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함경북도의 시군)] {{{+1 會寧市 / Hoiryŏng City }}} |||| {{{+2 회령시}}} [br] 會寧市 / Hoiryŏng City || || 국가 || [[북한]] || || 광복 당시 면적 || 1,255㎢ || || 광역시도 || [[함경북도]] || || 광복 당시 행정구역 || 1읍 6면 || || 시간대 || UTC+9 || ||<-3><:> [include(틀:지도, 장소=북한 회령)] || [목차] [clearfix] == 개요 == [youtube(kSkJ6dNtITs)] ▲ 2013년 초의 회령시 내부 [youtube(8S1BvHOBN7Q)] ▲ 2019년 북중 국경에서 촬영한 회령시 [[두만강]]을 경계로 [[중국]]과 마주보고 있어서 중국으로 가는 교통의 요지이며, 1628년부터 [[청나라]]와 회령개시라는 이름으로 시장을 연 적이 있다. 원래는 [[동해]]와도 접한 군이었으나 1914년 관해면을 [[부령군]]에 떼어주게 되면서 내륙군이 되었다. [[광복]] 당시에는 1읍 6면을 관할하고 있었으며 면적 1,256km²였다. 현재 북한에서의 면적은 1,748km²으로 보인다. 인구 153,532명(2008) 중국 [[룽징]]시 싼허(三合)와 마주보고 있으며 이곳에 회령세관이 있다. 동만주와 [[청진]] 사이를 오가는 차량물동량은 대부분 회령을 거치는데, 북한 도로의 사정이 좋지 않아 상태가 양호한 중국 도로를 조금이라도 더 타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김정숙(북한)|김정숙]]의 고향{{{-1 (생가 : [[회령고향집]])}}}이라고 나름 밀어주는 도시인지라, [[북한]]의 지방도시 치고는 나름 구색을 갖추고 있다. 온갖 음식점을 모아놓은 회령 음식점거리는 북한의 단골 선전거리 중 하나다. 국경에 가깝고 인구가 비교적 많아 탈북민이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탈북민의 고향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시·군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2016년 수해로 탈북 루트가 되던 마을의 주민들을 통째로 이주시켜 이곳을 통하는 탈북이 어려워졌다. == 역사 == [[남북국시대]]까지는 [[고구려]]와 [[발해]] 등 예맥계 국가의 영토였으며 [[발해]]가 [[요나라]]에게 멸망한 이후로는 [[고려]] 왕조 내내 회령을 비롯한 지금의 두만강 영역은 [[여진족]]의 영토였다. 고려 말 [[공민왕]] 대에 동북 9성 이후 중단된 북진정책을 재개하면서 [[쌍성총관부]]를 비롯한 [[길주군|길주]] 이남의 영토를 수복하였고 고려를 계승한 [[조선]] 역시 태조 [[이성계]]의 조상의 영토를 되찾는다는 명분으로 북진정책을 이어갔는데 1398년 두만강 이남 지역을 수복하고 [[경원군|경원부]]를 설치하였으나 여진족의 준동으로 인해 1409년 경원부를 [[경성군|경성부]]로 후퇴시켰다. 그후 경성부 이북 지역은 조선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무주공산이 되었는데 1423년 오돌리 부족의 추장 [[아이신기오로 먼터무]][* 훗날 청나라를 세우는 숭덕제 [[아이신기오로 누르하치]]의 6대조이다.]가 부족을 데리고 지금의 회령 지역에 정착하기도 하였다. 이 당시 회령은 [[여진어]]로 와무허(斡木河)라고 불렸다. 1433년 [[우데게족|우디거족]]이 와무허의 오돌리족을 기습해 먼터무가 살해당하고 부족은 두만강 너머로 도망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이 기회를 틈타 [[세종(조선)|세종]]은 다시 두만강으로의 북진을 개시하였다. 1432년 석막(石幕)[* 지금의 부령군 석막면]에 설치한 영북진(寧北鎭)을 1434년 백안수소(伯顔愁所)[* 지금의 [[종성군]] 행영면.]