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950년대 사건사고]][[분류:1960년대 사건사고]][[분류:사회 운동]][[분류:북한의 주민착취제도]][[분류:북한의 경제]] [include(틀:김일성)] [include(틀:북한의 주민착취제도)] [목차] [clearfix] == 개요 == {{{+1 千里馬運動 / Chollima Movement}}} [[북한]]의 대중동원운동이자 [[사회 운동]]의 하나이다. 노동자들에 대한 독려와 경쟁을 통하여 생산량 증대와 [[속도전]]을 꾀하고자 했다. == 상세 == || [[파일:/pds/201001/23/40/b0009940_4b5a1b015f56f.jpg|width=100%]] || || 천리마운동 [[프로파간다]] || [[엉클 샘|--엉클 킴--]] 1953년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끝난 이후 북한은 전후재건 과정을 거쳐야 했다. 무엇보다 3년간 지속된 미군 폭격으로 인한 피해가 너무나도 극심했고[* 북한에 핵을 쓰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핵을 쏴도 더이상 부술데가 없어 안했다는 말이 있다.], 산업기반이 초토화된 상태였다. 이에 따라 전후재건을 통해 급속도로 성장을 이룩했다. 공산권에서 북한의 전후 복구 원조에 앞장선 나라는 바로 소련이었는데, 정전협정 체결 직후인 1953년 9월 소련과 북한 양국의 정부대표단은 회담을 열어 북한의 복구 건설을 위해 소련이 10억 루블의 무상원조를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소련은 1956년에 2차로 4억 7,000만 루블을 원조하고 북한에 대해 차관 상환을 면제해주기로 결정했으며, 1950년대 전후 복구 시기에 소련이 북한에 제공한 무상원조의 실제 총액이 얼마인지는 불투명하다. 단 소련아카데미 동방학연구소가 편찬한 한국통사 하권에는 당시 무상원조액이 총 13억 루블이라 적혀있다. 다른한편 동독은 4억 6,200만 루블, 체코슬로바키아는 1억 1,300만 루블, 루마니아 6,500만 루블, 불가리아 2,000만 루블 등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의 1차 무상원조액은 총 8억 6,000만 루블에 달했다. 천리마 운동의 실시배경은 당시 ‘3개년계획(1954∼1956)’의 수행으로 전후 복구 건설이 어느 정도 달성되었으므로, 이 바탕 위에서 새로운 ‘인민경제 5개년계획(1957∼1961)’을 실시하려고 1956년 [[김일성]]이 두달간 [[소련]]과 [[동유럽]]을 순방하면서[* 김일성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반김일성 노선을 걷던 연안파와 소련파가 김일성을 끌어내리기 위해서 결집하지만, 이런 움직임을 감지한 김일성이 전격귀국하면서 [[8월 종파 사건]]이 발발한다.] 원조를 요청하였으나 큰 성과를 얻지 못함에 따라 부득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 있다. 5개년계획을 자체적으로 추진하자면 내부적인 예비자원이 총동원되어야 하고, 또한 절약을 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1956년 12월에 열린 당전원회의에서는 ‘최대한의 증산과 절약’을 내세워 종래의 노력경쟁운동을 한층 강화하기로 방침을 세웠으며, 이에 따라 평남청년탄광돌격대·강계청년발전소돌격대·청년철도건설돌격대 등을 동원, 독려와 경쟁을 통한 노동강화운동을 벌였다. 이들 돌격대의 노동강화운동을 모범으로 삼아 발달된 이 운동은 [[8월 종파사건|대숙청]] 이후 195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전국생산혁신자대회’를 계기로 북한 전체 근로자의 노력경쟁운동으로 본격화되었다. 그뒤 이 운동은 1959년 3월 강선제강소(이후 천리마제강소로 이름을 바꿨다)의 진응원이라는 사람이 천리마작업반운동을 발기함으로써, 공장뿐 아니라 기업체·농장·학교 등 모든 분야에서 노력경쟁운동 형태로 확산되었다. 주요 골자는 '''사상 교양'''과 '''대중 동원을 통한 생산운동'''이다. 과거형으로 안 쓴 이유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 한편, 최근에는 “다시 한번 천리마를 타라.” 등 ‘새로운 천리마속도 창조운동’을 대중으로 전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서는 표어가 "자강력 제일주의를 높이 발휘하라!"로, 만리마 운동(...)이라는 이름만 바뀐 형태로 선동하고 있다. 그러나 70일 전투를 베낀 100일, 200일 전투 등등 김일성 시대의 구호와 주민 동원을 재탕할 뿐 질적인 경제 성장은 커녕 정체하고 있다. [[프로파간다|정부가 주도하여 보급하는 사상]]을 기반으로 한 생산성 향상 운동으로서 남한의 [[새마을운동]]의 비교대상으로 간간히 거론되곤 한다. 구 공산권에서 툭하면 벌어졌던 이런 식의 대중동원을 통한 생산운동은 모두 구 소련 스탈린 시대의 [[알렉세이 스타하노프|스타하노프 운동]]을 베낀 것으로, 자금/기술/장비 등 일반적으로 생산성 증대를 위한 물질적 조건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경제개발을 위해서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식의 캠페인은 경제개발 초기에 한두해 정도는 효과가 있으나 금방 시들어 버리는게 보통이다. 추가적인 자원투입 없이 대중동원만으로도 경제개발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정권이 그 이후에도 뚜렷한 물질적 보상이나 자금투입, 기술 지원 등의 노력없이 손쉬운 대중동원만 계속 하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천리마 운동을 바탕으로 작사 및 작곡된 노래가 [[천리마 달린다]]. || [[파일:천리마동상.jpg|width=100%]] || || [[평양시]] [[모란봉구역]] 모란봉공원에 있는 [[천리마동상]] || [[평양시]] [[중구역]]에는 아예 천리마 운동을 기념한 [[천리마동상|동상]]이 있다. 이 천리마상은 [[북한 원]] 현 2백원권 지폐와 옛 10원권 지폐에도 나온다. [[조선중앙텔레비죤]] 방송 개시 때 나오는 [[애국가(북한)|애국가]]에도 이 천리마동상이 등장한다. == 현실 == 사실상 북한판 [[대약진운동]]. [[북한/경제/역사]] 문서에 들어가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쉽게 말해 '구호만 거창하고 외부로 보이는 것에만 치중한 나머지 그 내실은 가히 바람만 들어찬 풍선이요 겉만 있고 속은 텅 빈 강정인데다 그나마 뭔가 될까 하면 김씨 왕조가 가로막았다'는 요약이 가능하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주체사상, version=1176, paragraph=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