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이라크 관련 문서)] [[파일:15880516537_beb57f8519_z.jpg]] 군사 [[훈련]]을 하는 특수 공화국 수비대 [[병사]]들. |||| '''특수 공화국 수비대''' || || [[영문]] 표기 ||SRG(Special Republican Guard) || || [[아랍어]] 표기 ||الحرس الجمهوري الخاص || || 분류 ||대통령궁 경호대[* 어디까지나 명목상이었을 뿐 사실상 [[친위대]]였다.] |||| [목차] == 개요 == 이라크 내의 반(反) [[후세인]] 세력들은 [[걸프 전쟁]]의 패전으로 인한 혼란을 틈타서 [[사담 후세인]] 암살과 정권 장악을 전제로 한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를 제압한 [[후세인]]은 자신을 지켜주고 자신의 [[명령]]을 우선하는 독립 부대의 필요성을 느낀다. 이에 대통령궁을 경호할 부대를 창립한다는 명목으로 [[친위대]] 창설에 착수한다. == 창립 == 부대는 특수 공화국 수비대(Special Republican Guard)라는 이름으로 창립되었으며, 황금사단(Golden Division)이라는 이명을 얻었다. Golden은 [[후세인]]이 [[도금|황금으로 도색]]하는 것을 좋아했던 것에서, Division은 [[사단(군사)|사단]]을 뜻하는 [[불어]]에서 유래했다.[* [[후세인]] 뿐 만 아니라 [[중동]]에서 [[총]]을 [[도금]] 등으로 장식하는 건 꽤 흔한 일이다.] [[서방]] 측에서는 이 [[부대]]를 '[[후세인]]의 [[황금방패]]'라고 부르기도 했다. 자세한 창립연도는 불명이며, 대통령궁 [[경호]]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1992년]]이나 공식적인 사열식과 [[예산]] 편성을 하게 된 [[1995년]] [[3월]]로 추정된다. 최초 창설시기가 불분명하다보니 초대 사령관도 불분명하다. 최후의 사령관은 미국의 공식교전기록 상 '바루잔 압둘 가후루 슬라이만 알 마지드 앗 티크리티' 준장으로 보인다. 참고로 이 사람은 [[2003년]] [[7월 21일]] [[바그다드]] 시내에서 [[게릴라]] 활동을 하다 [[미군]]에 생포당했다. == 채용 == 특수 공화국 수비대는 입대 지원율이 높았다. 훈련 기간에도 높은 보너스가 지급되었고[* 정식 급여가 아님에도 당시 4인 가족 한 달 생활비에 맞먹었다고 한다. 급여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던 [[이라크군|정규군]]과는 대조적이다.], 의료 혜택 등 각종 [[복지]]와 여러 파격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훈련]]을 버틸 정도로 [[몸짱|몸이 튼튼하고 키가 크면 채용]]될 수 있었으므로, 이는 하류층에게 [[신분]] 상승의 기회였다.[* 참고로 현대 [[중국]]에서도 [[인민해방군]] 입대가 시골 청년들에게는 가장 쉽고 효율적인 [[신분]] 상승 기회라서 지원율이 높다.] 한편 [[후세인]]의 직속 [[친위대|친위부대]]라는 점에서, 권력층과의 접점을 원하는 [[후세인]]의 [[고향]] [[티크리트]]의 상류층 [[가문]]들도 특수 공화국 수비대 지원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는 지원율이 너무 낮아서 지원만 하면 바로 합격되었던 당시 [[이라크군|이라크 정규군]]의 상황과 대조된다. [[후세인]] 정권이 망하기 직전의 [[이라크군]]은 심지어 대졸자면 영관까지 보장될 정도였다. 이러다보니 군의 허리가 되는 [[장교단]] 대부분은 [[군]]에 관해서 무지했고, [[이라크군]]은 질적으로 엄청나게 떨어졌었다. 다만 [[후세인]]의 [[고향]]인 [[티크리트]] 출신자가 아니면 서류심사에서부터 탈락했다. 또 [[집시]]가 아니거나[* [[이라크]]가 1940, 50년대까지 [[하심 왕조]]가 통치하던 [[이라크 왕국|왕국 시기]]나 [[1958년]] [[왕정]]을 폐지하고, 수립되어 [[1960년대]] 초까지 5년간 집권한 압둘 카림 카심 전 [[총리]]의 [[제1공화국]] 시대까지도 차별받았던 [[이라크]]내 [[집시]]들은 카심의 [[제1공화국]] 정권이 [[1963년]] [[바트당]] 주도의 [[쿠데타]]로 붕괴하고, 뒤이어 집권한 아흐메드 하산 알 바크르와 [[사담 후세인]] 독재정권 치하에서는 오히려 꽤 우대를 받았었다. 