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토론 합의, 토론주소1=SelectiveAmbitiousBadAnger, 합의사항1=표제어를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로 변경하기)] [include(틀:대한민국 내의 외교공관)] [include(틀:한국-중화권 관계 관련 문서)] ||<-2> [[파일:대만 국장.svg|width=9%]] [br] {{{+1 {{{#fff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br]'''{{{#fff '''駐韓國台北代表部'''}}}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장소=주한타이베이대표부 서울, 너비=100%, 높이=100%)]}}} || || '''{{{#fff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 149 광화문빌딩 6층 || || '''{{{#fff 업무 시간}}}''' || '''월~금요일: 오전 9:00~오후 3:30''' || || '''{{{#fff 상급기관}}}''' || '''[[대만 외교부]]''' || || '''{{{#fff 공관장}}}''' || '''량광중 (梁光中)''' || || '''{{{#fff 홈페이지}}}''' || [[https://www.roc-taiwan.org/kr_ko/|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 홈페이지]][* 위치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 149, 광화문빌딩 6층, 관할지역은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경기도]], [[강원도]], [[대전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 [[전라북도]], [[충청남도]], [[충청북도]]이다.] [[https://www.taiwanembassy.org/krpus_ko/index.html|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 부산판사처 홈페이지]][* 위치는 [[부산광역시]] [[중구(부산)|중구]] [[중앙대로(부산)|중앙대로]] 70, 9층 ([[중앙동4가(부산)|중앙동4가]], 동원산업빌딩), 관할지역은 [[경상남도]], [[경상북도]], [[전라남도]], [[제주특별자치도]],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광주광역시]], [[울산광역시]]이다.] || '''Taipei Mission In Korea''' '''駐韓國台北代表部''' [목차] [clearfix] == 개요 ==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駐韓國台北代表部)는 대만이 [[대한민국|한국]]에 설치한 대만 외교부 직속 외교공관이자, 사실상 [[대사관]]과 동등한 기능을 하는 외교공관이다. 서울에 설치된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駐韓國台北代表部)'는 사실상 대만 측 대사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부산에 설치된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駐釜山台北代表部) 부산 판사처'는 총영사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 한국 및 세계 각국에 설치한 [[타이베이 대표부|대만 외교공관]] 비교 == 일단 [[대만]]의 [[대만/외교|외교적 지위]]로 인해 [[외교공관|대사관]]이라는 명칭을 달지 못 하고, [[중화민국]]이나 [[대만]] 대신 [[타이베이시|타이페이]]라는 명칭을 달고, 대표부나 판사처라는 명칭을 단다. 그렇지만 대표부가 대사관 역할을 하고 판사처가 총영사관 역할을 수행하며 [[대만]] 국적의 [[화교]]를 포함한 [[대만인]]들은 [[타이베이 대표부]]나 판사처에서 영사적 지원을 받을 수 있고 타이베이 대표부나 판사처에서 해당 국가의 정부 요인들과 접촉한다. 1992년 단교 이후 이듬해 대표부 교환을 했는데 단교 직전까지 사용하던 대만 대사관은 중국에게 이관되었기에 대사관으로 쓰던 곳으로 다시 입주하지는 못했다. == 언어별 명칭 표기 차이 ==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駐韓國台北代表部)의 누리집을 방문하면 언어별로 표기의 차이가 발견된다. 