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청나라의 역사]][[분류:사이비 종교]][[분류:중국의 범죄조직]][[분류:반제국주의]][[분류:국수주의/중국]] {{{+1 '''義和團''' }}} || [[파일:의화단 기.png]] || || 의화단의 깃발 || [목차] == 개요 == > '''[[扶]][[淸]][[滅]][[洋]]''' (부청멸양: [[청나라|청]]을 도와 [[서양]][[놈]]을 멸하자.) >---- >[[의화단의 난]] 당시 의화단의 구호 [[청나라]]에서 개화를 반대하던 무술집단이자 [[먼나라 이웃나라]]를 비롯한 많은 [[학습만화]] 및 [[중국사]] 서적에서는 '[[서양]] [[제국주의]] [[열강]]과 [[일본]]에 저항한 조직' 정도로만 서술했으나 이들의 실상은 [[의화단 운동]] 항목 참고. 원래는 의화권(義和拳)이라는 무술을 수련하던 [[권법]]집단이었다. 개항 이후에는 [[청나라|청]] 왕조를 받들어 외세를 물리친다는 뜻의 부청멸양(扶淸滅洋)이라는 이름 하에 반란을 일으켰다. [[식민제국]] 열강에 대항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온갖 잔혹행위와 민간인 학살 사건들을 저지른 끝에 8개국 연합군에게 진압 당했다. 당초에는 전형적인 반청복명 계통의 비밀결사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이지만 지도층이 [[청나라]] [[황족]]에게 포섭되면서 친청으로 방향이 선회된 것으로 보인다. [[백련교]]의 한 분파라는 설도 있다. == 상세 ==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oxersDrawingByKoekkoek1900.jpg|width=300]]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70px-BoxerSoldiers.jpg]] || 의화단은 무술 종교적 요소가 강하게 포함되었는데 의화권을 익히면 [[금강불괴]] 도검불침의 몸이 되어 [[총]]을 [[개소리|맞아도 문제가 없다고]] 선전하고 다녔다. 식민국가나 반식민국가의 반란군들이나 개화 반대파 세력들이 이런 주술적, 미신적 요소가 근대식 화기도 이기게 해준 다는 믿음을 막 퍼뜨리고 다니면서 소속원들을 독려한 전적이 많다. 물론 결과는 어디 가든 '''[[몰살]].'''[* 사실 한국의 [[우금치 전투]]만 해도 개틀링과 근대식 저격소총에 그 많던 농민들이 [[관군]]과 [[일본군]]에게 피해 한 번 제대로 못 주고 다 작살났다.] 의화단은 대중 앞에서 총알을 막아내는 일종의 [[차력]]쇼 같은 걸 선보였지만 일부러 총에 총알을 안 넣고 화약만 넣거나 온갖 [[훼이크]]를 썼다.--가짜 광기-- [[파일:external/cfs6.blog.daum.net/46ad7d909880b&filename=yihetuan.jpg]] 그들은 통일된 조직도, 권법도 없었다. 공통점이라면 스스로를 권민(拳民)이라고 부르면서 [[기독교]]를 믿는 교민(敎民)에 대적하며 누런 베, 황포로 머리를 감싸고 --[[황건적]]??--, 배는 붉은 색으로 가리고 --[[홍건적]]??--, 양권을 하여 신령을 몸으로 부르고 큰 칼로 배를 내보여서 자르는 시늉을 한다든지, 인후로 창 끝을 버티는 차력쇼를 벌였다는 것이다. 의화단에 관련된 역사적 자료들이 하도 많다 보니 여기에 대해서도 관련 연구자들 사이에서 말들이 많다. 의화단원들이 중국 시골에서 전해지는 [[무당]]들의 [[굿]] 하는 모습에 의거한 [[트랜스]] 상태에 빠져서 저런 일이 가능했다거나 일시적으로 신체의 기능을 강화시키는 [[흥분제]]를 복용하고 날뛰었다는 증언도 있다. 권법을 배우면 '도창불입(刀槍不入)'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직역하면 "칼과 창이 들어가지 않는다", 즉 칼과 창, 더 나아가 무기로도 소용 없어지는 [[금강불괴]]의 몸을 가지게 된다는 뜻이다. ~~총알은 소용있나보다~~ [[http://blog.daum.net/shanghaicrab/12501155|#]] 민족도 한족, 만주족 등 다양했고 연령대도 10대부터 노인까지 골고루 분포되었다. 