그래서 이들은 [[제4차 중동전쟁]]과 [[이란-이라크 전쟁]], [[걸프전쟁]]에서 [[이스라엘]], [[이란]], [[쿠웨이트군]]과 열심히 싸웠고, 가게나 집을 얻어 정착해서 잘 살기도 했다. 심지어 이들이 이슬람 신자가 아니라고 [[테러]]를 당하면 아예 [[군대]]를 보내 호위해줬을 정도였다. 그래서 [[이라크]] [[집시]]들은 [[사담 후세인]]을 강하게 지지했고, [[이라크 전쟁]] 당시엔 [[민병대]]까지 만들어서 총력을 다해 [[미군]]과 맞서 싸웠다. 결국 [[후세인]]이 축출된 후 [[교수형]]으로 죽자 [[집시]]들은 슬퍼하며 애도하기도 했다.], [[바트당]] 당원이 아니거나, 훈련기간 내에 전향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채용되지 못했다. 여러모로 불공정한 기준이었지만, [[특수부대]]원을 뽑기 위한 사상검사라는 핑계와 높은 급여로 반발을 무마했다. == 최후 == [[이라크 전쟁]] 전까지는 굉장히 뛰어난 정예 부대로 홍보되어서, 특수 공화국 수비대만큼은 쉽게 지지 않을 거라는 여론이 대세였다. 그리고 실제로 특수 공화국 수비대는 어떠한 지원도 없이[* [[이라크군]]은 이미 궤멸하여 유일하게 정상이던 [[부대]]는 공화국 수비대 뿐이었다. 그러나 어차피 질적으로 매우 떨어졌던 [[이라크군|이라크 정규군]]은 있었어도 별 도움은 못 됐을 가능성이 높다.] 동원 가능한 중화기가 고작 50대 뿐[* [[1990년대]]부터 시작된 [[미국]]의 [[금수]] 조치 때문이었다.]이었던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5일이나 적의 공세를 막아냈다. 그러나 선전에도 불구하고 얼마 못 가서 무너졌다. == 후일담 == 이후 잔당들이 이라크의 혼란한 상황을 이용해 이런저런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후세인]] 체제부터 내려오던 유구한 파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상술했듯 원래 특수 공화국 수비대는 [[후세인]]의 고향 출신이거나, [[바트당]] 소속이어야 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합류하다보니 부대의 질이 급격하게 저하되었다. 거기다 만성적인 물자 부족 등 여러가지 잡다한 문제가 겹쳐서 사실상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 [[2004년]]에[* 미국이 이라크에서 철수하기 위해 잡다한 수속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미군]] 철수 이후의 이라크 치안 유지를 위해 편성 중이던 신생 [[이라크군]]에 편입된다. [[이라크군|이라크 정규군]]에 편입된 특수 공화국 수비대 출신 대부분은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IS]]와의 전투로 소모된걸로 추정된다. 한편 [[정규군]] 편입을 거부하고 끝까지 항전하던 이들과 [[집시]] 출신들은[* 특수 공화국 수비대 중에서도 [[집시]]들 만큼은 [[항복]]을 절대 거부하고 마지막까지 결사항전 했다고 한다.] [[시리아 내전]]에서 [[시리아군]]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된다. == 기타 == 1970, 80년대 당시 루마니아의 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처럼 [[후세인]]은 [[친위대]]와 [[정규군]]을 차별했다. 그래서 [[이라크 전쟁]]이 아니었다 해도 차별받던 [[정규군]]에 의해 [[후세인]]은 축출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근데 부족주의, 종파주의가 만연한 중동 지역의 독재 정권에서 이런 [[친위대]]는 거의 필수요소라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사우디아라비아도 국방을 담당하는 [[정규군]]과 국왕 직속의 국가근위대가 각각 따로 있고, [[카다피]] 정권 시기 리비아의 32여단(카미스 여단)과 이란의 [[이슬람 혁명 수비대]]는 매우 유명하며, 아사드 정권 치하의 시리아에서도 수없이 많은 첩보부대[* 당연하지만, 이 중에서는 [[친위대]] 역할을 하는 [[부대]]들도 있고, 타 첩보부대를 감시하는 부대들도 있는 등 다양했다.]