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송사)] ||<-2> {{{#ece5b6 '''{{{+1 북송의 명장[br]충헌위군왕(忠獻魏郡王)[br]{{{+1 韓琦 | 한기}}}}}}'''}}} || || '''[[시호|{{{#fff 시호}}}]]''' ||충헌(忠獻)^^추대^^ || || '''[[작위|{{{#fff 작호}}}]]''' ||위군왕(魏郡王)^^추봉^^ || || '''{{{#fff 재상임기}}}''' ||4년 || || '''{{{#fff 최종직위}}}''' ||소문관대학사(昭文館大學士)^^추증^^ || || '''{{{#fff 이름}}}''' ||한기(韓琦) || || '''{{{#fff 자}}}''' ||치규(稚圭) || || '''{{{#fff 부친}}}''' ||[[한국화(북송)|한국화]](韓國華) || || '''{{{#fff 아들}}}''' ||한지안(韓智安) || || '''{{{#fff 손자}}}''' ||한성(韓誠) || || '''{{{#fff 증손자}}}''' ||[[한탁주]](韓侂胄) || || '''{{{#fff 생몰}}}''' ||1008년 ~ 1075년 || || '''[[주군|{{{#fff 주군}}}]]''' ||[[인종(송)|송인종]][br][[영종(북송)]][br][[신종(송)|송신종]] || || '''[[국적|{{{#fff 국적}}}]]''' ||북송(北宋) || [[분류:송나라/인물]][[분류:1008년 출생]][[분류:1075년 사망]][[분류:역대제왕묘 배향자]][[분류:항저우시 출신 인물]] [목차] [clearfix] == 소개 == [[북송]]의 명장이자 [[송인종]] 대의 재상이다. 자는 치규(稚圭), 시호는 충헌(忠獻), 작위는 위군왕(魏郡王)이다. == 생애 == 한기는 북송 진종 대중상부 원년(1008)에 임안시(臨安詩) 임안부(臨安府) 안양(安陽)에서 태어났다.[* 오늘날 항저우 안양시.] 한기의 부모는 한기가 3살때 일찍이 영면을 하여 혼자서 동생들을 돌보며 살았고 그러다 1027년 19살에 인종 천성 4년에 과거에 2등으로 급제하여 진사 평균 합격나이를 10년이상 낮춰 갱신을 하였다. 그후 1034년 다시 한번 수도 개봉[* 카이펑.]으로 가서 진사에 다시 1등으로 합격하였고 조정대신까지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높은 중신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관직 생활을 한지 13년이 된 1040년 인종 강정 원년에 [[경종(서하)|이원호]]라는 남자가 [[서하]]를 세우고 송나라를 침공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인종이 명을 내려 [[범중엄]]과 한기를 투입하여 서하의 공격을 막아낼려 했다. 범중엄은 전운사로 출정되고 한기는 송나라의 중로군 사령관 자격으로 출정하였다 중로군의 숫자는 10만 이였다. == [[서하]]와의 전쟁 선포 == 문관이였던 한기는 무예실력도 특화되어 여러가지 병법과 전략을 통해 서하와 전쟁을 하기로 했다. 그는 범중엄이 이끄는 군대의 움직임을 중지시키고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서하군을 기습하였다. 하지만 서하군의 전투력은 높았고 중로군 10만 중 7만을 잃는 대패배를 하였다. 그렇게 되어 범중엄의 전략을 참고하기 시작하여 국경을 잘수비하였고 1041년 강정 2년에 서하가 강화를 하자고 하면서 전쟁이 종료된다. 1067년 [[충악]]이 외명산 부락을 투항시킨 데 이어 수주를 점령하자 서하군이 보안군을 습격해 많은 피해를 입혔는데, 이때 수주를 지키던 군대의 회군을 주장하나 [[곽규]]의 반대로 무산된다. == 정치 생활 == 한기는 여러 지방관으로 활약하였고 추후 조정대신이 되어 활약하고 대학사와 재상까지 오르게 되어 송인종의 정치를 보좌해주었다. 한기의 똑똑한 지능으로 국정운영은 잘진행이 되었고 이때 국가의 재정이 팽창하여 민중들의 삶은 편안해졌고 올바른 신하들이 많이 배출되었으며 국방력 또한 높아졌다. 송신종 시절에는 지방관으로 자리를 옮겨 지방에 어려움을 조정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특히 [[왕안석]]의 신볍 중 청묘법이 백성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을 송신종에게 보고하여 청묘법의 폐단을 막았다. == 말년 == 1068년에 병을 이유로 대신에서 스스로 내려와 1070년 하북면 담당 지방관을 지내고 추후 개봉부로 이사를 가서 편안하게 요양하면서 살다가 앓던 병으로 1075년 세상을 떠난다. 사후 그에게 충헌(忠獻)이라는 시호가 내려졌고 위군왕이라는 왕호에 추봉되었다. == 대중매체에서 == 2020년 드라마 청평악에 등장한다. 인종이 신임하는 인물이다. 사간으로서 무려 재상 4명을 정계에서 은퇴시켰다. 서하와의 전쟁에서 강화를 주장한 [[범중엄]]과 달리 선공을 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을 했고 인종에게 채택받았으나 결과적으로 패전하고 만명의 병사를 잃었다. 인종은 패전의 책임은 한기의 주장을 채택한 자신에게 있다며 한기를 처벌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