《[[삼국지]]》, 《[[수호전]]》 등에 나오는 [[오호대장군]] 같은 영웅호걸들을 신봉하였으며 의화권의 미신적 힘과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 신천지로 나아가자는 환상이 민중에게 급하게 확산되었다. 구시대 질서를 옹호하던 향촌의 [[신사(중국)|신사]]들도 이들의 물주가 되어 주었다. 그런가 하면 청나라 말엽에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면서 이전까지의 직업이 쓸모가 없어지자 쫓겨나서 [[실업자]]가 된 사람들이 대거 의화단에 가담하기도 했다. 한 예로 의화단의 대표적인 지도자인 장덕성(張德成)은 원래 중국의 남북을 잇는 [[대운하]]에서 뱃사공으로 일했으나 서양에서 들어온 증기선 때문에 운하 관련 일이 사양 산업이 되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이외에도 서양에서 들어온 [[철도]]가 중국에 놓이자 이전까지 대운하에서 운송 물류 사업인 짐꾼이나 뱃사공으로 일하던 수많은 중국인 노동자들은 새로운 운송 수단인 철도에 밀려 일자리를 잃고 실업자가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의화단 운동]]이 일어났을 때 의화단에 참가한 수많은 [[중국인]]들은 철도를 보는 족족 망치나 도끼로 모조리 [[개발살]]냈는데 철도가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았다고 여겨 원한을 품었기 때문이었다. ~~[[러다이트 운동]]?~~ 아울러 의화단 참가자들이 철도가 서양 [[제국주의]] 열강이 중국을 침탈하는 도구라고 여겨 미워한 탓도 있었다. 이렇듯 서양 물건에 의해 실업자가 된 장덕성을 비롯한 수많은 중국인 노동자들은 서양인들 때문에 자신들이 생계를 잃었다고 여겨서 서양과 서양인들을 증오했고, 그래서 서양을 중국에서 몰아낸다는 의화단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출처: 실업이 바꾼 세계사 179~182쪽/ 도현신 지음/ 서해문집] 의화단에는 [[부녀|부녀자]]들로만 구성된 집단들도 존재하였는데 비교적 나이가 어린 10대 이상 여성들의 집단인 홍등조(紅燈照), 중장년 부녀자들의 집단 남등조(藍燈照), [[과부]]들로 구성된 흑등조(黑燈照) 또는 사과조(砂鍋照) 등이 있었다. == 행적 == 의화단의 등장은 그동안 진행된 [[태평천국 운동]]까지를 포함한 [[기독교]] 문화 및 기독교인들의 행위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선교사들이 토지를 강탈하는 행위가 큰 반감을 불러일으켰는데 이 상황에서 청나라 정부는 열강들과의 [[불평등조약]]에 의해 그런 선교사들에게 마치 관리와 유사한 권리와 지위를 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권리를 얻은 선교사들은 세력확장에 박차를 가했고 중국인들은 [[유라비아|중국이]] [[기독교공포증|기독교화될 것을 두려워했으며]] 중국인들에게 기독교의 [[예배]]([[미사]])와 [[고해성사]] 문화는 "[[난교]]"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어 기르는 [[고아원]]을 영아 유괴로 오인하고 공격하는 경우도 많았고 포교는 불평등조약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허락했으나 원래부터 그렇게 기독교에 영 호의적이지 않았던 관료들의 시각이 가세했다. 여기에 백성들이 이런 중상 및 토지 약탈로 기독교인들을 소송하면 관리들은 항상 일을 시끄럽게 했다며 문초하면서도 기독교인들에 대한 오해를 푸는 데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고 청나라 정부에 의해 관리의 권리를 얻은 종교인들도 있어서[* [[주교]], [[선교사]] 등] 기독교인들을 다루기도 어려웠다. 