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라이프지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인)] [include(틀:스미소니언 선정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들)] ||<-2> '''{{{+1 잭슨 폴록}}}'''[* 보통 '폴록'으로 더 많이 표기되지만, 미국 현지 발음상으로는 '폴락'에 더 가깝다. 같은 성을 쓰는 야구선수를 [[A.J. 폴락|A.J. '''폴락''']]이라고 주로 부르는 것이 그 예시.][br]'''Jackson Pollock'''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잭슨폴록일하는중.jpg|width=100%]]}}} || || '''본명''' ||폴 잭슨 폴록[br]Paul Jackson Pollock|| ||<|2> '''출생''' ||[[1912년]] [[1월 28일]]|| ||[[미국]] [[와이오밍주]] 코디|| ||<|2> '''사망''' ||[[1956년]] [[8월 11일]] (향년 44세)|| ||[[미국]] [[뉴욕주]] 스프링스||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미국)]|| || '''직업''' ||화가|| || '''학력''' ||매뉴얼 아츠 고등학교 {{{-2 (중퇴)}}}|| || '''배우자''' ||리 크라스너 ^^(1945년 결혼)^^|| [목차] [clearfix] == 개요 ==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삼류라고 인식되었던 미국 미술을 오늘날의 지위로 올리는데 큰 공을 세웠다는 점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 생애 == 미국 중서부 [[와이오밍주]]의 [[농가]]에서 태어난 폴록은 가족과 함께 [[애리조나주]]와 [[캘리포니아주]] 등지로 옮겨 다녔다. 퇴학을 밥 먹듯 당했지만, 1930년에 [[뉴욕]]에 정착한 이후로는 [[미술]] 공부에 전념했다. 초기에는 [[표현주의]]적인 작품을 그렸지만 1930년대부터 [[추상화]]로 선회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amuth_-_Pollock.jpg|width=100%]]}}} || 1947년 마루바닥에 편 화포 위에 공업용 [[페인트]]를 떨어뜨리는 '드리핑' 기법을 창안해 하루 아침에 유명해졌다. 잭슨 폴록은 바닥에 천을 놓고 막대기에 [[물감]]을 묻힌 뒤에 흩뿌리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이렇게 완성된 그림은 어떤 형체는 보이지 않고 마치 실타래가 엉킨 듯한 물감 자국만이 남았다. 한스 나무스가 이 방식으로 작업하는 폴록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후대에 '액션 페인팅'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폴록의 작품이 [[회화]]의 기본(평면성, 비재현성)을 제대로 드러내 보인다며 극찬했다. 그린버그가 좋아한 회화는 입체적으로 보이지 않고 어떤 자연세계 속 대상을 재현하지 않는 그림이었는데, 폴록의 추상표현주의 회화가 딱 여기에 들어 맞았던 것.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p-Jackson-Pollock_54_990x660_201406010053.jpg|width=100%]]}}} || 그 작업방식 때문에 대부분의 작품 크기가 굉장히 크다. 마침 고층빌딩이 많이 세워지면서 그 빈 벽에 걸 그림이 부족했던 미국 [[갑부]]에게 폴록의 그림은 굉장히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그의 그림은 [[인테리어]] 소품으로 인기가 많았다. 거칠고 파격적인 추상 회화를 통해 20세기 미술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지만, 그에 비례해서 부담감이 컸다고 한다. 후기에는 자기 스스로 작업방식에 [[매너리즘]]을 느껴 다시 [[표현주의]]로 회귀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선지 폴록은 [[알코올 의존증]]이었고, 44세의 젊은 나이에 애인과 친구들을 태우고 [[음주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의 사망 이후 아내 리 크라스너는 잭슨 폴록의 모든 작품을 [[박물관]]에 기증했다고 한다. == 평가 == 현대미술하면 먼저 떠오르는 사람 중 하나이다. 그의 '액션 페인팅'[* 액션 페인팅이라는 말은 작품명이 아니다. 오히려 일종의 회화 장르로 인식하는 편이 편하다. 작품명또한 딱히 없다고 하는 편이 옳다. No. 1 등 넘버링으로 제목이 지어졌다.]은 흔히, 대중이 인식하는 현대미술의 난해함을 비꼬거나 조롱하는 작품으로서 많이 활용된다. ([[https://www.fmkorea.com/985268107|드리퍼 기법으로 진중권을 속인 장동민]]) 심지어 자신조차 드리핑 기법에 허무감을 느껴 표현주의 화가로 돌아갔을 정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오늘날에는 파격적이지 않을 수 있으나, 처음 등장한 당시엔 매우 파격적인 기법이었다는 사실이다. 시대적으로 와닿게 언급하자면 대표적인 작품인 'No. 31'의 제작년도는 1950년이다. [[6.25 전쟁]] 발발년도 이기도하며, 대한민국이 [[광복]]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시기이다. 게다가 그는 1912년 출생이다. 21세기도 아니고 20세기 초반에 태어난 작가라는 말이다. 그 당시 액션 페인팅 시도는 누드화의 등장만큼이나 파격적이었다. 당시 평단에서는 물감을 뚝뚝 떨어뜨리는 그림을 그린다며 잭슨에게 잭 더 드리퍼(Jack The Dripper)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발음이 비슷한 [[살인마]] [[잭 더 리퍼]]처럼 지금까지의 미술을 죽여 버렸다는 의미에서 붙인 별명이기도 했다. 회화로서, '우연성'을 개입시켰으며, 새로운 형태의 회화라는 측면에서 당시에 극찬을 받았다. 애초에, 모든 그림(및 예술 작품)에서 학교 수업시간에 배우듯 무조건 메시지를 찾으려 하면 안 된다. 액션 페인팅은 말 그대로 '액션'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잭슨 폴록이 그려낸 결과물보다, 그것을 흩뿌리며 그려낸 과정에서 더 매력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과물과 물질만을 예술로 인정받았던 시기에서, 제작의 과정과 의도 역시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의의가 있으며, [[개념미술]]이라는 장르를 개척했다고 평가받기도 하며, 잭슨 폴록을 기점으로 미술의 시대를 나누는 학자도 존재한다. == 기타 == * 생전 사진을 보면 상당한 [[노안]]이었다. 사망 당시 아직 노년이라 하기 힘든 44살이었음에도 머리가 다 벗겨지고 주름살이 자글자글한 모습을 보였다. * [[에드 해리스]]가 2001년에 잭슨 폴록에 대한 영화 '폴락'를 만들었다. 참고로 본인이 감독과 배우 둘 다 맡았는데 외모적으로도 잭슨 폴록과 닮았고 영화 속 그림도 실제로 그렸다고 한다. [[https://youtu.be/nMrGIP4NndM|이 영화에서 나온]] 짤방 "G랄 말고 그림 그려!"가 유명하다. 안경 쓴 여자 lee krasner의 대사 "Stop crying about it and paint!"를 번역한 것 같다. * 그의 작품 특성 때문에 섹드립에 쓰이기도 했는데,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주인공인 피터 퀼이 성관계를 간접 묘사하며 그의 우주선에 자외선을 비추면 (하다가 튄 체액때문에) 잭슨 폴록 그림처럼 보일 것이라고 하기도: "If I had a black light ... here would seem like a Jackson Pollock painting." [[분류:미국의 화가]][[분류:1912년 출생]][[분류:1956년 사망]][[분류:교통사고로 죽은 인물]][[분류:파크 카운티(와이오밍) 출신 인물]][[분류:스코틀랜드계 미국인]][[분류:아일랜드계 미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