를 운영했다. 당시 [[이라크군|이라크 정규군]]은 대부분이 저학력자였고, 급여조차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는데도, 실제로는 그리 큰 불만이 없었다. 질적으로 매우 떨어지는 인원들이었던지라 단지 굶지 않기 위해 입대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밥만 굶지 않으면 별 불만이 없었다. [[후세인]] 몰락 이후에, 서구권 언론들에 의하면 [[후세인]]도 [[스탈린]]처럼 [[대숙청|군 고위 간부진을 싸그리 물갈이]]하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도 병사들 질이 매우 떨어지는 [[이라크군]]을 잘못 건드리면 더 망할것 같아서 포기하고, 대신 [[친위대]] 창설을 결심했다고 [[카더라]]. 그러나 이 당시 서구 언론들의 [[중동]]관련 보도 대부분이 신빙성이 떨어져서 영 신뢰하기가 어렵다. == [[편제]] == 규모가 가장 크던 시기에는 4개의 [[여단]]과 1개의 [[후세인]] [[직할부대]]로 구성되었다. [[후세인]] 정권이 붕괴하기 전까지는 [[이라크]]에서 가장 충실한 설비와 보급품을 자랑했었다고 한다. 총원규모 12000명, 각 [[여단]] 2500명 구성의 [[편제]]로 되어있었다. 아래는 [[2003년]] 기준 [[편제]]다. * 여단 * 제1여단 : 수도방위 담당 * 제2여단 : 방위전 담당 * 제3여단 : 방위전 담당 * 제4여단 : 기갑전 담당 * 병과사령부 * 방공사령부 * 전차사령부 * 야전포병사령부 * [[박격포]]사령부 * 통신사령부 * 보급수송사령부 * [[직할부대]] * 화학소대 * 수송소대 * 헌병소대 * 수리견인담당부대 * 회계국 * [[탄약고]] * 품질관리부 * 독립소대 * 전차소대 * 정보소대 * [[방송국]]방어소대 * 엘리트기동소대 == 재건 == [youtube(TPeHODU-c6Y)] [[이라크 내전]] 중 황금사단 명칭을 쓰는 [[부대]]가 재등장했다. 사실 이들은 황금 사단으로 활동하는 [[이라크]]의 최정예군종인 '''이라크 특수작전군''' (Iraqi Special Operations Forces (ISOF), قوات العمليات الخاصة العراقية)이다. 이들은 연전연패하던 다른 군종들과는 달리 [[ISIL]]과의 전투에서 놀라운 활약을 벌였다. 소련이 [[대조국전쟁]] 당시에 [[러시아 제국|제국]]시절에나 있었던 [[근위대]]를 부활시킨 것과 유사한 이유로 만들어진 듯 하다. 이들은 독자적으로[[M1 에이브람스|M1A1]]로 이루어진 예하 기갑부대까지 보유하고 있다.[* 아마도 기갑의 직접적인 지원이 필요한 경우가 있어서인 것 같다. 그간의 공적을 감안해 이라크군이 가진 최고의 전차인 M1 에이브람스를 받은 것이다.] [[파일:1546576714.jpg]] 사막 지역인 이라크지만 아군에게는 사기를, 적에게는 위압감을 주기 위한 흑복을 입고[* 다에시들이 이들의 흑색 복장이나 흑색 도색된 차량만 보면 도망갈 정도라고 한다.], 미군에서는 구식이 되어 퇴역한 지 오래된 [[CIRAS]] Land/Maritime 방탄조끼를 착용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youtube(l1I_JlTOoXM)] 테러조직 연관된 인물들 은신한 곳으로 보이는 건물로 진입하여 인질들을 신원조사하는 것으로 여전히 테러와 전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야간투시경은 일부 요원들은 양안또는 PVS-14에 하이컷헬멧등을 착용하고 있다. [[파일:황금사단 2.jpg]] [[2020년]]에 나온 홍보사진으로 4안식 GPNVG-18 야시경을 착용하고 [[군복/중국군|중국군 황모미채]] 위장이 된 컴뱃셔츠를 입고 있다. == 관련 문서 == *[[친위대]] *[[공화국 수비대]] [[분류:사담 후세인]][[분류:아시아의 특수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