로 이동시키고 이를 [[종성군|종성]](鐘城)이라고 하였다. 또한 석막과 백안수소의 중간지점이자 두만강 코앞에 있어 여진의 내습이 쉬운 와무허에 새로 진을 설치하였는데 와무허의 한자 음역인 '오음회(吾音會)'의 '회(會)'에 '영북진'의 '녕(寧)'을 따 '회령진(會寧鎭)'이라 하고 그해 가을에 회령진을 회령도호부로 승격시켰다. 1895년 [[23부제]] 시행과 동시에 전국 행정구역을 일괄적으로 [[군(행정구역)/대한민국|군]]으로 개편하면서 회령도호부는 회령군이 되었고 1914년 [[동해]]와 접하고 있던 [[월경지]]인 관해면이 [[부령군]]으로 이관되었다. 1931년 회령면이 회령읍으로 승격하였고 1943년 봉의면과 운두면을 합쳐 보을면이 되면서 1읍 6면을 관리하게 되었다. 1909년에 [[안중근]] 의사가 주도했던,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230104000176|회령 전투가 있었다]]. [[영웅(뮤지컬)]]에서 대사로만 언급되지만, [[영웅(2022)]]에서 본격적으로 전투 장면을 보여준다. 영화에 따르면, 안중근이 이끄는 군대는 앞서 진행한 전투에서 일본군 포로를 잡지만, 만국 공법을 준수하기 위해 이들을 풀어주었다. 석방된 일본군은 훗날 안중근의 군대에 야습을 시도했고, 포로 중 한 명이었던 '와다'는 안중근의 총알을 맞아 얼굴에 상처가 남았다. 이를 계기로 일본 경찰로서 안중근을 쫓아다녔다. 북한 치하에서 1952년 [[유선군]]이 분리됐다가, 1974년 다시 병합됐다. 1991년 7월 시로 승격되었다. [[종성군]] 지역에서 일부지역을 편입했는데 그곳에 [[회령 수용소]]가 있었으나 폐지되었다고 한다. == 기후 == 기후대는 [[냉대기후]]에 속하며 연교차가 큰 대륙성 기후다. 최한월인 1월의 평균기온은 -12.6℃'''로 매우 춥다. [[몬테네그로]]의 수도 [[포드고리차]]와 같은 위도에 있는데[* 회령시와 포드고리차 두 곳 다 북위 42°26' 일대에 있다.] 포드고리차의 1월 평균기온은 영상 5.5℃로 북위 33도에 있는 [[제주시]]와 비슷하고 회령보다는 거의 18℃나 더 따뜻하다. 회령이 비슷한 위도인 포드고리차에 비해 매우 추운 이유는 바다와 떨어진 내륙 지방이고 찬 바람이 수시로 부는 두만강 가 삼림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거의 비슷한 위도에 있는 [[라선시]]와 비교해 보면 [[라선시]]의 1월 평균기온은 -7.1℃로 위도에 비해선 꽤 추운 편이지만 그래도 회령시보다 '''5.5℃나 더 따뜻하다!''' 회령과 라선이 거의 비슷한 위도에 있는데도 온도 차이가 이렇게 나는 이유는 라선이 수심이 깊은 [[동해]]에 연해 있고 마천령산맥과 함경산맥이 북서풍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도가 비슷한 곳인데도 온도 차이가 5℃ 이상 나는 것이다. 영서 지방보다 영동 지방이 더 따뜻한 것과 같은 이유인 것이다. 고도가 그리 높은 곳이 아니기에 최난월인 8월 평균기온은 21.1℃로 함경도 내에선 비교적 높은 편이다. 연교차가 커서 1977년 7월 30일에는 40.5℃를 기록한 반면, 1956년 1월 22일에는 -35.6℃를 기록했다고 한다. 또한 한반도에서 [[소우지|강수량이 가장 낮은 편]]인데 600mm 정도. === 2016년 두만강 유역 대홍수 === [[2016년 두만강 유역 대홍수]]로 특히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지역이며, 이곳에서만 '''200여명이 죽거나 실종되었다.''' 자세한 건 해당 항목 참고. == 북한 기준 행정구역 == 총 19동 28리로 구성되어 있다. * 관할 동 : 강안동, 계림동, 궁심동, 남문동, 동명동, 망양동, 보을동, 산업동, 새마을동, 성천동, 세천동, 수북동, 신천동, 역전동, 오산덕동, 유선동, 중도동, 중봉동, 칠월팔일동 * 관할 리 : 계상리, 계하리, 굴산리, 금생리, 남산리, 대덕리, 덕흥리, 낙생리, 용천리, 무산리, 방원리, 벽성리, 사을리, 성동리, 성북리, 송학리, 신흥리, 영수리, 오류리, 오봉리, 원산리, 인계리, 창태리, 창효리, 풍산리, 학포리, 행영리, 홍산리 기존 회령군에 [[종성군]] 남산면 일부와 행영면, [[무산군]] 풍계면이 합쳐졌다. 