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urtEisner.jpg]] '''Kurt Eisner'''(1867년 5월 14일 ~ 1919년 2월 21일) [목차] == 개요 == [[독일 제국]]과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의 활동한 언론인이자 [[맑시즘|마르크스주의자]]. [[독일 11월 혁명]] 와중에 [[비텔스바흐|비텔스바흐 가문]]의 [[바이에른 왕국]]을 붕괴시키고 [[바이에른 인민국]]을 수립한 인물이다. == 생애 == 1867년 [[베를린]]에서 유대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본인은 자신의 유대계 혈통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물론 우익들은 그가 유대인이라는 점을 갖고 [[배후중상설]]을 미친듯이 유포했지만~~] 철학을 전공한 이후 프랑프푸르터 차이퉁[* 오늘날 세계적인 독일 언론 프랑푸르터 알게마니어 차이퉁의 전신격되는 신문사이다.]의 기자로 활동했으며 [[사민주의|사민주의자]]이자 [[공화주의|공화주의자]]임을 숨기지 않았던 아이스너는 '당연히' [[빌헬름 2세]]를 신명나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고]] 그 덕에 9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한다. 이후에도 [[뉘른베르크]]의 일간지 프랭키셰 타게스포스트(Fränkische Tagespost)에서 편집장으로 활동하는가 하면, [[프리랜서]]로 각종 언론에 자유로이 기고활동을 하면서 활발한 언론인으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던 아이스너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반전운동에 힘을 쏟는다. 그리고 전쟁이 끝물에 다다른 1918년 후방의 군수 노동자들에게 파업을 선동했다는 혐의로 반역죄로 기소된 아이스너는 다시 한 번 9달 동안 감방살이를 하게 된다. 출옥한 이후 아이스너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조직을 결성하는데 몰두하고, [[독일 11월 혁명]]이 한창이던 1918년 11월 23일 봉기를 일으킨다. 봉기 자체는 비교적 성공적이어서, 아이스너는 비텔스바흐 왕실의 바이에른 왕국을 붕괴시키고 바이에른 자유국을 세운 뒤 스스로 대통령직에 오른다. 심지어 이때 [[루프레히트 폰 바이에른|루프레히트 왕세자]]는 혁명을 피해 티롤로 도피하였다. 많은 지지자를 가진 왕세자마저 도피시킨 그의 봉기 능력은 엄청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스너 본인이 옛 동지 [[프리드리히 에베르트]]를 주축으로 하는 사민당 온건세력과의 타협을 거부했던데다가[* 정확히는 사민당 온건파 역시 프로이센 군부와 함께 독일을 파멸로 이끈 전범이라고 씹었다.], 종전 직후 개판오분직전이었던 당시 독일의 사정상 기본적인 정부 운영조차 불가능해 민심을 얻지도 못해서 1919년 1월에 있었던 선거에서 참패를 당하고 만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urt_eisner_monument.jpg|wid=350&height=400]][* 아이스너가 저격당한 위치를 쓰러진 모습과 함께 표시한 동판.] 선거에서 참패한 이후, 아이스너는 바이에른 의회의 의원직마저 사퇴할 것을 결정했으나 1919년 2월 21일 사퇴서를 제출하기 위해 의회로 향하던 도중 우익세력에게 암살당하고 만다. == 여담 == * [[로자 룩셈부르크]]와 절친한 사이였다. 한 때 룩셈부르크의 별명이 '아이스너의 사람'이었을 정도. ~~그리고 둘 다 [[유대인]]이었던 까닭에 독일 우익은 신나게 유대인의 음모를 들먹일 수 있었다.~~ * [[프로이센]]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갖고 있던 것으로 유명하다.[* '프로이센 군부가 바이에른을 비롯한 독일 전체를 멋대로 파멸로 이끌었다'고 공공연히 주장했고 [[1918년]] 종전 당시 바이에른 대중들 역시 이런 주장에 동의를 했기 때문에 아이스너가 주도한 혁명이 처음에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 다만 바이에른 외부지역에서는 '저 유대인 놈이 우리 신성한 독일을 또 [[1871년]] 이전으로 갈가리 찢어놓으려 하네!'라는 반응이 대다수(...)] 바이에른 공화국을 선포한 것도 이런 강한 반 프로이센 감정 탓이 상당 지분을 차지한다. * [[1920년]] [[공산주의자]]들이 그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생애를 다룬 연극을 상영하려 했는데, [[바이마르 공화국]]은 [[국가방위군|정규군]], 그것도 [[포병]](...)을 동원하여 상영을 원천봉쇄했다. [[분류:독일의 언론인]][[분류:베를린 출신 인물]][[분류:1867년 출생]][[분류:1919년 사망]][[분류:암살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