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러시아의 민족]][[분류:북아시아의 민족]][[분류:축치캄차카어족]] [include(틀:동아시아와 북아시아의 민족)] [include(틀:러시아의 민족)] [[파일:ef05d0f8a4b9e1e0ff05774b6c409deb.png]] [[러시아어]]: Кереки [목차] == 개요 == [[러시아]] [[극동 연방관구|극동 지역]]에서 끝단에 위치한 [[축치 반도]]의 아나디르 만에서 [[캄차카 반도]] 북쪽의 [[https://ko.m.wikipedia.org/wiki/%EC%BD%94%EB%9E%B4%ED%81%AC_%EC%9E%90%EC%B9%98%EA%B5%AC|코랴크 자치구]]에 위치한 올류토르스키 지역에 이르는 영토에 살고 있었던 민족으로 이전까지 축치인 또는 코랴크인의 분파로 분류되었으나 [[2000년]]에 러시아 정부로부터 소수민족임을 인정받았다. [[2010년]] 기준 공식 인구가 겨우 '''4명'''뿐이어서 민족 자체가 사라지기 직전이었으나 [[2021년]]에 들어 그 수가 '''23명'''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이미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축치인]]에게 동화된 탓에 아직까지도 이 둘을 구분하기가 힘든 편이다. 그러나 구분할 수 있는 법이 하나 있는데, 주변 민족이었던 [[축치인]]과 [[코랴크인]]에 비해 체격이 왜소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난쟁이|평균 신장이 약 140~150cm]]'''. 평균 신장이 대략 [[단신|155cm]]였던 중근세 시절 [[일본인]]보다도 작다.] 스스로를 ‘해안가의 사람들’이라는 의미의 ‘안칼라악쿠’(аӈӄалҕакку)로 부르거나 또는 ‘추코트카의 케레크인’이라는 뜻의 ‘카리키쿠’(кэрэкит)라고 불렀다고 한다.[* 언어와 지리의 구분에 따라 케레크인은 나바린 만 지역에 살았던 ‘강 상류에 사는 사람들’과 하티르카 지역의 ‘강 하류에 사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러시아의 작가이자 민속학자인 블라딜렌 레온티예프(В.В. Леонтьев, 1928~1988)는 '''아나디르 만에서 바리코프 땅까지 이르는 지역의 투르만 케레크인''', '''바리코프 땅부터 나바린 만까지의 지역의 나바린 케레크인''', '''하티르카 강 입구에서 나탈리예 하구에 이르는 지역을 차지한 오푸킨 케레크인''', '''나탈리예 하구에서 올류토르스키 땅에 이르기까지 흩어져 사는 코바친 케레크인''' 이렇게 네 집단으로 나눠 케레크인의 분파를 더 세분화시켰다.] == [[비극]]의 역사 == [[파일:кереки.jpg]] 정확한 기원은 밝혀지진 않았지만 [[고고학자]]들은 [[기원전]] 500년경부터 고대 케레크인의 문화가 시작됐으며, 그 기원을 고대 [[에스키모]]와 [[이텔멘족]]에서 찾는다. [[18세기]]에 [[축치인]]과 [[코랴크인]] 간에 [[목초지]] 및 [[순록]] 떼를 점유하기 위한 [[https://ru.m.wikipedia.org/wiki/%D0%A7%D1%83%D0%BA%D0%BE%D1%82%D1%81%D0%BA%D0%BE-%D0%BA%D0%BE%D1%80%D1%8F%D0%BA%D1%81%D0%BA%D0%B8%D0%B5_%D0%B2%D0%BE%D0%B9%D0%BD%D1%8B|잔혹한 전쟁]]이 계속되었고, 케레크인은 이 사이에 끼어 축치인과 코랴크인들에 의해 [[약탈|가옥들이 불태워지고 남자들은 살해당하고 여자들은 노예로 끌려가는 비극을]] [[동네북|맛봐야했다.]] 더군다나 18세기 말엽에 유행한 [[캄차카 지방]]과 [[추코트카]] 내 [[전염병]]으로 [[19세기]] 동안 케레크인이 살던 수많은 촌락들은 기근 및 전염병으로 인적이 끊겨버린데다 생활터전까지 잃게 되었다. 심지어 물고기 떼가 이동하는 시기에 [[연어]] 낚시용 그물조차 구하기 어려웠다. 이들은 옛부터 해양생물들을 사냥하는 일로 살아왔지만 [[베링 해]] 식민지화에 뛰어든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 경쟁할 수가 없었고, 사냥터 일부분이 순록 목축을 업으로 하는 축치인들한테 점령당했다. 그후 [[20세기]] 초반엔 코랴크인과 순록 목축을 하는 축치인 등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머슴]]이나 [[목동]]으로 고용되는 경우가 잦았다. 