다만 군 동부에 있던 용흥면 일부 지역은 [[경흥군]]으로 넘어갔다. == [[이북5도위원회|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 == [include(틀:함경북도의 하위행정구역)] ||<-4> '''[[파일:함경북도(이북5도위원회) 휘장.svg|height=15]] [[함경북도|{{{#000000,#dddddd 함경북도}}}]]의 [[|{{{#000000,#dddddd 미수복 행정구역}}}]]'''[br]{{{#!wiki style="margin: -5px -10px; display: inline-table" || {{{#!wiki style="margin: -5px 0;" [[파일:회령군 상징.png|height=65]]}}}||{{{#!wiki style="margin: -5px 0;" '''{{{+1 회령군}}}'''[br]會寧郡[br]{{{-1 Hoeryŏng County}}}}}} ||}}} || ||<-4> {{{#!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 장소=함경북도 회령, 너비=100%, 높이=100%)]}}} || ||<-2> '''군청 소재지''' ||<-2> 회령읍 일동 || ||<-2> '''상위 행정구역''' ||<-2> [[함경북도]] || ||<-2> '''하위 행정구역''' ||<-2> 1[[읍]] 6[[면]] || ||<-2> '''면적''' ||<-2> 1,255km² || ||<-2> '''인구''' ||<-2> 69,497명[* 1944년 인구총조사] || ||<-2> '''인구밀도''' ||<-2> 55.38/㎢ || [[파일:회령군기.png|width=50%]] [[파일:회령군.jpg]] 이북5도위원회 기준으로는 시 승격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여전히 회령군이다. * '''회령읍'''(會寧邑) * 관할 동 : __일(一)__, 사(四), 삼(三), 오(五), 오산(鰲山), 요(料), 이(二) * 본래 회령군 부남면(府南面)과 공북면(拱北面)으로 1914년에 통폐합되면서 회령면이 되었고 1931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 면적이 매우 작다.[* 12.42km2로, 남한 지역까지 통틀어도 세 번째로 작다. [[읍(행정구역)/목록]] 참조. 읍 크기가 작은 것은 이북오도의 많은 읍들의 특징이다. 해방 이후 읍의 확장이 없고 해방 당시 행정구역으로 두었기 때문. 그런데 정반대로 넓은 읍들도 이북오도에 많다.] [[함북선]]과 회령탄광선이 [[회령청년역]]에서 분기한다. * '''벽성면'''(碧城面) * 관할 동 : __대덕(大德)__, 벽성(碧城), 서촌(西村), 영수(永綏), 오봉(五鳳), 중도(中島) * 본래 대덕면(大德面)과 영수면(永綏面)으로 1914년에 병합되어 벽성면으로 되었다. * 회령읍의 배후지로 남북으로 [[함북선]] 철도가 지나며 [[대덕역]], [[중도역]]이 있다. 두만강 따라서는 회령탄광선이 지나며 영수역(폐역)과 봉의역이 있다. * '''보을면'''(甫乙面) * 관할 동 : __유선(遊仙)__, 남산(南山), 성남(城南), 성동(城東), 성북(城北), 오류(五柳), 운기(雲基), 운연(雲淵), 홍산(鴻山) * 본래 회령군 봉의사(鳳儀社, 남산·오류·운기·홍산동)와 운두사(雲頭社, 유선·성남·성동·성북·운연동)로 각각 봉의면(鳳儀面)과 운두면(雲頭面)으로 이어지다 1943년에 합병되어 형성되었다. '보을'은 홍산동의 옛 이름이다. * 면소재지인 유선동은 1930년경 석탄광이 생겨나 5,6년 만에 회령읍보다 더 번성하게 되었는데, 전형적인 광산촌이었는지 [[채만식]]에 따르면 신선이 노닌다(遊仙)는 지명과 다르게 살풍경하여, 신선이 유배 왔다면 [[두만강]]에 투신자살했을 것(...)