 == [[https://ja.wikipedia.org/wiki/%E5%B1%B1%E6%9D%91%E7%BE%8E%E7%B4%97#%E4%BD%9C%E5%93%81%E3%83%AA%E3%82%B9%E3%83%88|일본 위키피디아 작품 목록]] 참조 집필시간은 많을 때는 하루 20시간을 글을 쓰고, 다작이라 작가 생활 22년간에 장편과 단편을 합쳐 364편의 작품을 남겼다. 게임으로 만들어진 작품 또한 다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