결국 현재에 이르러 [[배드 엔딩|축치인들에게 거의 완벽하게 동화되어 사멸해버렸다.]] == 언어 == [[축치캄차카어족]]에 속하는 [[케레크어]]를 썼었으며 해당 언어는 [[코랴크어]]와도 가까워 코랴크어 방언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많은 수의 어휘가 [[축치어]]에서 차용되었으며, [[유픽어]] 기원 어휘들도 찾아볼 수 있다. 고유 문자는 없다. [[1990년대]] 초반에는 [[사어|케레크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3명에 불과했고, 결국 완전히 사멸하였다.]] 오늘날엔 사실상 [[축치어]]와 [[러시아어]]가 [[공용어]]로 대체되었다. == 종교 == 조상숭배 및 [[늑대]]와 [[곰]]과 같은 동물숭배가 특징적이며, [[샤머니즘]]과 [[애니미즘]]이 널리 퍼져 있었다. === 갈까마귀 설화 === [[파일:69615d5ecdb30b02b0b8467310c52490.jpg]] 케레크 [[전설]]에는 [[마법]] 및 [[동물]]에 관한 [[설화]]가 주를 이룬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캐릭터는 쿠키(Кукки)라고 하는 [[갈까마귀]]이다.[* 쿠키에 관한 케레크 설화는 [[이텔멘족]] 설화와 비슷한데 여기선 이름이 쿳흐(Кутх)이다.][* [[갈까마귀]]는 [[북아시아]] 민족의 전설에 많이 등장하는 동물이며, 일부 [[북아메리카]] [[아메리카 원주민|원주민]] 전설에도 등장한다.][* 아내와 아들딸들까지 있는 [[유부남]]이기도 하다. [[아내]]의 이름은 "미티", [[아들]]들은 "시쿨리란"과 "아우팔리", [[딸]]들은 "시니림닐나쿠트"와 "아나이우프티나쿠트".] 쿠키는 [[게으름뱅이]], [[겁쟁이]], [[사기꾼]], [[호색한]] 등 온갖 [[까야 제맛|부정적인 특징]]들을 다 가지고 있으며, 각각의 이야기에서 마법을 부리곤 한다.[* [[슬라브 신화]]의 [[바바 야가]]와 어느 정도 비슷한 포지션이다.] 쿠키 관련 이야기에는 케레크인의 정신문화가 잘 반영되어 있다. 예를 들자면, 중요한 일을 앞두고 "엘라필"(эллапиль)이란 [[할머니]]에게 먼저 허락을 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계사회|케레크인 사회가 모권제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드러낸다.]][* 케레크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모계 중심의 [[대가족]]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모든 [[경제]]와 [[가정]], [[사회]]의 일은 전부 나이가 많은 여인이 담당하였다. 당연히 친족 관계도 모계 쪽으로 이루어져있었다.] 케레크의 민담에서 아이들은 [[청출어람|자기 부모보다 더 영리할 뿐 아니라 부모를 가르치는 존재]]로 등장한다. [[환생|그것은 죽은 조상이 아이의 모습으로 탄생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장례 == [[겨울]]에는 시신을 바다에 던지고 [[여름]]에는 땅에 묻었으며, 사망자가 [[아기|젖먹이]]인 경우, 현대인 관점에선 상당히 기괴하지만 땅도 바다도 아닌 집 벽에다 묻었다고 한다. 케레크인은 죽은 지 얼마 안된 모계쪽 조상들이 아이로 [[환생]]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생아|새로 태어난 아이]]에게는 조상의 이름을 부여하였다. 드물지만 태어날 때의 특징으로 이름을 정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경우 조상의 이름은 두 번째 이름이 되었다. 환생을 믿었던 만큼 죽은 [[친척]] 중에는 현세로 돌아오기를 원치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친척이 죽으면 일시적으로 아이들을 끈으로 단단히 묶어 앉히게 했다. 그 뒤에 장례가 끝나고 나면 묶여있던 아이들을 풀어주고 [[개소리|개처럼 울부짖게 했다.]] == 관련 문서 == * [[축치인]] * [[추코트카]] * [[캄차카 지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