한자 표기 및 중국어 표기 및 영어 표기는 '타이페이 대표부(台北代表部; Taipei Mission in Korea)'로 일원화되어 있지만, 한국어 표기는 '타이페이 대표부' 및 '대만 대표부'가 병행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https://www.roc-taiwan.org/kr_ko|#]] == 역사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주한청국공사관)] 주한국 대만대표부의 역사는 [[1882년]]에 [[조선]]과 [[청나라]]가 체결했던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주한청국공사관]]의 자리는 무위대장(武衛大將) 이경하의 집터였는데, 무위영 소속 군졸들이 주축이 되어 [[임오군란]]을 일으켰기에 이에 대한 책임으로 [[전라도]] [[강진군|강진현]] [[고금도]]로 [[유배]]를 떠나게 된 이후 청나라는 이곳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그리고는 [[위안스카이]]가 이 이경하의 집에 머무르며 조선의 실권자로 군림하게 되면서 당시 [[외교공관|대사관]]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1895년]]에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하면서 청나라의 영향력은 급속히 약화됨과 동시에 이 자리는 [[영사관]]으로 격하되었으며, [[1905년]] [[을사조약]]으로 인해 조선과 청의 외교관계는 끊어졌다. [[1912년]]에 [[중화민국/국민정부|중화민국]]이 들어서면서 중화민국과 [[일본 제국]]의 외교관계로 [[경기도]] [[경성부]]와 [[평안남도(이북5도위원회)|평안남도]] [[평양부(일제강점기)|평양부]] 등지에 영사관이 설치되었는데 경성부 영사관은 다시 명동에 들어서게 되었다. 당시에는 주일중화민국대사관의 영사였다. [[중일전쟁]]이 한참이던 [[1940년]]에는 [[왕징웨이 정권]]의 영사관으로 쓰이기도 했다. [[1945년]] [[8.15 광복]]으로 주일중화민국대사관 경성 영사관은 기능이 정지되었고, [[1947년]]에는 이 자리에 중화민국 임시 영사관이 설치되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전인 [[1948년]] [[8월 13일]][* 당시 [[중화민국]]이 대륙에 있던 시절시다.]에 주 서울 중화민국 총영사 [[류위완]](劉馭萬)이 방한해 친서를 전달했고, [[대만|중화민국]]은 한국이 처음으로 외교관계를 맺은 나라였다. [[1948년]] 11월에 [[이승만]]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은 특사를 파견하고 [[난징시|난징]]에 특사관을 설치했다. 그리고 [[국부천대]] 시기에 [[타이베이시|타이베이]]에 다시 대사관을 설치했다. [[1949년]] [[1월 4일]] 중화민국은 [[미국]]에 이어 한국을 국가로 인정하였다. 이로 인해 명동에 있던 중화민국 임시 영사관이 주 대한민국 중화민국대사관으로 승격되었다. [[한국전쟁]] 시기 피난하는 [[대한민국 정부|한국 정부]]를 따라 대사관도 [[부산광역시|부산]]으로 피난하여 [[초량 이바구길|구 백제병원]] 건물에 임시 사무실을 꾸렸다. 냉전 시기 대만과 한국은 외교상 중요한 관계였다. 1971년 UN에서 탈퇴한 후 대만은 사실상 국제 사회에서 고립되었으며, 대만의 가장 큰 우방국 중 하나였던 [[미국]]조차 1979년 1월 국교를 단절하고 [[중국]]과 수교하였기에 [[대한민국]]은 대만의 가장 중요한 수교국이 되었다. 그래서 대만을 방문하는 대한민국 외교 사절들은 대만 현지에서 국빈급 대우를 받았다. 또한 대만 대사가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서방 강대국들과 대사 자격으로 만나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 바로 [[서울특별시|서울]]이었기에 대만은 더욱 [[대한민국|한국]]과의 [[한국-대만 관계|외교관계]]에 신경을 썼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가 [[북방정책]]을 천명하면서 [[한국-대만 관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대한민국|한국]]은 1992년 8월 24일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는 단교하게 된다. 