이러다 보니 "관리들이 정당하지 못하게 기독교인들을 편들고 있다"는 오해가 더욱 퍼졌다. 이는 청 조정과 일부 지방정부, 신사들이 [[반서방]] 감정을 부추기는 데도 잘 이용되었다. 일부 [[무슬림]]들과 [[백련교]]의 잔당도 이들에 합류했다. 의화단들은 부청멸양의 기치를 내걸고 반서양 반외세 감정을 품고 봉기해 서양 문물을 공격, 파괴했다. 또한 청나라의 비호 하에 외국인들이나 기독교 친서양 현지인들에게 엄청난 규모의 살육, [[약탈]]이나 [[강간]]을 일삼는 [[제노포비아]]적인 행각을 벌였다.[* 이들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절대 다수는 서구 [[제국주의]]와 무관한 서구 민간인들과 가난한 중국 기독교인들이었다.] === [[의화단 운동]] === 의화단이 [[1899년]]에 [[반기독교]] 운동을 벌여 교회를 불태우면서 소란을 일으키자 청 왕조는 [[위안스카이]]를 보내 이를 진압하였으나 오히려 운동은 거세져 주변으로 파급되었으며 [[철도]][* 외국 세력 침투의 상징] 등을 파괴하면서 [[베이징]]까지 확산되었다. 위안스카이가 이들을 부추겨 자멸을 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후 성격이 [[반기독교]] 운동에서 '부청멸양'을 구호로 내세우는 반외세운동으로 달라졌고 청 정부가 이들과 손을 잡으면서[* 특히 서태후가 광서제를 폐위하고 [[아이신기오로 푸쥔]]을 황제로 세울 것을 기도하면서 평소 반외세 감정이 강했던 아이신기오로 자이이(푸쥔의 부친)가 의화단을 부추기는 데에 일조했다. 결국 그는 의화단의 봉기가 진압된 뒤 책임을 추궁받아 아들과 함께 신장으로 귀양가게 된다.] '''[[의화단 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전투에서 8개국 연합군은 [[톈진]]에서 청 정부와 의화단의 연합 군대를 [[개박살]]내 버렸다. 당연히 의화단에게 매우 불행한 일이었지만 의화권은 연합군의 총알을 막는 데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다.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애초에 창과 칼을 막는다고 했지 총알을 막는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400일 넘게 수련하면 마법 쓸 수 있다며-- 이후 8개국 연합군은 [[베이징]]으로 진격해서 이를 점령했으며 [[신축조약]]을 체결하여 청을 사실상 반식민지로 만들어 버렸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민간인 살상과 더불어 주로 청조 황실 및 귀족과 민간인 및 재산에 대한 대대적인 약탈, 파괴, 방화가 자행되었다. === 몰락과 계승 === 결국 의화단은 1900년 8월 14일부터 개입해 [[베이징]]을 함락한 8개국 연합군과 서구 세력에 편승한 청나라 정부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당했고 그 중에서 [[러시아 제국군]]이 철도망 보호를 이유로 만주와 요동까지 점령하면서 그 세력이 멸살되었다.[* 그러나 의화단의 잔당들은 러시아 제국군의 진압을 피해 대한제국의 국경을 넘어와서 약탈을 저질렀고 ~~2차 [[홍건적의 난]]~~ 심지어 '''관군에게 진압당한 [[위정척사파]] 의병장인 [[유인석]]이 요동으로 도망가서 의화단과 손을 잡고 조선에 다시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돌아 대한제국 백성들이 불안에 떨었다.[[https://scienceon.kisti.re.kr/srch/selectPORSrchArticle.do?cn=DIKO0012169865|석사학위논문, 대한제국기 진위대 증설과 군부예산 운영, 김기성, 고려대학교. 