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함흥시 출신 인물]][[분류:1894년 출생]][[분류:1921년 사망]][[분류:교수형된 인물]][[분류:건국훈장 독립장]][[분류:국립서울현충원 안장자]] ||||<:>[[파일:임국정.jpg|width=300px]] || || 성명 ||임국정(林國楨) || || 생몰 ||[[1894년]] [[3월 25일]] ~ [[1921년]] [[8월 25일]] || || [[출생지]] ||[[함경남도]] [[함흥시|함흥군]] || || 사망지 ||[[서대문형무소]] || || 매장지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 추서 ||건국훈장 독립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임국정은 1894년 3월 25일 함경남도 함흥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3.1 운동]] 이후 간도로 망명하여 [[윤준희]], [[한상호]], 최봉설(崔鳳卨) 등과 함께 철혈 광복단(鐵血光復團)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또한 1920년 북로군정서에 가담하여 특파원이 되어 동지들과 함께 간도 와룡동에 소재한 김하석(金河錫)의 집에서 군자금 모집 방책을 상의하였다. 그 자리에서 김하석이 조선은행 회령 지점에서 조선은행 용정출장소로 자주 송금을 하고 있으니 이를 빼앗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그는 동지들과 함께 이에 동의했다. 이후 조선은행 회령 지점원[[전홍섭]]으로부터 1920년 1월 4~5일에 조선은행이 15만원을 용정으로 송금하려 한다는 소식을 접하자, 그는 한상호, [[최이붕]]과 함께 용정촌 쪽으로 2리 쯤 떨어진 화룡현 동양리 버드나무 숲에서 매복하여 송금하고 있던 일본 경찰 3명을 습격해 현금 15만원을 획득했다. 그 후 1920년 1월 9일 그 돈을 가지고 가서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 들어가서 체코슬로바키아제 총기류를 다량 구입하여 북로군정서에 제공했다. 한편 그는 서성권(徐成權)을 회장으로 하는 간도청년단의 운동부장으로서 [[강백규]], 이광(李光) 등과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1920년 12월 밀정 [[엄인섭]][* 일제 정보기록에는 단지 '우리 밀정'이라고만 기록되어 있어 엄인섭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정황상으로 볼때 북로군정서 사령관 [[김좌진]]의 비서 노릇을 하고 있던 그가 밀고했을 가능성이 높다.]의 밀고로 인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상호, 윤준희와 함께 체포되었고, 경성복심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뒤 1921년 8월 25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임국정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66년 그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