이라고 했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35010100239215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35-01-01&officeId=00023&pageNo=15&printNo=4883&publishType=00020|#]] 북한 행정구역상 한때 존재했던 [[유선군]] 소재지이기도 했다. 회령탄광선이 유선역(구 계림역)에서 시종착한다. 유선역에서 1.1km 북쪽으로 신계림역이 있었으나 폐역되었다. * '''용흥면'''(龍興面) * 관할 동 : __세곡(細谷)__, 신흥(新興), 어운(魚雲), 용성(龍城) * 본래 회령군 용성면(龍成面)와 신흥면(新興面)로서 1914년에 병합되어 용흥면으로 되었다. * '''창두면'''(昌斗面) * 관할 동 : __풍산(豊山)__, 무산(茂山), 영산(靈山), 종암(鍾巖), 창두(昌斗), 창태(蒼苔) * 본래 회령군 풍산면(豊山面)과 영산면(靈山面)으로 1914년에 병합되어 창두면으로 되었다. * 회령군의 남부 산악지역이자 청진으로 가는 길목. [[함북선]] 철도가 지나가며 관내에 [[창두역]], [[풍산역(함북선)|풍산역]], [[전거리역]]이 있다. 그 악명높은 [[전거리교화소]]가 무산동에 있다. * '''팔을면'''(八乙面) * 관할 동 : __원산(元山)__, 금생(金生), 세(細), 영천(靈泉), 장무(奬武), 창효(彰孝) * 본래 회령군 창효면(彰孝面)과 원산면(元山面)으로 1914년에 병합되어 팔을면으로 되었다. * 회령군의 중부 국경지대지만 금생동에만 접한다. 나머지는 산악지역. 그 금생동에 [[함북선]] [[금생역]]이 있다. * '''화풍면'''(花豊面) * 관할 동 : __인계(仁溪)__, 궁심(弓心), 사을(沙乙), 옹희(雍熙), 학포(鶴浦) * 본래 회령군 인계면(仁溪面)과 옹희면(雍熙面)으로 1914년에 병합되어 화풍면으로 되었다. * 회령군의 북부 국경지대. [[함북선]] 철도가 지나가며 관내에 [[학포역]], [[신학포역]], [[고령진역]]이 있다. 또한 신학포역에서 지선철도인 [[세천선]]이 종성군 남산면 쪽으로 분기한다. == 대중매체에서 == [[이머전시(웹툰)]]에서 1부 후반부에 나온다.[*스포일러 북한 사람들이 혁명을 일으키게 된다. 홍수가 난 지금의 현실과 비교해 보면...] == 여담 == * 미인이 많다는 주장이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있었다. 이는 태어난 곳이 회령인 [[이순재]] 씨가 증언하는 내용이다. [[https://www.ajunews.com/view/20140911232123940|#]] 여미(女美), 행미(杏美), 토미(土美)의 회령3미라고 하여 미녀, 백살구, 백토가 유명하다고 했다. [[https://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219628|#]] 분단 이후에도 이런 설이 남아 있는지 회령 출신인 탈북민인 배우 [[김아라]] 씨도 이를 증언하기도 했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이효석]]도 《모던걸 멜론》이라는 소설에서 '물 맑은 두만강을 끼고 난 곳이기 때문인지 회령에는 살빛 고운 미인이 많다.'라고도 묘사했다. * 일제강점기 [[나운규]]가 아리랑을 찍은 곳이라고도 한다. * [[북중국경]] 지역인 만큼 [[북한이탈주민]]의 수도 많은데 회령 출신은 특히나 많아서 한국에서 선생님과 함께 동창회를 열 정도라고 한다. == 출신 인물 == * [[김아라]] * [[김영춘(1936)|김영춘]] * [[김정숙(북한)|김정숙]] * [[나운규]] * [[오일남(독립운동가)|오일남]] * [[이순재]] - [[사극]]에서 [[김종서(조선)|김종서]] 장군 역을 2번 한 적이 있었는데, 자신의 고향을 개척한 사람을 연기하니 기분이 새로웠다고 한다. * [[지성호]] - [[대한민국]] [[21대 국회의원]] * [[최부일]] * [[최인훈]] [[분류:함경북도]]