당시 중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 정책의 일환으로 대만과 국교를 끊고 중국과 수교한 나라들은 대만 대사관과 자국 내 대만 재산을 전부 중국 정부에 넘겨줄 것을 요구했었다. [[파일:/image/038/2007/07/09/news1200707091942550.jpg]] 내려가는 [[청천백일기]]. [[중국|중화인민공화국]]과의 수교가 정식으로 맺어지기 일주일 전인 [[1992년]] [[8월 15일]]에 한국은 대만 대사를 소환해 비공식적으로 중국과의 수교 사실, 중화민국과의 단교 계획을 밝힌다. 그리고 21일 공식적으로 단교 문서를 전달했다. 당시 [[한국-대만 관계]]와는 별개로 [[화교/대한민국|재한 화교]]들은 한국과 중화민국 간 단교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대사관 철수 당일 단교 반대 시위가 열렸고, 그 후에도, 일부 화교들이 한국을 떠나 [[대만|중화민국]]으로 귀국하였다. 국교 단절 후 1년 동안 교류가 없었던 양국은 1993년 7월 [[서울특별시|서울]]과 [[타이베이시|타이베이]]에 대표부[* 대사관 격]를 설치하며 다시 교류를 시작하였고, 2005년에는 총영사관 급인 사무처를 [[부산광역시|부산]]에 설치하였다. 국교 단절 이후 중단되었던 직항 항공편 역시 2004년 재개되었다. 대한민국 [[외교부]]는 대표부를 외교부 직할로 두었고, 대만 역시 주한 대만대표부를 민간단체에서 관리하지 않고 외교부 직속으로 두고 있다. 그리고 양국 모두 대표부장에 [[특명전권대사|대사]]와 동급인 [[외교관]]을 배치한다. == 공관장 == === [[청나라|청제국]] 출사 한국흠차대신 === * 서수붕(徐壽朋) 1898~1901 * 허태신(許台身) 1901~1904 * 증광전(曾廣銓) 1904~1905[* [[을사조약|제2차한일협약]]으로 인한 외교업무 중단] === 주한 중화민국 대사 및 주한대표부 대표 === 1993년 대표부가 개설된 이래 주한대표부 대표에는 1급 공무원이 파견되었다. 그러다가 [[2014년]]부터 [[대만]]이 한국에 파견하는 대만 대표의 급이 1급 공무원에서 [[차관]]급 [[정무직 공무원]]으로 높아졌다. 2014년에 파견된 스딩 주한대표부 대표는 이전에 외교부 정무차장을 역임했는데, 이 직위는 한국의 외교부 차관에 해당한다. [[2018년]] 교체한 탕뎬원 현 대표 역시 차관급 인사이다.[[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02&nNewsNumb=002314100008|#]] [[대만]]은 [[대만/외교|정식 외교관계가 있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무조건 [[장관]]급 대사를 보내고, 외교관계가 없는 국가에 대해서 보내는 대표의 최고 등급이 차관급이다. 주미 대만 대표 등도 차관급 인사이다. 한국에도 차관급 대표를 파견함으로써 [[한국-대만 관계]]를 강화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2006년부터는 4년마다 교체되는 것으로 보아 4년 임기로 추정된다. ||<-4>
'''주한중화민국 대사''' || || 정부 || 대수 || 이름 || 임기 || ||<|6> [[장제스]] 정부 || 초대 || 사오위린(邵毓麟 소육린)[* 국가승인과 동시에 대사임무 개시] || 1949년 1월 4일 ~ 1951년 || || 2대 || 왕동위안(王東原 왕동원) || 1951년 ~ 1961년 || || 3대 || [[류위완]](劉馭萬 유어만) || 1961년 ~ 1964년 || || 4대 || 량쉬자오(梁序昭 양서소) || 1964년 ~ 1967년 || || 5대 || 탕중(唐縱 당종) || 1967년 ~ 1970년 || || 6대 || 뤄잉더(羅英德 나영덕) || 1970년 ~ 1975년 || ||<|3> [[장징궈]] 정부 || 7대 || 주우쑹(朱撫松 주무송) || 1975년 ~ 1979년 || || 8대 || 딩마오스(丁懋時 정무시) || 1979년 ~ 1982년 || || 9대 || 쉐위치(薛毓麒 설육기) || 1981년 ~ 1987년 || ||<|2> [[리덩후이]] 정부 || 10대 || 저우진(鄒堅 추견) || 1987년 ~ 1990년 || || 11대 || 진수지(金樹基 김수기) || 1990년 ~ 1992년 || ||<-4> '''주한대만대표부 대표''' || || 정부 || 대수 || 이름 || 임기 || || [[리덩후이]] 정부 || 초대 || 