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오스만 러시아 조약.jpg|width=800]] *조약 서명에 대한 당대의 묘사 [목차] == 개요 == [[튀르키예어]] Küçük Kaynarca Antlaşması [[러시아어]] Кючук-Кайнарджийский мир 1774년 6월 21일, 현재 [[불가리아]]의 도시 카이나르자(Кайнарджа)에서 체결되어 1768~1774년의 [[러시아-튀르크 전쟁]]을 마무리지은 평화조약. 큰 패전에도 불구하고 오스만 제국은 [[크림 칸국]]에 대한 종주권과 그 내외의 거점들, 몰다비아 일부를 잃는 정도의 영토 손실만을 입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의 위상과 [[흑해]]의 제해권은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었고, 1718년 [[파사로비츠 조약]] 이후로 진행되던 중흥은 물거품이 되었다. 한편 러시아 제국은 조약을 바탕으로 [[크림반도]]를 차지한 후 흑해의 제해권을 장악했고 오스만 제국과의 국경을 [[드니프로 강|드네프르 강]]에서 남 부크 강으로 밀어내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배력을 공고히 하였다. == 상세 == 1768년 개전한 7차 [[러시아-튀르크 전쟁]]은 1770년 카훌 전투와 체슈메 해전으로 러시아의 승리로 기울었다. 당초 목표였던 [[크림 반도]] 뿐만 아니라 [[몰다비아]], [[왈라키아]], [[키클라데스 제도]]까지 러시아의 수중에 떨어졌다. 자세한 전개 과정은 [[무스타파 3세]] 문서 참고. 다만 러시아의 지나친 세력 확장을 경계한 영국,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등의 압력과 스웨덴의 준동으로 1772년부터 평화 협상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의견 충돌로 협상이 지연되었고, 이에 1774년 러시아는 공세를 재개하였다. 1774년 6월 20일 [[알렉산드르 수보로프]] 장군 휘하의 러시아군이 불가리아로 남하해 코즐루자(Козлуджа)[* 지금은 수보로프의 이름을 딴 수보로보(Суворово)로 바뀌었다.]에서 오스만 군을 격파하고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자 궁지에 몰린 오스만 제국은 다음달인 7월 21일 굴욕적인 퀴췩 카이나르자 조약에 서명하였다. === 내용 === [[파일:러시아 오스만 조약 기념.jpg|width=800]] *조약 체결을 기념하는 [[모스크바]]의 불꽃놀이 그에 따라 [[크림 칸국]]은 독립국(이라 쓰고 러시아의 속국)이 되었고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 제국에 450만 루블의 배상금을 납부하며, [[아조프]]와 [[케르치]]가 공식 할양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북캅카스의 [[카바르디노-발카리야 공화국|카바르디아]]에 대한 종주권을 포기하였고, 오스트리아에게 [[부코비나]][* 오늘날 몰다비아 서북부]를 할양하였다. 영토 변화 외에 러시아는 코스탄티니예 등 오스만령 항구들에서 프랑스와 잉글랜드와 같은 무역 특권을 얻었고 갈라타에 [[정교회]] 성당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그를 관장하는 러시아 대사는 각종 국가 행사에 참가하고,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해 본국으로 귀환할 권리를 얻었다. 가장 중요하게도, 러시아 제국은 오스만 제국 내의 정교도들에 대한 보호자 지위를 얻어 향후 팽창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사실상 크림 반도와 몰다비아 일부를 제외하고 오스만 제국이 잃은 영토는 없었지만, 해당 전쟁의 패배는 오스만 군대의 취약함을 여실히 드러내며 제국의 위상과 흑해 및 지중해 장악력을 앗아갔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예카테리나 2세)] [[분류:세계사]][[분류:오스만 제국의 역사]][[분류:러시아 제국의 역사]][[분류:오스트리아의 역사]][[분류:조약, 협약, 협정]][[분류:유럽사]][[분류:러시아-튀르키예 관계]][[분류:예카테리나 2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