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폴란드의 역사)] [include(틀:러시아-폴란드 관계 관련 문서)] ||<-2> '''프리비슬린스키 지방'''[br]'''Привислинский край''',,([[러시아어]]),,[br]'''Kraj Nadwiślański''',,([[폴란드어]]),,[br][[러시아 제국]]의 [[크라이|크라이(край)]] || || [[파일:러시아 국기.svg|width=150]]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99px-Lesser_Coat_of_Arms_of_Russian_Empire.svg.png|width=120]] || || 국기 || 국장 || ||<-2>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85px-Privisl.jpg|width=300]][br]1867년 ~ 1915년 || || [[수도(행정구역)|수도]] ||[[바르샤바]] || || 국가원수 ||전러시아의 황제[* 폴란드 국왕 겸임] || || [[언어]] ||[[러시아어]] || || 성립 이전 ||[[폴란드 입헌왕국]] || || 멸망 이후 ||[[폴란드 섭정왕국]] || [목차] [clearfix] == 개요 == [[러시아 제국]] 지배 시기 당시의 [[폴란드/역사|폴란드]].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러시아 제국]]의 영토로 분열되어 있었던 오늘날 [[폴란드]]의 동반부이다. 뜻은 [[비스와 강]] 근처의 주. [[연해주]](Приморский Край)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вислинский(비슬린스키)' 자체가 비스와 강을 뜻한다. 이 당시의 폴란드는 독자적인 민족 정체성이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부인당하고 민족 말살 정책을 통한 강제적인 동화 정책을 겪었고[* 현재도 폴란드의 [[비아위스토크]]는 사실상 러시아계 국가로 여겨지는 [[벨라루스]]와의 접경지대([[소련 해체]] 이전에는 [[소련]]과의 접경지대)에 있다는 것도 감안해도 폴란드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 러시아 색채가 강한 편이다.], 이로 인해 [[혐러|러시아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해있던 상황이었다. == 역사 == 프리비슬린스키가 설치되었을 당시는 [[1832년]] 11월 봉기와 [[1863년]] 1월 봉기로 [[폴란드 입헌왕국]]이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부여받은 자치권을 상실하고 일개 주로 격하되어 급속하게 러시아에 편입되어 가던 시기이다. 특히 [[1870년대]]부터는 사실상 [[러시아 제국군]]의 장군들이 통치하는 군정이 되었고 [[1880년대]]에는 [[폴란드어]]가 공용어 지위를 박탈당하고 사용이 금지되었다. 당시 상황을 기억하던 폴란드 출신 물리학자인 [[마리 퀴리]]에 의하면, 학교 수업 중에 수시로 러시아 제국군 장교가 쳐들어와서 [[폴란드인]] 학생들의 [[러시아어]] 실력을 테스트하고 학생들의 러시아어 실력이 서툴면 교사들을 갈궜다고 한다.[* 출처는 [[이브 퀴리]]가 쓴 마리의 전기인 <마담 퀴리>로, 국내에는 2006년에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마리 퀴리 역시 10대 시절 이 일을 직접 겪었고, 러시아어가 유창했기에 무사히 넘어갔으나 나중에 민족성 훼손에 모멸감을 느끼고 울었다.] 이같이 가혹한 민족 말살 정책은 당연히 [[반러|폴란드인들의 분노]]를 샀다. 마리 친구의 오빠는 폴란드 독립 운동에 가담했다가 공개 총살당했고, 이에 분노한 마리와 그 친구들은 [[러시아 제국]]의 승전비를 볼 때마다 비석에다 침을 뱉기도 했으며,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암살당했을 때는 매우 기뻐했다.[* [[러시아 제국]]은 1917년에 [[러시아 혁명]]으로 붕괴되었고, 폴란드는 이듬해인 1918년에 독립했으며, [[마리 퀴리]]는 1934년까지 생존해있었기 때문에 자국의 원수인 러시아 제국의 패망과 조국 폴란드의 독립을 모두 지켜보았다. 여담으로 퀴리 부인이 1934년까지만 살아계셨던 것은 어쩌면 행운이었을 수도 있다. 당장 5년 뒤에 [[제2차 세계대전|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하면...] 사실상 일본 제국주의가 [[일제강점기|한국]]과 [[일치시기(중화민국)|중국]]에게 했던 정책을 러시아가 그대로 했다고 봐도 된다. 이러한 러시아 제국의 폴란드 말살 정책은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이후 [[독일 제국]]이 폴란드 지역을 점령, [[폴란드 섭정왕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우면서 종료되었다. 러시아 제국 본토를 떠나 러시아령 폴란드로 이주하여 살던 [[러시아인]]은 독일 제국이 러시아령 폴란드를 점령하자 이를 피해 러시아 본토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으며, 미처 도망가지 못한 러시아인은 독일 제국 및 독일 제국 편에 붙은 토착 폴란드인에 의해 엄청난 탄압을 받았다. 오늘날 폴란드 내 [[정교회]] 신자들 및 러시아령 폴란드의 [[러시아계 폴란드인|러시아인 실향민 후손]]들은 폴란드에 남아있는 러시아 제국 문화유산을 보호하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clearfix] == 관련 문서 == * [[바르샤바 공국]] * [[빈 회의]] * [[러시아령 폴란드]] * [[니콜라이 1세]] * [[알렉산드르 2세]] * [[폴란드 입헌왕국]] * 일제의 [[민족말살통치]]: 한국어를 금지시키고 일본어를 강요했던 것에서 공통점이 있다. 폴란드의 반러와 비슷하게 한국도 [[반일]] 감정이 크고,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한 사람은 [[혐일|일본을 혐오하기도]]한다. [[분류:폴란드의 역사]][[분류:러시아-폴란드 관계]][[분류:러시아 제국의 식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