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폴란드의 역사)] [include(틀:제2차 세계 대전 참전국)] ||<-3> {{{#ffffff {{{+1 '''폴란드 지하국''' }}}[br] '''Polskie Państwo Podziemne''' [br] '''Polish Underground State''' }}} || ||<-3> [[자치정부|{{{#e34234 '''자치정부'''}}}]] || ||<-2> [[파일:폴란드 지하국 국기.svg|width=80%]] || [[파일:폴란드 지하국 국장.svg|width=80%]] || ||<-2> {{{#fff '''국기'''}}} || {{{#fff '''국장'''}}} || ||<-3> '''{{{#fff 상징}}}''' || || '''{{{#fff 국가}}}''' ||<-2>'''[[폴란드 국가]]''' || ||<-3> '''{{{#fff 1939 ~ 1945}}}''' || ||<-2> {{{#ffffff '''성립 이전'''}}} || {{{#fff '''해체 이후'''}}} || ||<-2> [[폴란드 제2공화국|'''{{{#fff 폴란드 제2공화국}}}''']] || [[폴란드 임시정부|'''{{{#fff 폴란드 임시정부}}}''']] || ||<-3> '''{{{#fff 역사}}}''' || ||<-3> [[1939년]] [[9월 1일]] '''폴란드 침공'''[br][[1939년]] [[9월 27일]] '''폴란드 지하국 결성'''[br][[1945년]] [[7월 1일]] '''폴란드 지하국 해산''' || ||<-3> '''{{{#fff 지리}}}''' || || {{{#ffffff '''정부청사 위치''' }}} ||<-2> || || {{{#ffffff '''수도'''}}} ||<-2> || ||<-3> '''{{{#fff 인문환경}}}''' || || {{{#ffffff '''언어'''}}} ||<-2>'''[[폴란드어]]''' || || {{{#ffffff '''민족'''}}} ||<-2>'''[[폴란드인]]''' || ||<-3> '''{{{#fff 정치}}}''' || || {{{#ffffff '''정치체제'''}}} ||<-2>'''[[공화제]]''' || || {{{#ffffff '''국가원수'''}}} ||<-2>'''[[대통령]]''' || [목차] [clearfix] == 개요 == [[제2차 세계 대전]] 때 [[폴란드]]에서 [[레지스탕스|무장투쟁]]을 전개한 [[자치정부]]로서 [[폴란드 망명정부]]의 본토 지부였다. == 활동 == [[폴란드 침공]]으로부터 한 달 만에 폴란드가 독소 양국의 협공으로 패망하자, [[프랑스 파리]]에 자리잡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명령에 따라 [[폴란드군]]의 [[장교단]]이 [[나치 독일군]]이 점령한 직후의 폴란드 본토에서 [[자치정부]]를 구성했다. 그리고 반독 무장조직을 통합하여 국내군(Armia Krajowa)으로 재편성했다. 전성기 때 폴란드 국내군은 반독 항쟁을 벌이던 여러 저항군[* 소련의 지원을 받은 인민군 포함. 인민군은 독일 패망 후에 폴란드가 공산화되자 공산군의 주축이 된다.] 중에서 상당한 규모를 자랑했고, [[바르샤바 봉기]]도 국내군이 주축이었다. 또한 지하국이란 이름에 걸맞게 망명정부를 대리해 폴란드 국내에서 자치정부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1944년 봄부터 [[소련군]]이 [[빌뉴스]]와 [[르부프]] 및 [[비아위스토크]]와 [[루블린]]에 진주하고, 1945년 봄부터 [[https://en.wikipedia.org/wiki/Polish_People%27s_Army|폴란드 인민군]]이 [[바르샤바]]와 [[포즈난]] 및 [[우치]]와 [[크라쿠프]]에 진주하자, [[폴란드 임시정부]]의 박해를 맞이한 지하국과 국내군은 [[나치 독일]]의 패망 직후에 해산을 결의했다. 그 때까지 살아 남은 국내군 대원들의 절반 이상은 [[소련군]]과 [[스메르시]] 및 [[GRU]]와 [[NKVD]]에 잡혀가 처형되거나 옥고를 치렀고, 잔존 국내군은 각종 파생 단체를 조직해 반소반공 투쟁을 계속하다가 소멸했다. 이후 [[폴란드 인민 공화국]] 연간에 국내군은 [[반동분자]]로 몰려 잊혔다가 민주화 이후에 복권되었다. == 주요 조직원 == * [[https://en.wikipedia.org/wiki/Stefan_Rowecki|스테판 로베츠키]]: 국내군 초대 지휘관. 1943년에 독일군에게 처형됨. * [[https://en.wikipedia.org/wiki/Tadeusz_B%C3%B3r-Komorowski|타데우시 부르코모로프스키]]: 바르샤바 봉기를 지휘. 봉기 실패 후 포로수용소에 억류됐다가 전후 영국에서 여생을 보냈다. * [[https://en.wikipedia.org/wiki/Leopold_Okulicki|레오폴트 오쿨리츠키]]: 부르-코모로프스키가 체포되자 국내군 지휘관을 승계, 소련군과 인민군이 폴란드에 진주하자 국내군을 해산했으나 1946년에 처형됨. * [[https://en.wikipedia.org/wiki/August_Emil_Fieldorf|아우구스트 에밀 필도르프]]: 국내군 부사령관. 전후 공산정권에게 처형됨. * [[비톨트 필레츠키]] == 기타 == * 국내군의 상징인 코트비차는 독일의 강점 초기에 바르샤바 근처인 바베르에서 독일군 부사관 2명이 죽은 보복으로 폴란드인 114명이 학살당한 바베르 학살을 추모하는 그래피티로, 국내군 단원인 [[https://en.wikipedia.org/wiki/Anna_Smole%C5%84ska|안나 스몰렌스카]][* 독일의 침공 당시 미대생이었고 1943년에 [[아우슈비츠]]에서 옥사했다.]가 만들었고 Pomścimy Wawer(바베르 학살의 복수)에서 P와 W를 합친 닻 모양이다. * 소련에 병합된 벨라루스 및 우크라이나 서부는 [[폴란드 제2공화국|제2공화국]] 연간에 폴란드 영토였기 때문에, 국내군 중에서 해당 지역에서 활동하던 부대는 현지 민족주의자 파르티잔[* 친독 및 반독 포함. 특히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 반란군들은 우크라이나인으로만 이루어진 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두고 있었기에 폴란드 민간인에 대한 대량학살을 일삼았기 때문에 국내군과 사이가 몹시 나빴다.]과 반목했다. * 전후 공산화된 폴란드에 남아 반공·반소 투쟁을 벌인 국내군 장병들을 폴란드에선 [[저주받은 병사들]]이라라 부른다. 1963년에 사살된 [[https://en.wikipedia.org/wiki/J%C3%B3zef_Franczak|유제프 프란차크]]의 일대기가 폴란드에서 영화 '[[https://watcha.com/ko-KR/contents/mObVQ1R|저주받은 병사]]'로 제작되었다. * 2011년부터 폴란드에서는 매년 3월 1일을 [[https://poland.pl/history/historical-figures/cursed-soldiers-national-remembrance-day/|저주받은 병사 추모일]]로 기리고 있다. [[분류:제2차 세계 대전/저항군]][[분류:폴란드의 역사]][[분류:망명정부]][[분류:1939년 설립]][[분류:1945년 해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