15p, 각주 60번]]][* (원문) 乙未年柳寅錫, 以義兵魁首, 爲官兵所敗, 逃入遼東, 誘引韓·淸子弟, 以排外斥洋之語, 人多信從, 至是與義和團相合, 將有貽害本國之擧云, (해석) 을미년에 유인석은 의병의 수괴로 관병에게 패하여 요동으로 도망갔는데, 의화단과 합세하여 조선에 해를 끼칠 거사가 있을 것이라 합니다.[[https://db.history.go.kr/item/level.do?setId=5&totalCount=5&itemId=sa&synonym=off&chinessChar=on&page=1&pre_page=1&brokerPagingInfo=&types=&searchSubjectClass=&position=0&levelId=sa_013_0090_0030_0080&searchKeywordType=BI&searchKeywordMethod=EQ&searchKeyword=%EC%9C%A0%EC%9D%B8%EC%84%9D+%EC%9D%98%ED%99%94%EB%8B%A8&searchKeywordConjunction=AND|속음청사 상 533]]] 그러나 의화단 운동이 민중들에게 남긴 영향은 적지 않아서 교리나 정신론적인 수양법은 알음알음 [[백련교]] 신도에 의해 전해지다가 [[파룬궁]]을 비롯한 여러 민간종교, 비밀결사, [[흑사회]] 집단들로 계승되었다. == 기타 == [[영어]]로는 의화단 운동을 'Boxer Rebellion', 직역하면 '권투선수의 난'이라고 부르는데 당시에 서양 [[선교사]]들이 의화단이 무술과 체조를 중요시하는 걸 보고 "[[권투]]선수(Boxer)들 같다"고 평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Rebellion, '난'이란 이름은 당시 의화단을 조장해서 서양과 맞붙은 청이 대판 깨지고 그 책임을 자신이 아닌 의화단에게 돌리기 위해 붙여 준 이름에 가까우니 종전 후 청이 이들을 [[토사구팽]]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이름으로도 보여준다. == 여담 == [[의열단]]과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 매체 == 영화 《[[황비홍]] 2》에도 백련교주가 나온다. 의화권을 익혀서 총에 맞아도 안 죽었지만 알고 보니…옷 속에 두툼한 철판을 숨겨서 총에 맞아도 안 죽었던 것. 그러나 황비홍의 발차기에 맞고 날아가 뾰족한 곳에 등이 뚫려 죽는다. (...) 영화 《[[황비홍(영화)|황비홍]] 4편》에 홍등조가 등장한다. 홍등조의 지도자 격인 황련성모(黃蓮聖母) 린헤이얼(林黑兒)이 독일 제국군의 총격을 받고 참수되어 사망하면서 단원들이 그녀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이는 영화판의 각색으로 린하이얼은 8개국 연합군에 체포된 후 발가벗겨진 채로 이들에게 온갖 [[능욕]]을 당했고 결국 살해되었는데 더 안타까운 것은 연합군이 그녀의 시신을 포르말린에 담궈서 인체 표본으로 만들어 유럽 박물관에 전시하였고 그 시신은 영국 모 박물관에 수장된 채 아직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과학기술로는 시신을 온전하게 포르말린으로 표본 처리를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린하이얼이 표본이 되었다는 것은 낭설이고 실제로는 연합군에 잡히지 않고 [[산둥성]]으로 복귀하여 백련성모로 호칭을 바꾸고 활동했다는 설도 나도는 등 린하이얼의 이후 행적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성룡]]과 [[오웬 윌슨]] 주연 2003년 작 [[상하이 나이츠]]에 악의 세력으로 나온다. 다만 청나라의 옥새를 훔치는 '''영국 왕족'''을 돕는다는 등 실제와 정반대로 표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