린쭌셴(林尊賢, 임존현)[* 역대 최장 기간 재임] || 1993년 ~ 2001년 || ||<|2> [[천수이볜]] 정부 || 2대 || 리쭝루(李宗儒, 이종유)[* 역대 최단 기간 재임] || 2001년 ~ 2003년 || || 3대 || 리짜이팡(李在方, 이재방) || 2003년 ~ 2006년 || ||<|2> [[마잉주]] 정부 || 4대 || 천융춰(陳永綽, 진영작) || 2006년 ~ 2010년 || || 5대 || 량잉빈(梁英斌, 양영빈) || 2010년 ~ 2014년 || ||<|3> [[차이잉원]] 정부 || 6대 || 스딩(石定, 석정) || 2014년 ~ 2018년 9월 || || 7대 || 탕뎬원(唐殿文, 당전문) || 2018년 9월 ~ 2022년 7월 || || 8대 || 량광중(梁光中, 양광중) || 2022년 7월 ~ 현재 ||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주한중국대사관, version=137)] == 업무 == 여타 다른 대만 대표부들처럼 영사 업무 및 교류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다른 국가 대사관들처럼 비자 발급 및 여권 발급, 갱신은 사전예약이 필수이다.[* 예약 없이도 방문은 가능한데 대기를 오래해야 한다.] === [[중화권/상호 왕래|대만여행증]] 발급 === 여타 다른 대만 대표부처럼 이 곳에서도 [[중화권/상호 왕래|대만여행증]]을 발급하고 있다. [[중화권/상호 왕래|대만여행증]]은 [[중국인|중화인민공화국 국적자]]들이 [[대만]]을 [[대만/관광|관광]], 비즈니스 등 방문 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이다. 대만 정부는 [[양안관계]]의 특수성에 근거한 [[하나의 중국]] 원칙에 의거해 [[중국 여권]], [[홍콩 여권]]과 [[마카오 여권]]을 합법적인 문서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중화권/상호 왕래|여행증]]을 발급받도륵 하고 있다. 직접 대표부나 판사처를 방문해 신청할 수도 있고 [[내정부]] 이민서 사이트에서 온라인 신청을 할 수 있다. 대신 [[대한민국|한국]]에서 신청하는 경우 [[비자/대한민국|한국 체류 비자]]나 [[영주권|한국 영주권]]을 제출해야 한다. 보통 [[홍콩 여권]], [[마카오 여권]] 소지자들이나 [[대한민국|한국]]에 합법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영주권|한국 영주권]] 소지자들의 경우 발급이 쉬우며 [[비자/대한민국|관광 비자]]를 소지하고 있는 [[중국 여권]] 소지자인 [[중국인|중국 대륙인]]의 경우는 더 까다롭게 심사한다. 단수사증은 NT$600(한화 약 24,000원), 복수사증은 NT$1,000(한화 약 40,000원)이다. == 부속기관 == * [[https://www.taiwanembassy.org/krpus_ko/index.html|부산 판사처 홈페이지]] - 다른 국가들의 총영사관에 해당한다. 관할 지역은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광주광역시]], [[울산광역시]], [[경상남도]], [[경상북도]], [[전라남도]], [[제주특별자치도]]이다. 언급되지 않은 나머지 지역은 서울의 대표부가 관할한다. * [[https://www.taiwantour.or.kr/|대만관광청]] - [[서울특별시|서울]]과 [[부산광역시|부산]]에 각각 위치해 있다. 관광, 투자 부문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사무처 역할을 한다. * 서울사무소: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10길 9, 경기빌딩 9층(삼각동, 115) * 부산사무소: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대로 72, 유창빌딩 907호(중앙동4가, 25-2) == 관련항목 == * [[주 타이베이 대한민국 대표부]] * [[주한청국공사관]] * [[한국-대만 관계]] * [[화교학교]]: 단, [[교육부#s-2.4|대만 교육부]]가 직접 운영하지는 않는다. * [[화교협회]] * [[화교/대한민국|재한 화교]] * [[차이나타운(인천)|인천 차이나타운]] * [[중국계 한국인]] * [[한국식 중화 요리]] [[분류:한국-대만 관계]][[분류:외교공관]][[분류:나무위키 외교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