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이집트의 역사)] [include(틀:대영제국의 식민지)] ||||||<:><#c8102e> {{{#fff {{{+3 '''영국 치하 이집트''' [br] '''الاحتلال البريطاني لمصر'''}}}}}} || ||||<:>'''이집트 헤디브국 (1882~1914)'''[br]الخديوية المصرية[br]'''이집트 술탄국 (1914~1922)'''[br]السلطنة المصرية || ||<-2> {{{-2 {{{#000 [[대영제국|[[파일:영국 국기.svg|width=20]] {{{#000 대영제국}}}]]의 [[보호국|{{{#000 보호국}}}]]}}}}}} || ||<:>[[파일:이집트 국기(1882-1922).svg.png|width=200]] ||<:> [[파일:98px-Coat_of_Arms_of_the_Sultan_of_Egypt.svg.png]] || ||<:><#c8102e> '''{{{#fff 국기}}}''' ||<:><#c8102e> '''{{{#fff 국장}}}''' || ||||||<:><#c8102e> '''{{{#fff 1882 ~ 1922}}}''' || ||<:><#012169> '''{{{#fff 위치}}}''' ||||<(> [[이집트]], [[수단 공화국|수단]] || ||<:><#012169> '''[[수도(행정구역|{{{#fff 수도}}}]]''' ||||<(> [[카이로]] || ||<:><#012169> '''[[언어|{{{#fff 언어}}}]]''' ||||<(> [[아랍어|표준 아랍어]], [[이집트 아랍어]], [[영어]] || ||<:><#012169> '''[[민족|{{{#fff 민족}}}]]''' ||||<(> [[이집트인]] || ||<:><#012169> '''[[종교|{{{#fff 종교}}}]]''' ||||<(> [[이슬람교]] || ||<:><#012169> '''{{{#fff 통화}}}''' ||||<(> [[이집트 파운드]] || ||<:><#012169> '''{{{#fff 성립 이전}}}''' ||||<(> [[이집트 속주]] || ||<:><#012169> '''{{{#fff 멸망 이후}}}''' ||||<(> [[이집트 왕국]], [[앵글로-이집트 수단|영국령 앵글로-이집트 수단]] || [목차] [clearfix] == 개요 == 1882년부터 1922년까지 [[영국]]이 [[이집트]]를 통치하던 시절을 뜻한다. 대외적으론 '비 공식적' [[보호령]]이었지만 실상은 식민통치 수준으로 내정간섭을 했으므로 사실상 식민통치시기로 본다. 1956년, 즉 [[제2차 중동전쟁]]직전까지 이집트가 영국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 있어서 [[이집트 왕국]]과 이집트 공화국 초반기도 영국 통치 시기로 보기도 한다.[* 1905~1910년까지의 [[대한제국]]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 역사 == 1870년대, [[이집트]]는 많은 이권을 [[영국]]에게 빼앗기고 있었다. 특히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주식을 영국이 구입하면서부터 간섭이 심해졌다. [[1879년]], 이집트에선 [[아라비 파샤]]를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자]]들의 반란이 일어났다.(Urabi revolt) 그러자 1882년, 영국은 이에 개입해 군대를 파병하였고, 반란군은 [[영국군]]에 순식간에 녹아내린다. 그 이후 이집트에는 영국군이 주둔하게 되었으며, 약 74년간 영국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된다.[* 이때부터 영국의 비공식적인 보호령이 된다.] 이집트의 [[민족주의자]]들은 [[반영]]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진압당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된 1914년, 이집트에서는 후세인 카멜[* [[이라크]]의 [[후세인 카멜]]과는 동명이인이다.]이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하고,[* 19세기 중반 쯤부터 이집트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사실상 독립한 상황이었으나, 공식적으로는 오스만 제국의 속령이었다.] 이집트 술탄국이 설립된다. [[영국]]은 이집트를 [[식민지]]로 병합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나 이집트인의 격렬한 반대로 무산되고 공식적인 보호령으로 삼는 것에 그쳤다.[* 이집트인들이 독일이나 오스만의 편에 가담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집트 태수인 아바스 헬미 2세는 오스만 제국의 편을 들었다가 즉각 폐위되었고, 독일은 이집트 독립운동을 배후에 지원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이집트인들을 전쟁터로 동원하고, 전쟁 물자도 수탈해간 영국에 대해 분노한 이집트인들은 전후인 1919년, 대규모 반영 운동을 일으키는데, 이게 바로 [[1919년 이집트 혁명]]이다. 결국 영국은 1922년 이집트를 [[이집트 왕국]]이라는 왕국으로 독립시킨다. 그러나 영국군은 여전히 주둔하고 있는 상태였고, [[수에즈 운하]]도 여전히 영국 소유였다. 경제적으로도 [[영국]]에 의존하는 성향이 컸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이탈리아 왕국]]이 [[이탈리아령 리비아]]를 통하여 이집트를 침공했으나 영국군이 [[이탈리아군]]으로부터 이집트를 보호하였다. 2차 대전 이후, 영국은 자국의 군대를 [[수에즈 운하]]를 제외한 이집트의 영토에서 철수시킨다. 1952년에는 [[나세르]]의 쿠데타가 일어났고, 1953년에는 왕정이 폐지된다. 이후 이집트는 당시 영국과의 공동 관리에 있던 [[수단 공화국|수단]]을 자국의 영토로 선포하지만 영국은 씹었다. 1956년, [[가말 압델 나세르]]가 집권하면서 [[수에즈 운하]]를 자국령으로 선포하게 된다. 이에 따라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과 [[제2차 중동전쟁]]을 벌였으나 패배한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영국의 영향력은 완전히 사라져 이집트는 비로소 완전한 독립국이 된다. == 역대 군주 == [include(틀:역대 이집트 군주)] [[분류:이집트의 역사]][[분류:수단 공화국의 역사]][[분류:보호국]][[분류:영국의 식민지]][[분류:1922년 멸망]][[분류:영국-이집트 관계]][[분류:영국-수단 공화국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